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쉽게 흘러가 버린다 by James


  지난 주에는 일본을 다녀왔다. 주말 포함하여 3일을 다녀왔는데 이렇게 짧게 다녀온 적은 처음이다. 짧게 가는 만큼 빡빡한 일정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니다. 도쿄는 여전히 좋았다. 아니, 여전해서 좋았다. 남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 겉으로 보일지라도 타인에게 친절한 태도 등은 언제나 내가 마음 편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계획했던 것들을 많이 구입하지는 못했다. 일본 생산이라 가격이 비쌀지라도 원스타 두 켤레 정도는 구입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사이즈가 없었다. 포터에서 메신져백 혹은 힙색 같은 형태의 가방을 사려고 했는데 가는 곳마다 원하는 컬러가 없었다. 이건 끝내 긴자에 있는 한 백화점에서 떠나오는 날 구할 수 있었다.

  기계식 키보드가 하나 갖고 싶었다. 지난 번 글에도 썼듯이 키감이 좋은 키보드를 사게 되면 글을 좀 더 많이 혹은 잘 쓸 것 같아서 사고 싶었다. 아는 동생이 갖고 있는 레오폴드 기계식 키보드를 시타 해봤는데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 저것 검색하다가 끝내 그 끝판왕이라고 말하는 해피해킹 프로 2 모델을 구입했다. 각인이 되어 있느냐 없느냐, 컬러가 블랙이냐 화이트냐에 따라 총 네 가지가 있었다. 올 하반기에 구입할 맥을 생각해서 블랙으로 구입하려고 했으나 실물을 보니 잘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 화이트를 사게 되면 영어 각인이 있는 것으로 하느냐, 없는 것으로 하느냐 고민해야 했는데, 끝내 화이트 무각인으로 구입했다. 실은 내 가지 중에서 가장 고려치 않은 형태였는데, 끝내 구입하게 되었다. 지금 이 글은 그 키보드를 사용하여 처음으로 쓰는 글이다.

  오랜만에 다이어리를 정리하다가, 벌써 6월도 20일이 되어 버렸단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일은 여전히 많다. 메르스니 뭐니 해도 내가 일하는 곳은 아무 상관이 없나보다.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와서 기다리는 중이다. 처음에 이 일을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은 수많은 야근과 주말출근을 통해 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끝맺음 하였다. 그렇게 일이 손에 익어가다 보니 어느덧 상반기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고작 상반기 동안 휴가를 단 하루 썼을 뿐이다. 하지만 옆에서 업무를 가르쳐 주신 차장님은 단 하루도 쓰질 못했다.


  아무리 상반기를 되돌려 보아도 기억에 남는 건 몇 가지 없다. 작년에 얻은 포상으로 캄보디아를 다녀온 일, 새로운 장소에서 새 일을 배우고 시작한 것,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 것 정도다. 하지만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건 역시나 '일'이다. 시도 때도 없이 일만 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일을 빼면 크게 남는 게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예전만큼 소비를 많이 한 것도 아니고, 많은 책을 읽지도 않았다. 음악에 대한 소비는 많았고 좋은 음악을 꽤 많이 들을 수 있는 상반기였다. 좋은 이어폰 하나를 선물받았고 여전히 턴테이블은 구입하지 않았다. 그래도 종종 한정판이란 명목하에 LP 몇 장을 구입했다. 영화는 유명하다는 몇 편을 멀티플렉스에서 봤을 뿐 집에서 찾아서 보진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건 다시 책을 잡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서점은 꾸준히 다녔기에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 꽤 있는데, 이것들만 다 읽어도 하반기가 훌쩍 지나갈 것 같다.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이유는 쉽다. 일본 지하철에서 쉽게 보이는 모습들이 원래 내 행동방식을 되살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최근에 접한 신경숙의 표절 논란은 서글픈 감정이 들게 만들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같이 좋아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렇게 만든 것은 '삶'이란 커다란 명제일 수도 있고, 혹은 그것을 좋아하는 환경이 점점 척박해져서 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해본다. 특히 한국에선 더욱 그런 경향이 잘 느껴진다. 여전히 좋은 음악, 좋은 영화는 많이 나오는데 그 좋음에 대해 얘기 나눌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러다 언젠가는 이런 행위들이 어색해지는 순간이 오는 건 아닐까. 혹은 그런 걸 누군가가 대신해주는 삶이 오는 건 아닐까 과장해 보기도 한다. 좋은 건 나눠야 한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한데, 그게 소비만이 가진 전유물이 되어가는 것 같아 또 서글프다. 다들 요즘 뭐하면서 지내시나요.




