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살아 남아라, 영광도서-


  갑자기 얻게 된 휴가, 그리고 복귀 전날. 혼자 집에서 깔깔대며 TV를 보다 오후가 되어서야 집을 나서서 서면으로 나갔다. 언제나 그렇듯이 많은 책을 구매하겠다는 굳은 다짐을 가지고 영광도서와 교보문고를 거쳤다. 하지만 내 손에 남은 책은 한 권도 없었다. 영광도서는 예전엔 없던 검색 시스템이 생겼으나 이 검색 시스템은 단지 책이 이 공간에 있냐 없냐 이외에는 다른 정보는 주지 않았다, 아마 직원 전용을 조금 변형시켰을 뿐이리라. 그리고 많은 것들이 변했다. 한 층 전체를 문제집 관련 코너로 변화 시킨 모습이나 인문이나 사회과학 관련 서적 코너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한 때 좋아했는데, 아쉬움때문에 한참 한권의 책을 찾다 끝내 못 찾고 나와 버렸다. 그리고 교보문고. 더 이상의 애정은 없다. 새로 나온 책들이 놓은 코너는 내 흥미를 끄는 책은 보이지 않았고, 군에 있는 내가 느끼기에도 별로 새롭게 다가 오지 않는 책들이 여전히 새코너에 놓여 있었다. 이곳이 서울의 교보문고와 다른 점은 일종의 업데이트가 상당히 느리다는 것이다. 가끔은 직원이 귀찮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 예전엔 쉬운 검색과 세련됨, 그리고 '교보문고'라는 이름에 의한 애정이 있었지만, 이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냥, 그저 그런 조금 큰 동네서점 이하로만 느껴질뿐.

  그렇게 한참을 사는 것 없이 실망만 가지고 서점을 나와선 멍해져 혼자 커피나 마시며 PSP나 해버렸다. 그러다 제사에 참여할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비는 걸 느껴 구석탱이에 있는 영광도서가 생각났다. 언제나 그 위치 때문에 가기가 머뭇거려 졌는데, 그냥 아무런 기대 없이 한번 발걸음을 옮겨 봤다. 1층을 대충 둘러 보고 2층, 3층으로 올라가 본다. 어렸을 적 기억 때문들일까, 여전히 이곳은 낡아 있다는 느낌이고, 오래되었다는 느낌이다. 사람들도 다 나이가 있어 보인다. 그러다 김혜리 기자의 책이 보인다. 일러스트도 내가 좋아 하는 박훈규가 그려서 정말 득템! 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놀라웠다. 살까 말까 고민하다 지갑속을 생각하고는 한숨지으며 책을 내려놓는다. 소설 쪽으로 가보니 꽤나 많은 책들이 있다. 최신 작품들부터 오래된 작품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란 말에 어울리게 디스플레이 되어 있다. 바닥 뿐만 아니라 책장에도 꽤나 다양한 책들이 있어 그 속에서 슬며시 웃음을 지어 본다. 그러다 깨닫는다. 이곳이 이제 나에겐 최고구나, 하고. 그동안 멀다고 오래되었다고 나도 모르게 무시하고 있었구나, 라고. 이런 곳이 살아 남아야 하는데, 라는 안타까움도 들고(실제로 어떤진 모르겠지만).

  그러다 원서를 보러 지하로 발걸음을 옮기고 더 감탄해 버렸다. 꽤나 다양한 책들이 파트별로 분류되어 있었다. 교보와 동보서적을 갔을 때는 정말 뭔가 없어 보여 쉽게 구미가 당기지 않았고, 몇 년 전 유행하던 책들도 메인으로 그대로 올려 놓고 사람들의 손때가 타 너덜너덜해진 페이퍼북을 계속 올려놓고 있던 교보문고. 그러한 곳과는 사뭇다르게 나에게 오랜만에 들뜸을 안겨준 영광도서.

  밖으로 나와 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 1시간이나 훌쩍 넘어 버릴 정도로 난 그곳에서 즐겼던 것이리라. 나오면서, 그 앞 포장마차의 불빛과 할아버지들의 고함소리, 그리고 버스소리. 그곳을 지나며 혼자 되뇌어 본다, 끝까지 살아 남으라고. 내가 틈날 때마다 올테니, 살아남으라고. 넌 나에게 이제 또 다른 내 방앗간이 될꺼라고.

by James | 2008/04/27 12:58 | [소소한 일상]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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