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인 비만 by James


  대학와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한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공부에 할당하고 있다. 시간표도 빡빡하긴 하지만, 그것보다 내 내적욕구가 현실이 못따라갈 정도로 높기 때문이 아닐까. 언론관련 수업을 지난주에 배가 너무 아파 참석하지 못했는데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었는데 혹시 내가 알아야 할 내용이나 해야 할 과제가 있느냐는 내용이었는데, 며칠 후에 간단한 답변이 왔다. 수업게시판을 참고하라는데, 거기엔 논문 요약 과제가 있었다. 원래 그 수업이 매주 논문 두편 정도를 읽어 가야 했는데, 결석생은 이제 의무적으로 해당 주에 읽어야 할 논문을 요약해 오라고 했다. 수업은 금요일이었고, 그 게시판 내용 확인은 수요일 저녁이었다. 논문의 내용이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30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을 A4 앞뒤로 한장 제출하라는 얘기에 감이 오질 않았다.

  줄이고 줄인다고 해도 한 논문은 앞뒤 한장에 다 정리했지만, 다른 한편의 논문은 그게 도저히 불가능해 보여 다시 메일을 보냈다. 그 분량에 이 내용 전체를 요약하면 내용적 연결성 없이 주제문만 나열하게 된다는 요지였다. 답변이 안오길래 그냥 내 방식대로 해서 당일 날 제출했다. 과제를 제출할 때, 메일 보냈지 않냐는 말씀을 하시며, 왜 안왔는지 물어보셔서 말씀드렸다. 그런데 수업시간에 출석을 부를 때 내 이름을 안부르시길래 손을 들어서 말씀드렸더니, 이름도 다 알고, 과제 제출한 것도 다 알고, 장염 때문에 결석한 것도 다 알아서 안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과제를 잘 한 것 같아 '질문' 할 생각이라고 하셨다. 나름 기분이 좋았던 순간이었다.

  이 금요일 3시간 수업이 난 일주일 중에서 제일 재미있고 기대되는 수업이다. 지금은 쉽게 말하기 힘들지만, 그 교수님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있었던 분이시다. 나도 몰랐는데, 우연히 검색하다 알게 되었다. 그걸 알고 나니, 고작 수업을 듣는 수준밖에 되질 않으면서 무언가 중요한 순간인 것 같아 더욱 기대하게 된다. 지금까지 내가 듣던 수업이 모두 관념적이고 이론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면, 이 수업은 굉장한 현실감이 감돈다. 내가 살아가는 이 순간의 '진행형'을 배우는 것 같아 굉장히 두근거린다. 다음주가 추석이라 수업이 없다는 게 아쉬울 정도로.


  2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난 내가 하고 싶은 공부와 교양 외 수업에서 즐거움을 얻고 있다. 늦게 자면 새벽 2시쯤 자서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는데, 일어날 때 힘들더라도 하루가 길게 느껴져,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많아 지치지 않는다. 살이 조금 빠진 느낌이지만, 괜찮다. 육체가 빠진 자리에 정신이 깃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신적인 비만은 괜찮을까?



덧글

  • 아이비 2009/09/26 12:52 # 답글

    두시에 자서 여섯이 반에. 힘들지는 않나. 요즘 내 생활에 비춰보면, 우와. 부끄러워 진다.
    예전 시문학 수업을 들을 때 이야기를 해보자면, 50년대 시를 다룰 때 느낌과 80년대 시를 다루는 느낌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또 90년대 시를 다룰 때와 2000년 이후 시를 다룰 때의 전압은 아주 다르다. 특히 시를 전공하는 학생은 2000년 이후 시인들은 선배이자 경쟁자이자 당장 자신과 견줄 어떤 기준이 된다. 난 문창과 전공도 아니고 시전공은 더 더욱 아니지만 그들과 함께 있는 순간들이 너무 좋고 설레였었다. 현장에 있는 느낌. 생각해 보니 그 때 나도 2학년 2학기였네. 휴학을 하고 학교에 돌아가면 마음가짐이 달라 지겠지.
    정신적인 비만은 몸이 견디는 한에서 괜찮을 것 같다. 신체적인 비만도 정신이 견디는 한에서는 어느 정도 괜찮지 않나.
  • 아이비 2009/09/26 12:53 #

    헉. 덧글을 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반말을 해버렸네요;;;; 지우고 다시 쓰려니 그건 또 싫어서.
  • James 2009/09/26 22:17 #

    후후, 괜찮습니다.
    신체적인 비만을 견딜 수 있는 정신력이 워낙 약한 요즘 세상이라, 신체가 좀 섭섭해 할 것 같군요.
    썼듯이, 전혀 힘들지 않다 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그런 지침이 따지고 보면 정신적인 영양섭취를 위한 것이라 크게 다가오진 않더라구요.
    시간 많으실 때 하고 싶은 것들 꼭 하세요 ^^
  • 2009/09/27 13:0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James 2009/09/27 21:14 #

    네- 지금은 음식을 조심하며, 잘지내고 있습니다. 몸이 좀 가벼워진 느낌? ^^; 감사해요~

    그 발자국이 많이 남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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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