사람이 쉽게 변하겠는가 by James



  더 이상 기록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다이어리 속 기록은 이미 내가 사는 시간보다 한 두 달 늦어졌고, 무엇을 읽든 보든 기록하는 것을 필수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한 해를 정리하고 그 동안 본 것들 산 것들을 둘러보며 다음 해를 기약하는 작업이 삶에서 사라졌다. 단지 기록만 사라졌다. 현실 속 행위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기록하지 않는 경험과 글로서 정리되지 않는 순간들은 조금 덜 기억된다는 기분은 단지 익숙함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곳도 마찬가지다. 컴퓨터 자체를 켜는 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가끔 인터넷을 할 때 들어오긴 했지만 무언가를 써야겠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써야 할 것들이 없었다. 내 속에서 쌓여가는 것들이 없었다. 정리해야 할 관계도 없었다. 익숙했던 삶은 이어졌고 그 속에 조금의 나태함이 들어왔다. 매주 일요일 저녁에 행하던 셔츠 다리는 게 귀찮아져서 아침 출근 전에 하나씩 다려 입는 삶이 몇 주간 이어졌다. 좁은 방이어도 공냥이 털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 돌리던 청소기도 토요일 오전에 잠시 사용할 뿐이었다. 집에서 밥은 별로 먹지 않으면서 마시는 건 많아, 싱크대에 쌓인 컵과 텀블러들을 일주일 넘게 방치하기도 했다. 예전의 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 이상 기차를 타고 출근하지 않는다. 회사를 옮긴 건 아니고 2년 만에 서울로 발령 받았다. 현재 사무실에서 일 한지도 5개월 째다. 회식을 하든 야근을 하든 집에는 올 수 있는 삶이다. 그렇게 꿈꿔왔던 이사를 해야 할 상황이지만 현재 위치가 애매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집에는 짐이 쌓여만 가고 나는 약간의 공간을 마련하여 잠만 잤다가 다시 출근하는 삶을 이어갈 뿐이다. 공냥이는 이 좁은 방에서도 놀아보려 하지만 공간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걸 아는 듯하다. 집이란 공간을 좋아하지만 좋아할 수 없는 현 상황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사들인 것이지만 이 많은 짐이 다 뭔가 싶은 순간이 비주기적으로 돌아온다.


  최근에 영화는 잘 보지 않았다. 아니, 보고 싶은 영화가 별로 없다고 하는 게 맞을테다. 그렇다면 예전 영화들 중에 미처 못 본 것들을 봐야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매주 일요일 저녁엔 혼자 영화보는 시간이라며 만들곤 했는데 일찍 잠들기 바빴다. 두 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을 여유조차 없었다. 어쩌면 그 여유를 만들 의지 자체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음악은 끝없이 듣고 있다. 생활비의 1/3 이상을 음반에 쏟아붇는 달도 있는데 그러한 판단은 이미 행위가 끝난 이후에 이루어진다. 평소에 좋아하는 밴드나 뮤지션의 음반은 새로 잘 나오지 않다보니 처음 듣는 인디밴드(국내든 국외든)들의 음반이 대부분이다. 별 고민없이 구입해서 리핑해서 듣거나 무지 CDP로 들으면서 틈나는 시간을 보충하고 있다. 오늘은 밀린 집안일을 하며 밀린 리핑 작업을 하다가 Decemberists 의 2015년 음반을 듣는데 참 좋아서 깜짝 놀랐다. 최근에 흥미가 좀 떨어졌었는데, 이번 앨범은 참 듣기 좋다.

