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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입니다.



내용은 추가하겠지만, 기본적인 방명록이 되겠습니다. 덧글을 달고 싶으나, 글 내용과 상관이 없다면 이곳을 이용해주세요.






by James | 2010/12/31 22:59 | [소소한 일상] | 트랙백 | 덧글(17)

대통령과의 대화?


대통령과의 대화 vs 국민과의 대화

http://mbn.mk.co.kr/news/newsRead.php?vodCode=470805&category=mbn00006


당신이란 사람,
당신이란 사람의 주위에 있는 사람.

거참.

by James | 2009/11/24 23:39 | [Short] | 트랙백 | 덧글(2)

나는 이 시들을 인용할 뿐이다.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 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영화가 시작하기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열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세상에서 떼어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세상 떼어메고
이세상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 하세로
각각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난 그저, '우린 넥타이를 메고 달력을 들고 모일 뿐이다, 그냥 우린 주저 앉아 버릴 뿐이다' 라고 자그맣게 인용할 수 있을 뿐이었다. 지금의 내 능력은 거기까지니까.


by James | 2009/11/22 12:34 | [소소한 일상] | 트랙백 | 덧글(0)

그날 장철수는 소주 반 병에 취했다.


  김훈의 <공무도하>를 읽다, '그날 장철수는 소주 반 병에 취했다.'라는 문장을 읽고 책을 덮었다. 원래 소주는 이런 존재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소주란 싼 만큼 그 쉽게 잊을 수 없고 가시지 않는 알코올의 맛이지 않을까. 가슴을 한 껏 모아서 자세를 취하거나, 허벅지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생물학적으로 보여주며 몸을 흔드는 광고 속에서 보여주는 소주가 아니라, 조그만 잔에 마실 수 밖에 없는, 싸지만 벌컥 벌컥 마실 수 없는, 게다가 어느 날은 소주 반병에 취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 소주가 아닐까. 그 맑아보임 속에 품은 얼큰함은 화려하게 흔든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고 사라져서도 안된다. 소주는 소주일 뿐이고, 소주는 소주여야 한다.

by James | 2009/11/21 16:30 | [Short] | 트랙백 | 덧글(4)

내가 아닌 나


  이승환의 <내가 바라는 나>를 무지하게 듣고 감정을 이입하던 시기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였으니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그 가사를 들으며 실제로 내가 바라는 나는 무엇이며, 그 가사와 나는 얼마나 관련이 있나 라며 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곤 했다. 그 고민은 어차피 끝이 없는 것이었고, 끝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은 일종의 잠시 쉼일 뿐이었다. 그래서 다시 그 노래를 들을 때는 다시 끝인 줄 알았지만 실제로 끝이 아닌 순간으로 이동하려 했다.

  며칠 전부터 난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고, 행동도 그렇게 하고 있다. 시간은 언제나 모자라다는 생각으로 살아오던 내가 잠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멍하게 많은 것들을 놓아버렸다. 기억속에 존재하던 할 일들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가 있었다는 존재감 뿐이었다. 하지만 그 존재는 껍데기였고, 껍데기 뿐인 존재도 존재라 할 수 있나, 라는 시건방진 생각으로 멍한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잘 쓰던 몰스킨 포켓사이즈 메모장을 잃어버렸다. 어제 오후 수업까지 열심히 할 일과 같이 발표하게 된 사람의 연락처를 적어두고 수업이 끝나자 마자 가방에 챙겼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 가방에서 그 사람의 연락처를 확인하려고 수첩을 찾았지만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는 껍데기 조차도 없는, 존재하지 않음의 존재를 인식시키는 순간이었다.

