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15일
비의 추억
지금 비가 오고 있다. 일을 마치고 웃는 듯 우는 듯 한 얼굴을 하고 밖을 나오는 순간, 비는 생각보다 많이 오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난 공허한 눈빛으로 하늘 한번 쳐다본 후, 내 발걸음을 휙 하고 옮겨 버렸다. 그리곤 생각했다, "언제였지? 내가 비를 우산없이 이렇게 맞고 걸었던 적이..".
사실, 난 비에 좀 미쳐있다. 비가 오는 소리가 좋고 비가 오는 비릿한 향기도 좋고, 비가 올 때 쓰는 우산도 좋다. 비가 내릴 때 같이 부는 바람도 좋고, 비가 와서 어두워진 낮 시간도 좋다. 그렇게 미쳐있기에, 나에게 비에 관한 추억도 내 머릿속 어느 구석에 따로 저장되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감 같은 걸 처음 느꼈을 때, 말 그대로 첫사랑의 이별을 통보받아 버렸을 때인지, 아니면 학교가 일찍 마친 날이었는지, 내 기억속의 난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오르막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그러나 빗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내 귀에는 여전히 이어폰이 꽂혀 있었고, 내 가슴팍 주머니에 들어 있던 워크맨은 따뜻한 테이프를 조용히 돌리고 있었다. 그 속에 있던 테이프가 아마 이승환 3집 이었던 기억이 난다, 내껀 아니었지만. 그렇게 오르막길을 천천히 올라 가고 있었다. 그 땐 사실 확실하게 주루룩 내리는 비라고 단정지을 순 없는, 안개비 같은 것이었다. 내가 걷는 길 저 앞이 보이질 않았고, 내 몸이 따뜻했던지 내 입에선 조그만 입김이 나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난 중얼 중얼 거렸던 기억이 난다, 내가 왜, 내가 왜.. 라는. 아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탄식 같은 것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입에서 나오는 입김이 안개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는 생각. 그래서 점점 그 안개는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점점 더 진해지고 있다는 생각. 그렇게 난 짙어버린 안개속으로 들어가서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 아니,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 그러나, 그렇게 걸은 후 끝은 기억나지 않는다. 안개속으로 들어간 사이에 내 기억이 빠져버렸던 것일까. 난 단지 빗물에 젖은 내 짧은 머리와 젖어 버린 교복만이 남았다는 허무함만 알 수 있었다.
부산에서 내가 살던 곳은 아파트였다. 초등학교 때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아파트가 산 중턱 즈음에 지어져 있어서 차를 타고 오르막길을 가는데 갑자기 귀가 먹먹해지는 기분이 들 정도로 당시에는 높은 지대였다. 거의가 아파트 밖에 없어서 사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고. 그래서 였을까, 유난히 안개가 끼는 날이 많았다. 집은 9층이었는데, 아침에 일어 났을 때 가끔 밖으로 보이는 하얀 세상은 날 두렵게 만들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보이는데 어떻게 학교를 갈까, 하고. 정말 창밖은 바로 앞도 안보일 정도로 하얀 안개가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아파트 밖을 나섰을 땐 신기하게도 어느 정도는 보였던 기억이 난다. 집에선 분명히 아무것도 안보였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학교를 갔다. 집이 이렇게 높이 있다보니, 여름 때 장마라도 오면 산에서 내려오는 물들이 엄청났다. 내리막길로 내려 가는 물은 세찬 강물 같을 정도로. 그런데, 어느날 엄마와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밖을 쳐다보는데, 그 세찬 물줄기에 힘없어 보이는 길죽한 무엇인가가 떠내려 가는게 보였다. 그런데, 그것은 '뱀'이었다. 그 당시에 무서움은 정말 잊을 수 없다.
어렸을 적 부터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다 보니, 언제나 난 혼자였다. 학교를 마쳤는데 내리는 비를 보면, 난 걱정보다 사실, 부러움을 느낀 적이 많았다. 교문앞에 주차해 놓은 많은 부모들의 자동차들, 혹은 한손으론 우산을 들고 한손으론 접힌 우산을 들고 계신 부모님들. 사실, 난 그 속에 엄마 아빠가 있을 꺼란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기에 찾을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럴 때도 난 그냥 이어폰을 귀에 꼽고 터벅터벅 걸었다. 그래서 내 교복은 비에 자주 젖곤 했다. 그런데, 어렸을 적부터 그리 정상적인 아이는 아니었는지, 비가 오는데 절대로 뛰었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똑같이 터벅터벅터벅.
비가 올 때 모자를 쓰거나, 그냥 비를 맞고 갈 때면 사실 고개를 정면으로 들기가 힘들다. 눈속에 빗방울이 들어오는게 무서워 일수도 있지만, 난 언제나 바닥을 보곤 한다. 그렇지만, 사실 무엇을 봤는지 기억하긴 힘들다. 오늘도 점퍼의 모자를 뒤집어 쓰고 한시간 정도 걸었는데, 기억나는 풍경은 없다. 단지 얼마만에 혼자 걷는 비오는 거리인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이란 생각 정도. 그리, 나쁘지 않은 비오는 날이 지나가고 있다.
# by | 2006/12/15 16:38 | [소소한 일상] | 트랙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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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비의 추억
비의 추억 지금 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 그리 많이 내리진 않지만, 차가운 바람에 섞여 따갑게 느껴진다. 하지만, 따가운 빗방울이 몸에 부딪칠때마다 내 몸에 몸서리 쳤다. 무엇이 비가 나를 이렇게 만들어 버렸을까. 희뿌연한 하늘을 올려보며 담배연기를 뿜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비에 취한적이 있을까...." 사실, 비가 좋았던 적이 있었고, 비가 싫었던 적도 있었다. 늦여름 장마 속을 작은 우산 하나를 들고 다 맞으며 서......more
근데, 이제는 늙어서그런지 감기걱정이 앞서는군요-_-;;;
시밀랴 -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