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가 없었던 금요일 by James


  일을 시작한 지 2주가 흘렀다. 나에게 주어졌던 일은 내 능력 안에서 나름 열심히 했다. 크게 막혔던 것도 없었다(타 잡지사들의 트위터 및 페이스북 계정 활용 정도와 차이 이유 분석의 업무는 조금 그랬다).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것들과 내 지인들이 생각하는 것들을 잘 조합해서 의견을 내고 글을 썼다. 기획안 작성은 더없이 즐거웠다. 내가 보고싶었던 혹은 보여주고 싶었던 것들을 작성해 나가는데 마치 내가 잡지를 만드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금요일에 회의가 있었는데, 사람의 다양함을 또 한번 느꼈다. 다들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을 심혈을 기울여 기획안을 작성해 왔는데, 나와는 많이 동떨어진 것들이 많았다. 나는 지속성에 무게를 두었다면 다른 사람들은 독특함에 중심을 뒀다고나 할까. 그리고 얘기를 하면 할 수록 내가 생각했던 것들과 많이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 생각이 이어지면 끝내 내가 드는 생각은, 내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가령, 표지에 연예인을 내세우지 말자는 의견은 나밖에 없었다. 그 의견은 지워지고 1순위로 꼽힌 연예인의 이름을 듣고 할 말을 잃었다. 꽤 유명한 사람인데, 그 사람을 좋아하는 20대 중후반 남성이 있나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꼭 이러한 복잡한 생각때문은 아니었지만, 금요일에 일찍 퇴근을 해버렸다.



  패션에 대해서 잠시 얘기해 보자. 나는 패션의 기본은 자기만족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20대 중반을 넘어서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는 자기만족이 바탕이 된다고 생각한다. 분명, 이성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서 옷을 신경써서 입는 사람도 있을테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나는 입기 싫은데 여자들이 이런 걸 좋아하니까 나는 입어야 한다, 라는 생각으로 패션에 신경 쓰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보통은 자신이 입고 싶은 걸 입지 않을까. 비록 그렇게 입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어쩌랴, 내가 내 돈 내고 입고 싶은데(이건 격식이나 자리에 맞지 않게 입는 것과는 조금 다른 얘기다).

  그래서 나는 좀 다양한 아이템이나 주제를 다루고 싶은데, 왠지 자꾸 기존 20대 중후반을 따라가려는 모습이 보이는 듯해서 안타깝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걸 못 보던 사람들을 조금 더 이끈다는 느낌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싫으면 어쩔 수 없다, 라는 심정으로(그리고 절대 그럴리가 없다). 금요일 저녁엔 사실 남자 후배랑 약속이 있었다. 설문지 받을 게 있었는데, 이런 저런 얘길 하다가 내 기획안을 보여줬다. 그 후배는 약간 자기 스타일이 있기도 하고 패션에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어 일반 20대를 나타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 기획안을 보고 재미있고 보고 싶다고 했다. 내가 설명하는, 내가 추구하는 내용을 그 후배는 보고 싶다고 했다(이런 걸 입에 발린 듯 말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 날 조금 위안을 받았다.

  그리고 또 놀라웠던 일은, 남자들이 잡지를 봐도 글을 안읽는다는 일부의 예상과 태도다. 나는 활자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렇다쳐도, 한 발 물러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다. 또한 잡지의 특정 파트의 존재 부정에 관한 의견을 들었을 때 특히 놀랐다. 왜냐하면 나는 그 파트만 따로 모인 책을 구입할 정도였고, 언론 공부할 때 내가 혹시 기자가 되면 이 파트 전문기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알 사람은 알테다). 중요한 건 그 내용인데, 아직 그 재미를 못 찾는 건 아닌가 싶다(이 얘긴 나중에 자세히 할 수 있는 순간이 올 듯하다).



