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입니다. (2012. 1. 1 ~ ) by J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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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by James


  어떤 지인은 그냥 나보고 다 잘될거라고 얘길 한다. 마치 너가 잘 안되면 세상이 이상하다는 듯이. 그 말이 빈말이 아닌 것 즈음은 아는데, 나는 내가 아직 잘되지 못해서 그 말을 실감할 수 없다. 하지만 또 다른 지인은 쉽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처음부터 자만따윈 용납하지 않고 힘든 길이지만 지치지 말라고 얘기한다. 토익 스피킹이나 오픽을 준비하고 자소서를 써보고 등등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말미엔 끝내는 잘 될거라는 얘길 덧붙였다. 나는 지금 회사에서 읽을 종이 위에 적힐 몇 자를 위해서 준비하고 있다. 그 칸을 조금이라도 채우고 숫자를 조금 더 높게 적기 위해서 움직이려 한다. 이런 걸 준비하는 게 원래의 내가 아닌 줄 알면서도 이제는 뒤돌아 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조금 아쉽기도 하다. 다른 길을 가지 못한 것 때문이 아니라, 나란 사람을 종이 위 글자들로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것이라는 아쉬움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자리는 한정적이고 종이는 많으니. 색종이를 사용할 수 없는 이상 나도 남들처럼 움직일 수밖에. 그 종이만 받아들여지면 나에게 좀 더 유리해지지 않을까, 아니 나 자신을 조금 더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내가, 내가.

많이 아팠다 by James




  며칠 전 부산에서 잘 지낸다는 얘기를 짧게 썼는데, 그 날부터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콧물이 많이 났고 감기 증상이 올 때마다 동반되는 두통이 심했다. 급하게 약을 사 먹고 지인을 만나 시간을 보내고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술을 좀 많이 먹고 기분이 우울해져 집으로 걸어왔다. 그 날이 토요일이었으니 참 오래도 아팠다. 병원엔 가지 않고 약만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설 당일에 친척집에 가서도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했다. 계속 앉아 있거나 졸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또 잤다. 다음 날도 계속 잔 기억밖에 나질 않는다. 코는 먹먹했고 두통은 지속적이었으며 땀이 많이 났다.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떠나기 전 마지막 날이었다. 아침밥을 힘겹게 먹고 씻은 후 약을 먹었다. 노트북과 책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어머니도 감기가 걸렸다. 증상이 나와 같아서 아마 나에게서 옮은 게 아닌가 싶었다. 바깥에 나가지 말라는 얘길 뒤로하고 옷을 두껍게 챙겨 입었다. 왠지 이대로 또 집에 있으면 허무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답답한 마음도 없지 않았고 개인 시간을 좀 갖고 싶었다. 은행 일을 간단히 마무리하고 스타벅스에 들어왔다. 아무리 추워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셨는데 오늘은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커피도 참 오랜만에 마셨다. 오랜만에 마시기에 아마 오늘 밤엔 쉽게 잠들지 못할테다. 그래도 감기약을 먹으면 좀 낫겠지. 따져보니 몇 년 동안 감기에 걸린 적이 없었단 걸 알았다. 겨울이 올 즈음에 비타민 C를 꾸준히 챙겨먹고 몸이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유자차를 지속적으로 마셨다. 평소에 감기가 걸려도 약 같은건 잘 안먹으려고 한다. 부산에 와서 그러한 대비를 전혀 못했던 것인지 감기는 쉽게 걸렸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움과 답답함 그리고 두통이 동반되었다. 매번 감기가 걸리면 그 원인을 찾아보게 된다. 어디서부터 걸렸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그리 추운 바람을 많이 맞은 적도 없는데 말이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바닷가 바람을 쐬서 그렇다고 하셨다.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침대에 누워 읽는 하루키의 잡문집은 좋았다. 특히 '음악에 관하여' 부분이 좋았는데 그 부분을 읽기 시작했을 무렵 듣기 시작한 Miles Davis의 <Round about Midnight> 음반이 참 좋았다. 원래 가장 좋아하는 재즈 음반이긴 했지만 뭔가 책과 내 기분과 함께 융합되어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책을 아주 천천히 읽었고 음악은 끝없이 들었다. 졸려서 잠이 들었다가 또 깨어서 물을 마시고 책을 읽기를 반복했다. 서울에 혼자 살 때 아팠다면 내 몸과 기분은 더 안좋았겠지, 라며 한없는 한가함을 누렸다. 부산에 내려오기 전 계획했던 많은 일들이 무산되었다.

