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이자 일본 여행의 마지막 날 by James



지금은 도쿄 내 아카사카 근처에 있다. 지난 주 금요일에 여기로 와서는 오늘 오후 5시 비행기로 다시 인천으로 들어간다. 가져온 백팩은 너무 무겁고 시간은 애매해서 숙소에서 체크아웃 한 이후 스타벅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국어 자막이 있는 일본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도 보고 노트에 생각도 정리하다 문득 생각나서 블로그에 글을 남긴다.

이번 여행은 역시 느닷없었다. 갈까 말까 고민을 떠나기 3일 전까지 했고 나는 그 3일 전에 숙소와 비행기 모두 예약했다. 작년에도 분명 급하게 했는데도 그 때와 비교하면 총 비용이 20만원은 더 든 느낌이다. 그만큼 지금이 성수기라는 것이겠지. 나는 여름 휴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바깥에서 느끼는 더위를 나는 쉽게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여름엔 패스하려고 했더니 연차 중 일부는 쓰지 않는 경우 보상비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반 의무적으로 연차를 써야했다. 10월엔 내가 생각하는 진짜 휴가를 쓸 예정이라 그 전에 어떻게든 연차를 써야했고, 어딘가로 떠나긴 애매한 날짜라 그냥 또 일본으로 정했다.

더위때문에 여름 휴가를 싫어한다고 했는데 이곳은 폭염으로 난리였다. 매일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보니 햇빛을 받고 흘리는 땀은 참 오랜만이었다. 햇빛이 강해도 땀흘리며 걸어다니는 그 순간이 좋아서 참 많이 걸었던 것 같다. 그랬더니 피부가 금방 타버리더라. 원래 예민하기도 하지만 이번 폭염은 너무 심해서 이곳 뉴스에서도 자주 나오더라. 그래서 목 뒤와 팔이 꽤 따끔거렸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4일 째에는 무작정 쉬고 싶기에 작년에 오래 못 있어서 아쉬웠던 다이칸야마로 가서 커피 마시며 책을 읽었다. 그 시간이 너무 좋아서 일어나기 싫을 정도였다. 다이칸야마에서 쉬는 건 이번 내 여행 목표 중 하나였으니 나는 그 목표를 충실히 수행했다.

도쿄로 간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또 가냐는 말이었다. 나는 급하게 잡았다고 둘러댔지만 나는 도쿄가 나쁘지 않다. 일부 사람들은 휴가 떠나는 사람에게 방사능이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했다. 가끔은 말하지 않아도 되는 건 말하지 않았으면 할 때가 많다. 그게 미덕인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건 걱정과는 다르니까. 충분히 알고 있는 걸 또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쨌든 나는 또 도쿄로 왔다. 작년과 다른 것은 그래도 두 번째라고 주위로 눈이 돌아간다는 것.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지 않았다. 사람들의 말하는 소리, 차 소리, 도시가 뿜어내는 소리 등을 가만히 들었다. 나와는 평생 연관이 없을 사람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듣는 소리는 참 새로운 기분을 전해준다. 혼자이면서도 고독하지 않은 느낌. 인연이 없다는 것에서 오는 자유 같은 걸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매번 나는 해외 여행(그래봤자 몇 번 안된다)을 혼자 왔고 그리 불편한 점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불편하다기 보다 쓸쓸함이 좀 컸다. 그건 내가 이 곳을 두 번째 왔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혼자 왔을 땐 긴장하고 정신이 없어 외로움 같은 건 없었는데, 이번엔 여유가 있어 그런지 문득 외로운 적이 많았다. 그래서 매일 밤 긴 맥주 두 캔을 마시고 잠들었다. 그리고 저녁은 매번 근처 식당에서 규동을 사서는 <결혼 못하는 남자>를 보면서 먹었다. 궁상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는 그게 내 휴가답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화려한 걸 기대하고 온 것은 아니니까.


이번 여행은 많은 곳을 돌아다닌다거나 많은 걸 경험해보려는 목적은 없었다. 작년과 다른 것은 점심 정도는 소위 '맛집'이란 곳을 찾아 갔다는 점이다. 작년엔 매번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서 먹었는데 이번엔 발품이란 걸 팔아서(그 폭염 속에서) 직접 먹으러 갔다. 다행히 시간이 잘 맞아서 기다리는 일은 없었지만 나름 잘 먹었다. 사실 점심을 먹으며 사람들은 이런 걸 맛있다고 하는구나 싶었다. 한국에서도 맛집을 찾아다닌다거나 하지 않고, 막상 비싼 걸 먹어도 진짜 맛있다 라는 말이나 생각을 거의 하지 않기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TV나 드라마에서 '오이시-!' 하면서 먹는 그 사람들을 나는 따라할 수 없더라.



어제 밤 아버지는 한국에 언제 오냐며 다 정리하고 홀가분하게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카톡을 보내셨다. 실은 그 말 속에 아버지가 홀가분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있다는 걸 안다. 어찌 관계라는 게 쉽게 끊어지고 기억이 정리되겠는가.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조금 빨리 정리하고 있고 이젠 거의 아무렇지 않다. 오늘 비행기를 타기 전에 나는 더 많은 끈을 놓을 것이고 한국에서 이루어져야 할 정리도 준비할 것이다. 어쩌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도 그것이었지 않을까. 내가 혼자인 걸 깨닫는 것. 하지만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 그걸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화려하지 않아도 꾸준히 살아가는 게 내 삶이고 여행은 내 삶을 또 다른 연속이니까. 이제 슬슬 공냥이를 만나러 돌아가야겠다.


