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해주는 할아버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 - 우디 앨런 by James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 -
우디 앨런 지음, 성지원.권도희 옮김, 이우일 그림/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우리는 우디 앨런이란 감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냥 나이 든 코메디 영화 만드는 감독으로만 알 고 있을까? 가끔 자기 영화에 감독 겸 조연으로 자주 나오는 한 감독으로 알고 있을까? 뉴욕을 거점으로 생활하고 있는 괴짜감독으로만 알고 있을까?

  난 그를 얘기할 때 '이야기꾼' 이란 단어를 빼놓을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최근작들은 그리 무겁지 않게 일상의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한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우왕좌왕 찾아가는 단순한 스토리의 <스쿠프>, 사랑에 목말라하다 만난 남자와 그의 아내까지도 사랑하게 되고 알고보니 자신의 친한 친구도 그 남자를 사랑한다는 얽히고 설킨 이야기를 풀어내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Vicky Cristina Barcelona)>를 봐도 그는 꼬장꼬장한 할아버지 같은 이야기를 풀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정반대편에 있다고 해야하나.

  우선 그는 욕심내지 않아 보인다. 그는 단지 손자손녀나 아들딸에게 '어느 한 도시에서 말이야..'라며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꺼내는 느낌이다. 그 이야기가 앞뒤가 딱딱 맞아떨이지거나 마지막에 큰 반전이 있길 원하지도 않는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이어가다 보면 그게 하나의 '좋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거기다가 웃음이라는 양념을 살살 뿌려주면 꽤 괜찮은 음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게 타고 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렸을 적 혼자 지내는 시간을 좋아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개그작가로 활동했던 것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으리라 본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다 풀어낼 충분한 시간이 없을까 봐 우주의 멸망을 겁내'는 그에 관한 글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될 듯 싶다.

  그런 영화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책을 펼쳤다. 이우일 작가의 일러스트가 더해져 더욱 끌리게 만들어진 책이다. 굵기도 적당하고 글자 양도 많지 않다. 잠자기 전 침대에 누워 한두편 웃음 지으며 읽다보면 꿈속에서 하얀머리의, 아니, 이 일러스트에서에 나온 모습대로의 우디앨런이 나와서 혼자 줄줄 이야기하고 있을테다. 그 꿈속에서도 '뭐야, 이 사람' 하면서 나중엔 '키득키득'하며 웃음을 찾는 자신을 발견할테다. 그게 이 단편 소설집을 읽고 받는 느낌과 똑같다.


  뉴욕이나 혹은 유럽의 문화나 사회적 배경 혹은 장소를 알면 더욱 이 소설이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각 페이지 마다 '주'가 친절히 달려 있긴 하지만, 그래도 단지 읽는 것만으로는 다가오지 않을테니. 처음엔 웃음의 코드를 잘 이해하지 못하다가도 중반즈음 되면 점점 그 포인트가 다가와 더 흥미를 느끼게 된다. 단편 '오, 친애하는 유모여'에서 처음 들인 유모에 대한 얘기를 보면,


  ....제일 처음 들인 유모는 권투선수인 스탠리 케첼을 닮은 스웨덴 여자였다. 그녀의 태도는 간결했고, 아이들에게 규율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아이들은 식사 시간에 올바른 예절을 보이기 했지만, 어디서 다쳤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멍자국이 발견되곤 했다. 우리는 집 안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했고, 유모가 '아르젠틴 백브레이커'(자신의 어깨 위에 상대방을 올려놓고 목과 허벅지를 당겨 상대의 등을 아프게 만드는 기술)라고 부르는 레슬링 기술로 내 아들을 자기 어깨 위에 일직선으로 들어 올리는 장면을 포착할 수 있었다. - 146p 中


  기술까지 정확히 얘기해주는 이런 내용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남 얘기하듯이 한다. 그러면 혼자 웃지 않을 수 없다. 뒤로 갈수록 단편의 내용이 점점 좋아지는 데 아마 내가 그의 얘기에 적응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법 위에 사람 없고, 침대 스프링 밑에 법 없다'편은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아쉬움이 남는 다는 건 나름 좋은 것이다. 다른 얘기를 더 알고 싶거나 뒷 얘기를 더 듣고 싶을 때 느끼는 감정은 그만큼 내가 빠져있었다는 것이다. 국내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그의 단편집이라는 데, 다른 게 있었으면 하고 또 기대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제일 재미있는 부분이었고 우디 앨런 다웠던 단편 중 짧은 대목.


http://rockermin.egloos.com2009-05-21T11:02:460.31010

 해고당한 마이클 오비츠 사장에게 지불된 일괄 퇴직금 액수의 정당성 여부를 놓고, 월트디즈니 사 주주들이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드디어 재판이 열린 오늘, 아무도 예상치 못한 증인의 출석으로 재판정은 엄청난 동요에 휩싸였다. 그 증인은 연예계의 대부 오비츠 측 변호인의 심문에 응하기 위해 증인석에 올라앉았다.




  변호인 : 증인은 성명을 밝혀주십시오.
  증인 : 미키 마우스입니다.
  변호인 : 직업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증인 : 만화화된 설치류 배우입니다.


  - 203p '미키 마우스, 법정에 서다' 편 中

덧글

댓글 입력 영역


메모장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