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의 변화 by James


  오늘 휴가를 냈다. 그리고 병원에서 링거를 맞았다. 휴가와 링거를 맞바꾼 느낌이었다. 내가 일곱 살 때 두 달 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땐 매일 왼팔에 링거를 꽂아야 했고, 혈관을 찾지 못해 발에도 꽂은 적이 많았다. 그 이후로 맹장수술을 했을 때 빼곤 링거를 맞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내가 자처해서 맞았다.

  몸이 내 몸이 아니었다. 어제 새벽에 출근할 때부터 몸이 굉장히 추웠고(전기 히터 앞에 서 있어도 추웠다) 살갗이 아팠다. 병원에선 이 증상이 소위 우리가 말하는 몸살이라고 했다. 몸을 과하게 사용한 활동이 없었음에도 몸살이 온다는 걸 이제서야 알았다. 몸 어디 부윈가에서 염증이 생기면 이 염증은 혈액 속으로 들어가며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몸살이 오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인 즉슨 내 몸이 지금 온전한 상태가 아니란 점이겠지.


  해가 바뀔 때면 나는 언제나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시간이 12시에서 00시 00분 01초로 바뀌는게 무슨 큰 의미냐고. 달력을 새로 바꾸는게 나에게 무슨 큰 변화인지. 나름 의미를 찾았던 것은 새 다이어리를 구입할 때 느끼는 신선함 혹은 변화를 위한 기대 등인데, 이젠 그것도 없다(플레인 노트를 사서 연도 구분없이 계속 쓰고 있는 요즘이다). 어쨌든 그런 무의미함을 언제나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왜냐하면 내 마지막 이십 대였으니까.

  단지 해가 바뀌는 것처럼 이십대와 삼십대가 숫자의 차이일 뿐이지 뭐가 대수롭냐, 라고 묻는다며 나는 할 말이 없다. 이는 단지 내 주관적인 기준이 될 뿐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 열아홉이 기억나지 않고 나의 스무살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를 빨리 들어가서 실제 친구들과 호적 상으론 한 살이 차이가 나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나이 감각이 없었다. 친구들이 스무살이 되었을 때도 나는 열 아홉이었고 내가 스무살인지 열아홉살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중요한 건 같이 술을 마시러 갔을 때 민증을 확인하는 술집을 가느냐 그렇지 않은 술집을 가느냐 하는 것 뿐이었다. 그만큼 유의미한 일은 없었고 나는 입시 라는 턱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기억해도 그 때 있었던 일과 내 생각과 경험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취직을 하고 안정적인 삶에 정착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스물 아홉이 되어 있었다. 스물 아홉, 이십대 등의 단어가 어느 순간에 크게 다가왔다. 지난 연말 나는 매 주말 약속이 있었다. 남들처럼 하루에 여러 약속이 겹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혼자 지내는 내 시간의 틈은 없었다. 그런데 그게 싫진 않았다. 어차피 관계란 계속 이어져야 하는 것이고 나는 아직 내 주위에서 껄끄러운 관계는 없다. 보기 싫은데 봐야 하는 관계도 없다. 그래서 미리 약속을 잡고(대부분 술을 마셨다) 이야기를 나누는게 싫진 않았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엔 마지막 이십대가 떠나질 않았다.


  어떤 관계를 정리하려고 했다. 나는 오랫동안 지쳤고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그 사람도 지쳤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받은 상처들을 나는 치유하려 하지 않았고 피가 보이는 그대로 두려고 했다. 나만 참으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이어왔던 관계이고 이해하려고 했던 관계였지만 실제론 전혀 그렇지 못했단 걸 이제서야 알았다. 치유되지 않고 곪아터진 상처가 낯설게 느껴졌고 나는 그 상처를 나만 갖고 있다 생각했고 나는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긴 관계를 그만두자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생각이 많은 연말이었다. 바쁜 생활을 보냈지만 심적으론 힘들었다. 나는 웃을 수 없었고 기나 긴 출퇴근 시간 속에서 매번 깊은 잠에 빠지든지 우울한 기분에 빠졌다. 2013년이 가기 전에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아 보였다. 사람들을 만나도 깊은 마음 속으로 기뻐하고 즐기질 못했다. 술에 취한 날이 많았고 집에 와서 술취한 채 잠들어 버리는 것을 즐겼다. 그렇게 하면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쉽게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언제나 그렇듯 다음 날엔 멍하니 침대에 걸터앉아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 하는 생각만 했다. 그러다 2013년의 끝이 다가왔고 내 20대의 끝도 다가왔다. 이젠 부인할 수 없는 순간이 온 것이다.


