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의 변화 by James


  오늘 휴가를 냈다. 그리고 병원에서 링거를 맞았다. 휴가와 링거를 맞바꾼 느낌이었다. 내가 일곱 살 때 두 달 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땐 매일 왼팔에 링거를 꽂아야 했고, 혈관을 찾지 못해 발에도 꽂은 적이 많았다. 그 이후로 맹장수술을 했을 때 빼곤 링거를 맞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내가 자처해서 맞았다.

  몸이 내 몸이 아니었다. 어제 새벽에 출근할 때부터 몸이 굉장히 추웠고(전기 히터 앞에 서 있어도 추웠다) 살갗이 아팠다. 병원에선 이 증상이 소위 우리가 말하는 몸살이라고 했다. 몸을 과하게 사용한 활동이 없었음에도 몸살이 온다는 걸 이제서야 알았다. 몸 어디 부윈가에서 염증이 생기면 이 염증은 혈액 속으로 들어가며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몸살이 오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인 즉슨 내 몸이 지금 온전한 상태가 아니란 점이겠지.


  해가 바뀔 때면 나는 언제나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시간이 12시에서 00시 00분 01초로 바뀌는게 무슨 큰 의미냐고. 달력을 새로 바꾸는게 나에게 무슨 큰 변화인지. 나름 의미를 찾았던 것은 새 다이어리를 구입할 때 느끼는 신선함 혹은 변화를 위한 기대 등인데, 이젠 그것도 없다(플레인 노트를 사서 연도 구분없이 계속 쓰고 있는 요즘이다). 어쨌든 그런 무의미함을 언제나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왜냐하면 내 마지막 이십 대였으니까.

  단지 해가 바뀌는 것처럼 이십대와 삼십대가 숫자의 차이일 뿐이지 뭐가 대수롭냐, 라고 묻는다며 나는 할 말이 없다. 이는 단지 내 주관적인 기준이 될 뿐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 열아홉이 기억나지 않고 나의 스무살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를 빨리 들어가서 실제 친구들과 호적 상으론 한 살이 차이가 나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나이 감각이 없었다. 친구들이 스무살이 되었을 때도 나는 열 아홉이었고 내가 스무살인지 열아홉살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중요한 건 같이 술을 마시러 갔을 때 민증을 확인하는 술집을 가느냐 그렇지 않은 술집을 가느냐 하는 것 뿐이었다. 그만큼 유의미한 일은 없었고 나는 입시 라는 턱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기억해도 그 때 있었던 일과 내 생각과 경험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취직을 하고 안정적인 삶에 정착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스물 아홉이 되어 있었다. 스물 아홉, 이십대 등의 단어가 어느 순간에 크게 다가왔다. 지난 연말 나는 매 주말 약속이 있었다. 남들처럼 하루에 여러 약속이 겹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혼자 지내는 내 시간의 틈은 없었다. 그런데 그게 싫진 않았다. 어차피 관계란 계속 이어져야 하는 것이고 나는 아직 내 주위에서 껄끄러운 관계는 없다. 보기 싫은데 봐야 하는 관계도 없다. 그래서 미리 약속을 잡고(대부분 술을 마셨다) 이야기를 나누는게 싫진 않았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엔 마지막 이십대가 떠나질 않았다.


  어떤 관계를 정리하려고 했다. 나는 오랫동안 지쳤고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그 사람도 지쳤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받은 상처들을 나는 치유하려 하지 않았고 피가 보이는 그대로 두려고 했다. 나만 참으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이어왔던 관계이고 이해하려고 했던 관계였지만 실제론 전혀 그렇지 못했단 걸 이제서야 알았다. 치유되지 않고 곪아터진 상처가 낯설게 느껴졌고 나는 그 상처를 나만 갖고 있다 생각했고 나는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긴 관계를 그만두자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생각이 많은 연말이었다. 바쁜 생활을 보냈지만 심적으론 힘들었다. 나는 웃을 수 없었고 기나 긴 출퇴근 시간 속에서 매번 깊은 잠에 빠지든지 우울한 기분에 빠졌다. 2013년이 가기 전에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아 보였다. 사람들을 만나도 깊은 마음 속으로 기뻐하고 즐기질 못했다. 술에 취한 날이 많았고 집에 와서 술취한 채 잠들어 버리는 것을 즐겼다. 그렇게 하면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쉽게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언제나 그렇듯 다음 날엔 멍하니 침대에 걸터앉아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 하는 생각만 했다. 그러다 2013년의 끝이 다가왔고 내 20대의 끝도 다가왔다. 이젠 부인할 수 없는 순간이 온 것이다.