즐거웠습니다 정말.



매일 같은 시간을 같은 행동으로 채운다 by James



어찌 보면 삶은 똑같다. 나는 여전히 10분 간격으로 알람을 두 개 맞춰두고 잠이 든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동안 거의 같은 시간에 첫번째 알람이 울리고 10분 후에 또 알람이 울릴 것을 알고 잠이 든다. 수건을 챙겨들고 욕실로 가서 면도를 한다. 잠이 덜 깬 그 시간에 정성스레 면도를 하는 경건함 같은 건 없다. 머리를 감고 헹구지 않은 상태로 양치를 한다. 샤워를 하고 매일 같은 스킨 로션을 바른다. 아침 시간 중에서 하는 행동들 중에 다른 것이라곤 별 생각 없이 고르는 향수 종류 뿐이다. 그리고 같은 시간의 기차를 탄다.


이별을 했다. 이별을 했음에도 나는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10분의 알람 사이에 울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사라졌고, 일하는 중간에 스마트폰을 켰을 때 아무런 연락이 없는 정도랄까. 그래서인지 요즘 아이폰 배터리는 충전하지 않아도 꽤 오래 유지된다. 한 번의 이별을 시도했던 사이라 이번엔 조금 나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많이 울었고 나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차가울 줄 알았던 내 마음도 꼭 그렇지 만은 않았다. 예전엔 서로의 손을 깎지꼈다면 이젠 인사하는 듯한 악수로 대신했다. 떠나면서 그녀는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듯 다시 잘해볼 마음이 없는거지, 라고 물었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20대의 대부분을 했던 사람과 그리고 그 시간과 헤어진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다. 단순히 슬프다는 감정만으론 정의될 수 없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목 부분에 가득찼던 먹먹함, 내 몸의 슬픔은 눈두덩이 위로 몰리지만 흘러넘치진 않았던 그 마음, 그런 것들을 어떻게 쉬운 단어들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도 어쨌든 우린 헤어졌다. 마지막에 술을 못 먹는 그녀는 맥주를 시켰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맛이 없는 치즈스틱과 치킨텐더를 두 번 정도 씹고 먹지 않았다. 그 긴 맥주 두 잔이 다 비었을 때 그녀와 나는 자리를 떴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그 빈 잔 사진을 찍었다.



아무렇지 않을 것이라, 이젠 더 이상 아픔도 슬픔도 없을 것이란 내 예상은 보란듯이 빗나갔다. 그게 시간의 무게때문이겠지만 나는 그 무거움에 조금 버거워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 같은 시간이 출근을 하고 비슷한 일을 하고 웃어야 할 때 웃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멍하게 있는 내가 느껴져 깜짝 놀라곤 한다. 그 무게감이 가벼워지는 건 언제쯤 될런지. 나는 당분간 술을 마시지 않기로 했다. 사회생활하면서 한 잔도 안 먹을 순 없지만 자제하려고 노력한다. 이제 나를 혼자 챙겨야 한다는 생각, 잠시 편하게 놔뒀던 나 자신을 다잡아야 할 순간이 다가온 느낌이다. 단순히 정신차리는 일이라 할 수 있겠지만 본래의 나를 찾으려는 발버둥이기도 하다.




역시나 세상에 좋은 이별은 없더라.





요즘은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신다 by James




오늘은 술에 대해서 얘길 하고자 한다. 실은 술 얘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안주, 가 아니라 어떤 사람과 마시느냐이다. 그러다보니 그 속에서 일어나는 관계에 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고. 어찌되었든 나는 술을 많이 마시고 있다. 횟수로는 적을지라도 한 번 마실 때 꽤 많이 마신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겠지만 많이 마실 때는 이야기가 잘 통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일 때다. 그리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 특히 더 자주 마시러 나가는 듯하다. 내가 먼저 술 마시자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보통 그렇게 말이 나올 때는 내 스트레스의 정도가 가장 높을 때이다.

그렇다고 토할 정도로 마시진 않는다. 일정 이상 마시다보면 더 이상 먹으면 안되겠단 생각이 들고 보통은 남들이 먼저 그만마시자고 이야길 한다. 술을 오래 마시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대부분은 나는 정신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부분에 있어서 나는 정신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정신 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마음, 집에 가야 한다는 열의 등이 술을 오래 마실 수 있는 밑바탕이라고 생각한다.

