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중독과 장염과 급체 사이 by James


  지난 주 주말이었나, 급하게 OPIc 시험을 신청했다. 다음 주부터 모 기업의 공채가 시작되고 그 때 영어 말하기 점수가 필요하단 걸 알았기 때문이다. 따야지 따야지, 라는 생각만 3개월은 한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필요할 줄은 절대 몰랐고. 오픽 시행사에서도 이런 취준생의 마음을 잘 헤아린건지, 아님 돈 버는 궁리가 떠올랐는지 그 두 가지가 잘 맞물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평소보다 점수를 빨리 제공한다는 특혜에 힘입어 지원했다. 시험은 어제였고 결과는 다음 주 수요일에 나온다.

  준비하기는 했다. 한 10문제 정도는 예상답안을 작성했다. 그게 수요일이었다. 그 날 있는 스터디도 가지 않고 이 오픽에 신경을 다 쏟았다. 준비도 얼마하지 못했고, 몇 회사를 제외하곤 그리 높은 점수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고는 부담도 갖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 목요일에 일이 터졌다. 그 날 비가 많이 왔다. 아침에 남아 있는 소고기국을 데우고 밥과 함께 먹은 후 카페를 가려고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이상하게 속이 미식거렸다. 지하철에서 나는 냄새때문인가 싶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카페로 걸어가는 길에 뭔가 참을 수 없는 것이 목을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최대한 빨리 걸었다. 하지만 그걸 참을 수 없었다.

  내 몸을 내가 가눌 수 없는 상황이 얼마만 인지 모르겠다. 나는 특히 체했을 때 구토를 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술을 많이 마시고 돌아왔을 때, 눕자마자 느껴지는 어지러움으로 인한 구토느낌도 잘 참아낸다. 나름의 심호흡법으로 잘 다스린다. 하지만 이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카페에 와서 바로 화장실에 가서는 또 토했다. 이건 내 몸이 아니었다. 마치 내가 숨쉬는 걸 의식하지 않듯이 이 구토는 내 의지나 욕구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었다. 마치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듯이. 나는 흘러나온 눈물을 닦고 입을 헹구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이유는 모르겠다. 체했기 때문일까. 밥을 조금 빨리 먹는 버릇이 있지만 그리 급하게 먹은 느낌도 없었다. 아무래도 소고기국이 문제가 아니었을까. 여름에 특히 아침 저녁으로 데워야 하는데, 나는 비도 많이 오고 하루에 한 번만 데웠고 바깥에 둔 게 문제가 아니었을까. 어쨌든 나는 식중독인지 급체인지 모르는 현상을 지나 장염을 또 얻게 되었다. 병원에 다녀온 후 하얗게 변한 얼굴로 집에 힘겹게 돌아왔다.

  밤엔 열이 많이 났다. 잠을 자는데도 내가 땀을 많이 흘리고 있구나 싶었다. 두통은 가시질 않았다. 오픽 관련 자료를 도저히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목요일과 금요일을 그냥 보냈다. 배가 너무 고파 집 근처 본죽에서 죽을 사먹었는데 잘 넘어가지 않았다. 너무 누워 있었는지 아니면 장염이 심한건지 뒷허리가 많이 아팠다. 두통과 허리통증으로 잠을 자는 것도 수월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험날은 다가왔다.

  내가 해놓은 건 여전히 10개 정도의 답변 뿐이었다. 예상 질문만 훑었다. 토요일 아침 시험장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는 시키지 못하고 페리에를 시켜 야금야금 마셨다. 주말에 또 어떻게 될지 몰라 병원에 다녀왔다. 병원에선 마치 별로 안 아픈 것 같으니까 밥도 먹고 푹 쉬라는 얘기만 했다. 그리고 몸살 기운이 있다는 얘기를 덧 붙이더라. 좀 놀랐다. 내가 몸을 움직인 거라곤 헬스장에서 운동한 것 밖에 없는데 무슨 몸살인가. 알고보니 장염에 몸살이 겹쳐서 자주 온단다.

  다른 걸 할 순 없었다. 그냥 준비한 것이라도 잘하자는 생각에 자꾸 읽었다. 원래 몇 번 소리내어 읽어보기도 하고 녹음도 미리 해봐야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시험장에 들어가서 15문제에 대한 답변을 40분 가까이 답하곤 나왔다. 원래 높은 성적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느낌이 나쁘진 않았다. 시험장을 빠져 나오니, 또 등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스터디가 있었지만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얘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 밤엔 잠을 푹 잘 잤다. 오랜만에 푹 잔 느낌이다. 오늘 아침에 이상한 악몽을 꾸긴 했지만, 6시 조금 넘어서 눈이 떠졌다. 하늘을 보니 너무 맑아 계획했던 빨래를 했다. 3일 전에 전기밥솥에 해놓고 제대로 먹지 못한 밥이 생각나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 집에 반찬이 다 떨어져 김치볶음밥만 아주 천천히 먹었다. 그래도 배가 아픈게 조금씩 나아지고 있나보다. 어제 밤부터 몸이 나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마자 먹고 싶은 것들이 막 생각났다. 피가 얇고 속이 꽉찬 만두라든가, 패티가 굵은 햄버거 등이 생각났다. 만두 정도는 먹을 수 있었지만 혹시나 해서 그러지 못했다. 오늘도 스터디가 있는데, 마치고 몸이 괜찮으면 사먹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아프면 제일 안타까운 건 시간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이 아무런 의미없이 지나갔다는 아쉬움이 가장 크게 남는다. 내 몸의 고통이 큰 것도 싫지만 이 안타까움도 싫다. 다음 주부터 원서작성이 시작된다. 이것은 액땜일까, 아니면 주변 사람들의 말처럼 나에게 스트레스가 컸기 때문일까. 어찌되었든 이제 또 달려야 할 때다. 언제나 천천히 먹기, 이게 올 하반기 내 목표 중 하나가 되었다.


 

덧글

  • 준탁 2012/09/03 00:01 # 답글

    얼른 쾌차하시고, 취준에도 꼭 좋은 결과 있을 겁니다! 화이팅!
  • James 2012/09/03 15:33 #

    지금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고맙습니다 :-)
  • somewhere 2012/09/05 01:48 # 답글

    건강하세요. 오랜만에 들렀는데 아프다는 소식에 안타깝군요. 사진들은 잘 보고 갑니다. :)
  • James 2012/09/09 22:11 #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많이 나았습니다 :-)
  • 기묘니 2012/09/06 10:52 # 답글

    아프지마세요!
  • James 2012/09/09 22:11 #

    그럴게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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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