  난 무엇인가를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이다. 나의 것의 관념이 워낙 강해서인지 지갑이든 펜이든 수첩이든 돈이든 거의 잃어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 수첩을 잃어버리면서 지금의 나는 정말 내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에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머리도 제대로 말리지 않은 상태에서 어제 수업을 들었던 강의실에 찾아가 불이 꺼진 어두컴컴한 상태로 내가 앉았던 자리 주위를 뒤졌다. 역시나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수업에 들어가기 전부터 내 옆 책상 서랍에 있던 쓰레기는 여전히 있었다. 어제 저녁에 잠시 식사를 하러 들렸던 식당에 가서 떨어진 수첩이 없었냐는 질문에 당연히 없었다는 듯한 대답을 듣고 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난 분명 첫 페이지에 내 이름과 연락처와 메일주소를 남겨뒀었다. 잘 잃어버리지 않는 자의 특징은 잃어버릴 경우 잘 찾을 수 있도록 방편을 세워두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의 신경씀이 분실의 위험요소를 낮추는 것일테다. 그 수첩은 언제나 내가 들고 다니며 필요한 부분을 메모하던 곳이었다. 올해 선물받았던 다이어리는 무겁기 때문에 평소에 잘 들고 다니지 못해 수첩보다는 말 그대로 스케줄과 기록의 장이었을 뿐, 내 소소한 끄적거림은 그 수첩이 담당했었다. 거기엔 내 헛된 망상들과 쓰고도 뿌듯해서 여러번 훑어보던 일기들과 내 계획들, 그리고 여러 사람의 연락처와 메일주소가 기록되어 있었다. 내가 한가지 걱정되는 건, 그 수첩을 어제 부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썼다는 데 있다. 혹시나 누가 주워들었다가 다 쓴 것이라 여기고 그것을 당연히 버린 건 아닐까 걱정 뿐이다.

  그 수첩을 누군가가 집어 들었을 때, 누구나가 그렇듯이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지 훑어봤을테다. 그 속엔 내가 있을까. 지금은 '내가 아닌 나' 이지만, 그 수첩 속엔 원래의 '나인 나'가 들어 있을 것일까. 내가 앞으로 소중히 간직하려 한 수첩의 첫 번째 권이어서 그런지 더욱 아쉬움이 크게 남아 있다. 새로 선물 받은 다른 색의 메모장이 또 있긴 하지만, 이건 두 번째다. 첫 번째를 대신할 수 없다. 아마 이 새로운 색상의 수첩에 새로운 나가 들어갈 지 원래의 나가 들어갈지는 모를 일이지만, 여전히 난 첫 번째의 수첩의 상실이 아쉽다. 그 속에도 내가 바라는 나가 들어 있을 수도 있다. 그 수첩의 마지막 페이지에 무언가를 끄적이면서 그 내가 바라는 나의 끝이 아닌 끝을 남겼을 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느낌은 잃어버린 자만이 알 수 있다는, 하나마나한 말이 생각난다. 뭐든지 경험해보지 않은 자는 그 느낌을 모르는 것이 당연할텐데, 그걸 일종의 특수성으로 치부해버리는 건 언어적 낭비다. 하지만, 나는 잃어버림으로써 그 잃어버린 자의 느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라는 문장을 쓰면서 내가 잃어버리기 전에 상상했던 잃어버린 자의 마음과 내가 잃어버리고 난 후의 마음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지금은 사실 안타까움보다, 그 잃어버림으로 인해 내가 바라던 나를 얻게 된 그 자가 어떻게 생각할지가 더 궁금하다.


  하지만, 나도 보통의 잃어버린 자처럼 다시 찾아서 '찾은 자'가 되고 싶다. 그게 내가 간직하고 싶은 첫 번째 수첩이어서인지, 아니면 만약 그게 두 번째 수첩이었어도 내가 이렇게 찾고 싶었을까, 라고 묻는다면 대답을 잘 못하겠지만, 그래도 찾고 싶다. 그렇다면, 그것을 가지고 있는 자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 글자를 알아보기나 할까, 아니면 이해를 하기나 할까. 문득, 그 수첩이 그 사람에게는 하등의 가치도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또 다른 문제다.


by James | 2009/11/21 16:26 | [소소한 일상] | 트랙백 | 덧글(2)

