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쉽게 변하겠는가 by James



  더 이상 기록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다이어리 속 기록은 이미 내가 사는 시간보다 한 두 달 늦어졌고, 무엇을 읽든 보든 기록하는 것을 필수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한 해를 정리하고 그 동안 본 것들 산 것들을 둘러보며 다음 해를 기약하는 작업이 삶에서 사라졌다. 단지 기록만 사라졌다. 현실 속 행위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기록하지 않는 경험과 글로서 정리되지 않는 순간들은 조금 덜 기억된다는 기분은 단지 익숙함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곳도 마찬가지다. 컴퓨터 자체를 켜는 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가끔 인터넷을 할 때 들어오긴 했지만 무언가를 써야겠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써야 할 것들이 없었다. 내 속에서 쌓여가는 것들이 없었다. 정리해야 할 관계도 없었다. 익숙했던 삶은 이어졌고 그 속에 조금의 나태함이 들어왔다. 매주 일요일 저녁에 행하던 셔츠 다리는 게 귀찮아져서 아침 출근 전에 하나씩 다려 입는 삶이 몇 주간 이어졌다. 좁은 방이어도 공냥이 털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 돌리던 청소기도 토요일 오전에 잠시 사용할 뿐이었다. 집에서 밥은 별로 먹지 않으면서 마시는 건 많아, 싱크대에 쌓인 컵과 텀블러들을 일주일 넘게 방치하기도 했다. 예전의 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 이상 기차를 타고 출근하지 않는다. 회사를 옮긴 건 아니고 2년 만에 서울로 발령 받았다. 현재 사무실에서 일 한지도 5개월 째다. 회식을 하든 야근을 하든 집에는 올 수 있는 삶이다. 그렇게 꿈꿔왔던 이사를 해야 할 상황이지만 현재 위치가 애매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집에는 짐이 쌓여만 가고 나는 약간의 공간을 마련하여 잠만 잤다가 다시 출근하는 삶을 이어갈 뿐이다. 공냥이는 이 좁은 방에서도 놀아보려 하지만 공간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걸 아는 듯하다. 집이란 공간을 좋아하지만 좋아할 수 없는 현 상황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사들인 것이지만 이 많은 짐이 다 뭔가 싶은 순간이 비주기적으로 돌아온다.


  최근에 영화는 잘 보지 않았다. 아니, 보고 싶은 영화가 별로 없다고 하는 게 맞을테다. 그렇다면 예전 영화들 중에 미처 못 본 것들을 봐야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매주 일요일 저녁엔 혼자 영화보는 시간이라며 만들곤 했는데 일찍 잠들기 바빴다. 두 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을 여유조차 없었다. 어쩌면 그 여유를 만들 의지 자체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음악은 끝없이 듣고 있다. 생활비의 1/3 이상을 음반에 쏟아붇는 달도 있는데 그러한 판단은 이미 행위가 끝난 이후에 이루어진다. 평소에 좋아하는 밴드나 뮤지션의 음반은 새로 잘 나오지 않다보니 처음 듣는 인디밴드(국내든 국외든)들의 음반이 대부분이다. 별 고민없이 구입해서 리핑해서 듣거나 무지 CDP로 들으면서 틈나는 시간을 보충하고 있다. 오늘은 밀린 집안일을 하며 밀린 리핑 작업을 하다가 Decemberists 의 2015년 음반을 듣는데 참 좋아서 깜짝 놀랐다. 최근에 흥미가 좀 떨어졌었는데, 이번 앨범은 참 듣기 좋다.

  이번 주에 다시 일본을 간다. 너무 바쁜 나머지 혹은 일에 적응한다는 핑계로 휴가를 단 하루도 쓴 적이 없는데, 휴가 하루를 쓰고 3일 간 도쿄를 다녀오려 한다. 벌써 세 번째 도쿄이다 보니 큰 기대는 없이 커피나 마시고 이것 저것 사서 돌아올 예정이다. 편안한 복장으로 단순하게 있다 오자는 게 이번 컨셉인데, 가게 되면 또 욕심이 나서 이곳 저곳 많이 돌아다니려 하겠지. 그리고 또 한가지, 이번에 드디어 기계식 키보드를 구입할 생각이다. 예전부터 생각해뒀던 건데 드디어 사게 된다. 요즘 같이 노트북을 잘 켜지도 않는 상황에서도 구입하려는 건 첫째, 사려 했던 것은 언젠가는 꼭 사게되는 내 성격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필요로 하는 마음이 예전에 비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꼭 사려던 그 당시의 마음 같은 것들이 되살아나 끝내 사게 되는 것들이 여러 가지 있다. 기계식 키보드도 그 중에 하나가 아닐까. 최근에 아는 동생이 기계식 키보드를 쳐보게 해줘서 몇 번 눌러봤더니 그 맛이 너무 좋아 글이 굉장히 잘 써질 것 같은 또 다른 착각이 들더라. 이것 저것 고민없이 해피해킹 프로 2를 구입할 예정이다.

 두 번째 이유는 아무래도 기록에 대한 재다짐 같은 것일테다. 다시 둘러보지 않더라도 기록을 하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심적 과정이 그동안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다보니 더욱 하루 하루 그리고 순간 순간에 만족하게 된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삶도 분명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보니 계획이란 게 사라졌다. 현재를 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삶 같은 건 교과서에나 있을 것 같은 생활이 이어졌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몸의 상태도 방치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여름이 다가오는 걸 알았지만 내 몸은 겨울과 같았고 나는 옷을 입을 때마다 예민해졌다.


  아마 일주일 후에 나는 또 글을 안 쓸지 모르고 이 공간은 지금 상태 그대로 나 자신과 남들에 의해 버려진 곳이 될지도 모르겠다. 뭐, 그건 또 그 때 가서 생각해보자. 사람이 쉽게 변하겠는가.



덧글

  • simamoto 2019/08/23 17:01 # 답글

    잘 지내시죠~ 오랜만에 이글루 들어왔는데~ 제임스님 글 보니 좋네요~ 그냥 뭐랄까 인생이 생각보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네요~ 모쪼록 행복한 나날들 보내고 계시길 바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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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