  20대의 마지막이 심적으로 아팠고 힘들었다면 30대 초는 몸이 아팠다. 잘 아프지 않는 몸이지만 한 번 아프면 심하게 고통스러운데, 느닷없이 감기가 찾아왔다. 편도가 커서 그런지 몰라도 감기는 매번 목감기가 왔다. 하지만 이번엔 평소와 다르게 코감기가 왔다. 콧물은 끊임이 없었고 하루 종일 고객을 대하고 말해야 하는 직업상 정말 고통스러웠다. 중간 중간에 수십 번씩 휴게실에 들어가 코를 풀었다. 병원을 다녀와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 지난 주엔 피가 나왔다. 그래서 이비인후과를 갔더니 축농증이 왔다고 했다. 코가 막히면 머리가 아프고 멍한데, 실제로 혼이 빠진 것처럼 멍하니 의사의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어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아침부터 몸이 안 좋았고 내일 나올 수 있을까 걱정부터 했다. 사무실에 앉아 내 일만 처리하는 일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참을 수 있겠는데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이다 보니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오후 늦게 팀장님께 휴가 얘길 꺼내고 승인을 올렸다. 중요한 휴가 하나를 벌써 써버린 것이다. 하지만 참을 수 없었다. 일을 하면서도 수십 번 도망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의 얘기를 들으니 내 속에 그렇게 나쁜 게 많이 돌아다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쌓은 상처와 염증과 고름이 내 몸을 빙글빙글 돌고 있다니. 그리고 내 몸을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입사 1년 만에 이렇게 아픔을  맛봐야 하다니. 서럽단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아픔을 겪고보니 이제는 시간이 지나서 내 스물아홉과 서른을 돌이켜 볼 때 생각할 수 있는게 생겼단 생각이 들더라. 비록 열아홉과 스물을 기억할 수 없지만 이 때는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게 위안이 될까.

  병원을 나왔더니 어머니께 카톡이 와 있었다. 점심 먹었나 잘 지내지, 라는 짧은 얘기였는데 혼자 멍했다. 엄마라서 멀리 있어도 아는걸까 혹은 내가 아파서 최근에 연락을 안 해서였을까. 평소 같았으면 일이 있어도 네 별 일 없이 잘 지내요, 라고 답했을테지만 오늘은 사실대로 얘기했다. 아파서 휴가 썼다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공냥이가 바닥에 토를 해놨더라. 평소에 전혀 이런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이러니 얘도 아프구나 싶었다. 그리고 조금 울었던 기억이 난다.


  긴 글을 쓰고 싶단 생각은 언제나 했다. 하루에 노트북을 켤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블로깅도 힘들었고 아이폰 메모장에 쓰려니 뭔가 허전했다. 다이어리에 글을 쓰다가도 그 글씨체가 못나보여 더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인스타그램에 의미없는 사진과 주저리 주저리 글을 올리긴 했지만 매번 술을 마시고 글을 쓰다보니 다음 날에 곧잘 지우곤 했다. 내 삶을 기록함과 동시에 감정을 드러내고 거기에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뭉쳤는데 다음 날 보니 민망함만 남은 적이 많기 때문이다. 아깝단 생각도 들었지만 어쩌겠나, SNS도 어쩜 기록이고 나를 표출하는 곳인데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니.

  다시 또 언제 긴 글을 쓸 지 모르겠지만 글을 씀으로 인해 정리되는 위안은 다른 걸론 찾을 수 없다. 남들에게 터놓는 이야기는 가끔 매번 다른 사람에게 여러 번 반복해서 얘기하는 불편함이 있기에 글에서 받을 수 있는 효과가 덜할 때가 많다. 어쨌든 마음은 조금 진정되고 있다. 내일은 회사 전체 행사가 있어 아침부터 참석해야 하는데, 몸이 조금 더 회복되길 바랄 뿐. 우연히라도 이 글 읽는 모든 이들이 건강하시길. 그리고 늦었지만 모두에게 복된 새해가 되었길 바라며.