  힘겹게 기차표를 예매했고 내일 또 떠난다. 10여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크게 한 일도 없으면서 시간은 흘러갔다. 살갗에 닿는 많은 것들이 몸을 쓰라리도록 만들었다. 그 고통을 줄이려 뜨거운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 잠을 자면서도 두통이 느껴졌고 꿈은 더 없는 환상으로 넘쳐났다. 몽롱함이 연속되었고 어제 저녁 잠시 TV를 보면서 실없이 웃었다. 무한도전을 잠시 보여줬던 것도 같은데 웃었다. 그러고보니 지난 토요일에 무한도전을 보지 않았다.


  졸업은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2월에 있을 졸업식에 참석하실 예정이셨던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이 미루었다. 그리고 졸업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얘기에 많이 섭섭해 하셨다. 나는 대학 졸업앨범은 의미가 없다고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사진으로 뽑을 수는 있지 않느냐고 방에 두고 싶어 하셨다. 4년 넘게 투자한 것에 대한 대가라고 하셨는데, 대가 치고는 너무 가치없어 보였던 동시에 죄송한 마음도 느껴졌다. 이제 서울에 가면 당분간 뵐 수 있는 날이 없을테다. 다음에 뵐 때 나는 당당할 수 있을까.

  서울 집은 괜찮을까.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온수가 나오질 않는데 보일러는 이상 없을지 모르겠다. 집은 청소해두고 와서 다시 청소할 필요는 없는데, 꺼놓고 온 보일러가 신경쓰인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데 몸이 완쾌되지 않아 꺼림직하다. 금요일에 아는 형과 술약속을 잡았는데 미룰까도 고민중이다. 1월은 이렇게 아무런 유의미한 흔적을 남기지도 않은 채 흘러간다. 2월이라고 달라질까 싶지만.




몇 주 간의 인스타그램 (1/20) by James

















  @james_k0



부산에서 살고 있다 by James



  부산에 내려온지 일주일이 다 되어 간다. 이곳 저곳 돌아다니기도 했고, 트위터에 부산고향여행기 라는 주제로 짤막한 글들을 올리고 있다. 이것도 어제까지 얘기고, 오늘은 혼자 카페에서 책보고 공부하고 그랬다.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는 삶이다. 여전히 잘 지내고 있고 여긴 비가 오는 듯 안오는 듯 계속 온다. 날은 따뜻하나 다음주부터 한파라는데 부산도 해당될지는 잘 모르겠다. 집에 인터넷이 안되서, 아이폰 핫스팟으로 지금 글을 쓴다. 이게 생각보다 쓸만하다. 밀린 글들을 읽고 이제 잠들려고 한다. 내일은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난다. 아마 술을 많이 마실테다. 모두 즐거운 설 보내시길.



