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는 말밖에는 by James



  며칠 전에 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하지만 목소리는 어머니. 근데 목소리가 별로 좋지 않다. 이유는 무슨 일이 있냐는 걱정. 어머니는 정확히 무슨 요일에 통화하고 그 이후로 연락 한 번 없었다는 걸 상기시키셨다. 나는 바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잘 모르실 수 있지만, 정말 바쁘다. 원래 취업 시즌이 이렇게 바쁜건가. 지난 주 월요일부터 정신이 없다. 모 기업 적성검사를 어제 칠 때까지 시험 준비를 하고 이력서를 넣었다. 스터디 모임을 매일 아침 8시 반에 시작했고, 도서관에 잘 가지 않던 내가 도서관에 모여 공부를 했다. 오늘도 일어나자 마자 씻지도 않고 원서를 쓰기 시작해 조금 전에 마무리 했다. 몇 가지의 물음에 대한 답, 소위 자기소개서를 쓰면 꼭 따로 저장해두는데, 지금 보니 총 12개다. 지원서 없이 지원한 곳도 있으니 총 13개의 기업에 원서를 넣었다.

  이 입사 지원서 라는 건 참 신기한 작업이다. 평소에 잘 모르던 회사라도 회사의 경영이념과 인재상을 둘러보고 이를 버무리는 작업을 한다. 그걸 내 경험과 연관시켜 쓰다보면 어느 순간에 이 회사에 꼭 들어가고 싶단 생각이 든다. 고작 지원서 하나 쓰면서 이런 마음이 드는데, 연수가면 어떻게 변할지. 뭐 그건 어디 붙고 얘기하자.

  사실 나는 돈을 벌고 싶단 생각은 있었지만 기업에 취업하고 싶단 생각은 없었던 사람이다. 게다가 특히 나같이 대학생활에서 별 특이한 이력이 없는 사람은 참 지원하기가 만만치 않다. 내가 대학 다니면서 한 것이라곤 책 읽고 영화보고 음악 듣고 사람 만난 것(아 끝없이 한 아르바이트와 과외도 있네) 뿐인데, 이런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어떻게 어필하나. 어학연수 한 번 가본적 없고, 무슨 수상경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봉사활동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닌 나를 어떻게 빛나게 해야 하나. 내가 가진 책과 CD의 목록, 그리고 블로그 글을 모두 프린트해서 제출하면 나를 알아줄까. 농담이다.

  실은 내일이 나는 제일 떨린다. 기업에 대해 잘 모르던 내가 그래도 꼭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그 곳의 지원서 마감이 내일이기 때문이다. 개인 정보를 입력하고 자기 소개서 질문만 잠시 살피고 아직 쓰진 않았다. 기존 내 자소서들은 틀이 거의 다 정해져 있었는데, 이 회사는 정말 심혈을 기울이려 한다. 그리고 만약 이 회사가 나를 서류에서 떨어뜨리면, 나는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이 회사가 자소서를 정말 열심히 읽는다고 직접 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대외적인 발언일 뿐일지 몰라도, 우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자소서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다(하지만 합격해도 그 이후에 최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인적성검사가 남아 있다). 거기에 나 자신을 꾸미지 않고 솔직히 풀어볼 예정이다.


  이번 추석에 부산에 내려가지 않는다. 어떻게든 잠시 내려 갔다 올 수도 있겠지만 내려가고 싶지 않다. 친척들 얼굴을 꼭 보고 싶지도 않고, 그냥 잔잔하게 생활하고 싶다. 그 때도 나는 집이나 근처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있겠지. 근데 처음엔 막막하던 이 생활도 하다보니 괜찮더라. 아마 스터디 멤버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도 주위에서 정보도 가르쳐주고 서로 독려도 하다보니 나태함이 조금은 사라졌지 않나 싶다. 늦게 합류하였지만 참 고맙기도 하고.

  매번 나는 올해 마지막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올해 말에 바라는 건 딱 하나. 가고 싶던 곳에 합격해서 합격증을 들고 은행에 간 후 마이너스 통장을 하나 만들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한 번도 해외를 가보지 못한 나는 올해는 꼭 가고 싶다. 만약에 내가 취직을 못해도 올해는 빚을 내서라도 가고 싶은게 소망인데, 그건 또 막상 닥치면 주저될 것 같다. 안 되면 단 며칠 이라도 일본에 다녀오고 싶다.


  글자수 제한이 있는 글을 며칠 간 계속 쓰다가 이렇게 자유롭게 쓰니까 너무 편하다. 할 말은 많고 글자수는 정해져 있으니 매번 문장이 함축되고 주어와 조사가 생략되거나 축소된다. 이걸 읽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팍팍할까, 라는 상상을 자주 한다. 아, 며칠 전에 한 방송사에 지원을 했고 그 때 쓴 자소서를 스터디 멤버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그 때 한 분이 나에게, 이거 혹시 새벽에 썼냐며 글이 감성적이라고 하더라. 경험에 관해 설명하는 글이었는데, 나는 그 글을 아침 10시에 썼었다. 함축적이거나 문학적인 표현을 쓴 것도 아닌데 그렇게 느끼는 걸 보며, 내 글은 어쩔 수 없구나 싶었다.


  모든 취준생들 힘내요.



덧글

  • 2012/09/17 21:02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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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18 16:0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09/17 21:03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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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18 16:0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09/18 09:5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9/18 16:1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09/18 17:37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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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20 23:29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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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29 01:13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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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29 20:00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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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