술을 많이 그리고 오래 마시다보니 그걸 싫어하는 사람과는 잘 안 마시게 된다. 억지로 마시라고 하는 경우는 절대 없지만 왠지 서운해지는 건 있다. 나혼자 취하고 기분 좋아진다는 그 느낌이 싫다. 그럴 땐 차라리 그냥 커피나 마셔도 나는 상관없는데,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둘이서 마실 땐 또 이런 생각을 안 한다. 너는 안 마셔도 돼, 그냥 나혼자 마실께 이야기나 하자 라는 뉘앙스를 풍기곤 한다. 이상하게 둘이 마실 땐 이런게 더 기분이 좋을 때도 있다. 당연히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이렇게 마시려고 노력하는 경우는 없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술을 마시곤 하는데 일이 많아지고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져갈 때 나는 취해서 돌아와선 빨리 잠드는 걸 즐기곤 했다. 이러한 태도가 위험한 것이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 당시엔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 않고는 내 마음이 풀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차라리 술 마시며 떠들고 취해선 잠들어 버리는 게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리 좋지 않은 방식이었다(요즘은 그런 마음을 꽤 많이 줄였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취해도 꼭 몇 자의 말을 함축해서 인스타 등에 올리고 잠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고 문 앞에 들어설 때 까지는 모든 기억이 생생하지만 집 안에 들어온 순간부터는 기억이 뜨문뜨문하다는 것.

술을 마시는 대상은 대부분이 회사 사람이다. 같은 사무실에 있는 선배인 경우도 있고 친하게 지내는 동기일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들과는 보통 금요일에 술을 마시는데, 나는 사실 내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남의 사정이나 이야기를 듣고 내 생각이나 조언을 해주는 수준에서 그칠 뿐, 내가 가진 스트레스나 불만을 잘 표하지 않는다. 내가 기분이 좋지 않아 만나자고 해놓고도 남들은 나를 만나면 먼저 자신의 불만을 토로한다. 내가 이야기를 잘 들어주게 생겨서인지, 혹은 이것도 일종의 경쟁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자리에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즐기다보면 내 기분이 나아진 걸 느낀다. 이는 내가 그만큼 공감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해 굶주려 있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걸 원했던 걸 아닐까. 그래서 비슷한 생각으로 내가 취해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공냥이와 함께 누군가가 있었음 좋겠단 생각을 꽤 자주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결혼 생각을 하는 건 아니고.


나와 공감을 해주고 마음을 통하는 사람에 대해서 요즘은 많이 생각한다. SNS든 실제든 자신이 이쁜 척 하거나 귀여운 척 혹은 재고있는(소위 밀당과 비슷한) 여성을 볼 때가 많다. 하지만 요즘은 그 사람 외모가 어떻든 전혀 관심이 생기질 않는다. 특히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정부터 떨어져 버린다. 조심하는 것과 숨기는 건 확실히 다른데, 최근에 이런 저런 자리에서 그런 사람들을 꽤 자주 봐서 욱했던 적이 몇 있었다. 뭐가 그리 복잡한지 나는 모르겠다. 요즘은 이쁜 사람들보다 적극적이고 이야기가 잘 맞는 사람이 더 좋다.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그 감정의 부드러움이 좋아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공감하고 싶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사람에게 끌리는 건 뽀샵처리한 사진이나 입술을 동그랗게 내민 셀카가 아닌데,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어필할 수 있는 바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즉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다운 사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본다. 소속으로 인한 '무리'나 '패거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사람으로서 끌리는 그런 대상들 말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런 사람들이 많다. 이젠 잠시만 이야기를 해보아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이런 것에 민감했지만 요즘은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을 대하다보니 조금 더 자신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단은 내리질 않는다. 그 판단이 진짜 이 사람을 모르게 막을 수도 있으니까. 대신에 그렇게 좋은 사람들과는 꼭 술을 마시고 싶어진다. 실은 술취한 상대방의 이야기보다는 술취해야만 조금씩 드러나는 내 이야기 때문이지만 말이다.


다음 주 금요일엔 1박 2일 워크샵이 예정되어 있다. 많은 술을 마시겠지만 나는 조금 자제하려고 한다. 누구나 그렇듯 사람이 많을 때 모두가 마음에 들수는 없는 거니까. 매주 이렇게 한잔씩 하다보니 벌써 6월도 마지막이 다가온다. 그리고 집에서 술 먹기 좋은 장마가 찾아올 예정이다.





역시 살아있다 by James



뭐 언제나 그렇듯이 잘 살아있다. 글은 가끔 쓰고 있다. 무선 키보드란 걸 구입해서 의무적으로 메모장이나 에버노트 등에 글을 남겼는데 의무적인 글이 언제나 그렇듯이 쓰나마나한 글이었다. 내일은 일찍 출근해야 하고 별로 관심이 없는 월드컵 경기가 새벽부터 있는 날임에도 이렇게 글을 남기는 건 말 그대로 역시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단지 그것 뿐이다.

어떤 일이나 사건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는 일은 많았다. 그것을 글로 남기려는 욕망은 컸지만 언제나 인스타그램에서 허용하는 그 공간에만 짧게 토할 뿐이었다. 특히 술이 취한 날은 하고픈 말이 많았는데, 많이 자제한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인스타에 그 순간의 말을 욕망과 버무려서 남기곤 했다. 다음 날엔 술에 깨려고 헛개수나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글을 지울까 말까 고민도 많이 했고.

회사에 다닌 다는 것, 그 회사에 기차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출근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규칙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매일 같은 시간 거의 같은 자리를 예매하고 나는 거의 같은 시간에 회사 근처 역에서 내린다. 회사에 도착해서 나는 거의 같은 순서대로 같은 톤으로 인사를 남긴다. 내가 내뱉는 안녕하십니까 속에는 아직도 저 아직 신입입니다, 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그게 옳고 그게 어울리는 생활을 하고 있다.

