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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도 화장품 좋은 거 쓰면 안돼?

  난 연애의 좋은 점은,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것에 있다고 본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고 정보가 풍부하다고 해도, 남자와 여자는 엄연히 서로 몰랐던 것들을 많이 갖고 있기 마련이다. 이게 일대일 개인의 다름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라는 성적 차이에 의한, 거기서 비롯된 관심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라 쉽게 알지 못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내가 제대로 된 연애를 시작하고 받은 첫 선물은 스킨, 로션 세트와 '폼클렌징'이라는 녀석이었다. 그때가 고등학교 때였으니까 그때까지 난 비누를 이용(애용은 아니다)해 왔고, 피부 트러블이 나면 시간에 맡기거나 손에 맞기곤 했다(지금 제일 후회하는 행동 중 하나다). 그런데 생일 선물로 받은 이 치약보다 크고 부드러운 이 무언가는 새로운 세상으로 날 인도했다. 사용법(!)을 배우고 집에서 몇일 간 꾸준히 사용 했더니, 코가 맨들 맨들해지는 느낌이었다. 아 놀라워라. 지금은 쓰지 않는 데이시X 제품이었는데, 꽤나 놀라워하며 씻는 시간이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아 이런 세상이 있다니, 라며 놀라워 했던 게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부터 비누는 사용하지 않고 세안은 폼클렌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난 '잘' 씻지 않는 편에 속했다. 아버지는 피부가 좋으시지만 어머니는 그리 좋지 않으셔서 선견지명을 갖고 아들 피부 좋아지라고 어렸을 때부터 신경써주셨는데, 과도한 활동과 물 세수를 자주하던(남학생이 뭐 다..허허) 나에게 트러블은 예고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걸 지켜보실 수 없었던 어머니는 일본에서 수입된 어떤 제품을 나에게 구해주셨고 그건 스킨이지만 바르면 안되고 화장솜이라는 것에 묻혀서 닦아내야 된다고(잠시 성정체성에 의심이 들긴 했으나 트러블과의 전투를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다짐했다) 했다. 그 이후로 내 책상엔 스킨, 로션 세트와 화장솜, 그리고 탁상 거울이 언제나 위치했다. 난 책상에서 공부할라 치면 그 스킨 로션이 품어내는 향기에 희미한 웃음을 짓곤 했다.

  아마 이 때부터 난 아버지로부터 구박을 받기 시작했다. 가족 3명이 외출을 하려 치면 아버진 씻고 옷입으면 끝이지만, 어머니는 씻고 머리하고 찍어바르고(아버지의 표현대로라면) 하다보면 시간이 꽤나 걸렸다. 그런데, 여기에 보태어 아들이란 놈도 씻더니 엄마처럼 찍어 바르고 데오드란트 뿌리고 향수뿌리고 마지막으로 핸드크림까지 바르고, 머리까지 해버리는 내가 너무 늦게 준비한다고 느끼셨을테다. 짧은 머리를 가진 고등학교 시절에도 이랬으니 나이 들어서는 얼마나 더 답답하셨을까.

  그러한 삶을 7, 8년 하다보니 이제는 이런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게 되고 당연하게 생각하게 된다. 아침에 바쁘지 않냐는 질문에는 그럼 더 일찍 일어나면 되지, 라는 대답을 하곤 한다. 내가 풍기는 이미지 같은 걸 중요시 하다보니 아침에 늦잠을 자서 학교에 늦더라도 꼭 다 씻고 순서대로 다 지키고 수업을 들어 가곤 했다(그래서 날아간 내 학점이여).

  입대를 하면서 걱정했던 것 역시 피부다. 스킨, 로션을 들고 오면 안된다는 통지에 난 조그만 통을 구해 거기에 내가 쓰던 스킨 로션을 가득담아 호주머니에 넣고 몰래 쓰곤 했다. 훈련소 시절 끝내 들키지 않고 잘 버텼다. 문제는 자대 배치를 받고 시작되었다. 여자친구로부터 꽤나 다양한 종류의 화장품들을 소포로 받았는데, 고참들의 눈빛이 곱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이들은 '폼클렌징'이란 존재도 군대와서 알았던 것이다. 그러다 일병이 지나면서 이니스프x에서 나오는 와인 필링제를 선물받게 되고 덩달아 화장솜도 받아서 이용하게 되었는데, 이게 그들에겐 이해가 '절대' 되지 않았다. 겨울에 쓰는 수분크림 조차도 모르니까. 그래서 욕이란 욕은 다 들으면서도 난 꿋꿋이 이용했다. 나란 사람의 피부는 보기와 다르게 굉장히 민감한 피부라서 조금만 자극적이거나 알콜량이 많으면 트러블이 나고 흉터는 잘 사라지지 않으며 모기에는 잘 물려서 여름이면 온 팔이 흉터로 얼룩지곤 할 정도다.

