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근처는 조금 이상했다 by James


  오늘 12시 즈음에 서울역에 도착했다. 짐이 너무 많어 힘들게 지하철을 탔는데, 가는 도중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느닷없이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 졸업하고 지금 큰 학원에서 강의를 하는 녀석이 예전부터 사준다고 하던 밥을 지금 꼭 사겠다며 지하철에서 내리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며 내린 후, 종각으로 이동해 아비꼬에서 카레덮밥을 먹었다. 그리고 커피까지 녀석이 사줬다.

  부산에서 딱 일주일 있었다. 생각보다 일주일은 금방 지나갔다. 나는 도착한 첫 날 짐을 정리한 후, CD장을 뒤져 파일로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을 찾았다. 어렸을 땐 한정된 CD로만 음악을 들어야 했기 때문에 별로 내키지 않는 음반도 꽤나 자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하나의 음반을 많이 듣다보면 어떻게든 정이 들게 마련이다. 지금이야 음원을 워낙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다보니까, 지금도 지속적으로 듣는 음반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고, 예전에 듣던 음반들 중에 지금도 기억에 남고 듣는 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음악이라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왠만한 CD는 거의 다 리핑을 했지만 이상하게 서태지 5, 6집(혹은 서태지 독집 1, 2집)은 리핑이 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어렸을 적 부터 서태지에 열광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은퇴도 사실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초등학교 입학 즈음에 길거리에서 샀던 리믹스 테잎을 참 열심히 들었던 기억은 난다. 이후에 서태지와 아이들은 해체를 했고, 굿바이 앨범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갖고 있다. 그런 서태지가 컴백(그 만큼 이 단어가 어울리는 뮤지션이 있을가)한다고 했을 때, 큰 감흥은 없었지만 학교 앞 작은 레코드가게에서 그 음반을 예약했다. 왠지 사야할 것 같았다. 당시엔 CDP도 없었으면서 CD로 예약했다. 아마 이 음반이 내가 실제로 예약을 해서 구입한 처음이자 마지막 음반일테다. 발매일에 학교가 마치자마자 줄을 서서 예약한 음반을 손에 쥐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오디오에 그 CD를 넣고 듣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음악보다 먼저 다가온 것은 케이스의 무서움이다. 케이스 색깔 부터 특이했고, 머리를 감싸고 있는 부클릿은 겁이 많던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또한 음악도 평소에 내가 서태지에 관해서 생각하던(잘 모르던 나에겐 그는 '댄스가수'였다) 음악이 아니었다. 왠지 모를 자글거림, 잘 들리지 않는 가사, 중간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삐-'하는 소리. 짦은 러닝타임. 나는 그 음반을 오래 듣지 않았다.

  정확히 그 앨범이 나온 그 해는 아니었지만, 그 즈음에 세상은 조금 이상했던 기억이 난다. 방송활동은 하지 않아도 음반만으로도 굉장히 인기를 끄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건가 싶었다. 2000년이 되면 모든 컴퓨터가 무슨 오류로 인해서 작동이 되지 않고 사회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 했다(그래서 컴퓨터를 구입하러 가서 그 문제가 해결이 되었는지 물어봤다). 사이버 가수라면서 어떤 남자가 나오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린 나에게 저 사이버 가수는 실제로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헛갈렸다. 저 사이버 가수는 콘서트는 할 수 있을까 궁금했고, 그 사이버 가수의 목소리를 담당한 사람은 자신의 음반을 내지 않겠다는 계약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상하게 서태지 5집이 나온 이후 1~2년은 나에게 이상한 해로 남아 있다.
 
  이후 그가 다른 앨범을 갖고 나온다고 했을 때, 나는 더욱 깊이 락에 빠져 있었고, 하드코어나 핌프락을 주로 들었다. 유니텔 RATM 동호회에서 활발히 활동도 하고 부시샵도 했다. 림프 비즈킷을 싫어하진 않았지만, 나는 사실 콘도 데프톤즈도 아닌 RATM과 제일 잘 맞았다. 그의 6집을 듣고 기대했던 것은 사실 하나였다. 이를 계기로 락이 TV나 방송에서도 배경음악이 아닌 주류 음악으로 되는 것. 하지만 그 영향은 오래 가지 않았고, 서태지가 7집을 냈을 때, 나는 더이상 그의 음반을 사지 않았다. 중간에 라이브 음반 하나와 ETP Fest 앨범을 사긴 했지만 자주 듣게 되진 않았다.


