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아팠다 by James




  며칠 전 부산에서 잘 지낸다는 얘기를 짧게 썼는데, 그 날부터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콧물이 많이 났고 감기 증상이 올 때마다 동반되는 두통이 심했다. 급하게 약을 사 먹고 지인을 만나 시간을 보내고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술을 좀 많이 먹고 기분이 우울해져 집으로 걸어왔다. 그 날이 토요일이었으니 참 오래도 아팠다. 병원엔 가지 않고 약만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설 당일에 친척집에 가서도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했다. 계속 앉아 있거나 졸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또 잤다. 다음 날도 계속 잔 기억밖에 나질 않는다. 코는 먹먹했고 두통은 지속적이었으며 땀이 많이 났다.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떠나기 전 마지막 날이었다. 아침밥을 힘겹게 먹고 씻은 후 약을 먹었다. 노트북과 책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어머니도 감기가 걸렸다. 증상이 나와 같아서 아마 나에게서 옮은 게 아닌가 싶었다. 바깥에 나가지 말라는 얘길 뒤로하고 옷을 두껍게 챙겨 입었다. 왠지 이대로 또 집에 있으면 허무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답답한 마음도 없지 않았고 개인 시간을 좀 갖고 싶었다. 은행 일을 간단히 마무리하고 스타벅스에 들어왔다. 아무리 추워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셨는데 오늘은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커피도 참 오랜만에 마셨다. 오랜만에 마시기에 아마 오늘 밤엔 쉽게 잠들지 못할테다. 그래도 감기약을 먹으면 좀 낫겠지. 따져보니 몇 년 동안 감기에 걸린 적이 없었단 걸 알았다. 겨울이 올 즈음에 비타민 C를 꾸준히 챙겨먹고 몸이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유자차를 지속적으로 마셨다. 평소에 감기가 걸려도 약 같은건 잘 안먹으려고 한다. 부산에 와서 그러한 대비를 전혀 못했던 것인지 감기는 쉽게 걸렸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움과 답답함 그리고 두통이 동반되었다. 매번 감기가 걸리면 그 원인을 찾아보게 된다. 어디서부터 걸렸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그리 추운 바람을 많이 맞은 적도 없는데 말이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바닷가 바람을 쐬서 그렇다고 하셨다.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침대에 누워 읽는 하루키의 잡문집은 좋았다. 특히 '음악에 관하여' 부분이 좋았는데 그 부분을 읽기 시작했을 무렵 듣기 시작한 Miles Davis의 <Round about Midnight> 음반이 참 좋았다. 원래 가장 좋아하는 재즈 음반이긴 했지만 뭔가 책과 내 기분과 함께 융합되어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책을 아주 천천히 읽었고 음악은 끝없이 들었다. 졸려서 잠이 들었다가 또 깨어서 물을 마시고 책을 읽기를 반복했다. 서울에 혼자 살 때 아팠다면 내 몸과 기분은 더 안좋았겠지, 라며 한없는 한가함을 누렸다. 부산에 내려오기 전 계획했던 많은 일들이 무산되었다.

  힘겹게 기차표를 예매했고 내일 또 떠난다. 10여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크게 한 일도 없으면서 시간은 흘러갔다. 살갗에 닿는 많은 것들이 몸을 쓰라리도록 만들었다. 그 고통을 줄이려 뜨거운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 잠을 자면서도 두통이 느껴졌고 꿈은 더 없는 환상으로 넘쳐났다. 몽롱함이 연속되었고 어제 저녁 잠시 TV를 보면서 실없이 웃었다. 무한도전을 잠시 보여줬던 것도 같은데 웃었다. 그러고보니 지난 토요일에 무한도전을 보지 않았다.


  졸업은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2월에 있을 졸업식에 참석하실 예정이셨던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이 미루었다. 그리고 졸업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얘기에 많이 섭섭해 하셨다. 나는 대학 졸업앨범은 의미가 없다고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사진으로 뽑을 수는 있지 않느냐고 방에 두고 싶어 하셨다. 4년 넘게 투자한 것에 대한 대가라고 하셨는데, 대가 치고는 너무 가치없어 보였던 동시에 죄송한 마음도 느껴졌다. 이제 서울에 가면 당분간 뵐 수 있는 날이 없을테다. 다음에 뵐 때 나는 당당할 수 있을까.

  서울 집은 괜찮을까.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온수가 나오질 않는데 보일러는 이상 없을지 모르겠다. 집은 청소해두고 와서 다시 청소할 필요는 없는데, 꺼놓고 온 보일러가 신경쓰인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데 몸이 완쾌되지 않아 꺼림직하다. 금요일에 아는 형과 술약속을 잡았는데 미룰까도 고민중이다. 1월은 이렇게 아무런 유의미한 흔적을 남기지도 않은 채 흘러간다. 2월이라고 달라질까 싶지만.




덧글

  • 2012/01/25 11:5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James 2012/01/25 12:01 #

    그 추운 서울에서도 별일없이 지냈는데 이 따듯한 고장에 와서 감기가 걸려 아이러니하네요.

    어렸을 때도 잘 안아팠는데 한 번 아파서 병원에 가면 참 고통스러웠어요. 의사선생님도 한 번 아플 때 심하게 아플거라며 주의를 주셨죠.. 아프더라도 뭔가 생활은 하고 싶은데 두통은 그걸 못하게 하니 참 괴로워요. 어떻게 한다고 쉽게 상태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구요. 그래도 지금은 조금 나아서 이렇게 글도 읽고 쓰고 있습니다. 잘 지내시죠?

    감사해요 :-)
  • bonjo 2012/01/25 12:12 # 답글

    연휴 끼고 아프면 참 힘들죠...-_-;
    저도 졸업앨범이 없습니다. 학생회비 미납분이 있어서 학생회실에 가서 돈을 내고 앨범을 따로 찾았어야 했는데
    담당 학생이 자리를 비워서 기다리다 지쳐 와버린 후 귀찮음에 미루다가 한해 두해 지나가버렸죠.
    가끔 아내가 가짜 졸업생이라고 놀려요. ㅎㅎㅎ
  • James 2012/01/25 12:36 #

    아 찍긴 찍으셨나 보군요. 전 아예 찍지를 않아서..;; 찍으려니 7만원 정도를 내라고 하더라구요. 당시엔 너무 비싸다 생각해서 찍질 않았거든요. 그러고보니 대학 졸업앨범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럼 학교 어딘가에 bonjo님 앨범이 있다는 얘기 아닌가요? 그럼 찾으러 가보셔도..^^;;
    연휴에 체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아파본 적이 없어서 생경하네요..
  • 2012/01/25 16:0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James 2012/01/26 23:17 #

    유예를 했으니 졸업사진을 다시 찍을까 싶네요; 겨울에 졸업을 할까 고민했던 이유는 단순히 여름에 하기 싫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냥 유예할 예정입니다;;
    요즘 교육은 잘 받고 계신지 모르겠네요. 도통 소식을 못 듣습니다.

    감사합니다. 비공개님도 복 많이 받으시고 꼭 좋은 결과 있기를 기원합니다 :) 언제나 응원해요!
  • 2012/01/28 12:3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James 2012/01/28 23:34 #

    마음을 사랑하지 않으니 몸도 신경을 못 썼던 것 같습니다. 방심했다고나 할까..

    지금은 고통의 시간에서 많이 벗어나 조금씩 몸의 안정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요즘은 무기력함보다는 무얼해야하나 하는 난감함이 더 크네요. 그래도 조금씩 길을 배우고 찾아가는 중입니다. 언제나 조언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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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