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7일
난 글을 못쓴다는 자기혐오
어제 며칠 간 준비하던 과제물 하나를 제출했다. 매스컴과 관련된 수업이었는데, 이번 10.29 재보선 관련 언론보도나 정당게시판이나 인터넷게시판을 정해서 비교분석 하는 것이었다. 교수님께서 독창성을 요구하셨는데, 어떤걸 표본으로 할까 하다 주간지에 초점을 맞췄다. 주간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나오고, 그로 인해 보도성격이 다를 것이라 판단하여 몇 달 전부터 계속 모아오기 시작했다. 시험기간도 있었고 생활도 바쁘다 보니 다 읽진 못했는데, 그래도 계속 모아왔다.
과제 제출 기간이 다가옴에 따라 잡지를 다시 뒤적여봤는데, 이상하게 이번 선거 관련 글들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없는 주도 있어 무언가 내 준비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주 월요일에 방향을 급선회 하였는데, 선택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선거 이전의 보도태도 보다는 선거 이후 결과에 따른 보도태도에 집중하자는 생각에 교수님께 조사 계획을 메일로 보냈다. 답은 긍정적이었고 난 자신감을 갖고 글을 써나갔다.
논문의 형식이었지만 논문이라고 할 정도의 수준도 분량도 아니었다. 어찌되었든 논문의 형식으로 서론부터 차츰 써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정말 빨리 써나갔다. 어찌나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예전에 읽었던 서적들도 다시 도서관에서 대출하여 인용하며 글을 이어나갔다. 서론을 지나 연구방법과 문제제기를 거쳐 분석에 들어가는데, 난 분석이 제일 힘들었다. 이 내용은 뒷부분에 자세히 써내려 나가겠다.
내가 선택한 언론 매체는 한겨레신문, 경향신문과 조선일보, 중앙일보였다. 과제물에 둘 이상의 비교만 있으면 됐는데, 왠지 더욱 확고한 차이를 느끼고 싶어 네 종류의 매체를 택했고, 선거 이후인 10월 29일 부터 11월 4일 까지의 보도를 분석하였다.
한가지 놀라웠던 것은 생각보다 보수매체가 의도적인 내용이나 악의적인 제목을 두드러지게 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령, 참여정부 시절에는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이라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웃지 않고 찡그린 표정의 사진을 자주 기재하던 보수매체였지만,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 결과 자체를 기사화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의 깊이나 언어 사용에서는 아직도 매체별 시각차이가 보였고, 인용하는 말들도 달랐고 나아가 한나라당의 패배에 대한 후유증에 대한 평가도 달랐다.
내 과제물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내 과제는, 언론사별 정치적 입장 혹은 선거 전 지지하는 정치인을 확고히 공표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라는 인식에서 시작했다. 한 논문에서 어떤 교수는, 언론의 '편향성' 문제를 지적하며 미국이나 선진국의 경우에는 선거 전 정치적 지지자를 확실하게 밝히는 분위기가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편향성을 의식해서도 그러한 것이 이루어지면 안된다는 요지를 밝혔다. 난 거기서 부터 의문이 시작되었다. 왜 우리 언론은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일까.
그 '이유'에 관해선 내 과제물 논외였기 때문에 언급만하고 지나갔고, 내가 분석한 기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어떤 독자든 매체에 자주 접근한다면 그 매체의 정치적 성향이나 특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한 확고한 정치적 성격을 매체가 공표함에 있어 긍정적인 결론을 내리면서 나 자신의 주장을 이끌어 나갔다. 하지만, 거기에 덧붙여 매체별 부수차이가 좀 더 좁혀져야 하는 충분조건도 밝혔다.
태어나서 이렇게 보수언론의 웹페이지를 자주 들락거리고 기사를 많이 읽었던 적은 없었다. 며칠 간 너무 많은 기사를 반복해서 읽은 탓인지 과제물을 제출할 때 즈음 되어서는 머리가 아팠다. 수정을 거듭하여 수업시간 20분 전에 마무리를 하고 프린트를 해서 수업에 참여했다.