  이번 주에 다시 일본을 간다. 너무 바쁜 나머지 혹은 일에 적응한다는 핑계로 휴가를 단 하루도 쓴 적이 없는데, 휴가 하루를 쓰고 3일 간 도쿄를 다녀오려 한다. 벌써 세 번째 도쿄이다 보니 큰 기대는 없이 커피나 마시고 이것 저것 사서 돌아올 예정이다. 편안한 복장으로 단순하게 있다 오자는 게 이번 컨셉인데, 가게 되면 또 욕심이 나서 이곳 저곳 많이 돌아다니려 하겠지. 그리고 또 한가지, 이번에 드디어 기계식 키보드를 구입할 생각이다. 예전부터 생각해뒀던 건데 드디어 사게 된다. 요즘 같이 노트북을 잘 켜지도 않는 상황에서도 구입하려는 건 첫째, 사려 했던 것은 언젠가는 꼭 사게되는 내 성격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필요로 하는 마음이 예전에 비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꼭 사려던 그 당시의 마음 같은 것들이 되살아나 끝내 사게 되는 것들이 여러 가지 있다. 기계식 키보드도 그 중에 하나가 아닐까. 최근에 아는 동생이 기계식 키보드를 쳐보게 해줘서 몇 번 눌러봤더니 그 맛이 너무 좋아 글이 굉장히 잘 써질 것 같은 또 다른 착각이 들더라. 이것 저것 고민없이 해피해킹 프로 2를 구입할 예정이다.

 두 번째 이유는 아무래도 기록에 대한 재다짐 같은 것일테다. 다시 둘러보지 않더라도 기록을 하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심적 과정이 그동안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다보니 더욱 하루 하루 그리고 순간 순간에 만족하게 된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삶도 분명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보니 계획이란 게 사라졌다. 현재를 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삶 같은 건 교과서에나 있을 것 같은 생활이 이어졌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몸의 상태도 방치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여름이 다가오는 걸 알았지만 내 몸은 겨울과 같았고 나는 옷을 입을 때마다 예민해졌다.


  아마 일주일 후에 나는 또 글을 안 쓸지 모르고 이 공간은 지금 상태 그대로 나 자신과 남들에 의해 버려진 곳이 될지도 모르겠다. 뭐, 그건 또 그 때 가서 생각해보자. 사람이 쉽게 변하겠는가.



많이 걷고 있다 by James




삶이나 사람에게 있어서도 톤이란 게 있다면 나는 분명 톤이 다운되어 있음을 이젠 인정한다. 지금은 이렇게 '인정한다'라는 표현을 쓰지만 이미 내가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 왔는지도 모른다. 최근에 다시 관계라는 걸 만들어 가려고 이런 저런 만남을 하면서, 한 번은 그런 톤이 다운된(우울함이라 정확히 얘기했다) 느낌이 내가 연애를 못하게 하는 몇 가지 중 하나라고 했다. 그 사람은 그러면서 평범하지 않은 생각, 독특한 성격 등이 그런 몇 가지 중 하나라고 말했다. 나는 웃었지만 그건 쓴웃음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건 내가 살아오면서 스스로 만들어 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서른이 되어서야 소개팅이란 걸 해봤다. 이런 저런 연애를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통은 평소에 알던 사람과 서서히 연인으로 발전해왔던 내 경험 상 미팅이든 소개팅이든 그런 걸 할 여유도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긴 연애가 끝나고 이젠 자유라며 내 시간을 갖겠다고 다짐했지만(그게 오래 가지 않을 줄 알았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다시 연애 생각이 났고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가끔 긴 시간 동안 술을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씁쓸함이 뒤따랐다. 그 이유는 내가 평생 몰랐던 소개팅에 담겨 있던 '시스템'때문이다. 누가 이런 걸 만들었는진 모르겠지만, 왜 남녀가 1:1로 동등한 입장에서 만나지 못하는 자리가 되어 버렸는지 내 머리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주위에 수없이 얘기했다, 이제 이런 거 안 하겠다고.

잠시나마 나를 바꾸려 한 적도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내 주위에서 알던 사람과 연인의 관계로 발전할 만한 상황은 오지 않을 것 같았고, 그렇다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내가 그 시스템에 적응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잠깐이나마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나는 하려면 할 수 있었으니까. 그 누구보다 잘 할 자신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접었다. 소위 나는 내 잘난 맛에 살아 왔는데 그냥 있는 그대로 살자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본인에게 했기 때문이다. 뭐 언젠가는 이런 나라도 괜찮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 라며 그냥 그렇게 살기로 한 것이다. 여전히 주말을 소중히 생각하고 나 자신을 키우는 것들을 찾아다니는 그런 삶 말이다. 일은 밥벌이일 뿐이고 내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한 삶. 일요일 아침엔 혼자서 봐도 무방한 영화들을 조조로 보고 이곳 저곳 걸어다니기 좋아하는 삶. 한 달에 두 세번은 좋아하는 레코드 가게에 가서 CD나 LP를 여러 장 사고 서점에서 꾸준히 책이나 잡지나 사보는 그런 생활. 시도 때도 없이 커피를 마시고 술은 자주 마시진 않지만 마시게 되면 취할 때 까지 마시는 그런 삶을 그냥 나는 이끌어 가기로 했다.


