또 쉽게 흘러가 버린다 by James


  지난 주에는 일본을 다녀왔다. 주말 포함하여 3일을 다녀왔는데 이렇게 짧게 다녀온 적은 처음이다. 짧게 가는 만큼 빡빡한 일정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니다. 도쿄는 여전히 좋았다. 아니, 여전해서 좋았다. 남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 겉으로 보일지라도 타인에게 친절한 태도 등은 언제나 내가 마음 편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계획했던 것들을 많이 구입하지는 못했다. 일본 생산이라 가격이 비쌀지라도 원스타 두 켤레 정도는 구입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사이즈가 없었다. 포터에서 메신져백 혹은 힙색 같은 형태의 가방을 사려고 했는데 가는 곳마다 원하는 컬러가 없었다. 이건 끝내 긴자에 있는 한 백화점에서 떠나오는 날 구할 수 있었다.

  기계식 키보드가 하나 갖고 싶었다. 지난 번 글에도 썼듯이 키감이 좋은 키보드를 사게 되면 글을 좀 더 많이 혹은 잘 쓸 것 같아서 사고 싶었다. 아는 동생이 갖고 있는 레오폴드 기계식 키보드를 시타 해봤는데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 저것 검색하다가 끝내 그 끝판왕이라고 말하는 해피해킹 프로 2 모델을 구입했다. 각인이 되어 있느냐 없느냐, 컬러가 블랙이냐 화이트냐에 따라 총 네 가지가 있었다. 올 하반기에 구입할 맥을 생각해서 블랙으로 구입하려고 했으나 실물을 보니 잘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 화이트를 사게 되면 영어 각인이 있는 것으로 하느냐, 없는 것으로 하느냐 고민해야 했는데, 끝내 화이트 무각인으로 구입했다. 실은 내 가지 중에서 가장 고려치 않은 형태였는데, 끝내 구입하게 되었다. 지금 이 글은 그 키보드를 사용하여 처음으로 쓰는 글이다.

  오랜만에 다이어리를 정리하다가, 벌써 6월도 20일이 되어 버렸단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일은 여전히 많다. 메르스니 뭐니 해도 내가 일하는 곳은 아무 상관이 없나보다.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와서 기다리는 중이다. 처음에 이 일을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은 수많은 야근과 주말출근을 통해 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끝맺음 하였다. 그렇게 일이 손에 익어가다 보니 어느덧 상반기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고작 상반기 동안 휴가를 단 하루 썼을 뿐이다. 하지만 옆에서 업무를 가르쳐 주신 차장님은 단 하루도 쓰질 못했다.


  아무리 상반기를 되돌려 보아도 기억에 남는 건 몇 가지 없다. 작년에 얻은 포상으로 캄보디아를 다녀온 일, 새로운 장소에서 새 일을 배우고 시작한 것,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 것 정도다. 하지만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건 역시나 '일'이다. 시도 때도 없이 일만 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일을 빼면 크게 남는 게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예전만큼 소비를 많이 한 것도 아니고, 많은 책을 읽지도 않았다. 음악에 대한 소비는 많았고 좋은 음악을 꽤 많이 들을 수 있는 상반기였다. 좋은 이어폰 하나를 선물받았고 여전히 턴테이블은 구입하지 않았다. 그래도 종종 한정판이란 명목하에 LP 몇 장을 구입했다. 영화는 유명하다는 몇 편을 멀티플렉스에서 봤을 뿐 집에서 찾아서 보진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건 다시 책을 잡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서점은 꾸준히 다녔기에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 꽤 있는데, 이것들만 다 읽어도 하반기가 훌쩍 지나갈 것 같다.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이유는 쉽다. 일본 지하철에서 쉽게 보이는 모습들이 원래 내 행동방식을 되살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최근에 접한 신경숙의 표절 논란은 서글픈 감정이 들게 만들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같이 좋아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렇게 만든 것은 '삶'이란 커다란 명제일 수도 있고, 혹은 그것을 좋아하는 환경이 점점 척박해져서 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해본다. 특히 한국에선 더욱 그런 경향이 잘 느껴진다. 여전히 좋은 음악, 좋은 영화는 많이 나오는데 그 좋음에 대해 얘기 나눌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러다 언젠가는 이런 행위들이 어색해지는 순간이 오는 건 아닐까. 혹은 그런 걸 누군가가 대신해주는 삶이 오는 건 아닐까 과장해 보기도 한다. 좋은 건 나눠야 한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한데, 그게 소비만이 가진 전유물이 되어가는 것 같아 또 서글프다. 다들 요즘 뭐하면서 지내시나요.




덧글

  • 오리너구리 2015/06/22 00:40 # 답글

    소비가 어때서요. 인생의 크나큰 낙입니다.
    키보드를 사셨으니 다음은 마우스입니다. 마소 어고노믹 추천합니다.
  • James 2015/06/25 00:21 #

    마우스 없이 생활해야 본전 뽑는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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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