술을 참 많이 마시고 있다. 일주일에 세 네번씩 마시는 헤비드링커는 아니지만, 금요일이나 토요일엔 거의 술 약속이 잡혀 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긴 하지만 나는 꼭 취한다. 아니 취하려고 일부러 많이 마시는 듯하다.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고 왜 이제 왔냐고 냥냥거리는 공냥이의 모습까지만 나는 보통 기억한다. 내가 어떻게 옷을 벗고 어떻게 이불을 펴서 잠들었는지는 보통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잠드는게 나는 요즘도 좋다. 무언가를 잊고 잠들 수 있는 것, 요즘은 그런 순간을 좋아한다. 이 말은 그만큼 내가 현실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시간이 많다는 거겠지.


이렇게 규칙적이면서도 술에 취한 날이 존재하는 일주일을 보내면서도 일요일 아침엔 꼭 조조영화를 보려고 한다. 그래도 가까운 압구정 CGV에 허겁지겁 들어가서 영화를 보곤 한다. 요즘은 조조 영화가 10시가 아니라 8시 즈음인데 그 시간을 맞추려다 보니 매번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고민한다. 내가 이렇게 잠을 오래 못자고 그 영화를 봐야하는 걸까, 라는 생각을 4분 정도 하는 것 같다. 보통은 꾸역꾸역 나가는데, 그러다보니 매번 영화관엔 아슬아슬하게 도착한다. 한 가지 다행인 건 보통 이렇게 보는 영화는 대부분 괜찮다는 것. 그렇게 내 삶의 일부분을 장식하는 느낌으로 일주일을 보낸다.


여전히 나는 말이 많은 영화와 관계를 다루는 영화가 좋다. 말과 관계는 섞인다는 점에서 둘 다 유의미하다. 섞여버린 관계가 해결되는 것보다 나는 그 관계가 엮여가는 그 과정이 좋다. 꼭 관계를 풀 필요는 없지 않나. 묶이면 묶인 대로 나가면 되는거지, 관계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는 시각은 여전히 거북스럽다. 꼭 관계가 없을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소위 밀당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해진다. 좋으면 좋다고 말하는 거고 싫으면 싫다고 표현하는 건데 그걸 숨기는 그 관계가 여전히 싫다. 왜 그렇게 시간을 버려가면서 관계를 만들어 가려는지 궁금하다. 아니, 관계를 만들고 싶긴 한건지. 밀당과 썸은 약간 다르긴 한데, 뭐 그건 나중에 또 쓸 일이 있겠지.



여기까지 쓰고 보니 블로그라는 공간은 참 독특한 느낌이다. 메모장에 쓰나 여기에 쓰나 내 이야기를 푸는 건 마찬가지인데, 메모장에 썼다면 이렇게 전혀 쓰지 못했을테다. 이는 , 이젠 거의 찾아오는 이 없는 이곳을 누군가는 그래도 보지 않을까 라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메모장에 글을 남기던 것은 단지 기록의 수준이었다면 여기에 약간의 공감을 얻고자 하는 글을 쓰는 게 나에겐 더 맞기 때문인 듯하다. 음, 공감하지 않아도 크게 상관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이렇게 길게 글을 쓴 것에 나는 만족한다. 약간 즐겁기까지 하네. 이젠 슬슬 자야지.




연도의 변화 by James


  오늘 휴가를 냈다. 그리고 병원에서 링거를 맞았다. 휴가와 링거를 맞바꾼 느낌이었다. 내가 일곱 살 때 두 달 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땐 매일 왼팔에 링거를 꽂아야 했고, 혈관을 찾지 못해 발에도 꽂은 적이 많았다. 그 이후로 맹장수술을 했을 때 빼곤 링거를 맞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내가 자처해서 맞았다.

  몸이 내 몸이 아니었다. 어제 새벽에 출근할 때부터 몸이 굉장히 추웠고(전기 히터 앞에 서 있어도 추웠다) 살갗이 아팠다. 병원에선 이 증상이 소위 우리가 말하는 몸살이라고 했다. 몸을 과하게 사용한 활동이 없었음에도 몸살이 온다는 걸 이제서야 알았다. 몸 어디 부윈가에서 염증이 생기면 이 염증은 혈액 속으로 들어가며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몸살이 오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인 즉슨 내 몸이 지금 온전한 상태가 아니란 점이겠지.


  해가 바뀔 때면 나는 언제나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시간이 12시에서 00시 00분 01초로 바뀌는게 무슨 큰 의미냐고. 달력을 새로 바꾸는게 나에게 무슨 큰 변화인지. 나름 의미를 찾았던 것은 새 다이어리를 구입할 때 느끼는 신선함 혹은 변화를 위한 기대 등인데, 이젠 그것도 없다(플레인 노트를 사서 연도 구분없이 계속 쓰고 있는 요즘이다). 어쨌든 그런 무의미함을 언제나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왜냐하면 내 마지막 이십 대였으니까.