술과 안주


  난 주위 사람에 비해 술을 못먹는 정도는 아니다. 난 이런 부분에 관해선 꽤 소심한듯 해서, 나 남들보다 잘 먹어, 라고 얘기하면 '그래? 그럼 나랑 한번 붙어'라는 말이 나올까봐 그런 말을 쉽게 하지 못한다. 어찌되었든 술자리에서 기억을 잃어본 기억도 없고 그 자리에서 먹은 것을 되뱉어낸 적도 없고, 구토를 한지는 5년이 넘어간다. 같이 술을 자주 먹는 사람들이 술을 잘 못먹어서 일수도 있지만, 난 술을 많이 마신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언제나 정신을 또렷하게, 내가 하는 말의 논리가 언제나 분명하게, 남들이 봤을 때 취했다고 느껴지지 않게 행동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도 한가지 단점이 있다면, 바로 안주다.

  난 술자리의 기본은 좋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분위기와 안주도 꼭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지저분한 술집도 싫을 뿐더러, 싼맛에 먹는 술집도 싫다. 술을 자주 안마시다보니 더욱 한번 먹을 때 괜찮은 곳에서 먹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 때도 중요한 게 안주다. 난 술을 마실 땐 꼭 술 만큼 맛있는 안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술 마실 때 사이다가 꼭 있어야 한다 라는 논리와는 다르다. 그것과 같은 비교는 절대 금한다. 그것과는 달리, 술맛을 더욱 맛있게 이끌어주는 안주가 꼭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조합이 난 남들과 조금 다를 때도 있다. 남들이 좋아하는 안주를 보통 좋아하지만, 남들이 그게 어울려? 라고 물어 볼 만한 조합도 있다. 가령, 난 통닭에 소주가 그리 나쁜지 잘 모르겠다. 남들은 통닭에는 맥주지!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걸 부인한다는 게 아니라 소주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뜻이다. 술을 마실 나이는 안되었지만 마시고 싶었던 시절, 친구들과 허름한 닭집을 자주 찾아 갔었다. 양념된 닭꼬치를 전문으로 파는 곳에도 자주 갔고, 실제로 양념통닭 같은 것을 파는 곳에도 자주 갔다. 그 주인들이 우리가 술을 마실 나이가 되어보이는지 혹은 실제로 그 나이가 되었다고 판단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되었든 우리는 그 안주 앞에서 소주잔을 기울였고 우리만의 고민거리를 계속 나열했다. 그것때문인지 몰라도, 집에서 가끔 닭을 시켜 먹을 때 혼자 소주도 같이 사와서 먹곤 했다.

  두 번째 조합은 샌드위치와 맥주다. 이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그리 배가 부르지도 고프지도 않은 상황에서 무언가 같이 먹길 원한다면, 샌드위치가 굉장히 잘 맞다. 특히 이때는 맥주 맛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편의점에서 파는 1500원이 기본인 샌드위치도 이 때는 참 잘 맞다. 배부르게 맥주를 마실 정도의 샌드위치를 같이 먹진 못하지만, 적당한 맥주에는 잘 맞는다.

  그리고 또 한가지 조합은 치즈케익과 맥주의 조합이다. 이건 굉장한 우연의 발견으로 알게 되었는데, 말만 치즈케익이고 치즈의 부드러움만 약간 남아있는 제과점 케익 말고 진짜 치즈가 많이 들어간 것 같은 치즈케익과 맥주를 같이 입에 넣고 오물거리면 그 맛이 나에겐 환상으로 다가온다. 분명 지금까지 나열한 것들처럼 그게 가능해? 라고 물음이 생길지 모르나, 실제로 해보면 꽤나 신기하게도 어울리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오늘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 있어 학교 앞 스타벅스에서 치즈케익(이곳 치즈케익의 진함을 인정하자) 두조각을 사와서 호가든 병맥주와 같이 지금도 마시고 있다. 이렇게는 참 오랜만에 마셔보는 것 같은데 여전히 맛이 좋다.