솔직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이 20분이 지나니 자기혐오로 변해가기 시작함을 느꼈다. 내가 지금 써놓은 이 글이 굉장히 서툴러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분석쪽은 자신이 없었다. 나 자신의 작위적인 해석이 포함되는 게 아닐까를 최대한 우려하면서 분석했지만, 그래도 내 선입견이 들어가 있진 않을까 고민됐다(그래서 '사설'은 자료에서 제외시켰다). 위에서 썼듯이 서론부터 문제제기 및 연구방법까지는 너무나 술술 써졌다. 왜냐하면 그냥 내 생각을 나열하는 것이고 내 지식을 바탕으로 쓰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분석부분에서 난 굉장히 힘들었다. 보수언론의 글을 읽는 것 때문인지, 아니면 내 분석능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한 글을 마무리 했을 때는 분명 만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니 그 글이 너무 한심해보여 다 찢어버리고 싶었다. 게다가 남들이 제출하는 과제를 얼핏봐도 신경써서 했다는 게 너무나 쉽게 보였다. 또한 교수님께서, 과제물을 얼핏 봤는데 한겨레와 조선일보 비교한 것들이 되게 많았다, 자신이 그걸 선택하기 전에 남들도 그것을 선택할 것이라는 걸 몰랐나, 라는 내용의 말을 수업 중에 덧붙이는 순간부터 그 좌절감은 너무 커져갔다. 난 분석내용이나 방식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대상에 대한 독특함은 생각조차 안한 것이다. 그때부터 자기혐오와 이 수업에 대한 지루함이 세시간동안 날 휘감았다.
금요일 오후 세 시부터 이루어지는 세 시간의 수업은 내가 가장 기대하고 재미있어하던 수업이었다. 하지만 어제따라 이상하게 굉장히 지루했다. 특정 논문을 모두 읽어오고 몇 명이 미리 그 논문의 분석 및 '현실과의 적용'에 관한 발표를 준비해오는데, 발표 할 때 논문의 분석이 너무 지루했던 것이다. 모두 다 읽어와서 아는 내용인데 마치 자신의 분석인 양 준비해온 대본을 읽어내려가는게 굉장한 '시간 낭비'로 여겨졌다. 논문에 있는 내용을 구어체로 바꿔서 설명할 뿐이지 반복이었던 것이다. 지금 내가 저 사람이 얼마나 잘 분석했는지를 보려고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인가? 난 연습장에 계속 '지루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적어 내려갔고 질문도 하고 싶지 않았다. 대학생은 더 나아가 성인은 어떤 대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잘 없는 것일까, 아니면 그걸 말하기 꺼려하는 것일까.
굉장히 기대하던 수업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고 엄청나게 열심히 준비했고 나름의 만족감을 가졌는데, 그 과제를 제출하자 마자 몰려온 자기혐오와 수업의 지루함과 고리타분함이 날 너무나 지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친한 애들에게 맥주나 한잔하자고 문자를 보냈더니 금요일이라 그런지 쉽게 긍정의 답이 왔고 난 내 답답했던 세 시간을 녀석들에게 말해줬다. 그런데 대답이 놀라웠다. 보통 요즘애들 발표 다 그런식으로 한다고. 자기가 준비해 온 대본 같은거 그냥 읽는다고. 어쩔 수 없지 않냐고.
난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게 무슨 대학생의 발표냐고. 발표라는 것은 대상에 분석도 있지만, 자기가 그걸 소화하고 자기만의 언어로 말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발표 때 예전에 있었던 '특정 사건'을 예 중 하나로 들면서, 그 특정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무슨' 일이었는지 조차도 모르는 데 그게 무슨 발표냐고 난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긴 하루가 흘러갔고, 난 너무나 지쳐서 인지 오늘은 늦잠을 자버렸다. 다음주에는 말하기(스피치) 발표가 있다. 내용적 준비도 다 되었고 구성도 다 되었고, 이제 스피치 원고만 작성하면 끝이다. 생각보다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어 좋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과 학문을 공부하는 것이라 바빠도 좋다. 하지만, 이러한 허무감과 나 자신에 대한 실망 및 자기혐오가 엄습하면 난 그냥 욕조속으로 꼬르륵 하고 들어가 버리고 싶어진다. 물 속에서 '웅-'하는 소리만이 내 귀와 뇌속에 가득 퍼지는, 그 순간을 느끼고 싶어진다.
# by | 2009/11/07 14:52 | [소소한 일상] | 트랙백 | 덧글(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물론 '대학생 수준'은 각자가 다르겠지만 사실 저도 발표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한 두번이 아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다음주에 있는 PT는 잘 해봐야겠습니다. 화이팅!
건투를 빕니다.
글쓰는 것이 점점 두려워지는 건 그만큼 나에 대한 책임감이 더 커지는 거니까..
그 무게감을 느끼는 건 분명 멋진 일이에요. 당연한 거겠죠 ㅎㅎ
요즘 주요 조간지 중에서는 경향과 한겨레의 어조에서 다급함과 압박감을 느껴요..
아주 부담스럽고 걱정입니다 ㅜ
그 다급함과 압박감이 아마 자신들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온 것일 수도 있고, 실제 현실에 대한 감정일 수도 있겠죠.
오랜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