  단지 해가 바뀌는 것처럼 이십대와 삼십대가 숫자의 차이일 뿐이지 뭐가 대수롭냐, 라고 묻는다며 나는 할 말이 없다. 이는 단지 내 주관적인 기준이 될 뿐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 열아홉이 기억나지 않고 나의 스무살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를 빨리 들어가서 실제 친구들과 호적 상으론 한 살이 차이가 나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나이 감각이 없었다. 친구들이 스무살이 되었을 때도 나는 열 아홉이었고 내가 스무살인지 열아홉살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중요한 건 같이 술을 마시러 갔을 때 민증을 확인하는 술집을 가느냐 그렇지 않은 술집을 가느냐 하는 것 뿐이었다. 그만큼 유의미한 일은 없었고 나는 입시 라는 턱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기억해도 그 때 있었던 일과 내 생각과 경험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취직을 하고 안정적인 삶에 정착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스물 아홉이 되어 있었다. 스물 아홉, 이십대 등의 단어가 어느 순간에 크게 다가왔다. 지난 연말 나는 매 주말 약속이 있었다. 남들처럼 하루에 여러 약속이 겹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혼자 지내는 내 시간의 틈은 없었다. 그런데 그게 싫진 않았다. 어차피 관계란 계속 이어져야 하는 것이고 나는 아직 내 주위에서 껄끄러운 관계는 없다. 보기 싫은데 봐야 하는 관계도 없다. 그래서 미리 약속을 잡고(대부분 술을 마셨다) 이야기를 나누는게 싫진 않았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엔 마지막 이십대가 떠나질 않았다.


  어떤 관계를 정리하려고 했다. 나는 오랫동안 지쳤고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그 사람도 지쳤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받은 상처들을 나는 치유하려 하지 않았고 피가 보이는 그대로 두려고 했다. 나만 참으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이어왔던 관계이고 이해하려고 했던 관계였지만 실제론 전혀 그렇지 못했단 걸 이제서야 알았다. 치유되지 않고 곪아터진 상처가 낯설게 느껴졌고 나는 그 상처를 나만 갖고 있다 생각했고 나는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긴 관계를 그만두자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생각이 많은 연말이었다. 바쁜 생활을 보냈지만 심적으론 힘들었다. 나는 웃을 수 없었고 기나 긴 출퇴근 시간 속에서 매번 깊은 잠에 빠지든지 우울한 기분에 빠졌다. 2013년이 가기 전에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아 보였다. 사람들을 만나도 깊은 마음 속으로 기뻐하고 즐기질 못했다. 술에 취한 날이 많았고 집에 와서 술취한 채 잠들어 버리는 것을 즐겼다. 그렇게 하면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쉽게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언제나 그렇듯 다음 날엔 멍하니 침대에 걸터앉아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 하는 생각만 했다. 그러다 2013년의 끝이 다가왔고 내 20대의 끝도 다가왔다. 이젠 부인할 수 없는 순간이 온 것이다.


  20대의 마지막이 심적으로 아팠고 힘들었다면 30대 초는 몸이 아팠다. 잘 아프지 않는 몸이지만 한 번 아프면 심하게 고통스러운데, 느닷없이 감기가 찾아왔다. 편도가 커서 그런지 몰라도 감기는 매번 목감기가 왔다. 하지만 이번엔 평소와 다르게 코감기가 왔다. 콧물은 끊임이 없었고 하루 종일 고객을 대하고 말해야 하는 직업상 정말 고통스러웠다. 중간 중간에 수십 번씩 휴게실에 들어가 코를 풀었다. 병원을 다녀와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 지난 주엔 피가 나왔다. 그래서 이비인후과를 갔더니 축농증이 왔다고 했다. 코가 막히면 머리가 아프고 멍한데, 실제로 혼이 빠진 것처럼 멍하니 의사의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어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아침부터 몸이 안 좋았고 내일 나올 수 있을까 걱정부터 했다. 사무실에 앉아 내 일만 처리하는 일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참을 수 있겠는데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이다 보니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오후 늦게 팀장님께 휴가 얘길 꺼내고 승인을 올렸다. 중요한 휴가 하나를 벌써 써버린 것이다. 하지만 참을 수 없었다. 일을 하면서도 수십 번 도망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의 얘기를 들으니 내 속에 그렇게 나쁜 게 많이 돌아다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쌓은 상처와 염증과 고름이 내 몸을 빙글빙글 돌고 있다니. 그리고 내 몸을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입사 1년 만에 이렇게 아픔을  맛봐야 하다니. 서럽단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아픔을 겪고보니 이제는 시간이 지나서 내 스물아홉과 서른을 돌이켜 볼 때 생각할 수 있는게 생겼단 생각이 들더라. 비록 열아홉과 스물을 기억할 수 없지만 이 때는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게 위안이 될까.

  병원을 나왔더니 어머니께 카톡이 와 있었다. 점심 먹었나 잘 지내지, 라는 짧은 얘기였는데 혼자 멍했다. 엄마라서 멀리 있어도 아는걸까 혹은 내가 아파서 최근에 연락을 안 해서였을까. 평소 같았으면 일이 있어도 네 별 일 없이 잘 지내요, 라고 답했을테지만 오늘은 사실대로 얘기했다. 아파서 휴가 썼다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공냥이가 바닥에 토를 해놨더라. 평소에 전혀 이런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이러니 얘도 아프구나 싶었다. 그리고 조금 울었던 기억이 난다.