너무나 작고 많은 일들이 by James


  글을 쓰지 않은 그동안 너무나 작으면서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것을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거니와 이젠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가장 큰 일은 아마 일본을 처음으로 다녀온 것일테다. 언제나 그렇듯 급하게 날을 잡고 허겁지겁 다녀왔다. 일은 꾸준하고 회사 안에서 조금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보려고 몸을 풀고 있다. 그 과정과 결과는 모두에게 비밀로 남겨두고.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다녀와서 느낀 건 좋은 것들을 향유하자는 것이다. 잡스러움을 피하고 좋은 걸 경험하고 좋은 걸 쓰자는 말인데, 이걸 쉽게 풀이하기가 힘들다. 우선 좋은 음악을 많이 듣자는 점은 충분히 실행중이다. 모 레코드점에 격주로 가서 이것 저것 앨범을 담다보면 금방 10만원이 넘어간다. 그래도 집에 와서 하나하나 듣는 그 순간에 나는 묘한 희열을 느낀다. 제대로 살아가고 있구나, 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면 과장일까.

  싼 맛에 많은 것들을 사왔다. 특히 패션과 관련된 것들이 많은데 그러다보니 이제는 일정 수준(질이 아니라 양)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아주 이쁜 것이 아니면 아무리 싸도 지불할 의향이 없어졌다. 차라리 질 좋은 제품을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에. 싼 맛에 안 사도 이미 웬만큼 채워졌다. 그래도 여러 브랜드의 옥스포드 셔츠와 데님은 꾸준히 사모으고 있다. 일주일 중 이틀 밖에 입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요즘 가장 좋은 순간은 퇴근 후 늦은 밤에 지하철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오는 20분이다. 싸늘함때문에 겉에 입은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음악을 들으며 걸어오는 그 순간이 꽤 좋다. 집에 어서 가서 쉬고 싶지만 그 20분을 포기할 수는 없을 정도다. 오늘은 내가 이 순간을 위해서 발걸음을 늦추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번 주엔 회사 내 시험이 있어 공부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늘함과 조용함 사이에서 퍼지는 음악이 좋아 걱정 따윈 제쳐두었을 정도로. 왠지 이 순간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란 것도 어렴풋이 알겠다. 날은 추워지고 나는 어서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 공냥이를 안고 싶어지겠지. 그땐 또 그때 만의 즐거움과 내 시간이 생기지 않을까.


  

짧은 건 by James


짧은 건 글이 아니라 내 생각이고, 아니 생각을 글로 표현 못하는 내 짧은 의지와 능력이겠지. 술 마실 때 술 값 걱정 안 하고 듣고 싶은 음악이 있을 때 큰 걱정없이 CD를 구입하며 시원한 맥주가 마시고 싶을 때 퇴근 길에 편의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게 직장인의 삶이라면 나는 직장인 답게 살고 있다.

오늘은, 오해에서 일어난 일이었지만, 고객을 위해 내가 버려질 수도 있겠구나 라는 걸 느꼈다. 동시에 내가 아직 그들에게 그만큼의 믿음을 주지 못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고. 일이 터지고 나는 몰래 화장실로 가서는 거울을 멍하게 쳐다봤다. 쓸쓸함과 씁쓸함 사이에서 갈팡 질팡하다가 다시 얼굴을 풀고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선 사태 파악에 나섰고 내 잘못이 아님을 인지했다.

출근 전에 매번 음악을 듣고 문 앞에서 이어폰을 뺀다. 이 순간에 난 이상하게 가면을 쓰는 기분이 든다. 얼굴을 풀고 목소리의 볼륨을 높여 신입다운 모습으로 변신한다. 그래서인지 매번 여러 곡을 듣는 중간에 사무실에 도착하면 꼭 마지막 곡은 끝까지 듣고 들어간다. 그때부터 나는 또 다른 사람이다.