  치즈케익을 박스에 담아 달랑달랑 들고오면서 또 <가족의 탄생>이 생각났다. 오랜만에 다시 볼까라는 생각을 하며. 예전엔 집에서 술만 마시면 난 이 영화를 틀어서 보면서 술을 마셨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 집에서 술을 잘 안마시게 되었고 그만큼 이 영화도 멀어져 갔다. 혼자 치즈케익을 입에 넣고 맥주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이제는 눈감고도 나오는 배우들의 대사를 난 내뱉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맥주와 케익만 마시고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술의 조합은 소주와 초밥이다. 소주 한잔에 초밥 하나씩을 곁들이면 수없이 잔을 넘길 수 있겠지만, 그 칼로리와 배부름을 생각하면 오래가지 못하는 조합이긴 하다. 이건 술을 못먹는 사람의 특징이곤 하지만, 난 아직도 '맛있는' 술을 찾고 있고 좋아한다. 이건 맥주를 마시면서 맛있다, 라고 말할때의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누구나 먹어도 음식이나 쥬스처럼 맛있다, 라는 말이 나오는 술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술과 좋은 분위기에서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안주를 곁들이는 즐거운 순간에 올해가 가기전에 한번은 꼭 있었으면 좋겠다.


  아, 아직도 그날 밤, 좋은 사람들과 눈이 내리는 창밖을 보며 마셨던 술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by James | 2009/11/18 21:05 | [소소한 일상] | 트랙백 | 덧글(10)

화요일은 변신하는 날


  화요일은 가정주부가 되는 날이다. 화요일은 수업이 없긴 하지만, 아침부터 많은 일들을 해야 한다. 새벽일찍 모아둔 빨래를 세탁기에 넣어야 하고, 그 세탁이 되는 시간 동안 방 청소를 해야한다. 워낙 좁은 방이라 바닥을 닦고 책장의 먼지를 좀 닦고 창틀의 먼지를 제거하고 나면 끝이다. 방이 좁아서 그런것인지 열 수 있는 창문이 크지 않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먼지가 잘 보인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나면 먼지가 묻은 걸레를 따뜻한 물에 담궈두고 화장실 청소를 한다. 화장실에서 다른 방의 담배냄새가 가끔 올라오는 것 같아 문을 자주 닫아두는데, 그래서 그런지 물기가 잘 마르지 않아 세균이 많은 느낌이 든다. 약간 붉은 기운의 때가 자주 벽같은 곳에 묻어 있는 게 보여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청소를 해줘야 한다.

  분명 예전에 남자가 살았음이 확실한 이런 방들에 살다보면, 첫 한달 간은 그 더러움에 놀라게 된다. 그래서 꽤나 열심히 청소를 하곤 한다. 화장실도 처음엔 너무 심했다. 원래 있는 얼룩인가 싶은 부분은 모두 곰팡이나 물때였고, 난 열심히 청소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열심히 화장실 바닥과 변기를 닦았고, 걸레를 빨고 깨끗하게 샤워를 했다.

  마지막으로는 방에 그래도 하나 밖에 없는 선물받은 화분에 물을 준다. 이 정도 하고 나면 빨래 시간은 거의 끝나가고, 난 빨래를 널 준비를 한다. 아침부터 해서 널지 않으면 그 날 저녁에 빨래가 다 마르기가 힘들다. 게다가 날이 추워지니까 더욱 빨리 널어야 한다. 워낙 빨래 널 곳이 협소하다보니 남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아무래도 창가이긴 하지만 실내이다 보니 다른 냄새가 옷에 배일수도 있는 것이니까.

  이렇게 화요일은 시작된다. 청소를 다 하고 창을 환하게 하면 무언가 새로워진 기분이 든다. 그녀가 준 사쿠란보 티를 우려 마시며 글을 쓴다(이 사쿠란보 티를 팔던 사이트가 더이상 판매를 하지 않는단다. 어디서 구해야 할까). 이렇게 오전을 여유롭게 보내면 난 내가 살아가고 있구나, 라는 걸 느끼게 된다. 하지만 오후부터는 또 과제를 해야하고 수업을 준비해야한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보다는 편안하니까.


