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1월 07일
허니와 클로버 (ハチミツとクロ-バ: Honey & Clover, 2006)

답답했다. 책을 보는데, 순간 또 답답함이 밀려 왔다. 속으로, 입으로 되뇌인다. 나가야 한다, 나가야 한다,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난 그렇게 또 도망쳤다. 문밖을 나와서 생각해보니, 갈 곳이 없었다. 그래, 극장을 가자. 난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덜컹 덜컹. 버릇처럼 책을 꺼내지도 않고, 음악만 들으면서 그렇게 멍하게 있다. 내가 혼자 갈 수 있는 극장이란, 일요일에, '스폰지하우스' 밖에 없다. 처음이다. 그냥 가서 아무 영화나 시간에 맞는거 봐야지, 라고 생각해서 가서 본 것이. 도착하니 1시 35분. 가장 맞는 시간은 1시 45분 <허니와 클로버>. "허니와 클로버 1시 45분 한장 주세요." "매진입니다." 허망하다. 이 영화가 뭐길래, 매진일까. 다른 영화 시간은 다 4시 이후다. 절망적이다. 또 중얼거린다. '정말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건가.'
그 때 누군가 날 잡는다. 혹시 허니와 클로버 구하냐고, 카드로 예매 했는데 낱장 환불이 안된다고, 필요하냐고. 그렇게 그 자리에서 7천원을 건네어 주고 후다닥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후로 이렇게 시네코아에 사람이 많은 건 처음본다. 내 자리는 무대 앞에서 3번째 줄. 양쪽 모두 여자다. 또 되뇌인다. '젠장.'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카메라가 많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는다. 스폰지하우스 카페에서 봤던, 어떤 여배우가 방문한다는, 그래서 예매가 순식간에 끝나 버렸다는, 오늘이 바로 그날인가? 역시나, 무대인사가 있다. 감독이랑 여자 주인공이 파오님과 함께 나온다. 멍하다. 이거, 나에게 선물? 보자마자 느낀 건, 너무 말랐다, 라는 거. 그렇게 난 의도하지 않게 '아오이 유우'를 가까이서 보았다. 내가 본 두번째 일본배우, 그것도 두번째 우연. 목소리가 일본여성 특유의 앵앵댐이 느껴진다. 그런데, 역시나 너무 말랐다. 별 얘기 없이 몇 마디 하고 내려갔다. 난 팔짱끼고 감상했다. 가방안에 카메라가 있었지만 꺼내지 않았다. 다들 플래쉬 세례를 축복처럼 터뜨려준다. 난 어서 영화가 시작되기만 바란다.

주인공 여자아이는 말 그대로 천재. 추상화다. 난 이해 하지 못하지만, 그들은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단순한 청춘물이겠지, 라고 예상했는데, 역시 청춘물. 하지만 나도 청춘이기 때문일까, 날 자극한다. 눈물이 나진 않는다. 하지만, 중간 중간에 나오는 위트가 날 다시 웃게 만든다. 영화 속에선 두 천재가 나온다. 그들은 그들 서로가 알아본다. 그리곤, 같이 그림을 그린다. 다른 미술 하는 학생들이 그것을 보고 마지막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나오는 대사.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난 한 때 그런 세상이 싫었다. 예술 분야에서 아는 사람들끼리 알아보는 것이 싫었다. 대중은 이해하지 못하는 예술은 싫었다. 그러다, 음악을 하면서 깨달았다. 따라가야 하는 건, 예술가가 아니라 대중이라고. 그들도 예술가들의 노력만큼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같이 즐길 수 있다고. 어느날 동기 두명이 이런 얘길 하는 걸 들었다. "나는 제목을 '무제'라고 다는 예술이 제일 싫어. 도대체 지네들끼리 이해해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그리고 난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혹시 그거, 너가 이해못하는 거 아냐? 너가 이해못하는 걸 왜 예술 하는 사람들 탓으로 돌려?" 예술이란, 그렇게 콧대놓은 것이다. 쉽게, 예술이라 하지 못한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여행은 언제나 날 설레게 만든다. <조제...> 때도 바다 여행이 나오지만, 이 영화에서도 바다로 떠남이 나온다. 그것은 주인공의 대사처럼 '청춘'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청춘을 갖고 떠나는 것, 난 그런것에 감동을 받는다("청춘이 최고다"). 낡은 자동차는 덜컹거리고, 무언가 이상한 냄새를 풍기지만, 그것도 청춘앞에선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은 청춘을 믿고 사랑을 터놓는다. 난 순간 부러움을 느낀다. 나에겐, 청춘이면서, 청춘도 없고, 그러한 사람도 없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영화속 판타지인가?

사실, 영화 보는 내내 아오이 유우 보다 옆에 배우가 더 이쁘단 생각을 했다. 천재적 재능도 없고, 간단한 사랑조차도 마음대로 잘 되지 않지만, 그래도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그 큰 눈망울로 쳐다만 볼 뿐.

사랑은 작대기 싸움이다. 그 작대기를 올바르게 서로가 지시해야, 이루어 진다. 너무 순수한 나머지 작대기 자체를 들지 못하면 남는 건 '혼자' 이다. 혼자 외톨이 놀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 주인공도 <조제..>에서 처럼 도망친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다. 그 돌아옴의 연결이 부자연스럽긴 하지만, 청춘이기에 순식간에 힘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이겨내고 싶어 한다. 힘들고 지치지만, 난 너가 좋아, 라는 한마디를 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다. 그 끝은 알 수 없다. 청춘이 변화무쌍하듯이, 감독은 쉽게 그 끝을 보여주고 싶어 하진 않는다. 우린 또 언제나 살아 왔듯이, 또 앞으로 살아간다. 영화는 청춘을 불사르라는 말도 하지 않고,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단지 이러한 청춘도 있다는 걸 조용히 보여줄 뿐이다. 우리의 삶을 투영할 수 없다. 이건 영화일 뿐이다. 하지만, 청춘은 누구에게도 오고 있으며, 왔으며, 올 것이다. 차라리, 지금이 청춘이라는 것을 쉽게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남자 주인공처럼 실실 웃을 수 있을 텐데.
# by | 2007/01/07 18:15 | [영화적인 삶] | 트랙백(1)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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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청춘'이란 단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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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리타고왔습니다- 글 잘 보고 가요
아직도 그 작품만 생각하면 가슴이 싸해 지네요. 이미 제게는 지나버린 시절이었음에도 말이죠. 영화는 또 어떠려나... 2기는 전반부가 대략 너무 축축 처져서 관뒀는데, 어찌되었나 모르겠네요.
청춘, 청춘. 마음이 간질간질 하네요. 하니와 클로버는 너무 메이저라, 메이저를 피하는 이상한 심보가 있는 저는 아직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임스님이 보셨다니까 보고 싶네요.
Annika - 저도 만화로는 아직.. 영화도 그리 나쁘진 않더군요. 그런데, 꼭 책이나 만화가 원작인 것은, 원작을 보고 영화를 보면 좀 느낌이 아무래도 안좋더라구요..
ledicooler - 기억은 하고 있답니다. ^^; 레디쿨러 님이라고 부르면 됩니까? ^^;
아이비 - 저에겐 풍부한 상상력 밖에 없는 것 같네요. 영화가 그리 메이저 영화 라고 하기엔 뭣하고, 스토리 진행은 메이저 이긴 하지만. 뭐, 봐도 나쁘지 않으실 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