나는 술을 잘 마신다기보다 끝까지 정신줄을 놓지 않고 버틴다는 말이 어울리는데, 그러다보니 취하고 싶은 날도 언제나 아쉽다. 매번 같이 먹는 사람들을 챙기거나 헤어질 수밖에 없기에 술 자리는 언제나 아쉽다. 그리고 나는 또 취할 날을 기다리고. 평생 요즘처럼 술이 땡긴 적이 있었나 싶다.

10월 7일 부터 5일간 휴가를 잡아놓았고 그 즈음해서 일본으로 갈 생각이다. 아직 아무런 계획도 없고 예약도 하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 뿐이다. 일본에 대한 흉흉한 이야기들, 애 안 낳을 거냐는 서늘한 충고들. 그런데 올해 일본 가는 건 내 목표였기에 어찌해야하나 고민중이다. 어찌보면 정말 중요한 기간인데 지금은 힘이 쭉 빠져있다. 직장인으로서 맞는 첫 휴가인데.


어찌되었든 삶은 계속 이어진다, 라는 생각만 요즘 자주 떠오른다. 카톡 프로필에 올려진 글들을 보면 다들 잘 살고 있구나 싶다 혹은 잘 살고 있다고 보이고 싶구나 싶고. 나는 어중간하게 나를 표현하는 중이고.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거야 라는 문구는 취업의 벽을 두드릴 때 적어둔 건데 아직 못 바꾸는 걸 보니 상황이 그렇게 좋아지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언제쯤 바꿀 수 있을까,바꾼다면 뭘로 바뀔까 궁금한 밤이다.


처음에는 by James


처음에는 로열티(이것 만큼은 로얄티라고 안 하더라)라는 이름으로 큰 그림을 그리곤 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일하면서 느끼는 건 지금 내 앞에 있는 일이나 잘 처리하자는 마음. 일에 적응되니 느껴지고 봐야 하는 '관계'라는 이름. 관계는 눈치와 다름 아님을 느끼는 직장인 생활. 낄 때 끼는 것 보다 중요한 게 빠질 때 빠지는 것이란 걸 깨닫는 요즘. 퇴근 후 지하철을 타자마자 잠들면서도 내리기 바로 전에 눈이 떠지는 감각 혹은 적응. 언제나 그랬지, 이럴 때 번뜩이는 건 새로움 이란 걸.


비가 세차게 내려서 by James


  일요일을 온전히 집에서 보내고 있다. 선물받은 모카포트로 커피도 내려 마시고 어제 사온 책도 읽고 낮잠도 잤다가 음악도 들으며.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지만 이런 평범한 일상이 그리운 직장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글을 썼다가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잠궈버린 것들도 몇 개 있다. 가만히 책을 읽다가 이유를 알 수 없는 끌림에 블로그에 몇 자 적는다. 그리고 그동안 전혀 올리지 못한 인스타그램 사진들을 같이 올려 본다.


  가끔 주문하던 사이트에서 팔고 있길래 장바구니에 담아 봤다. 검색해보니 명품 어쩌고 하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런 건 모르겠고 튜브가 마음에 든다. 한 번에 세 종류를 까놓고 쓸 정도로 열정적이진 못해서 아직 하나만 경험하는 중.


  늦게 세일할 때 구입해서 딱 한 번 입었다. 아래 사진이 바로 그 날. 여름에 성큼 다가온 날이어서, 말 그대로 스웻셔츠에 스웻이..



  유행이라면 유행일 수 있지만, 요즘은 무지 포켓티셔츠가 좋다. 땀이 많다보니 그것 하나만 입기엔 힘들지만, 그래도 좋다. 살이 쪄서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보기 싫지만, 그래도 좋은 건 좋은거니까. 벨바쉰은 이제 회색만 사면 셋트 완성. 가장 마음에 드는 포켓티다.


  컨버스는 내 다신 사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지만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이걸 사고 보니 놓쳐버린 블랙 제품도 사고 싶었는데 찾아도 찾아도 나오질 않는다(US 11 찾습니다). 근데 아직 신어보질 못했네.


  이건 오늘 오후. 밥 먹으며 무도보는데 막길래 찍었다.


