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살아있다 by James



뭐 언제나 그렇듯이 잘 살아있다. 글은 가끔 쓰고 있다. 무선 키보드란 걸 구입해서 의무적으로 메모장이나 에버노트 등에 글을 남겼는데 의무적인 글이 언제나 그렇듯이 쓰나마나한 글이었다. 내일은 일찍 출근해야 하고 별로 관심이 없는 월드컵 경기가 새벽부터 있는 날임에도 이렇게 글을 남기는 건 말 그대로 역시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단지 그것 뿐이다.

어떤 일이나 사건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는 일은 많았다. 그것을 글로 남기려는 욕망은 컸지만 언제나 인스타그램에서 허용하는 그 공간에만 짧게 토할 뿐이었다. 특히 술이 취한 날은 하고픈 말이 많았는데, 많이 자제한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인스타에 그 순간의 말을 욕망과 버무려서 남기곤 했다. 다음 날엔 술에 깨려고 헛개수나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글을 지울까 말까 고민도 많이 했고.

회사에 다닌 다는 것, 그 회사에 기차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출근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규칙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매일 같은 시간 거의 같은 자리를 예매하고 나는 거의 같은 시간에 회사 근처 역에서 내린다. 회사에 도착해서 나는 거의 같은 순서대로 같은 톤으로 인사를 남긴다. 내가 내뱉는 안녕하십니까 속에는 아직도 저 아직 신입입니다, 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그게 옳고 그게 어울리는 생활을 하고 있다.

술을 참 많이 마시고 있다. 일주일에 세 네번씩 마시는 헤비드링커는 아니지만, 금요일이나 토요일엔 거의 술 약속이 잡혀 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긴 하지만 나는 꼭 취한다. 아니 취하려고 일부러 많이 마시는 듯하다.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고 왜 이제 왔냐고 냥냥거리는 공냥이의 모습까지만 나는 보통 기억한다. 내가 어떻게 옷을 벗고 어떻게 이불을 펴서 잠들었는지는 보통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잠드는게 나는 요즘도 좋다. 무언가를 잊고 잠들 수 있는 것, 요즘은 그런 순간을 좋아한다. 이 말은 그만큼 내가 현실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시간이 많다는 거겠지.


이렇게 규칙적이면서도 술에 취한 날이 존재하는 일주일을 보내면서도 일요일 아침엔 꼭 조조영화를 보려고 한다. 그래도 가까운 압구정 CGV에 허겁지겁 들어가서 영화를 보곤 한다. 요즘은 조조 영화가 10시가 아니라 8시 즈음인데 그 시간을 맞추려다 보니 매번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고민한다. 내가 이렇게 잠을 오래 못자고 그 영화를 봐야하는 걸까, 라는 생각을 4분 정도 하는 것 같다. 보통은 꾸역꾸역 나가는데, 그러다보니 매번 영화관엔 아슬아슬하게 도착한다. 한 가지 다행인 건 보통 이렇게 보는 영화는 대부분 괜찮다는 것. 그렇게 내 삶의 일부분을 장식하는 느낌으로 일주일을 보낸다.


여전히 나는 말이 많은 영화와 관계를 다루는 영화가 좋다. 말과 관계는 섞인다는 점에서 둘 다 유의미하다. 섞여버린 관계가 해결되는 것보다 나는 그 관계가 엮여가는 그 과정이 좋다. 꼭 관계를 풀 필요는 없지 않나. 묶이면 묶인 대로 나가면 되는거지, 관계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는 시각은 여전히 거북스럽다. 꼭 관계가 없을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소위 밀당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해진다. 좋으면 좋다고 말하는 거고 싫으면 싫다고 표현하는 건데 그걸 숨기는 그 관계가 여전히 싫다. 왜 그렇게 시간을 버려가면서 관계를 만들어 가려는지 궁금하다. 아니, 관계를 만들고 싶긴 한건지. 밀당과 썸은 약간 다르긴 한데, 뭐 그건 나중에 또 쓸 일이 있겠지.



여기까지 쓰고 보니 블로그라는 공간은 참 독특한 느낌이다. 메모장에 쓰나 여기에 쓰나 내 이야기를 푸는 건 마찬가지인데, 메모장에 썼다면 이렇게 전혀 쓰지 못했을테다. 이는 , 이젠 거의 찾아오는 이 없는 이곳을 누군가는 그래도 보지 않을까 라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메모장에 글을 남기던 것은 단지 기록의 수준이었다면 여기에 약간의 공감을 얻고자 하는 글을 쓰는 게 나에겐 더 맞기 때문인 듯하다. 음, 공감하지 않아도 크게 상관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이렇게 길게 글을 쓴 것에 나는 만족한다. 약간 즐겁기까지 하네. 이젠 슬슬 자야지.




덧글

  • 2014/06/17 23:4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6/18 22:4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6/19 00:0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6/19 05:4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6/22 17:2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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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장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