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참 많이 잤다 by James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글을 써보자. 시간을 달리는 소년은 아니더라도. 어제는 지인(들) 집에서 집들이를 했다. 이사한 지는 꽤 됐는데 이제서야 집들이 라고 하는 게 좀 웃기지만, 겸사겸사 가기로 했다. 일전에 글쓰기 스터디 하던 사람들이 다 모이기로 했으니, 한 분은 못 왔다. 남자 둘과 고양이 한마리가 사는 집에 방문했다. 집은 넓었고 조금 부러웠지만, 나는 여전히 내 방에 만족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한 분은 늦게 온다는 얘기에 둘이서 만나 향뮤직에 갔다. 어제는 3월에 일한 금액이 들어온터라 CD를 꼭 사고 싶었다. 오랜만에 신촌에 갔더니 기분이 생경했다. 마을버스를 타고 그들이 사는 곳으로 갔다. 마트에서 소주와 야채를 사고 국대떡볶이에서 튀김과 순대를 샀다. 그리고 치킨 두 마리를 시켰다.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해주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말해줬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 일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진 않았던 것 같다. 조금은 들 떠서 얘기했던 것 같다. 그들은 마치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는 양 들어줬고 신기해했다. 하지만 밝지 않은 미래를 가졌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똑같았다. 맥주도 마시고 소주와 토닉워터를 섞은 술도 마셨지만 전혀 취하지 않았다. 새벽 3시가 넘어서 잠들었고 오늘 아침 10시에 일어났다. 그 집에 사는 고양이 한 마리와 둘이서 마주보고 있다가 30분 후에 나왔다.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오늘도 출근을 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그동안 많은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를 하면서 이 일이 참 나와 맞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이는 내가 쓰고 있는 모자를 디자인한 사람도 있었고, 해외에서 온라인 샵을 운영하는 분도 있었다. 모두가 내가 먼저 연락해서 만났다는 점은 똑같았다. 전화로 시간을 맞추고 장소를 찾은 후, 나는 커피를 샀다. 녹음을 해도 되냐고 물어보고, 에어플레인 모드로 바꾼 후 아이폰 음성메모를 켰다. 내 생애 첫 인터뷰는 전혀 녹음이 되지 않아 절망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버릇처럼 하던 필기는 이 때 큰 도움이 되었다. 말을 들으면서 포인트가 되는 단어들을 쓰다보면 나중에 봤을 때 그건 하나의 줄로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나는 녹취를 풀면서 그 길에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덧붙이면 되었다. 하나의 기사를 위해 총 4명을 인터뷰 했고 그걸 문답으로 다 풀었었다. 하지만 문답 형태는 재미없다는 얘기에 통글로 바꾸었다. 그 분량이 A4 8장으로 나왔다.

  기사의 분량이 많아져서 사진을 넣기로 했다. 그래서 추가로 만남을 또 가졌다. 전문 포토그래퍼 분들과 어렵게 약속을 잡고 인터뷰이와 또 약속을 잡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구도와 컷을 요구했고, 포토그래퍼 분은 그대로 해주셨다. 나는 그 작업이 상당히 재미있었다.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인터뷰 기사 내 사진들을 나는 그대로 넣고 싶었다. 단지 인터뷰이의 얼굴만 나오는 게 아니라, 그 인터뷰 시 풍겼던 분위기나 상황, 인터뷰이의 복장 등을 담고 싶었다. 말 그대로 인터뷰 상황과 느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인터뷰 글이 좋았던 것이다.