  나와서 양말 벗었다.


  동글동글(몸도)동글동글 같은 날을 보내는 중.


  여름 들어서면서 노타이에 반팔셔츠(이 얼마나 고리타분한 단어인가) 복장 지침이 내려왔는데, 최근에는 아예 셔츠가 개인별로 배급되었다. 얇게 만든다고 폴리를 엄청 나게 쏟아부은 셔츠인데 고작 두 개 줘놓고 매일 이것만 입으라고 하니 내가 참을 수가 있나. 그래서 디자인도 그렇고 도저히 입고 출근하기엔 부담스러워서 셔츠와 정장바지를 회사에 가져다 놓고 매일 출근해서 갈아입기로 했다. 첫 날에 반바지 입고 갔는데, 눈치가 조금 보여서 이젠 면바지나 데님을 입고 다닌다. 여직원들은 모두 유니폼 착용이라 365일 옷을 갈아 입는데 남직원은 그냥 정장이니까 갈아입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팀장님이 눈치를 주는 듯하다. 이런 게 직장생활이다.


  밤 11시 30분 막차를 탔던 날. 집에 오니 한 시였다.


  메탈리카와 콜라보 한 게 있단 걸 어제야 알았다. 솔직히 이쁜 건 아닌데 기념으로 구입하고 싶었다. 특히 제임스 헷필드 스케잇하이는 더 갖고 싶다.


  주말에만 가능한 복장.



  뒤를 돌아봤는데 이러고 있어서 한참을 쳐다봤다. 뭔가 갈 데까지 다 간 것 같기도 하고. 저 소파(?)는 야심차게 주문했는데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소파에 있는 스크래쳐는 거의 쓰질 않는 듯.



  회식 때 시켜놓은 맥주를 뜯지 않은 게 있었는데, 내가 혼자 산다며 쥐어 주셨다.



  2박 3일 연수가 있어서 이렇게 입고 갔더니 황토방 패션이라고 했다. 어쩐지 맥반석 계란이 땡기더라며 인스타그램에 썼던 기억이 난다.


  반바지는 YMC에서 싸게 산 건데 나름 잘 입고 있다. 단추가 너무 힘없게 달려 있어 벌써 두 번째 다시 달았다. 


  나의 첫 헬맷백. 블랭코브 제품인데 너무나 마음에 든다. 올리브 컬러의 진짜 헬맷백도 좋겠지만, 이것도 이것대로 만족한다. 직접 들고 다니닌 더 좋아서 에이프런 백도 사고 싶고 백팩도 사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 하지만 일본가서 포터 제품으로 가방을 구입할 예정이라 고민 중(모노클 콜라보 제품 아직도 살 수 있으련지).


  묵묵히 책상을 잘 지키고 있다.


  몰스킨은 이제 굿바이 이젠 바이바이바이. 라미 만년필을 쓰는데 비쳐서 더 이상 쓰질 못하겠더라.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상업성에 이제 조금씩 거부감이 든다.



  웹상에서 내 흔적을 남기는 건 인스타그램 뿐이지 않나 싶다. 그것도 꾸준히 남기질 못하고 있고. 생각은 많으나 몸이 지치는 게 우선이고, 그러다보면 나는 주말만 기다리게 된다. 일은 바쁜데 조금씩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고. 관계가 편해지니까, 나는 그대로라 생각하는데 상대방은 그렇지 않게 느껴서 하는 말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그럴 때 마다 '자중'이란 말을 떠올리지만 내가 나갈 방향은 침묵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일전에, 일을 하면서 내가 살아가는 내 삶에서 내가 없었는데 이제는 나를 찾을 방법조차도 모르겠다 라는 취지의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주말이 되어서야 조금씩 내가 하고 싶은 것도 하고 못한 것도 하려고 노력하고(해외 쇼핑 사이트 방문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모자란 느낌이 크다. 자신이 소멸되고 있음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지하철에 앉는 순간 잠이 드는 몸을 버틸 수 없다. 정신을 여전히 몸이 지배하고 있으니. 가끔은 어쩔수 없는 건가, 라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는데 그 때가 나는 제일 두렵다.




