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십일년일월이십일일 독서기록 by James




  돈이 떨어지면 지나간 날들을 돌이켜보게 된다. '돌이켜본다'는 이 말이 도덕적으로 반성은 아니다. 돌이켜본다는 말은 돌이켜 보인다라고 써야 옳겠다. 보여야 보이는 것이고 본다고 해서 보이는 것도 아닐 터이다. 돈이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돈이 다 떨어지고 나면 겨우 보이는 수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돈 떨어진 앞날에 대한 불안이 스며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생계가 막막해진 저녁에 오래전에 죽은 말 이야기를 하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는 있다. 돈이 다 떨어지고, 돈이 들어올 전망이 없어지면 사람들을 안심시켜주던 그 구매력이 빠져나가면서 돈의 실체는 드러나는 것인데, 돈이 떨어져야 보이게 되는 돈의 실체는 사실상 돈이 아닌 것이어서, 돈은 명료하면서도 난해하다. 돈은 아마도 기호이면서 실체인 것 같은데, 돈이 떨어져야만 그 명료성과 난해성을 동시에 알 수 있다. 구매력이 주는 위안은 생리적인 것이어서 자각증세가 없는데, 그 증세가 빠져나갈 때는 자각증세가 있다. 그래서 그 증세를 느낄 때가 자각인지, 느끼지 못할 때가 자각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돈이 떨어져봐야 이 말을 알아들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 증세는 생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생리 그 자체여서 거기에 약간의 속임수가 섞여 있어도 안정을 누리는 동안 그 속임수는 자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도저히 끊어버리고 돌아설 수 없는 것들, 끊어내고 싶지만 끊어낼 수 없는, 만유인력과도 가은 존재의 탯줄 그리고 나와 인연이 닿아서 내 생애 속으로 들어온 온갖 허섭스레기들의 정체를 명확히 들여다보려면 돈이 다 떨어져야 한다. 그러니 돈이 떨어진다는 일은 얼마나 무서운가.
  지난겨울에 산 부츠는 두어 번 신어보니까 왠지 거북해서 신발장 안에 넣어놓고 잊어버렸다. 돈이 떨어지고 나니까 내가 그 부츠와 어떤 인연으로 얽혀 있었던지가 어렴풋이 보인다. 높은 굽이 박힌 부츠였다. 높은 굽은 몸을 위로 띄워서 상반신을 긴장시키고 젖가슴을 전방으로 밀어내는데, 발목을 덮은 털가죽은 위로 뜬 몸을 다시 땅 쪽으로 끌어당겨 주저앉힌다. 그 부츠에 대한 나의 거북함은 아마도 그렇게 거꾸로 작용하는 힘 때문이었을 것이다. 작년 연말 상여금을 받아서 그 부츠를 샀다. 좀 비싸다 싶었지만 캥거루 가죽이라고 해서 망설이다가 샀다. 직장을 버리고 돈이 다 떨어지고 나니까 그 부츠와 나 사이의 허섭스레기 같은 인연이 이제는 서먹하다. 돈이 있을 때, 돈이 들어올 전망이 있을 때와 돈이 다 떨어졌을 때, 돈이 들어올 전망이 없을 때 그 두 국면에서 사물과 나 사이의 정서적 관계는 바뀌는 것인데, 돈이 다 떨어지고 나면 그 인연의 하찮음이 보인다. 그래서 앞으로 또 돈이 생기면, 그런 하찮고 덧없고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인연이 계속 쌓일 것이라는 예감이 온다. 돈이 다 떨어지니까 신발장 속의 부츠는 구두가 아니라 나에게 길들여지지 않은 낯선 짐승처럼 느껴졌다. 캥거루 가죽이 캥거루로 되살아나서 신발장 속에서 낑낑거리고 있는 꼴이었다. 돈이 떨어지고 나서, 돈이 있을 때 산 립스틱을 바르고 거리에 나서면, 지나간 날들과 닥쳐올 날들이 한꺼번에 막막해진다. 돈이 떨어지고 나면 그 막막함이 명료해진다. 명료한 막막함이란 말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 젊은 날의 숲』 김훈, 문학동네. 46~48쪽 中