  날이 점점 더 추워지고 있다. 다시 서울에 올라와서 더위와 에어컨 때문에 고민했던 내가 몇 달 만에 추위를 걱정하고 있다며, 난 편지에 썼다. 체격이 크다보니 겨울에 남들처럼 패딩이 들어간 외투를 입지 못했는데, 그러면서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타이즈나 내복같은 걸 군대에서도 안입고 지냈는데, 이상하게 올해는 그런 패딩이 들어간 외투가 사고싶어졌다. 왠지 올 겨울은 따뜻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랄까. 며칠 전에도 잠시 둘러보았는데, 겨울 외투는 코트가 아니면 정말 이쁜게 잘 없더라. 게다가 키가 커서인지 짧은 외투는 사지말라는 얘기에 더욱 내가 살 수 있는 폭은 줄어들게 되었다. 이번 겨울엔 그동안 어렸을 적 빼고는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장갑도 살 예정이다. 그녀는 이런 날 보고 나이가 드는 것이라고 했다. 진짜 그런 것일까.

by James | 2009/11/17 10:54 | [소소한 일상] | 트랙백 | 덧글(7)

저자와의 대화 - 김훈(알라딘, 오마이뉴스)


기사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60265&CMPT_CD=P0000

  김훈 작가의 강연을 보았다. 알라딘에서 예전에 신청했는데, 김연수 작가의 낭독회는 되고 김훈 작가의 대화는 당첨되지 못했다. 다행히 오마이뉴스에서 기사로도 나왔길래 따뜻한 전기장판위에 앉아 웃으면서 지켜보았다.

  김훈은 나에게 굉장히 어려운 사람이다. 게다가 난 그의 특성을 '이질성'이라고 단정짓는다. 그의 글을 읽을 때 생기는 의문점과 난해함은 그의 '형식주의'에 대한 지지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는 형식 그리고 문체를 기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문체가 형성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 라고 생각한다. 그는 허영심이라고 말했지만, 주어와 동사(원래는 서술어가 맞는 표현일테지만)만으로 이루어진 글을 쓰고 싶다고 한다. 난 그가 겸손의 의미에서 허영심이라고 했겠지만, 솔직히 100가지의 문체를 만들고 싶다, 라고 할 줄 알았지만 그는 문체 한가지에 대해서도 어려워했다.

  그가 좋은 이유를 나보고 물으면 난 참 대답하기 어렵다. 문체 때문이다, 라고 답하는 것은 너무 뻔하고, 소재를 가져오려고 해도 소재가 특이하지 않다. 그럼 뭔가, 라고 물으면 난 이질성에 덧붙여 나 자신이 느끼는 '희미함'을 나열한다. 이건 모순이다. 뭐냐면, 질문자의 말처럼 그의 글이 스트레이트 기사 같다는 생각을 했단다. 아마 그 질문자는 평소에 그의 글을 거의 안읽어봐서 그런 당연한 말을 했을테다. 무엇이냐면,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김훈의 특징이다. 기사에서 쓰던 문체를 문학으로 가져온 것이다. 여기서 이질성이 드러나는데, 그에 덧붙여(다시 강조하지만 나의 경우만 일 수도 있다) 문장의 연결사이엔 많은 것들이 빠진 느낌이 든다. 흐름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내용적 개연성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문장과 문장의 연결에서 그 의미적 연결이 나에겐 '희미하게' 다가 오는 것이다. 그래서 난 <남한산성>을 세 번이나 다시 놓아야 했고 아직 끝까지 읽지 못했다. 난 정말 궁금하다. 내가 김훈 작가가 한말 중에 가슴깊이 와 닿는 말인,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표현하려는 것' 이란 말을 자주 이용하면서 표현하는데, 그처럼 그 간극이 난 희미함이라고 생각한다. 이 희미함은 사라지는 희미함이 아니다. 일종의 안개와 같은 희미함이다. 난 가끔 이것을 함축성으로 잘못 이해하기도 하고, 시를 쓸 수 없다는 그의 말을 의심하기도 한다.

