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31일
방명록입니다.
# by | 2010/12/31 22:59 | [소소한 일상] | 트랙백 | 덧글(17)
# by | 2009/11/24 23:39 | [Short] | 트랙백 | 덧글(2)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 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영화가 시작하기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열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세상에서 떼어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세상 떼어메고
이세상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 하세로
각각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난 그저, '우린 넥타이를 메고 달력을 들고 모일 뿐이다, 그냥 우린 주저 앉아 버릴 뿐이다' 라고 자그맣게 인용할 수 있을 뿐이었다. 지금의 내 능력은 거기까지니까.
# by | 2009/11/22 12:34 | [소소한 일상] | 트랙백 | 덧글(0)
# by | 2009/11/21 16:30 | [Short] | 트랙백 | 덧글(4)
# by | 2009/11/21 16:26 | [소소한 일상] | 트랙백 | 덧글(2)
# by | 2009/11/18 21:05 | [소소한 일상] | 트랙백 | 덧글(10)
# by | 2009/11/17 10:54 | [소소한 일상] | 트랙백 | 덧글(7)
# by | 2009/11/15 14:44 | [인터뷰, 칼럼, 기사] | 트랙백 | 덧글(2)
# by | 2009/11/08 12:57 | [Short] | 트랙백 | 덧글(2)
# by | 2009/11/07 14:52 | [소소한 일상] | 트랙백 | 덧글(4)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