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사야되는 음반의 존재유무 by James



  문득 작년에 무조건 사야되는 음반이란 게 나에게 있었나 궁금해졌다. 이건 특정 장르보다는 뮤지션의 무게감으로 인해 결정되는 것인데, 나에게 이제 그런 뮤지션이 몇명이나 될까 생각해보았다. 작년에 구입했던 음반들도 대부분은 추천에 의해서 알게 된 음반들이었고, 가끔은 현재 가장 인기있는 밴드의 음반도 구입했다. 이게 과연 나에게 의미가 있을까.

  어렸을 때도 사실 따지고 보면 인터넷이 없던 시절, 핫뮤직이나 GMV와 같은 잡지에 의해 정보를 얻고 음반을 구입했었다. 내 주위엔 아무도 그런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란 걸 하게 되면서 동호회 혹은 특정 뮤지션의 팬클럽 활동을 하면서 더욱 많은 정보를 얻을 수는 있었지만, 이 때도 넓어지는 시기였다기 보다 깊어지는 시기였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이건 꼭 사야해, 라는 음반이 이 때 제일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끈을 잠시 놓은 적이 있었다. 초고속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동호회 활동(유니텔)은 조금씩 뜸해지고, 수능 준비를 하면서 음반을 거의 구입하지 못했고 잡지도 읽지 않았다. 이후에 대학에 들어와 밴드부에 들어갔는데, 당시에 조금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보통 곡의 경우 보컬에 맞춰지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밴드부원들이 제시한 밴드를 난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 기억에 남는 건 Strokes 정도 인 것 같다. 처음 곡을 듣고, 이런 걸 왜 해?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곡은 하지 않았지만 여자 보컬이 있는 한 일본 밴드의 곡은 했다. 당시에 유명하다고 했었는데, 굉장히 쉬운 코드로 이루어졌었는데 그 때 많은 이질감을 느꼈다.

  이후에 밴드 활동을 한 학기만에 그만두고 혼자 음악을 듣는 과정을 걸었다. 기타를 잠시 다시 배우면서 블루스 음반을 많이 접하게 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Jeff Beck의 <Blow by Blow>를 들으면서 기타연주 음악도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Jeff Beck의 음반이 나온다고 해서 무조건 사지도 않았다. 점점 그런 밴드나 뮤지션의 숫자는 줄어들었고, 최근에 나오는 음반에 대한 감정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이렇게 중간에 감정이 조금 꺾이게 된 이유가 1~2년 간 제대로 음악을 듣지 않은 그 시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음악이 흐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흐름이 심하게 꺾인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음악을 듣지 않는 시기 동안 뭔가 음악 세계가 휘웅 하고 공간이 휘어진 느낌도 든다. 나는 그 공간과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계속 따라잡으려는 노력만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남들이 추천하는 신보 위주로 음반을 구입하려 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정말 '내 마음에 드는' 음반은 쉽게 구입하기 힘들어진 것 같다.

  이러한 점때문에 나는 이제 음악을 판단하는 능력이 '사라졌다'라고 표현한다. 그 음반이 왜 좋은지 도저히 설명할 수 없고, 과거와의 연계성을 바탕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단지 내가 음악을 듣던 어떤 순간에 좋으면 '좋았다' 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가령 '생각의 여름'을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 '서울 하늘'이란 곡은 늦은 밤 혼자 골목길을 걸어갈 때 외에는 그 좋은 느낌이 잘 살지 않는다. 좋아하는 장르를 묻는다면, 이건 점점 길티 플레져가 되어 가는데, 어쿼스틱 기반의 로우 템포 음악 혹은 이펙터를 넣지 않은 펜더나 스트라토캐스터 기타 사운드를 기반으로 쟁쟁 거리는 느낌이 강한 음악 정도로 밖에 대답할 수 없다. 특정 뮤지션의 이름을 대는 건 더이상 불가능하다.


  왜 그럴까. 더이상 음악을 들으면 안되는 것일까. 음반을 구매하지 않아도 삶은 그대로 이어지는 것일까. 음반을 살 때의 희열감은 언제나 그대로이지만, 음악을 들을 때의 감동은 예전같지 않다. 과거에 나온 음반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더 이상 나는 정보를 갖고 있지도 않고, '매닉스 음반 추천 좀' 하며 지식인에 쓰고 싶지 않다.

  새해 첫 글로 음악과 관련된 글을 쓰는 걸 보니, 올해는 이 부분에서 좀 중요한 전환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많아지거나 혹은 적어지거나.





  그래도 작년에 구입한 음반들 중에 '생각의 여름', 'toe', '디어 클라우드' 너무나 많이 들었고, 좋아했다. 특히 toe를 내가 알게 된 건 축복처럼 다가왔다. '생각의 여름'의 경우엔 이런 걸 내가 너무 좋아하다보니 예전 포크쪽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연히 <놀러와>에서 본 '세시봉 특집'을 보면서도 좋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는데. '디어 클라우드' 이번 EP는 그리 좋아하는 보컬 목소리도 아니면서 정말 많이 들었다. 이 세 음반의 공통점을 나는 찾을 수 없다.




덧글

  • bonjo 2011/01/03 11:31 # 답글

    James님의 글을 읽고 생각해보니, 저는 음반을 구입하는 가장 큰 요소가 "의리"와 "믿음"인 것 같아요. 한번 저를 깊이 감동시켰던 아티스트라면 그가 새로 내는 음반들에 대해 믿음을 갖고 의리를 지키는. 써놓고 보니 뭔가 좀 촌스럽네요. 의리라니....-.-;;;;
  • James 2011/01/03 13:22 #

    저도 그랬던 적이 있습니다. 음반 구매가 자연스럽고 무료 MP3 다운도 그리 비난받지 않던 시절에도, 좋아하는 밴드의 음반보다 음원이 먼저 나와도 저는 절대 다운받지 않고 돈 모아서 음반을 구매했습니다. 뭔가 기대를 충족시킨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그 의리를 갖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좋고 나쁘고의 판단이 잘 서지 않아서 그런지, 좋아하는 뮤지션의 경우도 먼저 남들의 평을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전 나일론 리스너가 되어 버린 듯..ㅡㅜ
  • 지기 2011/01/03 12:16 # 답글

    제가 음반을 구입하는 가장 큰 요소는 호기심인 것 같네요. 물론 위의 bonjo님처럼 그놈의 의리 때문에 좋지도 않은 앨범,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앨범이라 구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도대체 어떤 음악이 들었을까 궁금해서 앨범을 사게 됩니다. 그래서 음반을 사기전까지는 음원을 통해 음악을 듣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요. (남들이 좋다고 줘도 내가 산 것이 아니면 잘 안듣는다는^^;;) 그런데 또 어떻게 생각해보면 지금은 어느정도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덕분에 이렇게 궁금증을 그때 그때 잘 풀고 사는거고 그게 다시 음반구매를 촉진하는 힘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저도 제대후 졸업하기 전의 시절까지는 음반구입 및 음악감상의 암흑기였습니다. 지금 찾아온 시기 잘 넘기고 꼭 덕후대마왕으로 거듭나시길~
  • James 2011/01/03 13:24 #

    뭐랄까, 대마왕님께서 원기옥을 설명해주시는 느낌..^^;
    아마 음반구입 하는데 신중한 이유는 경제력이 큰 이유를 차지합니다. 아무래도 한정된 재화로 많은 걸 탐하려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매번 구입할 때, '이거 안 좋으면 진짜 가만 안두겠어!' 라는 심정으로 구입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기님 추천 음반은 다 좋았던 것 같아 많이 의존합니다 ^^

    요즘 저도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빨리 취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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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