  또한 그의 특징 중 하나는 관찰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아마 오랜세월 그의 밥벌이 였던 기자생활을 통해 만들어진 것일테다. 그런데, 그는 그 관찰을 글로 자세히 나열하지 않는다. 묘사하려하지 않는다. 난 묘사라는 것은 대상 혹은 사물의 모습에 작가의 색깔이 입혀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그의 글은 묘사하지 않는다. 일종의 나열이다. 또한 그가 이번 대화에서 말했듯이 관찰한 모든 것을 글로 쓰지 않는다. 그 중에 극히 일부를 쓸 뿐이다. 그는 그 관찰을 바탕으로 인간을 묘사한다. 사회상은 그 인간의 행동을 통해서 나타난다고 본다. 그 인간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나열하지 않고, 그 인간의 행동을 통해서 그 말하고자 하는 바와 의미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그는 나쁜놈이다'를 그는 쓰지 않는다. 이 짧은 한 문장을 표현하기 위해 수많은 문장을 덧붙이지만 그게 장황하지 않게 느끼게 하는 것, 그게 바로 그가 짧게 쓰려고 노력하는 문장의 장점이다.

  난 문학을 비롯한 예술이 극히 소소한 일상을 나열하든지 아니면 내가 행하지 못하는 극한의 행동을 보여주길 원한다. 내가 문학이나 영화와 같은 예술을 향유하는 그 이유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뇌는 들쑤셔지는 것이다. 하지만 김훈은 내 분류에 따르면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다. 그냥 그의 글은 사건보다는 '있음' 자체를 나타내려 한다고 본다. 있는데, 최대한 간결하게, 최대한 글 쓰는 나는 감정이 없는 타자기(컴퓨터는 타자기를 대신하지 못한다)와 같은 느낌으로 글을 써내려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인간의 의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쓰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김혜리 기자가 그와 한 인터뷰에서 몽땅연필을 든 '무사'라는 표현은 어울렸다고 판단된다. 무사에게는 武만이 중요한 것이다. 그에게 군더더기는 필요 없다. 하지만 무사도 인간이다. 이 어울리지 않음을 나타내기 위해 김훈 작가는 얼마나 고심을 할까. 수없이 돌려야하는 자전거의 페달은 수없이 고민해야하는 그의 모습을 닮았다고 하는 것은 오해일까.



  다 쓰고 보니 이번 대화를 보며 쓰려고 했던 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글이 되어버렸다.

by James | 2009/11/15 14:44 | [인터뷰, 칼럼, 기사] | 트랙백 | 덧글(2)

향뮤직이 날 바람맞췄다


  없는 시간내서 오랜만에 신촌까지 왔는데 향뮤직이 문을 안열었다. 분명 12시가 넘어서 도착했는데 철창이 내려져 있었다. 근처 스타벅스에 앉아 향뮤직 사이트에 들어가봤더니 오후 12시 부터 밤 10시까지 문을 연단다. 하지만, 날 바람맞췄다. 수업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 백팩도 메고 옆에는 2kg이 넘는 노트북을 낑낑대며 들고 왔는데, 비가 와서 우산도 들고 왔는데, 후드티에 점퍼까지 입고 왔는데 보란듯이 해가 날 비추고 있었다. 이 느낌은 뭐지. 맞은 편 여자는 이석원의 책을 읽고 있다. 향뮤직, 기다려라.

by James | 2009/11/08 12:57 | [Short] | 트랙백 | 덧글(2)

난 글을 못쓴다는 자기혐오


  어제 며칠 간 준비하던 과제물 하나를 제출했다. 매스컴과 관련된 수업이었는데, 이번 10.29 재보선 관련 언론보도나 정당게시판이나 인터넷게시판을 정해서 비교분석 하는 것이었다. 교수님께서 독창성을 요구하셨는데, 어떤걸 표본으로 할까 하다 주간지에 초점을 맞췄다. 주간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나오고, 그로 인해 보도성격이 다를 것이라 판단하여 몇 달 전부터 계속 모아오기 시작했다. 시험기간도 있었고 생활도 바쁘다 보니 다 읽진 못했는데, 그래도 계속 모아왔다.