요즘은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을 꽤 음미하면서 읽고 있다. 단편 하나하나가 지금 내 삶의 분위기와 맞아서 그런지 몰라도 다 마음에 들면서 만족해하는 중이다. 보통 단편은 바람이 쉭 하고 빠지면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잘 안좋아하는데 이번엔 다르다. 그런데 매번 하는 얘기지만 이제 나는 '하루키 좋아해요' 라고 남들한테 말하지 않는다. 그냥 혼자 좋아하고 말지, 긍정이든 부정이든 그 말이 가져올 영향력을 이제는 배제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 최근에 이것과 연관된 일이 하나 있었다. 내가 제일 난감해 하는 질문 중 하나가 "무슨 음악 좋아하세요?"나 "어느 작가 좋아하세요?" 등인데, 할 말이 없기 보다는 했을 때 상대방이 느끼는 당황스러움때문에 이런 질문을 받으면 뭐라 답해야 할지 머리가 멍해진다. 내 경험 상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본인만의 취향이 잘 없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 만약 그런 취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화 하는 중간중간에 이미 눈치를 채기 마련이다. 혹은 자신의 취향을 먼저 얘기하는 경우가 더 많다. 어쨌든 최근에 한 소개팅에서도 어떤 작가 좋아하냐고 물어서 "김연수 좋아해요. 혹시 아시나요?" 답했더니 그 사람은 모른다고 하면서 대표 작품이 뭐냐고 묻길래 나는 우물쭈물했다. 그러고보니 김연수 대표작은 뭐라고 얘기 해야 하지?(나는 끝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라고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말했다)


최근에 내 삶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아마 달리기를 시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숨이 턱에 차오를 만큼 뛰는 건 아니지만 꾸준히 운동을 한다는 건 2년간 내 직장 생활을 돌아볼 때 고무적인 일이다. 큰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직장 생활하면서 내 몸은 부풀 때로 부풀었고 이런 내 몸이 연애FA 시장에서 안 먹힌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주위에 농담처럼 얘기 하곤 한다. 처음엔 그냥 몸무게도 줄이고 건강도 생각하려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중엔 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달리는 이유가 더 컸다. 직접 선곡한 재생목록을 켜놓고 중랑천 근처를 꾸준히 뛰다 보면 어느 순간엔 날 괴롭히던 생각들이 많이 사라졌다. 실은 그동안 나는 수많은 가정법과 싸워왔다. '만약 XX가 OO했다면'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나를 너무나 괴롭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채웠고 나는 계속 답을 하거나 그런 가정법을 버리려 애썼다. 그 생각이 꽤 고통스러워서 괴로울 정도였다. 하지만 달리기를 할수록 그런 가정법을 많이 지울 수 있었고 지워진 질문 속에서 내 자신을 조금은 더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틈이 날 때마다 퇴근 후에 달렸고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았다. 몸무게를 줄인 것보다 좋았던 게 바로 잡생각을 지우는 것이었다.

직장인 2년차에 나는 일에 꽤 많이 적응했다. 주위에 묻지 않아도 대부분의 일을 혼자 처리할 수 있게 되었고 나름대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위 사람들이 좋아하는게 뭔지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었고 그 분위기에 맞는 건배사 몇 가지도 언제나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일에서 벗어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욕망하는 삶은 이어지고 그 욕망은 불완전하게 채워진 채 살고 있지만 그리 나쁘지 않다. 인스타도 꾸준히 하고 있고, 실제로 이어진 몇 번의 만남에선 나는 웃음과 위로를 받고 있기도 하다. 먹는 것에 대한 욕망은 확연히 줄어 들었고 마시는 것에 대한 욕구는 여전하다. 별 기대않던 음악과 영화에 여전히 감동받고 좋아하며 이런 순간을 위해서 돈벌이 작업을 이어간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기록은 줄었지만 삶에서 느끼는 황홀한 순간들은 여전하다. 그걸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게 조금 아쉽지만. 어쩌랴, 지금 내 상황이 그런 걸.

10월도 이런 저런 일로 보내다보니 또 끝이 다가온다. 걷기에 너무 좋은 날들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 나는 많이 걷는데, 조금 더 걸었으면 좋겠다. 추워진다고 못 걷는 건 아니지만.