마이너스적인 삶과 시간들 by James



  영(0)이 감정의 균형상태, 즉 큰 감정적 동요가 없는 상태라고 설정한다면 지금 나는 마이너스일테다. 분명 며칠 전에 기분이 나아졌다, 라는 내용으로 글을 쓰려다 말았는데 단 며칠 만에 다시 아래로 쭉쭉 떨어지고 있다. 시간이 흐르지 않아, 잠을 조금 더 자면 하루가 더 빨리 지나가겠지, 라는 생각을 하지만 잠이 쉽게 올리가 없다. 생각을 하면 시간이 빨리 가든지 잠이 오겠지 라는 생각에 뇌를 사용하다보면 마이너스 수치는 점점 높아진다.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잠은 더 오지 않는다. 불안감은 언제나 팽배하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모든 것이 밝혀졌다>를 다 읽고 나서야 우연히 <동물을 먹는 다는 것에 대하여>라는 그의 또 다른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지만 구입을 미루었다. 지금은 아직 구입해두거나 받아놓고 읽지 못했던 책들을 읽는 시기라며 자신을 다독인다. 며칠 전엔 돈이 조금 생겨 CD와 잡지 한 권을 알라딘에서 당일배송으로 주문했는데 그 날 도착하지 않았다. 너무 오랜만에 사는 것이라 들떠서 오후부터 바깥에 나가지도 않고 기다렸는데 바람 맞았다. 그래서 당장 취소해 버렸다. 하지만 카드가 아직 취소되지 않아서 그 돈을 쓸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외출해서 은행에 먼저 들렸는데, 돈이 안 들어와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지금 내가 그렇지 뭐, 라는 생각에 집에서 커피를 내리고 책을 읽었다. 일전에 지기님께 선물 받은 <에드워드 호퍼>와 <책을 읽을 자유>를 동시에 읽는 중이다.

  오늘은 느긋하게 일어나서 대청소를 했다. 그리고 짐을 쌌다. 내일 아침에 부산으로 떠난다. 이번 설에는 정장을 입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어머니 말씀에 정장과 구두까지 챙겼다. 바지는 논워싱 데님을 입고 내려가서 주구장창 그것만 입을 생각이다. 셔츠 몇 개와 티셔츠 양말 속옷 등을 챙겼는데 캐리어가 빵빵해졌다. 줄인다고 줄였는데도 짐은 여전하다. 부피의 문제로 보인다. 그리고 굵은 해커스 토익책 하나를 구겨 넣었다. 내가 가진 토익 책이라곤 대학교 1학년 때 구입한 이 기본서밖에 없는데, 어차피 문제만 풀면 되니까 부산가서 다 풀고 버리고 올 생각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전에 알라딘 오프라인 중고서점에 갔을 때 몇 개 사올 걸 그랬나보다.

  냉장고에 반찬이 아무것도 없고 밥도 반 공기 정도밖에 남지 않아 새로 밥을 할 수도 없었다. 청소를 다 하고 설거지를 했다. 방 정리를 했더니 어서 빨리 떠나야겠단 마음이 들었다. 캐리어 하나와 백팩, 그리고 정장을 담은 가방이 짐의 전부인데 생각보다 성가시다. 부산에 내려갔다가 올라올 땐 그냥 택배로 보낼까 싶지만 어차피 가방 세 개는 내가 다 들고와야 하기에 큰 차이가 없을 듯하다. 꽤 오래 집을 비울터라 방 비밀번호도 내일 바꿀 생각이다. 부산 집에 인터넷을 끊어 버려서 노트북을 가지고 가지 않으려 했는데, 아이폰 핫라인으로 써볼까 싶어 갖고 갈 생각이다. 아직 신발은 뭐 신을지 결정하지 못했다.


  감정이 마이너스라서 그런지 별 감흥도 없다. 다음 주 부산 날씨를 보니 최저 온도가 영상 4도가 보통이다. 목도리나 장갑을 챙겨가지 않아도 된다. 해운대에서 차가운 밤 공기를 느끼고 싶었는데 잘 될까 모르겠다. 부산집이 새로 이사를 했는데 어떨지 궁금하지도 않다. 제일 안타까운 것은 내 CD와 책들이 모두 박스에 담겨 있다는 점이다. 기존에 책 일부와 CD를 넣어뒀던 책장을 버렸기 때문이다. 이 박스를 풀 수도 없고 그대로 두자니 상할까봐 걱정이다. 그렇다고 택배로 보내자니 파손의 위험이 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괜히 마음만 아플 듯 하다.


  요즘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다이어리에 글을 자주 쓴다. 일기를 쓰기도 하고 책의 어떤 구절을 적어 두기도 한다. 기형도 전집에 있던 글인데 이곳에 남겨두고 글을 마무리 해야겠다. 부산에 가면 더 새로운 글을 쓸 수 있을지.


