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빙수의 계절이 끝나간다 by James



  어렸을 적에 집에 팥빙수 기계가 있었다. 얼려놓은 얼음을 조그만 통에 넣고 뚜껑을 닫은 후 뚜껑을 누르면 자동으로 얼음이 갈리는 원리. 어머니께서 준비해두신 팥과 떡과 연유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는 팥빙수를 먹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팥, 특히 단팥을 좋아해서 요즘은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데워먹는 단팥죽을 참 자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 순간에 집에서 먹는 팥빙수는 잊혀졌고 팥빙수를 사먹으려고 보니 그 가격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팥빙수에 들어가는 것 중에 무엇보다 떡을 좋아한다. 이 사진속 공간은 삼청동에 있는 '희동아 엄마다' 라는 곳. 우유빙수인 듯 한데 저거 하나에 12,500원. 과연 다시갈까 싶지만 맛은 나쁘지 않았다. 팥빙수라는 건 큰 그릇에 담아 막 비벼서 먹어야 제 맛인데 이건 조금이라도 흘릴까봐 조마조마하며 조그만 숟가락을 놀리려니, 더위 식히려다 더 더워지는 격이다. 팥빙수를 큰 그릇으로 해방시켜라.

  이제 팥빙수를 먹기엔 입과 장에게 미안한 계절이 되어버렸다. 큰 비가 내리고 나서 오는 그 쌀쌀함. 더위와 땀에 지친 나는 어서 가을이 오길 기다렸고, 그 가을에 입을 남방과 긴팔들을 생각하곤 했는데 막상 이렇게 끝나 버린다고 생각하니 조금 아쉽기도 하다. 연례없이 바닷가에 갔다오기도 한 여름이지만, 이사할 곳 알아보고 이삿짐 옮기느라 힘과 시간을 다 써버린 느낌이 든다. 소진해버린 여름이 아깝진 않지만, 그래도.





  얼마나 좋을까. 삶이 여행같으면. 삶이 여행같다면 여행은 무슨 의미가 될까. 우연히 구한 이상은의 책, 그 속에 들어 있던 자그마한 CD, 그 속에 담겨 있던 곡 하나, '삶은 여행'. 얼마전에 나왔다는 그녀의 뉴욕여행기(?)를 서점에서 훑어보니 예전에 내가 읽었던 그 책의 소박함을 더이상 찾을 수 없겠구나 싶어, 책의 크기와 사진들에 비해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살까 하는 마음도 접었다. 기대했던 Yo La Tengo와의 인터뷰는 인터뷰라고 홍보하기엔 너무나 부끄러운 지면. 그냥 '만났다' 정도로 끝낼 수 있지 않았을까.

  재미없다.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음악을 듣는 것도 수업도 재미없다. 이건 감정의 문제일까 선택의 문제일까.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나는 무슨 삶을 살아야 하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삶이 재미가 없으니 늘어가는 건 잠과 제 때 일어나지 못하는 아침들.


 

덧글

  • Run192Km 2010/09/10 12:43 # 답글

    희동아 엄마다 (근데 여긴 좀 비싸다..)라고 써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ㅅ; 팥빙수에 12500원이라니.
    그래도 먹고 싶을 땐 내야지요. 뭐 별 수 있나요 ㅎ

    저도 빙수에 떡을 좋아합니다.
    어릴 땐 젤리를 더 좋아했는데 조금 덜 어려지니 떡이 좋아지기 시작하더군요 ㅎ
  • James 2010/09/11 00:21 #

    유명하다는 밀탑은 1인 분에 7천원이라던가요. 빙수가 예전 빙수가 아닙니다...ㅡㅜ

    나이로 따지면 전 젤리를 좋아해야....

    죄송합니다;

  • 국화 2010/09/11 01:51 # 답글

    삼청동 내가 못가본 삼청동
    거기에 저런 팥빙수가있다니 팥빙수얼음은 육천만마녀눈물로 만드나 '-'
    언제 한번가봐야겠네요, 하지만 내년을기약
  • James 2010/09/11 09:15 #

    저보다 더 덜 서울사람 국화님 'ㄴ'/

    떡을 실제로 찐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더라구요. 저도 소개받고 갔다왔긴 한데 ^^;
    근데 롯데에 유니클로도 있던가요? 아직 가보시진 않았나;
  • Charlie 2010/09/18 13:50 # 삭제 답글

    삶은 계란? 간만입니다 챨리 우 입니다
  • James 2010/09/18 22:57 #

    아.. 언제적 삶은 계란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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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