  또 다른 인터뷰도 했다. 원래 내 기사는 아니었는데, 화보에 들어갈 멘트를 넣기 위해서 여러 명의 여대생과 인터뷰를 했다. 딱 한 마디를 끌어내기 위해서 꽤 많은 말들을 나누었다. 그들은 어떤 연애를 원하는지, 어떤 남자가 좋은지 등등. 이상하게 말이 잘 나왔고 나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원래 말이 잘 없고 낯도 가리는 편인데, 이 날 만은 달랐다. 아마 스스로 이것은 인터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만나는 게 좋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결을 더듬는 작업이 좋다. 이건 어쩜 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게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인터뷰 글을 읽는 게 싫을 수 있지만, 나는 잡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인터뷰였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느낌이 어떤지 깨닫는 일주일이었다. 즐거웠다, 로 충분치 않은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뷰는 내가 했지만 기사의 방향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이런 일이니까. 편집장님의 의견에 반기를 들지는 않지만 아쉬웠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게 또 어떻게 될 지도 모르겠다.


  마감이다. 나는 이제 어떻게 될까.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일까 혹은 정식으로 일하시겠어요, 일까. 몇 몇 기자분들은 피쳐기자로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보는데, 그게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니니까. 한 경력기자 분께, 이런 업계 기자들은 대체 돈은 언제 많이 벌어요, 라고 물었더니 평생 못 벌어요, 그러다 죽는거지, 라는 명쾌한 답을 들었다. 그리고 얼마를 받든 서울에서 집 못사요 라는 대답도 들었다.

  기사를 총 세 개를 썼는데, 모두 내가 해보겠습니다, 하고 쓴 글은 아니다. 즉 내가 기획해서 쓴 글은 아니란 뜻이다. 공식 매체에 실리는 내 글이 X과 관련된(4월 30일 이후에 밝혀지겠지) 글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인터뷰도 사실 마찬가지지. 학부시절, 내가 후에 잡지사에서 인터뷰를 하면 이나영은 안되더라도 정유미(탤런트 말고)나 이승환을 첫 인터뷰이로 정할 줄 알았다. 하지만 역시나 그건 꿈일 뿐이었지만.


  오늘은 많이 잤다. 지인 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온 후 오늘도 회사에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비가 오는 낮에 잠이 드는 게 대체 얼마만이었는지. 최근에는 야근도 많아서 언제나 잠이 부족했다. 블로그나 카페 글을 못 읽는 건 여전했고 책장을 넘겨본 기억도 없다. 책을 읽어야지, 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침대에 누웠더니 금세 잠이 들었다. 꿈에서도 편집장님의 지시를 받느라 일을 하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깊이자긴 했던 것 같다. 자고 일어났더니 오후가 다 지나갔다. 하지만 기분만은 좋았다.

  살이 좀 빠졌다. 내가 입는 바지 중에 허리가 큰 게 있다는 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어, 셔츠를 바지에 넣어 입어야 할 때만 아니면 벨트를 잘 안하는데, 어제 입고 나간 면바지가 줄줄 흘러 내렸다. 길을 걷다가도 중간 중간에 바지를 치켜 올려야 하는 민망함이 여러 번 있었다. 운동도 못 했는데 밥을 잘 못 챙겨 먹으니까 살이 빠지는 듯 하다. 그렇다고 눈에 띄게 빠지는 건 아니고. 요즘은 날이 더워져서 셔츠 하나만 입고 나간다. 그리고 그 셔츠도 팔을 둘둘 걷어서 다니는 중이다. 촬영이나 인터뷰가 가로수길이나 압구정에서 많아 그 쪽을 자주 걸어 다니는데, 다들 자신을 뽐내느라 바쁘더라. 그게 싫은 건 절대 아니고, 그냥 그 모습도 다들 열심히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스웨이드 재질의 스니커즈와 로우데님, 그리고 연한 핑크색 옥스포드 셔츠 하나 입고 걸어가는 내가 볼품없게 보일지라도, 왠지 그냥 그 순간이 좋았다. 이어폰에선 에릭 클랩튼의 필그림 앨범이 나오고 있었는데 위로 받는 느낌이 컸다. 내가 앞으로 이 일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더라도 이 순간의 경험은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덧글

  • Run192Km 2012/04/22 17:08 # 답글

    그러다 죽는거지.. 노우! 아 윌 네버 다이! 우어어어어!
  • James 2012/04/22 17:22 #

    그럴까요?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ㅡㅜ
댓글 입력 영역


메모장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