  '아주 추운 밤이면 나는 이불 속으로 해바라기 씨앗처럼 동그랗게 잠을 잤다. 어머니 아주 큰 꽃을 보여드릴까요? 열매를 위해서 이파리 몇개쯤은 스스로 부숴뜨리는 법을 배웠어요.'





고3에 관한 이야기 - Kelley Katzenmeyer by James





Korean High School (Documentary Preview) from Kelley Katzenmeyer on Vimeo.






#39 Kelley Katzenmeyer from mosaicist.net on Vimeo.






  잠시 저장만 해뒀던 영상인데 이제 공개한다. 교육에 대한 내 관심은 사범대를 졸업한다고 끝날까. 잘못된 줄은 알지만 남이 변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현상과 태도는 꼭 교육이 아니라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변화는 언제 시작될까.

  언젠가 다시 얘기할 날이 오겠지.



몇 주 간의 인스타그램 (1/5) by James



















조용히 조용히 by James



  지난 번 글을 쓴 이후로 집밖을 나가지 않았다. 문 앞에서 이불을 잠시 털긴 했지만 집 건물 밖을 나가지 않았다. 아무런 일도 없었고 나갈 이유도 없었다. 다이어리를 새로 정리 했지만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래서 오른쪽 메모 페이지에 잠시 단어들을 나열했다. 생각보다 몰스킨 쓰는 느낌이 좋다. 메모는 오른쪽 페이지에만 하고 오른손으로 글을 쓰는 나는 이 점이 남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손이 커서 왼쪽에 쓰는 건 많이 불편하다. 그런데 그 단어의 나열이 5분도 이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쓸 내용이 없었다.

  내 마음은 텅 비어 있다. 트위터에 글을 쓰지도 않는다. 페이스북에도 별 관심이 없다. 며칠 전 눈이 왔을 때 사진을 한 장 찍은 걸 올렸을 뿐, 별 관심이 없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모든 것이 밝혀졌다>를 반 넘게 읽는 중이다. 초반에 무척 힘들고 재미없었다. 대체 뭐가 이따위인가 싶을 정도로 말들이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형식의 의도를 알게 되었고, 쉽진 않지만 꾸준히 읽어 나가고 있다. 이번 주 안에 다 읽기를 바랄 뿐이다. 이 작가는 작은 것들을 많이 관찰하고, 상관없을 것 같은 단어(사물)를 나열해서 의미를 증폭시켜 나가는 재주가 있다. 이 책을 읽다보니 내가 왜 이 작가를 확실히 좋아한다고 말하는지 더 쉽게 알 수 있었다.

  필사를 다시 시작했다. 책을 펼쳐보니 김훈의 사인이 재작년 10월에 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나는 거의 1년 간 이 책의 반 정도밖에 옮기질 못한 것이다. 노트 한 권의 마지막 페이지를 작성중이다. 다시 필사를 한 이유는 크지 않다. 다시 언론사 입사를 꿈꿔서 그렇다기 보다, 글이란 걸 손으로 쓰고 싶었던 것이 첫째고 무언가 집중할 만한 게 필요했던 게 둘째 이유다. 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아무 생각없이 글을 적어나가는 단순한 행위가 하고 싶었다. 요즘 집중을 잘 하지 못하는 날 느낀다. 침대에 기대어 책을 읽다가도 한 챕터가 끝나면 아이폰을 들고 피파12를 한 두게임 한다. 이는 책의 흡입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내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연필은 내가 사용하는 필기구 중에 가장 의도대로 되지 않는 존재다. 시시각각 모양이 변하는 연필심은 내 글씨의 모양이 변하게 하고, 그 변하는 모양을 의식해 손목의 방향과 힘이 달라진다. 그러다보니 손목이 많이 아파온다. 그러한 노력에 비해서 글자체는 여전히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필사한 공책을 살펴보면 언제 연필을 깎았고 그 깎은 연필로 어디까지 썼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날카로운 심이 부러질까봐 조심스럽게 쓰던 초기단계에서, 나중엔 마치 얇은 사인펜을 오래 누르고 쓰는 버릇 탓에 심이 휘어진 상태로 글을 쓴 듯한 단계로 이어진다. 문제집의 문제풀이와 필사만은 연필로 하려는 내 기준에 대한 근거를 나는 찾을 수 없지만 그 습관을 버리고 싶진 않다.

