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와 고향 사이 by James






  벌써 내일이면 떠나는 날이다. 5일이 지났고, 내일 아침에 밥을 먹고 전날 미리 싸둔 짐을 챙겨 집 근처 기차역으로 가면 끝이다. 나는 이곳에 당분간 오지 않을테다. 11월에 부산집이 아마 이사를 할 것 같은데, 그 때도 내려오지 않을테다. 아, 생각해보니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때 내려올지도 모르겠다, 거참. 내가 관련 일에 종사를 하지 않는 이상 부산국제영화제(BIFF 라는 수입산 쇠고기 파티같은 느낌이 드는 이름을 단)에 제대로 참여할 수 없을 것 같아 큰 결심했다. 그동안 대학 수업 듣는다고, 수업 빠지는 건 마치 6년 개근상이 사라지는 것 처럼 큰 일로 여기는 나는 빠질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많을 수도 있다는 걸 요즘 깨닫는다. 성적 잘 받아도 장학금 못 받는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짧았던 며칠 간의 이야기를 여전히 사진과 함께 담아본다.


  금요일 오후에 도착해서 다음날 아침에 서면으로 갔다. 그곳에서 한 일이 발표준비다. 다음 주 화요일 아침에 발표가 있는데,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주말에 여행을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 과제물을 들고 내려와서 발표 준비를 했다. 나는 발표는 하지 않는데, 그게 미안해서 내용 정리라도 하려고 노력했다. 기본적인 내용이긴 한데, 그래서 더 성가시다.



  교보문고(교보생명)는 보통 다 이렇게 생겼다. 책을 보려고 갔던 건 아니고, 핫트랙스에 갔었다. 최근까지 나는 이승열의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다. 최근 3집이 나왔고, 추가 CD와 사인이 겸해진 스페셜 음반이 판매중인 걸 광화문 핫트랙스에서 봤었다. 하지만 별 흥미가 없었는데, 이후에 그의 1, 2집을 듣고 나서야 내가 실수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완판이었고, 이승열 오피셜 트윗에서 멘션도 왔다. 공연장에서만 판매중이고 현재 완판이라고. 그 때부터 내 마음은 또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곳 저곳 알아봤다. 지방의 경우엔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이곳과 신나라레코드도 가봤다. 하지만 끝내 구하지 못했다.


  추석 전날에 해운대로 갔다. 거기서 지인을 만나 각자 할일을 했다. 아침엔 비가 조금 왔는데, 점점 맑아져서 가지고 간 우산이 무색해졌다.




  이게 바로 내가 좋아하는 해운대의 풍경이다. 사람이 없고 안개가 조금 내려앉은 공간. 하지만 백사장에는 잘 내려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사진을 찍는 장소가 매번 동일하고 각도 또한 같다.

  <생폴리앵에 지다>를 이 날 다 읽었다. 초판 4권도 미리 사뒀다. 몇 편까지 나왔는지는 찾아보지 않았다. 이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하진 않겠다. 이 책은 진짜 자신이 끌리면 읽는거다. 엄청나게 뒷통수를 치는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생의 깊이있는 통찰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거의 매일 마시는 커피와 같다. 커피는 좋아하지만 매번 마실 때 감동하지는 않는 것 처럼, 그냥 꾸준히 읽는 것이다. 만 원에 가까운 돈으로 며칠 동안 내 삶의 틈을 메우는 정도라도 상관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시리즈는 추리라기 보다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재미를 위한 책에 가깝다는 것이다. 단지 누군가를 죽이고 숨기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관계에서 동반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 그 삶을 엿보는 재미가 굉장히 크다. 그걸 알기에 주인공 매그레는 누군가를 처벌하기 보다는 관계를 밝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준비했다.

  가끔 틈이 날 때 이글루스 앱을 켜보는데, 조금 놀랐다. 의도한 건 아닌데, 무슨 신발전문 블로거 같은 사진들이 줄줄이 올라와서 조금 신경써야 할 것 같다.


  저녁이 되어서 떠났다. 근처에서 떡볶이와 오뎅, 순대 등을 먹고 큰 집에 미리 인사하러 갔다.