  긴 글을 쓰고 싶단 생각은 언제나 했다. 하루에 노트북을 켤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블로깅도 힘들었고 아이폰 메모장에 쓰려니 뭔가 허전했다. 다이어리에 글을 쓰다가도 그 글씨체가 못나보여 더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인스타그램에 의미없는 사진과 주저리 주저리 글을 올리긴 했지만 매번 술을 마시고 글을 쓰다보니 다음 날에 곧잘 지우곤 했다. 내 삶을 기록함과 동시에 감정을 드러내고 거기에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뭉쳤는데 다음 날 보니 민망함만 남은 적이 많기 때문이다. 아깝단 생각도 들었지만 어쩌겠나, SNS도 어쩜 기록이고 나를 표출하는 곳인데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니.

  다시 또 언제 긴 글을 쓸 지 모르겠지만 글을 씀으로 인해 정리되는 위안은 다른 걸론 찾을 수 없다. 남들에게 터놓는 이야기는 가끔 매번 다른 사람에게 여러 번 반복해서 얘기하는 불편함이 있기에 글에서 받을 수 있는 효과가 덜할 때가 많다. 어쨌든 마음은 조금 진정되고 있다. 내일은 회사 전체 행사가 있어 아침부터 참석해야 하는데, 몸이 조금 더 회복되길 바랄 뿐. 우연히라도 이 글 읽는 모든 이들이 건강하시길. 그리고 늦었지만 모두에게 복된 새해가 되었길 바라며.






너무나 작고 많은 일들이 by James


  글을 쓰지 않은 그동안 너무나 작으면서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것을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거니와 이젠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가장 큰 일은 아마 일본을 처음으로 다녀온 것일테다. 언제나 그렇듯 급하게 날을 잡고 허겁지겁 다녀왔다. 일은 꾸준하고 회사 안에서 조금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보려고 몸을 풀고 있다. 그 과정과 결과는 모두에게 비밀로 남겨두고.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다녀와서 느낀 건 좋은 것들을 향유하자는 것이다. 잡스러움을 피하고 좋은 걸 경험하고 좋은 걸 쓰자는 말인데, 이걸 쉽게 풀이하기가 힘들다. 우선 좋은 음악을 많이 듣자는 점은 충분히 실행중이다. 모 레코드점에 격주로 가서 이것 저것 앨범을 담다보면 금방 10만원이 넘어간다. 그래도 집에 와서 하나하나 듣는 그 순간에 나는 묘한 희열을 느낀다. 제대로 살아가고 있구나, 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면 과장일까.

  싼 맛에 많은 것들을 사왔다. 특히 패션과 관련된 것들이 많은데 그러다보니 이제는 일정 수준(질이 아니라 양)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아주 이쁜 것이 아니면 아무리 싸도 지불할 의향이 없어졌다. 차라리 질 좋은 제품을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에. 싼 맛에 안 사도 이미 웬만큼 채워졌다. 그래도 여러 브랜드의 옥스포드 셔츠와 데님은 꾸준히 사모으고 있다. 일주일 중 이틀 밖에 입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요즘 가장 좋은 순간은 퇴근 후 늦은 밤에 지하철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오는 20분이다. 싸늘함때문에 겉에 입은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음악을 들으며 걸어오는 그 순간이 꽤 좋다. 집에 어서 가서 쉬고 싶지만 그 20분을 포기할 수는 없을 정도다. 오늘은 내가 이 순간을 위해서 발걸음을 늦추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번 주엔 회사 내 시험이 있어 공부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늘함과 조용함 사이에서 퍼지는 음악이 좋아 걱정 따윈 제쳐두었을 정도로. 왠지 이 순간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란 것도 어렴풋이 알겠다. 날은 추워지고 나는 어서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 공냥이를 안고 싶어지겠지. 그땐 또 그때 만의 즐거움과 내 시간이 생기지 않을까.


  

짧은 건 by James


짧은 건 글이 아니라 내 생각이고, 아니 생각을 글로 표현 못하는 내 짧은 의지와 능력이겠지. 술 마실 때 술 값 걱정 안 하고 듣고 싶은 음악이 있을 때 큰 걱정없이 CD를 구입하며 시원한 맥주가 마시고 싶을 때 퇴근 길에 편의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게 직장인의 삶이라면 나는 직장인 답게 살고 있다.

오늘은, 오해에서 일어난 일이었지만, 고객을 위해 내가 버려질 수도 있겠구나 라는 걸 느꼈다. 동시에 내가 아직 그들에게 그만큼의 믿음을 주지 못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고. 일이 터지고 나는 몰래 화장실로 가서는 거울을 멍하게 쳐다봤다. 쓸쓸함과 씁쓸함 사이에서 갈팡 질팡하다가 다시 얼굴을 풀고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선 사태 파악에 나섰고 내 잘못이 아님을 인지했다.

출근 전에 매번 음악을 듣고 문 앞에서 이어폰을 뺀다. 이 순간에 난 이상하게 가면을 쓰는 기분이 든다. 얼굴을 풀고 목소리의 볼륨을 높여 신입다운 모습으로 변신한다. 그래서인지 매번 여러 곡을 듣는 중간에 사무실에 도착하면 꼭 마지막 곡은 끝까지 듣고 들어간다. 그때부터 나는 또 다른 사람이다.