다시 관계를 고민하다 by James



생각보다 살이 많이 빠지진 않았다. 아무래도 토요일 점심 때 먹은 게 조금 과했던 것 같다. 어쨌든 몸의 형태가 달라지기 시작했고 거울 속 내 모습이 점점 달라지는 게 기분이 좋다.

좋은 사람들을 만날수록 말이 더 많아지는 자신을 느낀다. 그만큼 공감을 하고 공감을 바라는 내용이 많다는 거겠지. 그 속에서 나는 사회로부터 안전하단 마음이 드는 거겠지. 어젠 그 마음이 커서 꽤 오래 수다란 걸 떨었던 것 같다. 저 고민이 있어요, 라고 얘기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건 나름대로 살아갈 만한 삶이라 생각한다. 감사하다.

요즘 나는 다시 관계에 대해서 고민한다. 관계를 확장해서 세부적으로 나누면 가족이 될수도 동료나 연인이 될 수도 있을테다. 어쨌든 나는 그 관계를 되돌아보고 앞으로를 예상해보는 시간이 많다. 시간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데, 그 와중에 놀라운 건 예전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툭툭 튀어나올 때다. 비슷한 고민을 예전에도 했을진데, 그 대답이 새로워 내가 나이 들어감을 느낀다. 그런데 그게 좋아서 나는 지금 내 나이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작년과 나는 다르다고 느껴진다.

그렇다고 이 곳에 하나하나 풀기엔 내 기억이 짧다. 단순히 문장 몇 개로 풀 수 있는 내용이 아니기도 하다. 어제 큰 기대없이 봤던 <동경가족>을 보며 몇 번이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감정을 일부러 만들어내는 곳보다는 어깨에 힘을 빼고 툭툭 건드리는 연출에선 버틸 수가 없었다. 가령 어머니가 막내 아들 여자친구에게 “너가 잘 모르겠지만..” 이라고 얘기하며 아들의 경제관념에 대해 농담반 진담반 얘기하며 돈을 맡기는 장면에선 피식 웃어 버렸다가 퍽 하고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만큼 요즘 나는 관계와 가족 나아가 나와 앞으로의 삶을 함께 할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일테다.


다음 주는 추석이다. 나는 이미 열차표를 구했고 편안히 다녀오면 된다. 이번엔 아마 두 분 다 술 한잔 하시겠지. 그리고 다음 주엔 내 관계에 조금 변화가 있는 일도 생길 예정이다. 큰 기대는 없지만 어쨌든. 이번 주부터는 이제 조금 더 서늘해졌음 좋겠다.


나는 그렇게 자랐다 by James





아버진 내게 매번 그런 얘길 하셨다. 다른 사람의 집이나 어딘가를 방문할 땐 절대 빈손으로 가지 말라고 하셨다. 큰 건 아니더라도 뭔가를 준비해서 가라는 말씀이셨다. 어렸을 땐 흘려듣던 얘기였는데, 이번에 급작스럽게 내 일터로 오셨을 때도 그런 얘길 하셨다. 과일이라도 사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마치 그게 큰 잘못인 것처럼 얘기하셨다. 나는 그 말에 아버진 여전하시다고 생각했다.

대부분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도 아버질 원망한 적이 많았다. 자신이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란 걸 안건 내가 머리가 굵어졌을 때지만, 끝없이 공부하라고 말씀하실 때마다 아버지가 미웠다. 새벽같이 나가서 밤 늦게 들어오는 아버지가 어느 날 일찍 들어오시면 어색한 순간이 더 많았다. 주말에도 당연하게 일하시는 아버지가 어느 순간엔 익숙해졌다. 집에 일이 있어 외식이라도 하는 날에 작업복 차림 그대로 오셨을 때, 나는 솔직히 부끄러운 적이 있었다.

그런 아버진 한 번도 취한 모습을 내게 보여주신 적이 없다. 원래 술을 잘 못하시지만 왜 사람들과 술 한잔 안 하고 싶으셨겠는가. 단지 일이 늦게 끝나고 다음날 다시 일찍 나가야 하는 삶, 내 공부 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아버지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일정한 직위에 오르셔서 자신의 근무 시간이나 휴일 정도는 정하실 수 있는 자리가 되었을 때, 회사 사람들과 술 한잔 하고 들어오신 모습을 우연히 보았을 때 나는 깨달았다. 술 마시지 않는 삶은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선택이었다는 걸.