  이 작은 방 안에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보내는데, 그러다보니 먹는 양도 적다. 잘 먹지 않고 있는데 살이 빠지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호두와 아몬드를 사뒀는데, 그것도 이제 마지막 한 끼밖에 남질 않았다. 어제 어머니께 전화가 왔길래 견과류를 보내 달라고 말씀드렸드니 부산에 내려오라고 하셨다. 그렇게 혼자 골방에서 우울해하지 말고 내려오라고 덧붙이셨다. 나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설날 즈음에 가려고 했는데 조금 더 일찍 내려갈지도 모르겠다. 부산에 간다고 나아지는 게 있을까. 어머니는 굴전을 해주신다고 하셨고 나는 조금 혹했다.

  어젠 군대에 있을 때 만난 형(간부)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하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요즘은 문득 울리는 전화들이 좀 부담스럽다. 내일 전화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오늘 아침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들리는 건 발신이 정지되었다는 어떤 여성의 멘트였다.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빨리 납부하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협박하던 문자가 진심이었다는 건 어제 온 마지막 문자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문자를 증명하듯이 오늘 발신이 끊겼다. 그래서 그 형에게 카카오톡으로 얘기했더니 바로 전화가 왔다. 우린 어색한 반가움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위안을 받았다는 건 사실이다.

  조금 있으면 나아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삶을 살아간다. 뭐가 잘못되었는지도 명확하지 않으면서, 많은 근심이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서 시간을 보내는 요즘이다. 그 허상에 가까운 근심이 깊어져서인지 어제는 하루 종일 두통이 심했다. 혹시 감기인가 싶어 비타민을 챙겨 먹었다. 잠도 잘 못잔다. 하루에 아메리카노를 몇 잔을 마시든지 나는 베개에 머릴대면 잠이 들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침대에 누워 어두운 방안을 물끄러미 엎드려서 쳐다보고 있는 나를 종종 발견한다. 누우면 바로 잠들어서 첫 곡밖에 못 들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자기 전에 아이폰으로 앨범 하나를 재생시키는데, 요즘은 한 앨범을 다 듣고 다른 앨범을 또 재생시켜야 힘들게 잠에 든다. 잠을 자면서도 내가 지금 잠자고 있다는 지각과 지금 바로 눈을 뜰 수 있다는 생생함에 이게 수면인가 싶다.



  이 많은 것들이 과연 취직고민 때문일까. 어디든 들어가겠지, 라던 내 생각에도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모두에게 복된 새해 by James


  김연수의 동명 단편을 읽은 이후에 나는 언제나 새해가 되면 이 문구를 이용한다. 모두에게 복된 새해. 마지막에 '를'을 붙일까 말까 고민하지만 김연수가 오마주 형식을 취해 노골적으로 레이먼드 카버에게 마음을 보냈다면, 나도 그런 김연수의 마음을 그대로 전달하고 싶다랄까. 어제와 오늘을 가르는 몇 초가 지나고, 나는 트위터에 저 문구를 썼지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짹짹이는지 계속 오류가 났다. 그리고 오늘은 페이스북에도 이 문구를 남겼다. 그리고 이 글을 관심있게 읽든 지나치며 우연히 읽든, 읽는 모두에게 복된 새해.

  내가 내 다이어리를 못 산 것은 처음이다. 다이어리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매년 12월 중순 즈음에 마음에 드는 다이어리를 직접 골랐다. 다이어리와 펜 같은 것들은 인터넷 쇼핑과 비슷한데, 실측만 나와 있는 옷이나 신발을 주문해서 직접 입어보고 실패해봐야 대충 감을 잡듯이 다이어리와 펜도 직접 써봐야 자신에게 맞는 게 무언지 알 수 있다. 나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다가 최근 몇 년 간 미도리 제품을 썼다. 큰 사이즈는 나에게 번거롭다는 걸 깨닫고 작은 사이즈를 매번 이용했다. 얇은 줄이 그어져 있는 다이어리를 쓰는 것은, 손바느질을 하고 마지막에 실을 묶어야 할 때 큰 손을 가진 내가 느끼는 어려움 및 고통과 비슷하다. 그래서 아예 아무것도 없는 다이어리(사실 이건 그냥 굵은 무지 노트다)를 사서 내 손으로 달력과 위클리를 그린다. 그 텅 빈 느낌은 무언가를 채워야 하는 욕구를 더 자극한다.

