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자랐다 by James





아버진 내게 매번 그런 얘길 하셨다. 다른 사람의 집이나 어딘가를 방문할 땐 절대 빈손으로 가지 말라고 하셨다. 큰 건 아니더라도 뭔가를 준비해서 가라는 말씀이셨다. 어렸을 땐 흘려듣던 얘기였는데, 이번에 급작스럽게 내 일터로 오셨을 때도 그런 얘길 하셨다. 과일이라도 사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마치 그게 큰 잘못인 것처럼 얘기하셨다. 나는 그 말에 아버진 여전하시다고 생각했다.

대부분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도 아버질 원망한 적이 많았다. 자신이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란 걸 안건 내가 머리가 굵어졌을 때지만, 끝없이 공부하라고 말씀하실 때마다 아버지가 미웠다. 새벽같이 나가서 밤 늦게 들어오는 아버지가 어느 날 일찍 들어오시면 어색한 순간이 더 많았다. 주말에도 당연하게 일하시는 아버지가 어느 순간엔 익숙해졌다. 집에 일이 있어 외식이라도 하는 날에 작업복 차림 그대로 오셨을 때, 나는 솔직히 부끄러운 적이 있었다.

그런 아버진 한 번도 취한 모습을 내게 보여주신 적이 없다. 원래 술을 잘 못하시지만 왜 사람들과 술 한잔 안 하고 싶으셨겠는가. 단지 일이 늦게 끝나고 다음날 다시 일찍 나가야 하는 삶, 내 공부 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아버지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일정한 직위에 오르셔서 자신의 근무 시간이나 휴일 정도는 정하실 수 있는 자리가 되었을 때, 회사 사람들과 술 한잔 하고 들어오신 모습을 우연히 보았을 때 나는 깨달았다. 술 마시지 않는 삶은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선택이었다는 걸.


아버진 일에 있어 투철하신 분이셨고 지금도 그렇다. 자신보다는 회사와 일을 중시하시는데, 이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이다. 그 먼 길을 돌아 어제 내 일터로 오셨을 때 빨리 나가시려고 하신 것도 내 일에 지장이 있을까봐, 내가 주변 사람들로 원망이나 핀잔 들을까봐 그러셨다. 차타는 곳까지 배웅 했을 때도 잘 지내라거나 살을 빼라거나 등의 얘기보다는 어서 들어가란 말만 하셨다. 어머닌 뭔가를 챙겨주고 싶어 하시는데 아버진 됐다며 다음에 부산 와서 받아가라고 하셨다.


어릴 땐 서스럼없이 아빠보단 엄마가 좋다고 말하고 다녔다. 내 성격은 엄마를 더 닮았다고 느끼며 살아왔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내 삶과 과정과 내면을 들여다 보면 언제나 아버지가 보인다. 지금의 내 삶과 앞으로의 삶은 아버지가 걸어오신 것과는 전혀 다를텐데, 이상하게 내 속에서 아버지가 보인다. 남에게 피해주며 살지 않는 삶, 내 사람을 챙기는 삶. 아버진 그 태도를 당신이 직접 나에게 평생 보여주며 살아오신 거란 걸 이제서야 알았다. 삶을 향한 내 태도와 성격을 나는 혼자 스스로 만들어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밑바탕은 실은 아버지의 몫이었다는 걸 조금 늦게 알았다.


아버지 카톡 프로필에 이번 여행에서 찍으신 사진이 올라 있었다. 그 사진을 보고서야, 평생 여유와 멋이란 모르고 사셨던 아버지가 내가 자리잡고 안정되니 그걸 누리실 수 있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일전에 내가 돈을 벌면서 그동안 못 누렸던 걸 다 누리겠다며 끝없이 신발과 옷을 살 때 문득 미안해져서 아버지께 나와 같은 운동화를 사드린 적이 있다. 아버진 뭣하러 이런 거 샀냐고 하셨다. 그런데 어머니와 여행 가셨을 때 찍은 사진엔 매번 그 신발이 보였다. 이번 여행 사진에도 역시 아버진 그 갈색 운동화를 신고 계시더라. 나는 그 사진을 내 카톡 프로필에 담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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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