  20대의 마지막이 심적으로 아팠고 힘들었다면 30대 초는 몸이 아팠다. 잘 아프지 않는 몸이지만 한 번 아프면 심하게 고통스러운데, 느닷없이 감기가 찾아왔다. 편도가 커서 그런지 몰라도 감기는 매번 목감기가 왔다. 하지만 이번엔 평소와 다르게 코감기가 왔다. 콧물은 끊임이 없었고 하루 종일 고객을 대하고 말해야 하는 직업상 정말 고통스러웠다. 중간 중간에 수십 번씩 휴게실에 들어가 코를 풀었다. 병원을 다녀와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 지난 주엔 피가 나왔다. 그래서 이비인후과를 갔더니 축농증이 왔다고 했다. 코가 막히면 머리가 아프고 멍한데, 실제로 혼이 빠진 것처럼 멍하니 의사의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어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아침부터 몸이 안 좋았고 내일 나올 수 있을까 걱정부터 했다. 사무실에 앉아 내 일만 처리하는 일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참을 수 있겠는데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이다 보니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오후 늦게 팀장님께 휴가 얘길 꺼내고 승인을 올렸다. 중요한 휴가 하나를 벌써 써버린 것이다. 하지만 참을 수 없었다. 일을 하면서도 수십 번 도망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의 얘기를 들으니 내 속에 그렇게 나쁜 게 많이 돌아다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쌓은 상처와 염증과 고름이 내 몸을 빙글빙글 돌고 있다니. 그리고 내 몸을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입사 1년 만에 이렇게 아픔을  맛봐야 하다니. 서럽단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아픔을 겪고보니 이제는 시간이 지나서 내 스물아홉과 서른을 돌이켜 볼 때 생각할 수 있는게 생겼단 생각이 들더라. 비록 열아홉과 스물을 기억할 수 없지만 이 때는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게 위안이 될까.

  병원을 나왔더니 어머니께 카톡이 와 있었다. 점심 먹었나 잘 지내지, 라는 짧은 얘기였는데 혼자 멍했다. 엄마라서 멀리 있어도 아는걸까 혹은 내가 아파서 최근에 연락을 안 해서였을까. 평소 같았으면 일이 있어도 네 별 일 없이 잘 지내요, 라고 답했을테지만 오늘은 사실대로 얘기했다. 아파서 휴가 썼다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공냥이가 바닥에 토를 해놨더라. 평소에 전혀 이런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이러니 얘도 아프구나 싶었다. 그리고 조금 울었던 기억이 난다.


  긴 글을 쓰고 싶단 생각은 언제나 했다. 하루에 노트북을 켤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블로깅도 힘들었고 아이폰 메모장에 쓰려니 뭔가 허전했다. 다이어리에 글을 쓰다가도 그 글씨체가 못나보여 더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인스타그램에 의미없는 사진과 주저리 주저리 글을 올리긴 했지만 매번 술을 마시고 글을 쓰다보니 다음 날에 곧잘 지우곤 했다. 내 삶을 기록함과 동시에 감정을 드러내고 거기에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뭉쳤는데 다음 날 보니 민망함만 남은 적이 많기 때문이다. 아깝단 생각도 들었지만 어쩌겠나, SNS도 어쩜 기록이고 나를 표출하는 곳인데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니.

  다시 또 언제 긴 글을 쓸 지 모르겠지만 글을 씀으로 인해 정리되는 위안은 다른 걸론 찾을 수 없다. 남들에게 터놓는 이야기는 가끔 매번 다른 사람에게 여러 번 반복해서 얘기하는 불편함이 있기에 글에서 받을 수 있는 효과가 덜할 때가 많다. 어쨌든 마음은 조금 진정되고 있다. 내일은 회사 전체 행사가 있어 아침부터 참석해야 하는데, 몸이 조금 더 회복되길 바랄 뿐. 우연히라도 이 글 읽는 모든 이들이 건강하시길. 그리고 늦었지만 모두에게 복된 새해가 되었길 바라며.






덧글

  • 블루싸인 2014/01/17 22:23 # 답글

    우연찮게 저도 지금 몸살이 걸려있습니다.
    가족과 떨어져서 아프니 참 서럽네요.
    몸 조리 잘해서 빠른 완쾌를 합시다.
    그리고 늦었지만 복된 새해 되길 바라겠습니다.
  • James 2014/01/26 22:43 #

    몸은 많이 나으셨어요? 전 호들갑 들 정도로 건강을 되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조금 버틸만 하구요.
    가족과 떨어져 있어서 생기는 서러움은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그렇지만 느닷없이 울컥할 때는 많구요.

    답이 늦었지만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는 꼭 건강하게 삶을 이어가도록 노력해 보아요 :-)
  • 2014/01/24 15:4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1/26 22:4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


메모장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