  테잎을 음반이라고 한다면, 가장 음반을 많이 샀던 때가 바로 그 즈음이다. 중학교 때 친한 친구와 발매하는 대부분의 가요를 샀던 기억이 난다. 친구는 누나 2명과 함께 같이 샀지만, 나는 혼자 사야했기 때문에 조금 덜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요 외에 팝도 같이 사서 정말 많이 샀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많이 샀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열심히 들었다. 머리맡에 있던 조그만 카세트 플레이어는 자동반복도 되지 않았지만 잠들기 전에 혹은 방에 있을 때 계속 들었다. 그런데 그 테잎들은 나이가 들어서 다 버렸다. 소장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혹은 CD로 간직하기 위해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난 서지원 2집을 CD로 갖고 있었다. 그리고 김성재 1집도 가지고 있었다. 겁이 많던 나는 그 두 음반은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무서웠다.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특히 서지원 2집에 들어있는 '애국가'를 들으면서 더욱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 나는 서지원 2집은 버렸고(혹시나 해서 집에서 찾아봤는데 찾지 못했다), 김성재 1집은 아직도 갖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고, 이번에 리핑을 같이 해버릴까 고민하다가 끝내 하지 않았다. 왠지 들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태지 5, 6집을 다시 들으면서 5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브릿지 곡이라 할 수 있는 'Radio'라는 걸 알았다. 그 왠지 모를 그루브함과 리프가 참 마음에 든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이 굉장하다며 친구가 나에게 테잎으로 빌려줬다는 기억이 났다. 혹시나 싶어 검색을 해보니 1집부터 4집까지 재발매가 되었다는 걸 알았다. 향뮤직에선 1, 2집이 품절이었다. 나는 부산에 간 김에 큰 레코드점에 가서 확인을 하고 음반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3, 4집을 결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착각했던 것이다. 혹시나 했는데, 집에와서 확인하니 내가 사야했던 것은 1, 2집이었다. 그런데 7집은 정말 찾기가 힘들었다. 내가 가는 음반쇼핑몰엔 7집 재발매판이 모두 품절이었고, 검색을 통해서 충청도 어디에 있는 음반샵에 7집이 있다는 걸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서태지를 아직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와 그들의 음반을 모두 간직하고 있으려는 건, 왠지 추억으로 갖고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의 최근 음반발매 방식에 대해선 도저히 긍정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내가 어렴풋하게나마 들었고 한 가요사에 큰 획을 그은 그들의 음반은 갖고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금 엇나간 이야기지만, 이 때문에 그동안 외면했던 이승환 1, 2, 3집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없다. 부산에서 그래도 오래된 레코드점 몇 군데를 하루종일 둘러봤지만, 이승환 1, 2, 3집 서태지 7집 넬 정규 1, 2집 임주연 1집 등을 모두 찾을 수 없었다(서태지 7집은 보긴 봤지만 14000원이어서 놔뒀다). 영화가 개봉한 후 시간이 지나면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거의 못 찾듯이, 음반도 점점 그러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 같다. 언니네 이발관의 1, 2집이 최근 재발매되었지만 그렇게 찾았음에도 아직 구입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찾는 대부분의 음반이 재발매까지 되었음에도 나는 갖고 있지 않다. 왠지 이 일이 조금은 의무감때문에 하는 것 같으면서도, 잠시 주춤했던 음반구매가 활발해지는 느낌이 든다.



  원래 쓰려고 했던 글은 이런게 아니었는데,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부산에 있는 동안 블로그에 써야 할 글들을 굉장히 많이 생각했지만, 머릿속으로만 계속 썼던 것 같다. 그걸 갑자기 풀어내려는 여러 이야기가 뒤섞였나 보다. 다시 고쳐야 할텐데.



덧글

  • 지기 2011/02/08 01:07 # 답글

    서태지 솔로앨범 커버랑 케이스를 무서워 하셨다니 ㅎㅎ 재밌게 읽었어요. 그러고 보니 전 서태지와 아이들 4집인가 테이프 거꾸로 뒤집어 들으면 '피가 모잘라' 라는 소리 난다는게 궁금해서 테이프 뒤집다가 실패에서 테이프 말아먹은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이상하게 서태지와 아이들 음악은 예전부터 귀에 잘 안들어왔습니다. 지금도 그들의 앨범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아요.

    참 임주연 앨범에 대한 답글은 제 블로그에 남겼습니다. 확인해 보셔요~
  • James 2011/02/08 01:18 #

    넵. 정보 감사합니다. 내일 연락드리겠습니다 ^^

    어렸을 적에 케이스로 보는 커버가 미친여자인줄 알았거든요. 왠지 세기말 분위기와 합쳐져서 무서웠어요. 멸망론도 나오고.. 서태지가 외계인인가 정말, 이란 생각도 들었던 기억이 나요.

    어쩌면 그 무서움은 말씀하신 '피가 모자라' 관련 내용을 추적 60분인가에서 보고 더욱 커졌던 기억이 나네요. 그 기억 때문에 더욱... 하하.

    무서움에 관한 얘기는 다음에 만나서 또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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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