짐이냐 가방이냐 by James


어렸을 적부터 나는 짐을 많이 들고 다녔고 그래서 가방도 클 수밖에 없었다(큰 등판 때문에 작은 가방은 어울리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고). 집 밖에 나갈 때면 그 날 다 읽을 수 있든 없든 책과 잡지를 몇 권씩 넣어 다녔다. 큰 필통도 빠질 수 없었고.

학생일 때보단 읽어야 할 책이 적기도 하고 내 의지도 많이 사라진터라 가방은 점점 백팩에서 토트백으로 바꿔들기 시작했다. 요즘이야 남자들도 많이 들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캔버스로 만들어진 토트백을 들고 다니면 어울리지 않는다며 타박을 듣기도 했다. 물론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도 많이 들었고.

누군가에게 가방은 여전히 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바깥에 나갈 때 없어선 안 될 옷의 일부처럼 존재감을 갖고 있다(그래서 가방을 꾸준히 사는건가). 한 주 동안 일에 약속에 내 시간을 제대로 가진 적이 없는 것 같아 아침부터 씻고 나올 준비를 했다. 당연히 짐도 챙겼고. 여름이면 더 애용하는 필슨 토트백에 잡지 세 권 책 한 권 다이어리 필통 아이폰충전기 모자 안경케이스 등을 집어넣고 길을 나섰다.

가방을 좋아해서인지 소심해서인지 몰라도 카페든 지하철이든 바닥에 가방을 놓는 행위는 나에게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가방 아래가 튼튼하게 가죽처리가 되어 있든 그렇지 않든 더러워보이는 어딘가에 놓아 두는게 영 꺼림직하기 때문. 그래서 카페에 가면 꼭 의자에 놓아둔데, 가끔은 상전을 모시는 건 아닌가 하는 민망함도 든다.

오늘 B magazine의 Porter 편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봤다. 나는 가방 자체가 좋은 건지 그 기능이나 디자인이 좋은 건지. 이것도 소모품일 뿐인데 너무 큰 의미를 두는 건 아닌지. 한 가지 확실한 건 차를 사더라도 나는 가방을 꼭 가지고 다닐것 같다는 점. 그 허전함을 채울 수 있는 건 지금 현재로선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그리고 포터는 일본에서 사면 더 싼지, 가리모쿠 의자를 좀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도 궁금했다(일본 여행과 의자 구입은 올해 내 목표).




뭐라 한다해도 by James


뭐라 한다해도 가장 좋은 데이트는 걷거나 혹은 앉아서 같이 음악듣기가 아닌가 싶다. 음악에 대해 말하자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도 서로가 고른 곡들을 찬찬히 들으며 중간 중간에 그 곡과 관련된 일화들도 나누고. 가끔 너무 좋은 음악을 들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떠오르는 건 그런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by James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뭔가가 나아지질 않는다는 걸 안다. 내가 남들보다 힘들다는 걸 구구절절히 얘기해봤자 가장 크게 얻는 건 동정이겠지 라는 생각에 말을 않는다. 누군가는 알겠지 라는 생각에 힘에 부치는 삶을 살아가고 있고, 왜 일해요 라는 질문에 돈 벌어야죠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람이 되었다. 그 돈 벌어서 뭐할건데요 라는 추가적인 질문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 라고 답했다.

  예전부터 그랬다. 말로 나오는 걸 막는 순간엔 '글 길'을 만들었다. 나도 모르게 떠났었지만 돌아올 준비를 해야겠다.



한 달이 되어가고 by James


  2월 25일에 첫 출근을 했으니 월요일이면 달로는 한 달이 된다. 그동안 큰 일 없이 잘 출근했고 기차를 놓치거나 기차에서 잠들어 내릴 곳을 놓치는 경우도 없었다. 같이 일하시는 분들은 다 좋으신 분들이고 바쁜 와중에도 내가 묻는 질문에 잘 대답해 주신다. 점심 시간은 짧고 퇴근 시간은 늦어지고 길다. 95명의 동기들이 함께하는 카카오톡 단체창엔 매번 백 여개의 글이 올라오지만 나는 그걸 제대로 읽을 틈도 없다. 배터리가 빨리 닳고 집에 갈 때 음악을 못 들을까봐 걱정한다. 내 주위에 콘센트가 없기도 할 뿐만 아니라, 보안 문제로 컴퓨터와는 연결할 수 없으니 아침에 100% 충전해서 가는게 전부기 때문이다.

