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대화 - 김훈(알라딘, 오마이뉴스) by James


기사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60265&CMPT_CD=P0000

  김훈 작가의 강연을 보았다. 알라딘에서 예전에 신청했는데, 김연수 작가의 낭독회는 되고 김훈 작가의 대화는 당첨되지 못했다. 다행히 오마이뉴스에서 기사로도 나왔길래 따뜻한 전기장판위에 앉아 웃으면서 지켜보았다.

  김훈은 나에게 굉장히 어려운 사람이다. 게다가 난 그의 특성을 '이질성'이라고 단정짓는다. 그의 글을 읽을 때 생기는 의문점과 난해함은 그의 '형식주의'에 대한 지지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는 형식 그리고 문체를 기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문체가 형성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 라고 생각한다. 그는 허영심이라고 말했지만, 주어와 동사(원래는 서술어가 맞는 표현일테지만)만으로 이루어진 글을 쓰고 싶다고 한다. 난 그가 겸손의 의미에서 허영심이라고 했겠지만, 솔직히 100가지의 문체를 만들고 싶다, 라고 할 줄 알았지만 그는 문체 한가지에 대해서도 어려워했다.

  그가 좋은 이유를 나보고 물으면 난 참 대답하기 어렵다. 문체 때문이다, 라고 답하는 것은 너무 뻔하고, 소재를 가져오려고 해도 소재가 특이하지 않다. 그럼 뭔가, 라고 물으면 난 이질성에 덧붙여 나 자신이 느끼는 '희미함'을 나열한다. 이건 모순이다. 뭐냐면, 질문자의 말처럼 그의 글이 스트레이트 기사 같다는 생각을 했단다. 아마 그 질문자는 평소에 그의 글을 거의 안읽어봐서 그런 당연한 말을 했을테다. 무엇이냐면,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김훈의 특징이다. 기사에서 쓰던 문체를 문학으로 가져온 것이다. 여기서 이질성이 드러나는데, 그에 덧붙여(다시 강조하지만 나의 경우만 일 수도 있다) 문장의 연결사이엔 많은 것들이 빠진 느낌이 든다. 흐름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내용적 개연성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문장과 문장의 연결에서 그 의미적 연결이 나에겐 '희미하게' 다가 오는 것이다. 그래서 난 <남한산성>을 세 번이나 다시 놓아야 했고 아직 끝까지 읽지 못했다. 난 정말 궁금하다. 내가 김훈 작가가 한말 중에 가슴깊이 와 닿는 말인,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표현하려는 것' 이란 말을 자주 이용하면서 표현하는데, 그처럼 그 간극이 난 희미함이라고 생각한다. 이 희미함은 사라지는 희미함이 아니다. 일종의 안개와 같은 희미함이다. 난 가끔 이것을 함축성으로 잘못 이해하기도 하고, 시를 쓸 수 없다는 그의 말을 의심하기도 한다.

  또한 그의 특징 중 하나는 관찰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아마 오랜세월 그의 밥벌이 였던 기자생활을 통해 만들어진 것일테다. 그런데, 그는 그 관찰을 글로 자세히 나열하지 않는다. 묘사하려하지 않는다. 난 묘사라는 것은 대상 혹은 사물의 모습에 작가의 색깔이 입혀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그의 글은 묘사하지 않는다. 일종의 나열이다. 또한 그가 이번 대화에서 말했듯이 관찰한 모든 것을 글로 쓰지 않는다. 그 중에 극히 일부를 쓸 뿐이다. 그는 그 관찰을 바탕으로 인간을 묘사한다. 사회상은 그 인간의 행동을 통해서 나타난다고 본다. 그 인간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나열하지 않고, 그 인간의 행동을 통해서 그 말하고자 하는 바와 의미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그는 나쁜놈이다'를 그는 쓰지 않는다. 이 짧은 한 문장을 표현하기 위해 수많은 문장을 덧붙이지만 그게 장황하지 않게 느끼게 하는 것, 그게 바로 그가 짧게 쓰려고 노력하는 문장의 장점이다.

  난 문학을 비롯한 예술이 극히 소소한 일상을 나열하든지 아니면 내가 행하지 못하는 극한의 행동을 보여주길 원한다. 내가 문학이나 영화와 같은 예술을 향유하는 그 이유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뇌는 들쑤셔지는 것이다. 하지만 김훈은 내 분류에 따르면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다. 그냥 그의 글은 사건보다는 '있음' 자체를 나타내려 한다고 본다. 있는데, 최대한 간결하게, 최대한 글 쓰는 나는 감정이 없는 타자기(컴퓨터는 타자기를 대신하지 못한다)와 같은 느낌으로 글을 써내려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인간의 의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쓰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김혜리 기자가 그와 한 인터뷰에서 몽땅연필을 든 '무사'라는 표현은 어울렸다고 판단된다. 무사에게는 武만이 중요한 것이다. 그에게 군더더기는 필요 없다. 하지만 무사도 인간이다. 이 어울리지 않음을 나타내기 위해 김훈 작가는 얼마나 고심을 할까. 수없이 돌려야하는 자전거의 페달은 수없이 고민해야하는 그의 모습을 닮았다고 하는 것은 오해일까.



  다 쓰고 보니 이번 대화를 보며 쓰려고 했던 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글이 되어버렸다.

덧글

  • 2009/11/21 18:29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James 2009/11/22 12:35 #

    전동이라 하면 끝으로 갔을 때 자동으로 처음으로 돌아오는 그것 말인가요?
    마음에 드시는 거 사셔서 꼭 마음에 드시는 좋은 글 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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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