아버진 일에 있어 투철하신 분이셨고 지금도 그렇다. 자신보다는 회사와 일을 중시하시는데, 이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이다. 그 먼 길을 돌아 어제 내 일터로 오셨을 때 빨리 나가시려고 하신 것도 내 일에 지장이 있을까봐, 내가 주변 사람들로 원망이나 핀잔 들을까봐 그러셨다. 차타는 곳까지 배웅 했을 때도 잘 지내라거나 살을 빼라거나 등의 얘기보다는 어서 들어가란 말만 하셨다. 어머닌 뭔가를 챙겨주고 싶어 하시는데 아버진 됐다며 다음에 부산 와서 받아가라고 하셨다.


어릴 땐 서스럼없이 아빠보단 엄마가 좋다고 말하고 다녔다. 내 성격은 엄마를 더 닮았다고 느끼며 살아왔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내 삶과 과정과 내면을 들여다 보면 언제나 아버지가 보인다. 지금의 내 삶과 앞으로의 삶은 아버지가 걸어오신 것과는 전혀 다를텐데, 이상하게 내 속에서 아버지가 보인다. 남에게 피해주며 살지 않는 삶, 내 사람을 챙기는 삶. 아버진 그 태도를 당신이 직접 나에게 평생 보여주며 살아오신 거란 걸 이제서야 알았다. 삶을 향한 내 태도와 성격을 나는 혼자 스스로 만들어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밑바탕은 실은 아버지의 몫이었다는 걸 조금 늦게 알았다.


아버지 카톡 프로필에 이번 여행에서 찍으신 사진이 올라 있었다. 그 사진을 보고서야, 평생 여유와 멋이란 모르고 사셨던 아버지가 내가 자리잡고 안정되니 그걸 누리실 수 있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일전에 내가 돈을 벌면서 그동안 못 누렸던 걸 다 누리겠다며 끝없이 신발과 옷을 살 때 문득 미안해져서 아버지께 나와 같은 운동화를 사드린 적이 있다. 아버진 뭣하러 이런 거 샀냐고 하셨다. 그런데 어머니와 여행 가셨을 때 찍은 사진엔 매번 그 신발이 보였다. 이번 여행 사진에도 역시 아버진 그 갈색 운동화를 신고 계시더라. 나는 그 사진을 내 카톡 프로필에 담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휴가이자 일본 여행의 마지막 날 by James



지금은 도쿄 내 아카사카 근처에 있다. 지난 주 금요일에 여기로 와서는 오늘 오후 5시 비행기로 다시 인천으로 들어간다. 가져온 백팩은 너무 무겁고 시간은 애매해서 숙소에서 체크아웃 한 이후 스타벅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국어 자막이 있는 일본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도 보고 노트에 생각도 정리하다 문득 생각나서 블로그에 글을 남긴다.

이번 여행은 역시 느닷없었다. 갈까 말까 고민을 떠나기 3일 전까지 했고 나는 그 3일 전에 숙소와 비행기 모두 예약했다. 작년에도 분명 급하게 했는데도 그 때와 비교하면 총 비용이 20만원은 더 든 느낌이다. 그만큼 지금이 성수기라는 것이겠지. 나는 여름 휴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바깥에서 느끼는 더위를 나는 쉽게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여름엔 패스하려고 했더니 연차 중 일부는 쓰지 않는 경우 보상비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반 의무적으로 연차를 써야했다. 10월엔 내가 생각하는 진짜 휴가를 쓸 예정이라 그 전에 어떻게든 연차를 써야했고, 어딘가로 떠나긴 애매한 날짜라 그냥 또 일본으로 정했다.

더위때문에 여름 휴가를 싫어한다고 했는데 이곳은 폭염으로 난리였다. 매일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보니 햇빛을 받고 흘리는 땀은 참 오랜만이었다. 햇빛이 강해도 땀흘리며 걸어다니는 그 순간이 좋아서 참 많이 걸었던 것 같다. 그랬더니 피부가 금방 타버리더라. 원래 예민하기도 하지만 이번 폭염은 너무 심해서 이곳 뉴스에서도 자주 나오더라. 그래서 목 뒤와 팔이 꽤 따끔거렸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4일 째에는 무작정 쉬고 싶기에 작년에 오래 못 있어서 아쉬웠던 다이칸야마로 가서 커피 마시며 책을 읽었다. 그 시간이 너무 좋아서 일어나기 싫을 정도였다. 다이칸야마에서 쉬는 건 이번 내 여행 목표 중 하나였으니 나는 그 목표를 충실히 수행했다.