나는 술을 잘 마신다기보다 끝까지 정신줄을 놓지 않고 버틴다는 말이 어울리는데, 그러다보니 취하고 싶은 날도 언제나 아쉽다. 매번 같이 먹는 사람들을 챙기거나 헤어질 수밖에 없기에 술 자리는 언제나 아쉽다. 그리고 나는 또 취할 날을 기다리고. 평생 요즘처럼 술이 땡긴 적이 있었나 싶다.

10월 7일 부터 5일간 휴가를 잡아놓았고 그 즈음해서 일본으로 갈 생각이다. 아직 아무런 계획도 없고 예약도 하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 뿐이다. 일본에 대한 흉흉한 이야기들, 애 안 낳을 거냐는 서늘한 충고들. 그런데 올해 일본 가는 건 내 목표였기에 어찌해야하나 고민중이다. 어찌보면 정말 중요한 기간인데 지금은 힘이 쭉 빠져있다. 직장인으로서 맞는 첫 휴가인데.


어찌되었든 삶은 계속 이어진다, 라는 생각만 요즘 자주 떠오른다. 카톡 프로필에 올려진 글들을 보면 다들 잘 살고 있구나 싶다 혹은 잘 살고 있다고 보이고 싶구나 싶고. 나는 어중간하게 나를 표현하는 중이고.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거야 라는 문구는 취업의 벽을 두드릴 때 적어둔 건데 아직 못 바꾸는 걸 보니 상황이 그렇게 좋아지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언제쯤 바꿀 수 있을까,바꾼다면 뭘로 바뀔까 궁금한 밤이다.


처음에는 by James


처음에는 로열티(이것 만큼은 로얄티라고 안 하더라)라는 이름으로 큰 그림을 그리곤 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일하면서 느끼는 건 지금 내 앞에 있는 일이나 잘 처리하자는 마음. 일에 적응되니 느껴지고 봐야 하는 '관계'라는 이름. 관계는 눈치와 다름 아님을 느끼는 직장인 생활. 낄 때 끼는 것 보다 중요한 게 빠질 때 빠지는 것이란 걸 깨닫는 요즘. 퇴근 후 지하철을 타자마자 잠들면서도 내리기 바로 전에 눈이 떠지는 감각 혹은 적응. 언제나 그랬지, 이럴 때 번뜩이는 건 새로움 이란 걸.


비가 세차게 내려서 by James


  일요일을 온전히 집에서 보내고 있다. 선물받은 모카포트로 커피도 내려 마시고 어제 사온 책도 읽고 낮잠도 잤다가 음악도 들으며.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지만 이런 평범한 일상이 그리운 직장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글을 썼다가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잠궈버린 것들도 몇 개 있다. 가만히 책을 읽다가 이유를 알 수 없는 끌림에 블로그에 몇 자 적는다. 그리고 그동안 전혀 올리지 못한 인스타그램 사진들을 같이 올려 본다.


  가끔 주문하던 사이트에서 팔고 있길래 장바구니에 담아 봤다. 검색해보니 명품 어쩌고 하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런 건 모르겠고 튜브가 마음에 든다. 한 번에 세 종류를 까놓고 쓸 정도로 열정적이진 못해서 아직 하나만 경험하는 중.


  늦게 세일할 때 구입해서 딱 한 번 입었다. 아래 사진이 바로 그 날. 여름에 성큼 다가온 날이어서, 말 그대로 스웻셔츠에 스웻이..



  유행이라면 유행일 수 있지만, 요즘은 무지 포켓티셔츠가 좋다. 땀이 많다보니 그것 하나만 입기엔 힘들지만, 그래도 좋다. 살이 쪄서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보기 싫지만, 그래도 좋은 건 좋은거니까. 벨바쉰은 이제 회색만 사면 셋트 완성. 가장 마음에 드는 포켓티다.


  컨버스는 내 다신 사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지만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이걸 사고 보니 놓쳐버린 블랙 제품도 사고 싶었는데 찾아도 찾아도 나오질 않는다(US 11 찾습니다). 근데 아직 신어보질 못했네.


  이건 오늘 오후. 밥 먹으며 무도보는데 막길래 찍었다.


  나와서 양말 벗었다.


  동글동글(몸도)동글동글 같은 날을 보내는 중.


  여름 들어서면서 노타이에 반팔셔츠(이 얼마나 고리타분한 단어인가) 복장 지침이 내려왔는데, 최근에는 아예 셔츠가 개인별로 배급되었다. 얇게 만든다고 폴리를 엄청 나게 쏟아부은 셔츠인데 고작 두 개 줘놓고 매일 이것만 입으라고 하니 내가 참을 수가 있나. 그래서 디자인도 그렇고 도저히 입고 출근하기엔 부담스러워서 셔츠와 정장바지를 회사에 가져다 놓고 매일 출근해서 갈아입기로 했다. 첫 날에 반바지 입고 갔는데, 눈치가 조금 보여서 이젠 면바지나 데님을 입고 다닌다. 여직원들은 모두 유니폼 착용이라 365일 옷을 갈아 입는데 남직원은 그냥 정장이니까 갈아입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팀장님이 눈치를 주는 듯하다. 이런 게 직장생활이다.


  밤 11시 30분 막차를 탔던 날. 집에 오니 한 시였다.