  아직 준비단계다. 아마 3월이 지나면 제대로 기사도 쓰고 촬영도 할 듯하다. 나는 언제까지 이 곳에 있을지 모른다. 정말 그 속에 속한 사람들 아무도 모른다. 근데 그 시기는 중요하지 않다. 다음 주에 가서 회의를 하다가 내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길 경우, 그만둬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다. 어쩜 내가 잡지사에 발을 담글 수 있는 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나는 좀 나 자신에게 당당해지고 싶다. 훗날 이 잡지가 나왔을 때, 그래 내가 이 잡지 시작단계에 참여했었지, 라며 뿌듯해하고 싶다. 내가 민감한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지금 느낌 상으론 훗날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없을 듯 하다. 잡지가 별로라는 게 아니라, 내가 조금이나마 원하던 잡지가 아니란 의미다.


  지난 주엔 출퇴근 경로를 바꾸었는데 너무나 빨리 가서 깜짝 놀랐다. 나같은 지방 사람에겐 서울지하철노선도는 하나의 서울지도다. 그래서 그 지하철노선도만 봤을 때 명동과 종각은 절대 걸어선 갈 수 없는 거리다(처음엔 1호선만 타고 광화문 교보문고 가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신사와 논현도 마찬가지다. 지하철노선도만 보면 굉장히 돌아가야 하는 거리다. 하지만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걸 보고 혼자 감탄했다(최근엔 이태원에서 처음으로 버스를 탔는데 금방 명동으로 가는 걸 보고 또 놀랐었다). 그래서 다른 루트를 발견하고 걸어간다. 그 걸어가는 길에 스타벅스도 있어 가끔 배고플 때 커피랑 크로크무슈를 먹는다.

  안타깝게도 잡지 관련 일을 하면서 최근에 제대로 잡지나 책을 읽은 기억이 없다. 내가 요즘 일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가 싶을 때가 종종 있다. 뭔가 삶이 뒤틀려가는 느낌이 드는 건 오버일까. 아, 요즘은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일 때문에 일주일에 세, 네 번밖에 못하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하고 있다.






덧글

  • 2012/03/19 13:1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James 2012/03/19 14:12 #

    화이팅맨 이시군요!
    그래도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것입니다 ㅡㅜ
  • 夢鏡 2012/03/20 09:26 # 답글

    아 저도 그런 경험 있어요! 어렸을 때 명동으로 가려면 몇 번 버스, 종로로 가려면 몇 번 버스, 이런 식으로 집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만 알아서 그 장소들이 각각 따로 존재하는 곳으로 생각했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종로에서 조금 걸어가면 명동, 명동에서 조금 걸어가면 남산과 시청, 남대문, 충무로, 거기서 좀 더 걸어가면 이태원, 한남대교. 이런식으로 따로 존재하던 지역들이 하나로 연결되더라구요.
  • James 2012/03/20 10:31 #

    명동 쪽에서 이태원으로 걸어가는 법도 있나요? 전 버스만 타봤습니다.
    저도 충무로에서 종각까지 걸어 가는 거 좋아해요 :) 생각보다 가깝더라구요.
  • 夢鏡 2012/03/20 11:08 #

    음- 그 버스 노선으로 가는 길은 터널이 걸어서 통과가 되나 안되나 모르겠구요. 명동에서 직접 넘어가는 건 아니고 충무로에서 단국대쪽으로 걸어가서 거기서 남산공원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한남동이고 한강진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걷기 코스는 짧게는 종각-청계광장-경운궁-정동길 이에요. 좀 더 길게 걷고 싶으면 저기에 먼저 종로3가 북촌-삼청동-경복궁을 추가해요. 슬렁슬렁 걸으면서 다니기에 딱 좋은 코스더라구요. 아니면 종로에서 혜화동까지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 쭉 걷는 것도 강추에요!
  • James 2012/03/20 23:33 #

    그렇게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있군요. 한강진에 가끔 가는편인데 그 루트를 제대로 찾아 봐야겠습니다.
    말씀하신 여러 걷는 길은 저도 좋아하는 코스입니다 :)
댓글 입력 영역


메모장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