  그런데, 남자들만의 세계에서 이런 날 이해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목욕탕에서 쓰는 아저씨 냄새 나는 스킨 로션도 아무렇지 않게 쓰는 그들에게 난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특이한 사람 몇은 있는 법. 나랑 통하는 사람이 한 사람 있어서 서로 자주 화장품얘기를 하곤 한다. 서로의 사용후기(!)를 얘기하거나 자주 가는 사이트를 알려주기도 하고, 같이 팩(!)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릴 바라보는 시선은 놀라움과 당혹감이 교차한다.

  남자도 화장품 좋은 거 쓰면 안되나? 아님, 화장품 자체를 쓰면 안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네이버 광고에 나에게 필요한 화장품 광고가 뜨면 클릭하게 되고, 화장품이 다 떨어질 때 이번엔 뭘쓸까 신나 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지 않나? 다 자신을 위한 것인데, 다 개인만의 사정(중요하다 이건)이 있는 건데.

  그래서 바라는 건, 많은 여성들이여, 남자친구의 피부에 조금만 신경을 써주길 바란다. 그들에게도 이러한 것들이 있다는 걸 인식시켜주고 햇살이 내리쬐기 전 선블락 하나 정도는 선물해주고(지성이라면 이왕이면 oil free 제품으로!) 겨울이면 그의 얼굴이 거칠다 싶으면 수분가득 수분크림 하나를 가방에 쏙 넣어주길.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남성이 여성에게 호감을 끄는 것 중에 하나가 '손'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향 좋은 핸드크림도 꼭 발라주길.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하자면, 어떤 아는 사람이 여자친구와 술을 마시고 분위기가 뜨거워졌단다. 그들은 남들처럼 키스를 하며 손으로 서로를 더듬었고 그도 그녀의 가슴을 더듬었단다. 그런 순간에 그녀가 '아..거칠어..'라길래 그는 그녀가 좋아 하는 줄 알고 더 정성스럽게 사랑해줬단다.

  다음 날 만난 그들, 그녀가 그에게 선물을 하나 줬단다. 그건 바로
 

  '핸드크림'. 그녀는 거칠거칠한 그의 손바닥이 많이 신경쓰였단다. 좌절한 그의 표정.

by James | 2008/08/17 12:59 | [소소한 일상] | 트랙백(1)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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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난 달을 향해 여행을 .. at 2009/05/18 22:59

제목 : 화장품 샀다아아(키엘), 그리고 쓰던 것들
남자도 화장품 좋은 거 쓰면 안돼? 규칙적이지 못한 생활과 약간의 술로 인해 무언가 올라오기 시작한 피부. 내 피부는 지성이기도 하면서도 민감하기도 해서 무언가 쉽게 선택해서 쓰질 못한다. 그러다 여자친구가 '피부 트러블 있을 때 알코올 성분이 많은 제품을 가끔 써주기도 해야 한대'라는 말에 그래? 라며 혹 했는데 고민고민하다 새로 무언가 구입하기로 하고 백화점 투어를 했다. 예전에 아베다 제품을 꽤 ......more