  과제 제출 기간이 다가옴에 따라 잡지를 다시 뒤적여봤는데, 이상하게 이번 선거 관련 글들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없는 주도 있어 무언가 내 준비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주 월요일에 방향을 급선회 하였는데, 선택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선거 이전의 보도태도 보다는 선거 이후 결과에 따른 보도태도에 집중하자는 생각에 교수님께 조사 계획을 메일로 보냈다. 답은 긍정적이었고 난 자신감을 갖고 글을 써나갔다.

  논문의 형식이었지만 논문이라고 할 정도의 수준도 분량도 아니었다. 어찌되었든 논문의 형식으로 서론부터 차츰 써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정말 빨리 써나갔다. 어찌나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예전에 읽었던 서적들도 다시 도서관에서 대출하여 인용하며 글을 이어나갔다. 서론을 지나 연구방법과 문제제기를 거쳐 분석에 들어가는데, 난 분석이 제일 힘들었다. 이 내용은 뒷부분에 자세히 써내려 나가겠다.

  내가 선택한 언론 매체는 한겨레신문, 경향신문과 조선일보, 중앙일보였다. 과제물에 둘 이상의 비교만 있으면 됐는데, 왠지 더욱 확고한 차이를 느끼고 싶어 네 종류의 매체를 택했고, 선거 이후인 10월 29일 부터 11월 4일 까지의 보도를 분석하였다.


  한가지 놀라웠던 것은 생각보다 보수매체가 의도적인 내용이나 악의적인 제목을 두드러지게 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령, 참여정부 시절에는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이라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웃지 않고 찡그린 표정의 사진을 자주 기재하던 보수매체였지만,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 결과 자체를 기사화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의 깊이나 언어 사용에서는 아직도 매체별 시각차이가 보였고, 인용하는 말들도 달랐고 나아가 한나라당의 패배에 대한 후유증에 대한 평가도 달랐다.

  내 과제물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내 과제는, 언론사별 정치적 입장 혹은 선거 전 지지하는 정치인을 확고히 공표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라는 인식에서 시작했다. 한 논문에서 어떤 교수는, 언론의 '편향성' 문제를 지적하며 미국이나 선진국의 경우에는 선거 전 정치적 지지자를 확실하게 밝히는 분위기가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편향성을 의식해서도 그러한 것이 이루어지면 안된다는 요지를 밝혔다. 난 거기서 부터 의문이 시작되었다. 왜 우리 언론은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일까.

  그 '이유'에 관해선 내 과제물 논외였기 때문에 언급만하고 지나갔고, 내가 분석한 기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어떤 독자든 매체에 자주 접근한다면 그 매체의 정치적 성향이나 특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한 확고한 정치적 성격을 매체가 공표함에 있어 긍정적인 결론을 내리면서 나 자신의 주장을 이끌어 나갔다. 하지만, 거기에 덧붙여 매체별 부수차이가 좀 더 좁혀져야 하는 충분조건도 밝혔다.

  태어나서 이렇게 보수언론의 웹페이지를 자주 들락거리고 기사를 많이 읽었던 적은 없었다. 며칠 간 너무 많은 기사를 반복해서 읽은 탓인지 과제물을 제출할 때 즈음 되어서는 머리가 아팠다. 수정을 거듭하여 수업시간 20분 전에 마무리를 하고 프린트를 해서 수업에 참여했다.