  매 주말 약속이 있었다. 그 와중에도 빨래를 하고 일요일 저녁엔 셔츠를 다려야 했기에 주말은 언제나 빨리 지나갔다. 한 달이 다 되어 가서야 조금 여유가 생겼고 오늘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 아침에 빨래를 돌리고 밥을 먹고(요즘은 집에서 먹는 밥은 주말에만 가능하다) 커피를 내렸다. 런던 여행 갔을 때 Monmouth에서 사온 원두가 여전히 남아 있다. 원래 그럴 수도 있지만 시큼한 맛이 강하다. 커피를 마시면서 평소에 듣지 않던 음악을 틀어놓고 토요일 오전을 즐기고 있다. 오늘 오후부터 밤까지 약속이 있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 혹은 자격을 얻기 위해서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다. 4월엔 시험도 있기에 그 준비도 해야 한다. 며칠 전에 연수원 때를 제외하고 첫 월급을 받았는데 그 낮은 금액에 놀랐다. 실수령액이 적다는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너무 낮아서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원래는 적금을 세 개 들려고 했으나 하나만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 밀린 카드값과 다음 달 방세를 현금으로 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여유 현금이 없었다. 그래도 사고 싶은 건 여전히 많다. 평소엔 몰랐다가도 이것 저것 보다가 아 이게 나에게 지금 필요하네, 라고 생각해서 지르는게 이젠 익숙하다. 소위 비합리적 소비가 이런 걸 얘기하는 걸까. 혹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언을 올바르게 따르는 건지.

  책은 하루에 세 페이지 읽으면 많이 읽는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를 잠자기 전에 잠깐 읽을 뿐이다. 3주에 책 두 권, 한 달에 원서 한 권 그리고 그 틈에 끝없이 읽는 잡지들. 학생 때 아무리 바쁘고 졸려도 이게 목표였고 힘들지만 달성할 수 있던 순간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1/100도 힘들지 않나 싶다. 말 그대로 눈 뜨면 회사고 눈 감으면 집인 그런 삶. 게다가 생각보다 적은 월급. 야근하고 홀로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던 어느 날, 나는 나도 모르게 이게 사는 건가 라고 진지하게 물었다.


  조금 성급하게 혹은 거칠게 말하면, 나중에 자유롭기 위한 변명을 지금 만들고 있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봤다. 내가 그렇게 힘들게 고생하면서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자유가,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는 자유가 주어지는 게 당연하다 라고 얘기하고 싶어서 지금 이렇게 아무런 불만을 표하지 않고 지내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 사실 그것보다 나는 불평 불만을 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게 더 확실하겠다. 내가 선택한 일이다. 내 선택에 불만을 가지고 후회를 하면 나는 더 이상의 발전이 없을테다. 자신에 대해 실망하는 순간 어떻게 무너질지 상상조차 하기 싫으니까 지금은 묵묵히 내 일을 하면서 지내는 거지. 점심 때 급하게나마 잠시 입에 커피를 넣는 그 순간, 반쯤 졸린 상태로 신경써서 타이를 매는 그 때, 아주 늦은 밤 냉기를 느끼며 듣는 음악. 그리고 가끔 언제 시킨지도 모르는 택배. 그런데서라도 나는 즐거움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글을 안 써보니 이젠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 지 by James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 지. 최근 글을 보니 작년 12월 이다. 연수원을 떠나기 전에 급하게 쓴 듯한 글. 9주간의 연수기간 동안 세 번 정도 나왔고 설에는 부산도 다녀왔었다. 하지만 글 하나 제대로 쓸 수 없었다. 간간히 인스타그램을 하긴 했지만 트위터 타임라인을 볼 수 있었던 적도 몇 번 없었다. 연수원 생활이 원래 다 그렇겠지만 바빴고 잠자기도 바빴다. 지난주 금요일에 임명장을 받고 발령지를 확인했다. 내 생에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졸업식이 겹쳐서 참석하지도 못했다. 주말에 집에서 짐을 간단히 정리하고 출근 준비를 한 후 월요일부터 발령지로 출근을 시작했다.