  추석 당일, 큰 집에서 조카가 너무 울어서 뽀로로를 틀었다. 매번 캐릭터만 알고 상품들로만 접했는데, TV로는 처음 봤다.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 조카는 울음을 그쳤다. 일전에 한 교수님에게 들은 내용인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 영상을 틀어주면 집중을 한다고 한다. 그렇게 아이들을 한참동안 놔두고 자신들이 해야할 일을 한다고 말했는데, 실은 이게 그리 좋은 게 아니란다. 너무 빈번하게 접하게 했을 때 집중력과 뇌발달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조카는 낯을 많이 가린다. 특히 안경쓰고 큰 사람을 무서워하는데, 내가 딱 그 모양이다. 작년 크리스마스엔 작지만 책 선물도 했는데, 이 삼촌의 마음을 모른다. 막 떠들고 놀다가도 내가 쳐다보면 엄마 뒤에 숨거나 고개를 숙인다. 사촌 형 차 앞자리에 내가 타고 조카는 뒤에 탄 채로 이동을 잠시 했는데, 원래는 막 뛰고 그러는데 그 날은 그러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친척이나 가족과의 관계는 의도성이 많이 배제되어 있다.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날 삼촌이 되었다. 이 나이에 친척집에서 얼마전까진 막내였는데, 점점 아이들이 늘어가고 있고 내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 그 자리가 세뱃돈을 받는 자리를 꼭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제사를 지내고 혼자 시내로 나왔다. 서면에 가는데, 고담시티가 떠올라 기분이 좋았다. 그 북적이던 곳이 이렇게 휑하다니. 이 날 서울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제사에 참여한 남자들 중에 나만 제외하고 모두 정장을 입었다. 연휴 내내 비가 온다던 기상청은 자신들의 존재가치인 뻥을 이번에도 시전해 주어서 쨍쨍한 날을 보여주었다. 반팔셔츠도 마땅한 게 없어 그냥 피케 셔츠에 면바지를 입고 갔다. 아직 학생이라는 허울좋은 말을 혼자 덮어쓰고 가긴 했지만, 조금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다들 여름에 긴팔 재킷을 입고 제사를 지내는 모습은 조금 안쓰럽기까지 했으니까.  그래도 혼자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 같아 내심 좋았다. 하지만 내년 부터는 그런 것도 없을테다. 자리와 격식에 맞게 옷을 입는 것도 중요하니까.





  추석 당일에 시내에 나갔지만 서점이 단 한군데도 문을 열지 않아 책을 사지 못했다. 제사 지내러 가느라 가방을 못 챙겼던 것이다.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만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 근처에서 내렸다. 그리고 생각난 김에 이곳으로 갔다. 여기는 내가 다니던 모교다. 당시엔 이 근처에 살지 않았는데, 지금 집은 공교롭게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다. 나는 사실 이 중학교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다. 이 3년 만큼 학교 생활이 우울했던 적도 없었다. 학생-교사 간이 아니라 학생간에 일어났던 많은 일들.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 폭력과 괴롭힘이었다. 무조건 내가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괴롭히는 무리들로부터, 그 속에 같이 속하도록 요구받는 일이 많은 쪽이었다. '빽'이라는 말이 가진 폭력성은, 그것을 가지지 못한 학생들의 경우에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자신은 큰 힘이 없더라도, 자신을 도와줄 빽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러 아이들을 괴롭히고 때리던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그 힘의 논리는 학생들 속에 엄연히 존재했다. 교사들은 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학생들이 비밀로 작성한 글로 실체가 드러나도 주의를 주는 수준에서 그쳤다. 이 때만큼 학교(교사집단)를 불신했던 적도 없었다.

  끝내 나는 3년 마지막 즈음에 사고를 일으켰다. 1학년 때는 착한 아이였다가도, 노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변하는 학생들은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장 친했던 친구도 그 중 하나였다. 나는 그 친구와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끝내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 친구 외에도 변해간 녀석들은 많았다. 나와 부딪힌 애도 그 변한 애였다. 졸업식이 다가올 때 즈음에 나와 시비가 붙었지만 금방 아무일 없듯이 지나갔다. 하지만 다음 날 학교에 갔는데, 일이 터졌다. 그 애는 날 자기반에, 그 빽이 잔뜩 있는 반으로  불렀고 그곳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나는 맞기만 했고 막기만 했다. 잘못 맞아서 오른쪽 눈 두덩이가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다. 그 일이 끝나고 양호실에 가는 길에 2학년 때 담임을 만났다. 그 담임 교사는 내 상태를 보고 무슨 일이냐고만 잠시 물었을 뿐, 그 진위를 알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내가 알기로 나를 때린 그 학생은 당시에 그 교사 반에 속해 있었다.

  사람 인체가 그렇게 순식간에 변형된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다. 부모님께는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없었다. 농구하다가 공에 맞았다고 했다. 그 녀석은 며칠 후 나에게 다가와서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괜찮지 않다고 말했다. 그 녀석은 말없이 사라졌다. 이후 오른쪽 눈에는 멍이 들었고, 나는 졸업식에 참석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중학교 졸업식 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다. 졸업식이 끝나고 친구들과 친구들 부모님과 밥을 먹었다. 그 때가 되어서야 어머니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아시고 마음 아파하셨다. 화가 많이 나셨을테다. 하지만 나는 더 화가났다. 하지만 다행이었다. 중학교 시절은 끝났기 때문에. 더 이상 같이 패싸움하러 가자는 얘길 듣지 않아도 되고, 교문에서 같이 가기 위해 나를 기다리는 놈들을 피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 이후로 나는 이 학교에 절대 가지 않았다.