도쿄로 간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또 가냐는 말이었다. 나는 급하게 잡았다고 둘러댔지만 나는 도쿄가 나쁘지 않다. 일부 사람들은 휴가 떠나는 사람에게 방사능이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했다. 가끔은 말하지 않아도 되는 건 말하지 않았으면 할 때가 많다. 그게 미덕인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건 걱정과는 다르니까. 충분히 알고 있는 걸 또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쨌든 나는 또 도쿄로 왔다. 작년과 다른 것은 그래도 두 번째라고 주위로 눈이 돌아간다는 것.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지 않았다. 사람들의 말하는 소리, 차 소리, 도시가 뿜어내는 소리 등을 가만히 들었다. 나와는 평생 연관이 없을 사람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듣는 소리는 참 새로운 기분을 전해준다. 혼자이면서도 고독하지 않은 느낌. 인연이 없다는 것에서 오는 자유 같은 걸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매번 나는 해외 여행(그래봤자 몇 번 안된다)을 혼자 왔고 그리 불편한 점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불편하다기 보다 쓸쓸함이 좀 컸다. 그건 내가 이 곳을 두 번째 왔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혼자 왔을 땐 긴장하고 정신이 없어 외로움 같은 건 없었는데, 이번엔 여유가 있어 그런지 문득 외로운 적이 많았다. 그래서 매일 밤 긴 맥주 두 캔을 마시고 잠들었다. 그리고 저녁은 매번 근처 식당에서 규동을 사서는 <결혼 못하는 남자>를 보면서 먹었다. 궁상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는 그게 내 휴가답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화려한 걸 기대하고 온 것은 아니니까.


이번 여행은 많은 곳을 돌아다닌다거나 많은 걸 경험해보려는 목적은 없었다. 작년과 다른 것은 점심 정도는 소위 '맛집'이란 곳을 찾아 갔다는 점이다. 작년엔 매번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서 먹었는데 이번엔 발품이란 걸 팔아서(그 폭염 속에서) 직접 먹으러 갔다. 다행히 시간이 잘 맞아서 기다리는 일은 없었지만 나름 잘 먹었다. 사실 점심을 먹으며 사람들은 이런 걸 맛있다고 하는구나 싶었다. 한국에서도 맛집을 찾아다닌다거나 하지 않고, 막상 비싼 걸 먹어도 진짜 맛있다 라는 말이나 생각을 거의 하지 않기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TV나 드라마에서 '오이시-!' 하면서 먹는 그 사람들을 나는 따라할 수 없더라.



어제 밤 아버지는 한국에 언제 오냐며 다 정리하고 홀가분하게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카톡을 보내셨다. 실은 그 말 속에 아버지가 홀가분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있다는 걸 안다. 어찌 관계라는 게 쉽게 끊어지고 기억이 정리되겠는가.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조금 빨리 정리하고 있고 이젠 거의 아무렇지 않다. 오늘 비행기를 타기 전에 나는 더 많은 끈을 놓을 것이고 한국에서 이루어져야 할 정리도 준비할 것이다. 어쩌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도 그것이었지 않을까. 내가 혼자인 걸 깨닫는 것. 하지만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 그걸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화려하지 않아도 꾸준히 살아가는 게 내 삶이고 여행은 내 삶을 또 다른 연속이니까. 이제 슬슬 공냥이를 만나러 돌아가야겠다.


즐거웠습니다 정말.



매일 같은 시간을 같은 행동으로 채운다 by James



어찌 보면 삶은 똑같다. 나는 여전히 10분 간격으로 알람을 두 개 맞춰두고 잠이 든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동안 거의 같은 시간에 첫번째 알람이 울리고 10분 후에 또 알람이 울릴 것을 알고 잠이 든다. 수건을 챙겨들고 욕실로 가서 면도를 한다. 잠이 덜 깬 그 시간에 정성스레 면도를 하는 경건함 같은 건 없다. 머리를 감고 헹구지 않은 상태로 양치를 한다. 샤워를 하고 매일 같은 스킨 로션을 바른다. 아침 시간 중에서 하는 행동들 중에 다른 것이라곤 별 생각 없이 고르는 향수 종류 뿐이다. 그리고 같은 시간의 기차를 탄다.


