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기(09. 5. 27, 수요일) by James


  오늘의 일기. 2009년 5월 27일 수요일, 대체로 맑음.

  요즘은 머리가 굉장히 복잡하다. 아니, 이렇게 머리가 팽팽 돌아가던 시절이 너무 오랜만이라 즐겁다. 조그만 글을 읽어도 여러가지의 상념들이 뒤죽박죽 거리다가 나 스스로 일제히 머릿속 키보드를 가지고 토닥토닥 거린다. 제목은 무엇으로 할까. 시작을 어떤 내용으로 도입할까. 하지만, 그런 글들의 내용적 범주가 워낙 다양해 하나의 글에 묶기가 힘들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어렸을 적 일기장 쓰듯 제목을 다는 것. 나쁘지 않지만, 그리 좋지도 않다. 그럼 시작해볼까, 오늘의 일기.

  화요일에 3시가 넘었을 즈음 마트로 향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내가 먹을 것들 장을 봐야 하기 때문에 가방에 '장바구니'를 하나 더 넣고 월요일 혹은 화요일 마다 간다. 가는 길에 조그만 서점에 들린다. 가끔 잡지 사러 들리는 곳인데, 여전히 눈이 큰 여자 점원이 앉아 있었다. 잡지를 사러 갔다. <한겨레 21>과 <씨네 21> 이번주 껄 사러 갔다. <한겨레 21>은 여러권 사서 간직해야 겠단 생각도 했다. 하지만 없다. 보통 질문을 잘 안하는데 어눌한 말투로 물어 봤다. 그랬더니 아직 안들어 왔다고 오늘이나 내일 들어 온단다. 주위 블로그엔 벌써 이번호에 관한 글들도 뜨고 있는데 무슨 말이야, 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섰다. 마트에 들려 요즘 주식인 야채 및 샐러드와 참치캔과 저지방 우유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께 문자를 보냈다. 혹시 퇴근하시다 서점이나 큰 편의점 같은데 가서 <한겨레21> 이번주꺼 있음 2권 사다달라고. 잠시 후 전화오시더니 안보인다고 하신다. 그냥 오라고 말씀드렸다, 내일 다시 나가야 겠네, 라는 생각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 했다.

  오늘 아침 일찍 나가고 싶었는데 늦잠을 자버렸다. 블로그를 잠시 하고 주식시장을 뒤적거리다 가방을 쌌다. 한홍구 교수의 <특강>과 연습장, 수첩, 필통, 물통, 텀블러, 카메라 등을 챙겼다. 한짐이다. 그래도 좋다. 카메라 렌즈 부분이 유격현상이 생긴 것 같아 맡겨야 겠단 생각에 챙겼다. 커피를 마실 때 이제 텀블러에 담아 먹기로 했다. 계속 일회용 컵을 받아 썼는데, 이제 그냥 내 컵을 쓰려고 한다. 환경생각에, 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 것 같아 괄호를 쳐본다.

  서면역에 내려 가판대로 향한다. 난 사실 잡지는 이런 가판대에서 사는 걸 좋아한다. 이런 가판대에서 파시는 분들은 대부분 할아버지들이시다. 얼마 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단 생각을 해본다. "<한겨레 21> 두 권 주세요.. 그리고 <씨네 21> 두요."라고 말씀 드렸더니, "두권이요?"라며 날 쳐다보신다. 못본 채 하고 하나 남은 한겨레 오늘자 신문도 하나 꺼낸다. 만원을 드렸더니 400원을 돌려주신다. 가방에 주섬주섬 넣고 스타벅스로 향했다.