  그런 작은 미도리 제품을 올해는 구입하지 않았다. 아직 취직도 하지 않았으면서 직장인이 되면 뭔가 많은 내용을 쓸 것만 같아 큰 걸 원했다. 거기다가 그동안 한 번도 써보지 못한 몰스킨을 써보고 싶었다. 몰스킨 제품은 작은 수첩용 제품은 계속 써왔는데(세 개 묶음으로 판매 하는 제품), 다이어리류는 써보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몰스킨이 더 상업화되어서 가격도 오르고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는데, 언젠가 써보고 싶었다. 그러다 최근 서점에 간 김에 둘러 보았는데, 우선 내 마음에 드는 건 여전히 플레인 라지 노트다. 다이어리류들은 모두 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줄이 그어져 있었다. 위클리 버전이 그래도 가장 마음에 들었다. 왼쪽엔 한 주가 일별로 나누어져 있었고 오른쪽 페이지는 노트용이었다. 하지만 노트에 줄이 그어져 있어서 패스(사실 이 제품은 이미 대부분 품절이었다).

  플레인 라지 하드커버 노트와 미도리 미디움 사이즈 무지 노트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 온 것이 스타워즈 에디션이었다. 스타워즈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만 왠지 끌리는 그 무언가(이게 포스일까). 검색해보니 팩맨 에디션(플레인 제품을 여전히 구한다)이 나에게 더 잘 어울렸겠지만 이젠 구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플레인 라지는 2만원대 후반이었고, 스타워즈 에디션 플레인 라지는 3만 3천원이었다. 반면 미도리 제품은 미디움 사이즈를 사고 겉에 비닐 커버까지 구입해도 만 칠 천원대였던 것 같다. 가격면에선 단연 미도리 제품일텐데(사실 쓰면서 크게 불편한 점도 없었다), 이번엔 몰스킨이 끌렸다. 하지만 아직 살 여유가 없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다이어리를 새로 살 때의 그 기분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동시에 새 해를 기대하는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올 해는 그러지 못했다.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아서 바깥 외출도 쉽지 않을 정도였다. 크리스마스도 집에서 조용히 지나갔고, 31일이 다가올 즈음에도 역시 약속이 없었다. 혼자 집에서 계속 있었다. 집에 TV가 없어서 연말 시상식도 못 봤고 종치는 순간도 접하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이례적으로 복 많이 받으라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이게 스마트폰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오늘 몰스킨 스타워즈 에디션 플레인 라지를 선물로 받았다.


  지난 해 다이어리를 펼쳐보니 공백이 많다. 원래 미리 해야 할 일은 다른 색상으로 적어두고 해결했을 경우 줄을 긋는데, 다른 색상으로 적은 내용이 거의 없다. 거의 다 검은색으로 이미 지나간 일들을 기록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또한 이번엔 '올해의 문화생활'을 정리할 수가 없다. 특히 음반과 책이 그러한데, 내 기억이 맞다면 구입하고 기록하지 않은 것들도 분명 있다. 근데 그게 무엇인지 이제 감이 잡히질 않는다. 지금까지의 내 삶에선 도저히 볼 수 없었던 부분이다. 내 삶의 대부분으로 채워져 있던 CD와 책에 관한 기록이 불완전하다니(영화는 그래도 꼬박꼬박 기록해 둔 듯하다). 더 놀라운 것은 작년에 내가 구입한(선물 아닌 선물도 많이 받지만) 책과 CD의 양이 대학 들어온 이후로 가장 적었다는 것이다. 사회와 단절되어 있었던 군대에 있을 때 보다도 훨씬 적은 양이다. 학기 초에 교생도 나가고 이후에 과외도 거의 없이 살아서 재정적으로 힘든 것도 있었지만, 좀 심할 정도로 적게 구입한 것은 사실이다.

