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닌 나 by James


  이승환의 <내가 바라는 나>를 무지하게 듣고 감정을 이입하던 시기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였으니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그 가사를 들으며 실제로 내가 바라는 나는 무엇이며, 그 가사와 나는 얼마나 관련이 있나 라며 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곤 했다. 그 고민은 어차피 끝이 없는 것이었고, 끝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은 일종의 잠시 쉼일 뿐이었다. 그래서 다시 그 노래를 들을 때는 다시 끝인 줄 알았지만 실제로 끝이 아닌 순간으로 이동하려 했다.

  며칠 전부터 난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고, 행동도 그렇게 하고 있다. 시간은 언제나 모자라다는 생각으로 살아오던 내가 잠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멍하게 많은 것들을 놓아버렸다. 기억속에 존재하던 할 일들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가 있었다는 존재감 뿐이었다. 하지만 그 존재는 껍데기였고, 껍데기 뿐인 존재도 존재라 할 수 있나, 라는 시건방진 생각으로 멍한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잘 쓰던 몰스킨 포켓사이즈 메모장을 잃어버렸다. 어제 오후 수업까지 열심히 할 일과 같이 발표하게 된 사람의 연락처를 적어두고 수업이 끝나자 마자 가방에 챙겼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 가방에서 그 사람의 연락처를 확인하려고 수첩을 찾았지만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는 껍데기 조차도 없는, 존재하지 않음의 존재를 인식시키는 순간이었다.

  난 무엇인가를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이다. 나의 것의 관념이 워낙 강해서인지 지갑이든 펜이든 수첩이든 돈이든 거의 잃어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 수첩을 잃어버리면서 지금의 나는 정말 내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에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머리도 제대로 말리지 않은 상태에서 어제 수업을 들었던 강의실에 찾아가 불이 꺼진 어두컴컴한 상태로 내가 앉았던 자리 주위를 뒤졌다. 역시나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수업에 들어가기 전부터 내 옆 책상 서랍에 있던 쓰레기는 여전히 있었다. 어제 저녁에 잠시 식사를 하러 들렸던 식당에 가서 떨어진 수첩이 없었냐는 질문에 당연히 없었다는 듯한 대답을 듣고 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난 분명 첫 페이지에 내 이름과 연락처와 메일주소를 남겨뒀었다. 잘 잃어버리지 않는 자의 특징은 잃어버릴 경우 잘 찾을 수 있도록 방편을 세워두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의 신경씀이 분실의 위험요소를 낮추는 것일테다. 그 수첩은 언제나 내가 들고 다니며 필요한 부분을 메모하던 곳이었다. 올해 선물받았던 다이어리는 무겁기 때문에 평소에 잘 들고 다니지 못해 수첩보다는 말 그대로 스케줄과 기록의 장이었을 뿐, 내 소소한 끄적거림은 그 수첩이 담당했었다. 거기엔 내 헛된 망상들과 쓰고도 뿌듯해서 여러번 훑어보던 일기들과 내 계획들, 그리고 여러 사람의 연락처와 메일주소가 기록되어 있었다. 내가 한가지 걱정되는 건, 그 수첩을 어제 부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썼다는 데 있다. 혹시나 누가 주워들었다가 다 쓴 것이라 여기고 그것을 당연히 버린 건 아닐까 걱정 뿐이다.

  그 수첩을 누군가가 집어 들었을 때, 누구나가 그렇듯이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지 훑어봤을테다. 그 속엔 내가 있을까. 지금은 '내가 아닌 나' 이지만, 그 수첩 속엔 원래의 '나인 나'가 들어 있을 것일까. 내가 앞으로 소중히 간직하려 한 수첩의 첫 번째 권이어서 그런지 더욱 아쉬움이 크게 남아 있다. 새로 선물 받은 다른 색의 메모장이 또 있긴 하지만, 이건 두 번째다. 첫 번째를 대신할 수 없다. 아마 이 새로운 색상의 수첩에 새로운 나가 들어갈 지 원래의 나가 들어갈지는 모를 일이지만, 여전히 난 첫 번째의 수첩의 상실이 아쉽다. 그 속에도 내가 바라는 나가 들어 있을 수도 있다. 그 수첩의 마지막 페이지에 무언가를 끄적이면서 그 내가 바라는 나의 끝이 아닌 끝을 남겼을 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느낌은 잃어버린 자만이 알 수 있다는, 하나마나한 말이 생각난다. 뭐든지 경험해보지 않은 자는 그 느낌을 모르는 것이 당연할텐데, 그걸 일종의 특수성으로 치부해버리는 건 언어적 낭비다. 하지만, 나는 잃어버림으로써 그 잃어버린 자의 느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라는 문장을 쓰면서 내가 잃어버리기 전에 상상했던 잃어버린 자의 마음과 내가 잃어버리고 난 후의 마음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지금은 사실 안타까움보다, 그 잃어버림으로 인해 내가 바라던 나를 얻게 된 그 자가 어떻게 생각할지가 더 궁금하다.


  하지만, 나도 보통의 잃어버린 자처럼 다시 찾아서 '찾은 자'가 되고 싶다. 그게 내가 간직하고 싶은 첫 번째 수첩이어서인지, 아니면 만약 그게 두 번째 수첩이었어도 내가 이렇게 찾고 싶었을까, 라고 묻는다면 대답을 잘 못하겠지만, 그래도 찾고 싶다. 그렇다면, 그것을 가지고 있는 자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 글자를 알아보기나 할까, 아니면 이해를 하기나 할까. 문득, 그 수첩이 그 사람에게는 하등의 가치도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또 다른 문제다.



덧글

  • leben 2009/11/21 18:23 # 삭제 답글

    아, 글 좋아요.
  • James 2009/11/22 12:34 #

    아, 감사합니다. 좀 부끄럽네요, 언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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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장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