  일찍와서 일까 사람이 거의 없다. 이 매장은 특정 시간이 지나면 굉장히 사람이 많아 자리를 못잡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일찍 왔는데 잘됐다 싶었다. 텀블러를 가져가 할인을 받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았다. 배가 조금 아픈 것 같아 에스프레소는 추가하지 않는다. 잡지를 뒤적였다. 어차피 지금은 제대로 읽을 예정이 아니라며 훌훌 훑었다. 그리고 신문을 펼쳤다. 북한 핵 위협에 따른 PSI 참여 얘기부터 보인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기사들이 보인다. 한 3페이지 정도 넘기다 덮어 버렸다. 또 먹먹해진 가슴 때문이다. 징글징글하다, 이런 나도. 그러다 문득 어제 밤 어머니 말씀이 생각났다. 시간도 있는데 봉하마을가서 국화 세송이 놓고 오라고 하셨다. 아버지, 어머니 것도 같이. 난 사실 몇일 전 부터 봉하마을보다는 대한문 앞 분향소가 더 가고 싶었다. 그러다 생각이 좀 바뀌어, 영결식에 참석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쇠고기 파동으로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난 군인이었다. 그들이 말하길, 군인은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대외에 정치적 발언을 해서도 안되고 방송 출연도 허가없이는 금지였다. 한창 촛불집회 방송을 보고 있는데 한 간부가 나에게 물었다, 너도 밖에 있었으면 저기에 있었겠지 않냐고. 난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날 떠보는 말이었다. 진보적 성향을 잘 드러내진 않았지만 그들도 대충은 눈치채고 있었으리라. 난 그 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시간이 흐른 후에 만약 사회가 변하게 되었을 때, 난 그 순간에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질문을 받으면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대학 등록금 반값 투쟁에서도 만약 내가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반값 결정이 나면 난 그냥 좋아해야 하나, 라는 의문이 들었다. 참여하지 않았다는, 내가 그 순간에 있지 않았다는 그 부끄러움.

  이번도 마찬가지다. 결혼 생각도, 그 시기도 아직은 멀었지만 난 가끔 아이 생각을 하곤 한다. 내 아이가 국사 혹은 현대사를 공부할 때는 이 5월 23일과 29일 얘기도 배울테다. 그때, "아빠는 그때 뭐했어?"라고 물을 때, "응, 아빠는 아침부터 집에서 주식했어."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얘길 여자친구에게 했더니 조금 화를 낸다. 영결식 때문에 서울에 오지 말라고 한다. 자기는 일하니까 얼굴도 못보는데 와서 뭐할꺼냔다. 그러면서 직격탄을 날린다. "자기 원래 노무현 좋아했어?" 난 그냥 웃어 버렸다. 이 얘기는 뒤에 다시해야 겠다.


  신문을 덮었다. 더 이상 못 읽겠더라. 좀 더 안정을 시켜야 겠더라. 그래서 한홍구 교수의 <특강>을 마저 본다. 뒤로 갈수록 내가 아는 내용이 많아 더 빨리 읽히긴 했지만,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저자는 이 강의를 한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현실감이 좀 떨어진다고 할 정도로 현재 시국은 굉장히 빨리 진행되고 있단다. 그래도 좋다. 지금을 더 잘 읽을 수 있는 밑바탕이 되고도 충분하다. 오늘 밤에 다 읽을 예정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이상하다. 시끌벅적 할 시간인데 이 매장에 사람이 별로 없다. 가만히 생각해 봤더니 어제 기사가 생각났다. "스타벅스 등 음료업체에서 대장균이 나왔다."라는 요지의 기사였다. 클릭해보니 다 식약청 결과를 나열하는 정도다. KBS에서는 영상으로 직접 찍기도 했다. 식약청 직원 같은 사람이 보란 듯이 비닐장갑을 끼고 '이러한' 방식으로 음료를 만드니 균이 들어가게 된단다. 매장도 스타벅스 매장이다. 스타벅스 음료는 일회용컵에 주문할 시 무슨 음료인지 보드마카 같은 것으로 체크를 하는데 그 체크를 하고 음료를 만들어서 세균이 들어간단다. 좀 어이가 없더라. 그 펜 잠시 잡고 나서 손으로 휘휘 저어서 음료를 만드나?

  어느 순간부터 스타벅스 때리기는 기자들의 취미처럼 되어버렸다. 아무리 1위 기업이고 외국계 회사라지만, 좀 해도해도 너무 하단 생각이 든다. 분명 선별업체도 다양했는데 맨 처음에 주위를 끄는 건 스타벅스다. 그리고 식약청 홈페이지에서 검사 결과를 봐도 표본조사가 정확치 않다. 표본조사가 뭔가. 여러 대상으로 판단을 할 때, 특정 회사에서 뽑을 매장수를 회사 별로 똑같이 둬야 하지 않을까. 가령 스타벅스도 10개 매장, 커피빈도 10개 매장. 또한 결과를 발표할 때 10개 매장 중에 어떤 매장이 나왔냐만 발표할 것이 아니라, 어느 매장에선 안나왔고 혹은 나왔고, 나왔다면 어느 정도가 나왔다 라고 얘기해줘야 하지 않을까. 결과를 보면 회사마다 2개 매장인 곳도 있고 한 매장인 곳도 있다. 이건 명확한 조사가 아니다. 이건 '잡아내기 식' 조사다. 조사 결과 전체를 보여줘야지 이런 부분만 보여준다면 당연히 사람들은 모든 스타벅스, 롯데리아 매장에서 대장균이 득실득실 할 것이란 상상을 하게 된다.