  발령지는 무려 경기도 양평이다. 처음에 발령지를 듣고 헛웃음이 나왔다. 거긴 어디지,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고 행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확인 결과 경기도 였다. MT촌이 있다는 가평 근처. 내가 여기 발령 받은 건 아마 내 집이 회기역과 가깝고 회기역에선 중앙선이 있기에 중앙선으로 한 시간만 가면 되니까 출퇴근 할 만하겠지, 라는 생각에 나를 그곳에 발령시킨 것 같다. 어쨌든 4일간 출퇴근 했다. 지하철을 타보기도 했고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기도 했다. 생각보다 늦게 퇴근을 했고 나는 집에 와선 씻고 잠자기에 바빴다. 아무런 여유가 없었고 택배가 왔어도 뜯을 시간 조차 없었다. 그렇게 나는 직장인으로서 처음 맞는 주말과 연휴를 보내는 중입니다.

  일은 재미있다. 실수도 있을 수 있지만 배워나가는 기쁨이 있다. 워낙 바빠서 정신이 없지만 시간은 잘 간다. 출퇴근이 먼 것은 조금 싫지만, 그래도 다들 일어나는 시간은 비슷하다는 점으로 위안을 받는다. 그 근처로 이사를 가는게 좋겠지만, 그렇게 했다가 서울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까봐 쉽게 그러지 못하겠다. 내가 취업할 때 크게 중요시 여긴 세 가지중 하나가 바로 서울에서 일을 하는 것이었으니까. 당분간은 이렇게 출퇴근 할 수밖에 없다. 일과 휴식 외에 내 삶은 지금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아직 공냥이를 데려오지 못했다. 심적 여유가 없으니까 공냥이를 지금은 제대로 돌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공냥이를 보면 조금 더 마음이 편안해질까 싶다가도 확실히 지금은 나에게 돌아와도 무척 심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새벽같이 나간 오빠가 밤 늦게 와선 씻고 잠드니 공냥이는 같이 있어도 같이 있는게 아닌 것처럼 느껴지겠지. 우리집 보다 훨씬 넓은 집에서 많은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고 애교도 더 늘었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좀 그랬던 건 사실이지만.


  어쩔 수없이 정장만 작업복처럼 입고 다녀야 하는 삶이 시작되었다. 박스채 쌓여 있는 스니커즈들은 주말용이다. 부츠는 자주 신어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 것같은 것들이 있다. 구두는 단 두켤레 밖이라 더 사야할 것 같은데 그럴 돈도 검색할 시간도 없다. 다행히 내가 좋아하는 옥스포드 셔츠는 입을 수 있는 것 같다. 아직은 드레스 셔츠만 입지만 몇 개월 지나고 슬슬 입어볼 생각이다. 그래서 Maison Kitsune 셔츠를 주문했다(엄청 할인하길래 혹시나 하고 구입).

  4일간 출퇴근을 하면서 쉬고 싶단 생각을 참 많이 했는데, 막상 연휴가 오니 어떻게 쉬는게 쉬는건지 모르겠다. 그냥 잠만 자면 되는 건가? 그건 아닐텐데. 농담처럼 나는 주말엔 서울구경 다닐거야, 라고 말하곤 했는데 정말 그런게 휴식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어쨌든 이제 일이란 게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그걸 거부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발버둥칠 필요도 없다. 이젠 그 일 속에서 나 자신을 갈고 닦는 방법을 찾아야 할  뿐.


  한 가지 재미있는 건 내가 다시 영화가 끌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보고 싶은 영화가 참 많고 최근에 나를 감싼 주말에 영화보는 건 참 비싸다, 라는 생각은 이제 잘 들지 않는다. 이게 돈을 벌기 때문인지 몰라도 영화관 속에 숨고 싶은 마음이 커지고 있다. 이는 내가 삶에서 지쳤을 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내 행위 방식이었는데, 최근에 다시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내가 벌써 지쳤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지금은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앞으로 나갈 생각뿐.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가 개봉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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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장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