  메탈리카와 콜라보 한 게 있단 걸 어제야 알았다. 솔직히 이쁜 건 아닌데 기념으로 구입하고 싶었다. 특히 제임스 헷필드 스케잇하이는 더 갖고 싶다.


  주말에만 가능한 복장.



  뒤를 돌아봤는데 이러고 있어서 한참을 쳐다봤다. 뭔가 갈 데까지 다 간 것 같기도 하고. 저 소파(?)는 야심차게 주문했는데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소파에 있는 스크래쳐는 거의 쓰질 않는 듯.



  회식 때 시켜놓은 맥주를 뜯지 않은 게 있었는데, 내가 혼자 산다며 쥐어 주셨다.



  2박 3일 연수가 있어서 이렇게 입고 갔더니 황토방 패션이라고 했다. 어쩐지 맥반석 계란이 땡기더라며 인스타그램에 썼던 기억이 난다.


  반바지는 YMC에서 싸게 산 건데 나름 잘 입고 있다. 단추가 너무 힘없게 달려 있어 벌써 두 번째 다시 달았다. 


  나의 첫 헬맷백. 블랭코브 제품인데 너무나 마음에 든다. 올리브 컬러의 진짜 헬맷백도 좋겠지만, 이것도 이것대로 만족한다. 직접 들고 다니닌 더 좋아서 에이프런 백도 사고 싶고 백팩도 사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 하지만 일본가서 포터 제품으로 가방을 구입할 예정이라 고민 중(모노클 콜라보 제품 아직도 살 수 있으련지).


  묵묵히 책상을 잘 지키고 있다.


  몰스킨은 이제 굿바이 이젠 바이바이바이. 라미 만년필을 쓰는데 비쳐서 더 이상 쓰질 못하겠더라.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상업성에 이제 조금씩 거부감이 든다.



  웹상에서 내 흔적을 남기는 건 인스타그램 뿐이지 않나 싶다. 그것도 꾸준히 남기질 못하고 있고. 생각은 많으나 몸이 지치는 게 우선이고, 그러다보면 나는 주말만 기다리게 된다. 일은 바쁜데 조금씩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고. 관계가 편해지니까, 나는 그대로라 생각하는데 상대방은 그렇지 않게 느껴서 하는 말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그럴 때 마다 '자중'이란 말을 떠올리지만 내가 나갈 방향은 침묵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일전에, 일을 하면서 내가 살아가는 내 삶에서 내가 없었는데 이제는 나를 찾을 방법조차도 모르겠다 라는 취지의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주말이 되어서야 조금씩 내가 하고 싶은 것도 하고 못한 것도 하려고 노력하고(해외 쇼핑 사이트 방문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모자란 느낌이 크다. 자신이 소멸되고 있음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지하철에 앉는 순간 잠이 드는 몸을 버틸 수 없다. 정신을 여전히 몸이 지배하고 있으니. 가끔은 어쩔수 없는 건가, 라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는데 그 때가 나는 제일 두렵다.




짐이냐 가방이냐 by James


어렸을 적부터 나는 짐을 많이 들고 다녔고 그래서 가방도 클 수밖에 없었다(큰 등판 때문에 작은 가방은 어울리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고). 집 밖에 나갈 때면 그 날 다 읽을 수 있든 없든 책과 잡지를 몇 권씩 넣어 다녔다. 큰 필통도 빠질 수 없었고.

학생일 때보단 읽어야 할 책이 적기도 하고 내 의지도 많이 사라진터라 가방은 점점 백팩에서 토트백으로 바꿔들기 시작했다. 요즘이야 남자들도 많이 들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캔버스로 만들어진 토트백을 들고 다니면 어울리지 않는다며 타박을 듣기도 했다. 물론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도 많이 들었고.

누군가에게 가방은 여전히 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바깥에 나갈 때 없어선 안 될 옷의 일부처럼 존재감을 갖고 있다(그래서 가방을 꾸준히 사는건가). 한 주 동안 일에 약속에 내 시간을 제대로 가진 적이 없는 것 같아 아침부터 씻고 나올 준비를 했다. 당연히 짐도 챙겼고. 여름이면 더 애용하는 필슨 토트백에 잡지 세 권 책 한 권 다이어리 필통 아이폰충전기 모자 안경케이스 등을 집어넣고 길을 나섰다.

가방을 좋아해서인지 소심해서인지 몰라도 카페든 지하철이든 바닥에 가방을 놓는 행위는 나에게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가방 아래가 튼튼하게 가죽처리가 되어 있든 그렇지 않든 더러워보이는 어딘가에 놓아 두는게 영 꺼림직하기 때문. 그래서 카페에 가면 꼭 의자에 놓아둔데, 가끔은 상전을 모시는 건 아닌가 하는 민망함도 든다.

오늘 B magazine의 Porter 편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봤다. 나는 가방 자체가 좋은 건지 그 기능이나 디자인이 좋은 건지. 이것도 소모품일 뿐인데 너무 큰 의미를 두는 건 아닌지. 한 가지 확실한 건 차를 사더라도 나는 가방을 꼭 가지고 다닐것 같다는 점. 그 허전함을 채울 수 있는 건 지금 현재로선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그리고 포터는 일본에서 사면 더 싼지, 가리모쿠 의자를 좀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도 궁금했다(일본 여행과 의자 구입은 올해 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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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장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