  겨울이 되면 좋은 일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 하나는 뜨거운 차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 사실. 개인적인 월동 장비에는 패딩 점퍼, 클래식 음반 전집, 햇볕이 잘 드는 카페 등이 있어요. 미국 오리건 포틀랜드에 주문하는 각종 허브차 선물세트도 그중 하나죠.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마치 깜짝 선물처럼 집으로 배달되죠. 차가 도착한 뒤부터는 아침에 눈을 뜨면 곧장 부엌으로 가서 물을 끓이죠. 물이 다 끓으면 컵에 부은 뒤, 티백을 넣어요. 그 다음 몇 분은 음, 할 일이 없습니다. 4분이나 5분 정도. 차가 우러나기까지는. 다른 일을 하기에는 애매한 자투리 같은 시간이에요. 그래서 부엌에 서 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좀 이상할 것 같아서 창밖을 내다보면서요. 보아하니 해 뜨는 시간은 점점 늦어지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점점 빨라지더군요. 지난겨울, 내 인생이 마음에 들었던 순간은 그 몇 분, 그러니까 차가 우러나기까지 4분이나 5분 정도였어요.

- 『우리가 보낸 순간 - 시』김연수, 마음산책. 119쪽 中



  무언가를 마시는 걸 언제나 좋아한다. 처음엔 커피로 시작했지만 얼그레이를 비롯한 차도 좋아한다. 기본적으로 물을 마시는 것도 좋아한다. 그런데 올 겨울엔 유독 티(Tea, 차보다는 나는 티가 더 와닿는 느낌이다)를 마시지 않았다. 마트에서 twining 얼그레이를 산 값에 사긴 했지만, 첫 입 맛이 그리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지속적으로 커피만 내려 마셨다. 그러다 어제 김연수의 이 글을 보고 티를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키며 청소를 한 후, 며칠 전에 '드디어' 구입한 주전자에 물을 끓였다. 커다란 머그에 티백을 넣고 물을 끓인 후 노트북을 켰다. 마침 커피가 다 떨어져서 우연이 겹쳤다.

  이유를 알 수 없다. 내 입맛이 고급도 아니고 티에 대한 정보도 많이 없다. 주위 사람들이 가끔 선물을 주면 맛도 모르고 기뻐하면서 잘 마셨다. 학교 다닐 때도 집에서 미리 큰 텀블러에 커피를 내려간 후, 두세 시간동안 다 마신 후, 뜨거운 물을 받아 가져간 티백을 넣어 또 우려먹곤 했다. 여름에도 그러한 생활은 그치지 않았다. 횟수가 덜할 뿐, 절대 그만두진 않았다. 버릇이 되어 버렸을 수도 있지만, 그 향기와 씁쓸한 기운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던 것은 사실이다. 티는 굉장히 뜨거울 때 보다 약간 식었을 때를 더욱 좋아한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동안 머그에 든 얼그레이가 너무 많이 식어 버렸다.

  김훈의 저 단락을 옮겨쓰기 시작하는 순간, 턱 하고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 모를 동질감. 이건 우연일테지만, 내가 가진 이 상황과 느낌을 나는 이렇게 쓰지 못하고 단지 내 손으로 옮길 수 있을 뿐이라는 걸 절감하면서 베껴 썼다. 필사를 시작한 지 꽤 됐지만 아직 진도는 40~50 쪽 정도 밖에 이루질 못했다. 제일 큰 문제는 손이 아픈 점이 아닐까. 평소에 힘주고 필기를 하는 버릇도 있겠지만, 닳아가면서 점점 글씨체가 변하는 연필을 선택한 문제도 있을테다. 그래도 한 번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연필을 고집할 예정이다.

  취미라는 이름하에, 혹은 취향이라는 이름하에 우리는 소비를 하고 그 소비를 통해 많은 사물들이 내 주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타인이 취향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라고 얘기하는 건 일종의 자기방어다. 혹은 자기만족. 소비를 할 때 자신에게 들어올 일정한 금액을 미리 예상을 하겠지만, 그 예상이 가끔은 빗나갈 수도 혹은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 그 때의 당혹감, 이미 내 손에 들어온 존재에 대해서 긍정해야 하는지 혹은 내가 현재 먹고 살기 위해 필요없는 존재라며 비난할 지는 개인의 문제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전자다. 자기합리화가 아니라는 것은 나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이미 들어온 존재는 그것을 선택할 때의 내 마음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 밖에 없고,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다시 내 예상에 맞는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 어떻게 발버둥칠 것이냐가 중요하다. 나 스스로 한 가지 아쉬운 건, 학생의 신분으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과외 뿐이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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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