  난 음식의 청결 상태가 불량해도 된다는 얘길 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 관리를 잘하는 곳도 있고 그렇지 못한 곳도 있다. 그건 직접 다녀보면 개인이 다 알 수 있다. 하지만 특정 매장 하나를 가지고 모두를 정의하는 듯한 기사방식은 용납이 안된다. 그리고 식약청이 얼마나 권위있고 힘이 세길래 그 매장의 영업정지를 시키나? 그건 회사에서 알아서 할 일이 아닐까? 대장균이 나왔다면, 그 아이스 음료를 먹었을 경우 어떠한 상태가 되는지 전문가의 소견을 보여주는 기사는 없다. 단지 100만 마리가 있으면 병이 생기는 데 그 중에 1000여 마리가 나왔다, 하지만 기준은 100마리다, 이 정도다. 이건 그 이후, 날이 점점 더워짐에 따른 조치가 중요하지 영업 막는 행위는 일종의 전시행정인가? '스타벅스랑 롯데리아 우리가 막았다, 잘했지. 그니까 니들도 신경써.' 이건가?

  난 의문이다.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길에서 파는 생과일쥬스나 핫바 같은 분식류 보다 특정 업체 아이스 음료에 더 대장균이 많을까. 왜 그들을 단속하진 않는 것일까. 그들은 다 서민이니까, 먹고 사는 것 까지 막을 순 없다? 니네들이 좀 이해해라? 회사와 전혀 상관 없는 나도 납득이 잘 되지 않는데, 그 후폭풍을 감당할 많은 회사들은 얼마나 머리가 아플까.



  집으로 돌아왔다. 신문은 다 읽지 못했고 책만 잔뜩 읽었다. 매장을 나와 카메라 수리를 위해 지하상가로 내려갔다. 그런데, 서면 지하상가에 있던, 내가 기억하고 있던 카메라 매장이 보이지 않는다. 한바퀴 전체를 훑어도 옷가게 밖에 보이질 않는다. 사라졌나 보다. 이제 필름카메라를 만지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어쩌면 당연하지만서도 씁쓸했다. 예전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필름카메라들을 본 기억이 나 그곳으로 갔더니, 수리를 해주신단다. 카메라 상태를 보더니 놀라신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풀고 조이고를 반복하시고 덜컥거리지 않는 카메라를 주셨다. 2천원이다. 괜히 기분이 좋아져 혹시나 싶어서 진열되어 있는 Pentax ME-Super 가격을 물었더니 아무렇지 않게 20만원이란다. 예전에 알아볼 때 가격이 생각나지 않아 돌아왔지만, 왠지 산다고 하면 정말 깨끗하게 수리까지 다 해서 주실 것만 같은 인상이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책을 보다 잠시 잠이 들었다. 어머니 오시는 소리가 들려 나갔더니 거실에 있던 <한겨레 21>을 보고 샀냐면서 한권을 꺼내신다. 낮에 내가 직접 사면서도 설마 사오시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아들 생각에 사오셨나보다. 기분이 좋아졌다. 안그래도 한권은 어머니를 위한 것이었다. 시간나실 때 보시라고 2권을 사달라고 했었던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동안 거실에서 물어보신다. 이거 한권에 얼마냐고. 삼천원이라고 했더니, 좋아하시는 반응을 보이신다. 더 기분이 좋아진다. 아들 뭐하냐는 물음에 글쓰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엄마는 글을 안쓴지 너무 오래 되어서 다 까먹었다며 투정을 부리신다. 내가 서울 가기 전에 이 컴퓨터로 글쓰는 법 가르쳐주겠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드렸다. 거실 불은 꺼졌고, 이제 모두가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글의 길이만큼 길었던 하루다. 아직도 못다한 얘기가 있지만, 이즈음에서 줄여야 겠다. 오늘은 착한 어린이가 일기 쓰는 모드이기 때문에, 착한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하지만 내용은 흥분이 덕지 덕지 붙은 것 같아 부끄럽다.


  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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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