  학교는 많이 변해 있었다. 운동장에 잔디가 깔렸고, 점심시간마다 땀흘려 농구하던 골대도 바뀌어 있었다. 양궁부가 있던 곳에는 체육관이 들어섰다. 하지만 사진을 찍은 저 위치 외에 돌아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진만 조금 찍고 내려왔다. 추억하고 싶지 않아서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 곳. 왜냐하면 추억이라 불릴 것이 전혀 없는 곳이니까. 아마 그 졸업식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을 지금까지 기억하는 건 나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기록해야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 기록은 치유는 아닐지언정, 회피는 아님을 증명할 수 있을터이니. 그러고보니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


덧글

  • Run192Km 2011/09/13 23:31 # 답글

    제가 사는 동네에 있는 교보 빌딩도 저렇게 생겼답니다.
    아쉽게도 서점은 들어오지 않더랍니다.
  • 국화 2011/09/14 10:24 #

    아 ... 교보는.. 다 비슷하군요 저 사진속 교보는.. 광화문교보인줄알았어요;
  • James 2011/09/14 14:25 #

    저도 그 쪽 동네 교보보고 확신이 들었죠.
    거기 맞은 편에 대형서점이 없었던가요? 기억이 잘..
  • Run192Km 2011/09/14 20:32 #

    3층인가 4층짜리가 하나 있지요.
    시 최대규모의 서점이지만 교뵤에 비한다면...ㅎㅎ
  • James 2011/09/15 16:54 #

    교보도 작은 곳은 작습니다. 부산 저 매장도 그리 넓진 않아요. 2층 정도로 구성되어 있구요.
  • meltingframe 2011/09/14 12:31 # 답글

    해운대도 광안리도 두번 갔는데 두번 다 안개가.
    저에겐 왠지 안개의 도시로 각인되어버린 부산 흐흐
  • James 2011/09/14 14:26 #

    해무의 도시라고 해도 크게 잘못되진 않을거에요.
    어차피 바다에선 자주 일어나는 일이니.

    제주도 여행 잘 다녀오세요.. 부럽네요...
  • somewhere 2011/09/17 12:18 # 답글

    구름이 내려앉은 해운대의 모습을 처음 봐요.
    제가 가 본 피프는 한 여름 못지 않게 더운 10월이었거든요.
    인적 없는 바다
    특히 이름난 해수욕장을 구경하는 거 특별하게 느껴지네요.

    유년 시절의 좋지 않은 일들은 평생 따라붙죠.
    그래도 가끔 그런 일들을 꺼내서 볼 필요가 있어요.
    아주 조금씩 소독하면서 상처를 아물게 해줄 필요가 있다고 봐요.
  • James 2011/09/17 13:34 #

    저에게 트라우마가 있다면 아마 저 시절이 아닌가 싶어요. 가끔 그 같이 놀자고 협박하던, 소위 '짱'이 꿈에 나오면 좀 기분이 안좋더라구요.

    이번에 '피프'가세요? 저는 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일찍이라 어떻게 해야하나 싶어요.
  • somewhere 2011/09/17 14:02 #

    피프는 해마다 가고 싶지만 정말 상황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라서...

    어제 새벽에 공홈 확인해보니 아직 상영 시간표 뜨지 않아서
    아직은 갈 "예정"이지만 꼭 가고 싶다는 게 제 진짜 마음. ㅋ
  • James 2011/09/19 23:43 #

    사실 저는 아는 게 많이 없어, 대표작들만 보게 되더라구요. 아님 시간 맞는거나..

    상영정보 뜬 것 같던데 올해는 어떻게 하실 '예정'이신지..^^
  • somewhere 2011/09/19 23:49 #

    부산에 지인이라면 있으면
    영화제 내내 가서 신세 좀 지면서 보겠지만
    불가능한 일이고.

    유명한 감독 위주로 보고 싶은데
    딱 보고 싶은 건 <멜랑콜리아>와 <레스트리스> 정도.
    이 2편만이라도 볼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같이 영화 보는 동생은 주말에 같이 갔으면 하는 눈치이고
    역시 아는 또다른 동생도 주말에 간다면 같이 보자고 하는데...

    아직 상영 시간표가 공홈에 뜨지 않아서...

    올해 칸,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 출품작 여러 편 오기 때문에
    욕심 내서 본다면 한도 끝도 없고...

    유명한 감독 영화들 진짜 많이 잡힌 것 같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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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