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을 하다 by James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일주일이란 시간은 흘러갔다. 늦은 오후, 교생 선생님들끼리 다 같이 회식을 하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학교 근처에서 간단히 밥을 먹고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평소에도 난 집 근처 단 한군데 술집만 간다. 프렌차이즈 술집이긴 한데, 학교 앞에서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 그런지 그 곳에서 학교 사람을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술값이 학교 앞에 비해서 비싸지만, 훨씬 깔끔하고 공기도 좋다. 제일 중요한 건 술취해서 게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때문에 상대방 목소리를 못 듣는 단점이 없고, 나도 덩달아 소리를 쳐서 이야기해야 하는 불편이 없다. 나와 술 먹는 사람들은 매번 이 술집에서 커미션을 받냐고 의혹의 눈빛을 보내지만, 정작 다른 괜찮은 곳 있으면 가자는 내 말에 다른 답을 내놓는 사람이 없다.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그 술집에 또 교생 선생님들을 데려갔고(절대 강요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다들 만족했다.

  이전에 썼던 것 처럼 나는 잘 어울리기가 힘들었다. 아니, 나는 원래 내 방식대로 대하는데 남들에겐 말이 없고 신비주의를 조장하는 것으로 보였나보다. 술 마시면 말을 막 할 줄 알았는지 다들 기대하는 눈초리였다. 어느 순간에 모든 눈이 나에게 집중되어 있는 몇 번의 순간이 나는 너무 어색했고 부담스러웠다. 이렇게 집중받으면서 살아온 삶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제임스 선생님 말 좀 하세요."라고 정말 여러 번 들었다. 그럼 불쑥 무슨 말을 해야하는지. 말을 걸면 다 대답하니까 궁금한 것 있으면 얘기하세요, 라는 취지의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있는 듯 없는 듯 취급받는 것 보다는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교생 선생님들 사이에서 나는 나이가 적은 편이 아니었다. 나이가 같은 사람들끼리는 말 편하게 하자고 서로 이야기하는 듯 보였는데, 나는 그게 어느 순간에 힘든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전에도 후배들과의 호칭 얘기를 썼지만, 지금은 이게 너무 편하다. 서로 존칭하고 이야기해도 나는 할 말을 다 할 수 있는데, 남들은 그게 안되나보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놓겠다고 하는 것 보다 나보다 어린 사람이 나보고 말 놓으라고 하는 게 나는 훨씬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튀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 순간이 불편하다. 그런 호칭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에 다 해결될 것 같은데, 어느 순간에 '시작'하고 마치 몇 년 째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게 나는 잘 되지 않는다.

  남들이 말하는 '사회생활'을 위해선 내가 윗 사람에게 말 편하게 하시라고 먼저 이야기하고, 아랫사람이 나에게 그런 얘길 했을 때 당연한 듯이 그렇게 해야겠지만, 나는 그런 선에서 물러나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사회생활 잘 못하는 사람이 회식자리에 끼어서 술을 마셨다. 나는 나에게 집중되는 순간 빼고는 너무나 좋은 자리였는데, 남들은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다 좋은 사람들이고 같은 목적으로 한 자리에서 한 달간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저 정말 제임스 샘이랑 친해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는 거 자체가 내가 불편한 존재가 되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나는 정말 편안하고 친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교생을 하고 있지만, 모두가 교사를 꿈꾸는 건 아니다. 졸업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사람도 있고, 아직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꿈얘기가 나왔다.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나는 술잔을 쳐다보며 "그런거 없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이것도 믿기지 않았는지, 있는데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기 뭣한 거 아니냐고 다시 물어봤다. 참 사람들 사이의 분위기란 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아는 순간이랄까. 다들 내가 뭔가 속에 많은 것들을 품고 있는 줄 아나보다. 품고 있는게 많긴 하지만 모두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이고 이게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것들이나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전혀 아닌데, 거참. 그래도 좋았던 것은, 어떤 선생님이 할아버지 미소를 지으며 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길래 왜 그러냐고 했더니, 나를 보면 그냥 그런 웃음이 나온다고 했다. 덩치 때문인지 한 선생님은 자신도 그 느낌이 뭔지 안다며, 자신의 비밀을 다 털어놔도 아무에게도 말 안할 것 같다나.


  글을 쓰다보니 자기 변명들만 잔뜩 늘어놓는 것 같다. 일주일이 지났는데, 같은 공간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서 그런지 마치 학교 다닐 때 같은 반 친구들이 된 것 같다. 이제 슬슬 서로를 놀리는 일도 생기고 있고, 자신의 이야기들을 서스럼없이 내어 놓기도 한다. 그 분위기가 좋다. 나를 빼고 모든 사람들이 같이 이야기하고 있고, 나혼자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고 있어도 나는 좋다. 이야기를 듣고만 있어도 다 알고 있다. 며칠 전엔 인터넷으로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랑 야광토끼 신보에 관한 글을 읽고 있었는데, 그걸 본 한 선생님이 재미있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더니, 나를 조금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았다. 나는 당장 화면을 끌 수 밖에 없었다.

  월요일부터 이 주차에 접어 든다. 그 주 목요일엔 과학의 날 행사가 있어 일찍 마칠 것 같고, 금요일엔 남산에서 거북이 마라톤 대회가 있어서 또 일찍 마칠 것 같다. 그 이틀 중에 하루는 또 회식을 할 것 같은데, 이번에도 내가 화두에 오를까. 보통 그런 자리에서 나는 사이드에 앉아 있는 걸 좋아하는데, 어제 회식대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의 자리를 가운데 안쪽으로 남겨 두었다. 보통은 순서대로 채우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아서 또 지적을 받았다. 다음 회식 때는 가운데 앉아야 하나.



  근데, 제임스 선생님이 말 많이하는 날이 오긴 올까.



덧글

  • 국화 2011/04/10 19:21 # 답글

    '-' 동감하는두개
    <제임스님말좀하세요=국화야말좀해라(근데저이거조금나아짐그래도멀었음)>
    나보다나이어린사람이 말놓는거에대한 어색함(그래서저는 절대 윗사람한테 말놓으세요란말안함ㅋ)
  • James 2011/04/10 23:10 #

    우리 언제 말하죠?

    하하..^^
댓글 입력 영역


메모장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