Commented by 디온 at 2008/08/17 13:21
James님 계신 곳은 여기랑은 분위기 차이가 제법 나네요. 저희는 얼마 전에 중대 안에 있는 화장품 계(...)에서 크리니크 라인으로 공동구매 한 적도 있는데;
Commented by James at 2008/08/17 15:16
디온 - 그러게요, 나름 도시 내에 있는데도 영..하하 그리고 클리니크는 저랑 전혀 맞지 않습니다. 남성 라인은 별로더라구요.
Commented by 당근 at 2008/08/17 15:49
랑콤계열은 어떠신지요.. 저도 크리니크가 안맞는데 랑콤 계열은 맞더라고요..
(전 여자긴 하지만 ..)
Commented by James at 2008/08/17 17:55
당근 - 음, 클라란스나 아베다 정도 생각하구 있구요, 그리고 menscience 라고 수입이 있는데 그게 자극이 덜 하다고 해서 다음에 그걸 써볼까 생각중이예요. ^^
Commented by 사치코♡ at 2008/08/18 00:09
제발 울 신랑도 좀 화장품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ㅠㅠ 흑흑
맨날 밤마다 아이크림 발라주려면 어찌나 투닥투닥 싸워야하는지 원.. 게다가 james님처럼 피부도 예민한 주제에.. (울컥)
Commented by 에나 at 2008/08/18 10:00
글 잘 읽고 갑니다. 고충을 재미나게 쓰셔서 저는 죄송하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문단에서... ^^)이 글을 만난김에, 애인에게 마스크팩이라도 좀 해줘야겠습니다. (화장품은 알아서 오휘제품을 쓰니 패스하고;)
Commented by 아이비 at 2008/08/19 23:37
으하하하하하. 클리니크와 랑콤을 여기서 듣게 되다니, 재미있네요. 요즘 동기들은 선크림, 리베아 입술보호제, 폼클렌징은 꼭 챙겨 가던걸요. 선크림 보내 줄까, 하면 이미 있다고 그래서요. 하하하. 남동생이랑은 같이 팩도 하고 그러는데. 남자친구랑 같이 팩하면 재미있겠어요.
Commented by Seth at 2008/08/20 22:47
처음뵙겠습니다. 지나가다 들러보았는데 아주 바람직한 생활을 하고계시군요 ;ㅅ;
제 남자는 -_- 아무리 화장품을 선물해줘도 당췌 바르지를 않습니다.
샤워도 비누한장을 끝냅니다
얼굴에 뭔가 발라서 끈적거리는게 싫다기에 수분크림 위주로 선물해 주었지만 그래도 안바르고
심지어는 제가 챕스틱이라던가 바르고 있을땐 뭍는게 싫다며 뽀뽀도 안합니다
ㅠ_ㅠ 이럴땐 어쩌면 좋을까요
Commented by James at 2008/08/22 07:48
사치코♡ - 하하, 은근히 부러운데요? ^^
에나 - 죄송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후후 ^^ 마스크팩도 시원함이 좋은데 ㅡㅜ
아이비 - 서로 해주면 좋겠죠? 후후. 요즘은 그런거 다 챙겨 가도 되나보군요; 전 안됐는데 ㅡㅜ
Seth - 선물해줘도 바르지 않는다니; 그 분이 뽀뽀 안한다고 하면 하지 말라고 해버리세요. 언젠가 그 촉촉함에 애타게 될껍니다. ^^
Commented by 카렌 at 2008/08/29 11:36
글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ㅅ< 쵝오쵝오-

요즘은 정말 남자들도 은근히 화장품에 관심이 많더라구요.
테니스 레슨 받는 남자친구를 위해서 lab의 자외선차단제와 클렌저를 선물해 주었는데,
회사에다가 가져다 놓고 써서 집에서는 쓸게 없다며 하나만 더... 라고 애교있게 말하길래 시세이도 아넷사를 가져다 줬다는...
자외선차단제는 굳이 여름이 아니라도 사계절 발라주는게 가장 좋아요. 굳이 남성용으로 쓰지 않아도 되고... 개인적으로 아넷사를 추천해요. (남친도 랩 보다는 아넷사가 번들거리지 않고 매트하게 스며들어서 좋았다고 하더라구요.)

지금 쓰시는 화장품들 다 쓰시고 나면 lab 제품도 한번 써보세요.
랑콤 옴므나 비오템 옴므, 클리니크 포맨 라인들은 다 조금씩 독하게 느껴졌는데,
랩은 제가 몇번 얻어 써봤는데도 순해서 좋았거든요.

립밤과 핸드크림은 약국에서 파는 유리아주-

하여튼 화장품 이야기만 나오면 벌떡해서;; 죄송;
Commented by James at 2008/08/30 12:44
전 시셰이도 클렌징 오일만 쓰고 있습니다. 랩 시리즈는 가격대에 비해 별로 라는 얘기가 있어서; 이번 선 블락 다 쓰면 뭘 해볼까 고민중입니다. 멘사이언스라고 것도 괜찮다고 해서 알아 보는 중이구요. 전 입술보호제는 그냥 니베아 씁니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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