  이게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닌게, 작년에 내가 읽은 책의 양이 지극히 적다. 읽은 책의 제목은 매번 다이어리에 순서대로 기록해 뒀는데, 총 19권이다. 게다가 인문사회 서적은 단 두 권 뿐이고 전부 소설과 에세이, 시집 등의 문학 서적이다. 특이할 만한 점은 작년 시작을 <1Q84> 1권으로 했고 마지막에 읽은 책은 <1Q84> 2권이라는 점이다. 만화책과 잡지 등을 구입하긴 했지만, 이건 읽었다고 기록하지 않았다. 그리고 느낌 상으로도 잡지를 굉장히 사지 않았다. 이전엔 거의 매주 씨네와 한겨레21 등을 구입했지만 작년에는 이상하게 관심이 없었다. 언론을 같이 전공하면서 신문도 잘 보지 않았다.

  이미 지나간 해는 어쩔 수 없다. 시간이 흘러 2011년을 되돌릴 때 내 기억엔 교생실습 외에는 크게 없을 듯하다. 조용했고 재미가 없었던 한 해였다. 유쾌하고 즐거우며 나 자신이 발전하는 느낌은 거의 갖질 못했다. 그래서 올해 다이어리를 쓰기 위해 준비하면서 생각했다. 올해는 책과 CD를 많이 사고 영화도 많이 보리라 다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들 외에 나 자신의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쉽게 찾을 수 없다. 내가 지금 삶이란 것을 살아가고 있다고 지각하는 순간은 바로 이러한 것들을 즐길 때다. 전후관계 파악은 명확하지 않겠지만, 이 존재들이 부재했던 작년이 그래서 재미없었는지도 모른다. 올해는 다시 도약(어쨌든 이게 소비와 관련이 되어 있는데 돈 쓰는 게 도약이라 할 수 있다면) 해야겠다.

  좀 다른 얘기지만 김근태 전 상임고문이 별세했다. 너무 급하게 갔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내가 그동안 그에게 관심을 잘 가져오지 않았다는 증거일테다. 그런데 그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남긴 마지막 글의 제목이 날 강하게 자극했다. '2012년을 점령하라'. 이 말은 정치적 의미를 많이 내포하겠지만 그 의미까지 받아들여 올해의 내 목표로 정했다. 원래 강하고 거친 표현들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고, 뭔가 '파이팅'하는 자세를 삶 자체에선 잘 안가지려 한다. 가령 새해 초에 많은 목표를 세우고, 올해는 꼭 이것들을 이루어야지 라는 생각들은 날 지배하지 못했다(과연 그 목표가 연말에 기억나는지도 난 의문이었다). 작년과 올해는 해가 지고 뜨는 차이지 삶의 연속성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그런 걸 좀 가져보려고 한다. 목표까진 아니더라도,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려 한다. 지난 12월이 유쾌하지 않아서 더 그럴수도 있지만 되돌아보니 2011년 자체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이 상태로 나를 이끌어나가면 분명 발전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지금까지 나와는 좀 다른 태도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점령하라는 표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올해는 대학생의 신분을, 아니 학생이란 신분을 벗어나는 해다. 가능하다면 직장인의 탈을 쓰게 될 해다. 이제 다시 새로울 미래를 설계할 순간들이 다가온 것이다. 그 밑그림을 이제부터 그려보려 한다. 새로운 다이어리에 또 줄을 그으며 달력을 만들고 숫자와 요일을 적어 나갈 것이다. 줄이 만든 칸 속에 어떤 이야기들이 담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올해는 많은 것들이 담기길, 그리고 좋은 것들이 담기길 기대해본다. 내년 이 시간에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즐거웠고 점령했다는 내용은 꼭 들어가 있기를. "In a galaxy far, far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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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장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