  솔직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이 20분이 지나니 자기혐오로 변해가기 시작함을 느꼈다. 내가 지금 써놓은 이 글이 굉장히 서툴러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분석쪽은 자신이 없었다. 나 자신의 작위적인 해석이 포함되는 게 아닐까를 최대한 우려하면서 분석했지만, 그래도 내 선입견이 들어가 있진 않을까 고민됐다(그래서 '사설'은 자료에서 제외시켰다). 위에서 썼듯이 서론부터 문제제기 및 연구방법까지는 너무나 술술 써졌다. 왜냐하면 그냥 내 생각을 나열하는 것이고 내 지식을 바탕으로 쓰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분석부분에서 난 굉장히 힘들었다. 보수언론의 글을 읽는 것 때문인지, 아니면 내 분석능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한 글을 마무리 했을 때는 분명 만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니 그 글이 너무 한심해보여 다 찢어버리고 싶었다. 게다가 남들이 제출하는 과제를 얼핏봐도 신경써서 했다는 게 너무나 쉽게 보였다. 또한 교수님께서, 과제물을 얼핏 봤는데 한겨레와 조선일보 비교한 것들이 되게 많았다, 자신이 그걸 선택하기 전에 남들도 그것을 선택할 것이라는 걸 몰랐나, 라는 내용의 말을 수업 중에 덧붙이는 순간부터 그 좌절감은 너무 커져갔다. 난 분석내용이나 방식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대상에 대한 독특함은 생각조차 안한 것이다. 그때부터 자기혐오와 이 수업에 대한 지루함이 세시간동안 날 휘감았다.

  금요일 오후 세 시부터 이루어지는 세 시간의 수업은 내가 가장 기대하고 재미있어하던 수업이었다. 하지만 어제따라 이상하게 굉장히 지루했다. 특정 논문을 모두 읽어오고 몇 명이 미리 그 논문의 분석 및 '현실과의 적용'에 관한 발표를 준비해오는데, 발표 할 때 논문의 분석이 너무 지루했던 것이다. 모두 다 읽어와서 아는 내용인데 마치 자신의 분석인 양 준비해온 대본을 읽어내려가는게 굉장한 '시간 낭비'로 여겨졌다. 논문에 있는 내용을 구어체로 바꿔서 설명할 뿐이지 반복이었던 것이다. 지금 내가 저 사람이 얼마나 잘 분석했는지를 보려고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인가? 난 연습장에 계속 '지루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적어 내려갔고 질문도 하고 싶지 않았다. 대학생은 더 나아가 성인은 어떤 대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잘 없는 것일까, 아니면 그걸 말하기 꺼려하는 것일까.


  굉장히 기대하던 수업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고 엄청나게 열심히 준비했고 나름의 만족감을 가졌는데, 그 과제를 제출하자 마자 몰려온 자기혐오와 수업의 지루함과 고리타분함이 날 너무나 지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친한 애들에게 맥주나 한잔하자고 문자를 보냈더니 금요일이라 그런지 쉽게 긍정의 답이 왔고 난 내 답답했던 세 시간을 녀석들에게 말해줬다. 그런데 대답이 놀라웠다. 보통 요즘애들 발표 다 그런식으로 한다고. 자기가 준비해 온 대본 같은거 그냥 읽는다고. 어쩔 수 없지 않냐고.

  난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게 무슨 대학생의 발표냐고. 발표라는 것은 대상에 분석도 있지만, 자기가 그걸 소화하고 자기만의 언어로 말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발표 때 예전에 있었던 '특정 사건'을 예 중 하나로 들면서, 그 특정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무슨' 일이었는지 조차도 모르는 데 그게 무슨 발표냐고 난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긴 하루가 흘러갔고, 난 너무나 지쳐서 인지 오늘은 늦잠을 자버렸다. 다음주에는 말하기(스피치) 발표가 있다. 내용적 준비도 다 되었고 구성도 다 되었고, 이제 스피치 원고만 작성하면 끝이다. 생각보다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어 좋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과 학문을 공부하는 것이라 바빠도 좋다. 하지만, 이러한 허무감과 나 자신에 대한 실망 및 자기혐오가 엄습하면 난 그냥 욕조속으로 꼬르륵 하고 들어가 버리고 싶어진다. 물 속에서 '웅-'하는 소리만이 내 귀와 뇌속에 가득 퍼지는, 그 순간을 느끼고 싶어진다.


by James | 2009/11/07 14:52 | [소소한 일상]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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