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선물 by James



  부산에서 올라온 막내이모를 만났다. 옷장사를 하는 이모는 자주 동대문에 왔는데, 서울에서 본 건 처음이다. 만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나에게 옷을 사주기 위해서였다. 거의 4년 만에 만난 것 같은데, 이모는 나에게 여전하다고 그랬다. 나는 그 여전하다는 말이 무언지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미리 봐둔 옷가게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패딩을 태어나서 한 번도 입어 본 적이 없다. 언제나 코트나 M65 자켓에 근접한 것들을 입고 겨울을 났다. 그러다 나도 뭔가 두꺼운 걸 입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이모가 사준다고 해서 나갔다. 이모에게 무언가를 선물받은 건 거의 초등학교 입학 때 연필깎이를 받은 이후로는 처음이 아닐까 싶다. 가격이 그리 싸지 않았는데, 이모는 부산사투리를 써가며 나에게 점퍼 안에 입을 거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아직 S/S 제품들이 많이 들어온 게 아니라 티셔츠류는 거의 없었는데 얼마전에 나온 후드짚업이 생각났다. 기능성 제품이기도 하고 디자인도 이뻐 자전거 탈 때 입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가격이 상당히 높았다. 나는 주저했지만 이모는 그것도 같이 사라고 했다. 또, 계산할 때 신을 양말은 있냐고 했다. 나는 웃으면서 그런건 있다고 대답했다. 아마 서울에서 혼자 사는 조카가 안쓰러웠나 보다.

  막내 이모는 나이가 마흔을 넘었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다. 못한 게 아니라 하지 않은 것이다. 언니 3명과 동생 2명이 결혼해서 살아가는 모습이 그리 행복해보이지 않았는지 이모는 독신을 추구했다. 그런 이모는 부산집 근처에 혼자 사는데, 그래서인지 엄마와 자주 만나서 얘기를 나눈다. 카페로 자리를 옮겼을 때, 이모는 느닷없이 '엄마 말 신경쓰지 마라' 라는 얘길 했다. 아마 며칠 전에 나와 있었던 일을 들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될만한 얘기를 해줘서 나는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지금은 많이 마음이 안정되긴 했지만, 나에게 그렇게 말한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이 나이가 되어서야 살아간다는 게, 가족과 관계를 이어나간다는 게 어떤건지 조금은 깨닫는 것 같아 새로웠고 조금은 울컥했다. 내 마음을 알았는지, 이모는 나에게 외국에 갔다오라고 했다. 부모님께는 빨리 졸업하기 위해 유학이나 해외여행을 가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자금 때문이다. 내가 집에 돈 얘기를 하는 게 조심스러워진 건, 정확히 내가 내 집의 재정상태를 알고 난 이후부터다. 이모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혹시나 마음이 있다면 얘기하라고 했다. 이게 나에게는 '투자'라고 이모는 말했다.

  이모는 또 일이 있어서 급하게 떠났다. 이모는 또 이모의 삶을 열심히 살아갈테고, 서울에서 공부하는 첫 조카를 가끔 생각할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에 오면서도 지하철 타기를 두려워해 매번 서울역에서 동대문으로 택시를 타고 간다는 이모. 명동 롯데백화점을 보면서 수 십년 전에도 이게 있었다면서 나에게 추억을 얘기해주는 이모. 그 이모는 지하철이 무서워 나도 모르는 버스를 타러 급하게 떠났다. 내 손엔 덩그러니 커다란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그 쇼핑백 속에 든 옷들의 가격을 내가 지불할 수 있는 순간이 오려면 과연 몇 년이나 걸릴까. 나는 직장인이 되어서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을까. 아니, 이모를 위해서 나는 쉽게 구입할 수 있을까.

  이모와 커피를 마셨으면서도 커피전문점에 들려 또 같은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가방속에 들어 있던 다이어리를 꺼내어, 오늘 무슨 일을 했고 무엇을 선물받았는지 천천히 썼다. 준비해 간 책들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지만, 이상하게 쉽게 집중할 수 없었다. 나는 빈번히 눈을 책이 아닌 공간으로 향했고 가만히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선물을 받았다면 분명 들떠야 하는데, 나에게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다. 나에게 부담스러운 가격 때문인지 혹은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패딩이 나에게 어울릴지 궁금해서인지 혹은 현재의 내 삶때문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왠지 주위 사람들과 나 사이에 유리로 막혀 있고 나는 유리관 속에 들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이어폰으로 하루종일 듣던 Toy <Fermata> 앨범 중에 한 곡이 시작되었다..


 

  토이 - 모두 어디로 간 걸까(Feat. 이적)



  어디로 모두 떠나가는지 좇으려해도 어느새 길 저편에
  불안해 나만 혼자 남을까 뒤어가봐도 소리쳐봐도

  사람들 얘기처럼 세상 살다보면 결국 남는건 너 혼자 뿐이라고
  떠나가는 기차에 아무 생각없이 지친몸을 맡긴 채 난 잠이 드네
  떠나온 여기는 어딘건지 알 수가 없어 길 잃은 아이처럼
  무서워 나만 멀리 왔을까 다들 저기서 내린 듯한데

  말해줘 넌 잘하고 있다고
  너 혼자만 외로운건 아니라고
  잡아줘 흔들리지 않도록
  내 목소리 공허한 울림 아니길 바래



  나는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눈물을 꾹 참아야했다. 누군가 다가와서 내 어깰 잡으며 '잘하고 있어요' 라고 얘기했다면, 난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기뻤을까, 슬펐을까. 그런 유리관 속의 환상은 자리를 옮겨도 쉽게 깨어지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남아 있는 아메리카노를 다 마셔버리고 목도리를 칭칭 감고 집으로 돌아갔다. 퇴근을 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 손에 잡힌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서, 나는 집에 무사히 돌아왔다.

  나는 모르겠다. 왜 기뻐야 하는 순간에, 기분이 좋아야 하는 지금 이 순간에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게 아직 남아 있는 감정의 찌꺼기 때문인지, 나는 원래 이런 나인지조차 모르겠다. 이모는, 나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다른 조카 얘길 하며, 아직 초등학생인데 성적이 떨어질까봐 맨날 걱정한다며, 사는 게 힘들다는 얘길 이모에게 했단다. 그러면서 그 조카가 내 어렸을 때와 많이 비슷하다는 얘길 했다. 나는 조용히 "그런거 이겨내야지 뭐.." 라고 했다. 사실은 "그런건 혼자서 이겨낼 수 밖에 없어.." 라고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도 혼자서 많은 걸 이겨내고 있으니까. 아니, 그 중간에 있을 땐 모르지만 나중에 지나면 이겨냈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 그리고 '기대'라는 건 자라났던 키가 줄지 않는 것 처럼 쉽게 줄어들 수 없는거니까,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이겨낼 수 밖에 없는게, 내가 조금 살아온 삶에서 깨달은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들을 나 자신에게도 해줬다. 요즘 가끔은 남에게 해주는 조언이 나에게 해주는 것과 다르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다.



  이번 겨울은 길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 겨울은 조금 따뜻하겠지. 내 마음의 온기도 점점 커졌으면 좋겠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메모장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