이별을 했다. 이별을 했음에도 나는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10분의 알람 사이에 울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사라졌고, 일하는 중간에 스마트폰을 켰을 때 아무런 연락이 없는 정도랄까. 그래서인지 요즘 아이폰 배터리는 충전하지 않아도 꽤 오래 유지된다. 한 번의 이별을 시도했던 사이라 이번엔 조금 나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많이 울었고 나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차가울 줄 알았던 내 마음도 꼭 그렇지 만은 않았다. 예전엔 서로의 손을 깎지꼈다면 이젠 인사하는 듯한 악수로 대신했다. 떠나면서 그녀는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듯 다시 잘해볼 마음이 없는거지, 라고 물었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20대의 대부분을 했던 사람과 그리고 그 시간과 헤어진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다. 단순히 슬프다는 감정만으론 정의될 수 없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목 부분에 가득찼던 먹먹함, 내 몸의 슬픔은 눈두덩이 위로 몰리지만 흘러넘치진 않았던 그 마음, 그런 것들을 어떻게 쉬운 단어들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도 어쨌든 우린 헤어졌다. 마지막에 술을 못 먹는 그녀는 맥주를 시켰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맛이 없는 치즈스틱과 치킨텐더를 두 번 정도 씹고 먹지 않았다. 그 긴 맥주 두 잔이 다 비었을 때 그녀와 나는 자리를 떴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그 빈 잔 사진을 찍었다.



아무렇지 않을 것이라, 이젠 더 이상 아픔도 슬픔도 없을 것이란 내 예상은 보란듯이 빗나갔다. 그게 시간의 무게때문이겠지만 나는 그 무거움에 조금 버거워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 같은 시간이 출근을 하고 비슷한 일을 하고 웃어야 할 때 웃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멍하게 있는 내가 느껴져 깜짝 놀라곤 한다. 그 무게감이 가벼워지는 건 언제쯤 될런지. 나는 당분간 술을 마시지 않기로 했다. 사회생활하면서 한 잔도 안 먹을 순 없지만 자제하려고 노력한다. 이제 나를 혼자 챙겨야 한다는 생각, 잠시 편하게 놔뒀던 나 자신을 다잡아야 할 순간이 다가온 느낌이다. 단순히 정신차리는 일이라 할 수 있겠지만 본래의 나를 찾으려는 발버둥이기도 하다.




역시나 세상에 좋은 이별은 없더라.





요즘은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신다 by James




오늘은 술에 대해서 얘길 하고자 한다. 실은 술 얘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안주, 가 아니라 어떤 사람과 마시느냐이다. 그러다보니 그 속에서 일어나는 관계에 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고. 어찌되었든 나는 술을 많이 마시고 있다. 횟수로는 적을지라도 한 번 마실 때 꽤 많이 마신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겠지만 많이 마실 때는 이야기가 잘 통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일 때다. 그리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 특히 더 자주 마시러 나가는 듯하다. 내가 먼저 술 마시자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보통 그렇게 말이 나올 때는 내 스트레스의 정도가 가장 높을 때이다.

그렇다고 토할 정도로 마시진 않는다. 일정 이상 마시다보면 더 이상 먹으면 안되겠단 생각이 들고 보통은 남들이 먼저 그만마시자고 이야길 한다. 술을 오래 마시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대부분은 나는 정신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부분에 있어서 나는 정신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정신 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마음, 집에 가야 한다는 열의 등이 술을 오래 마실 수 있는 밑바탕이라고 생각한다.

술을 많이 그리고 오래 마시다보니 그걸 싫어하는 사람과는 잘 안 마시게 된다. 억지로 마시라고 하는 경우는 절대 없지만 왠지 서운해지는 건 있다. 나혼자 취하고 기분 좋아진다는 그 느낌이 싫다. 그럴 땐 차라리 그냥 커피나 마셔도 나는 상관없는데,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둘이서 마실 땐 또 이런 생각을 안 한다. 너는 안 마셔도 돼, 그냥 나혼자 마실께 이야기나 하자 라는 뉘앙스를 풍기곤 한다. 이상하게 둘이 마실 땐 이런게 더 기분이 좋을 때도 있다. 당연히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이렇게 마시려고 노력하는 경우는 없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술을 마시곤 하는데 일이 많아지고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져갈 때 나는 취해서 돌아와선 빨리 잠드는 걸 즐기곤 했다. 이러한 태도가 위험한 것이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 당시엔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 않고는 내 마음이 풀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차라리 술 마시며 떠들고 취해선 잠들어 버리는 게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리 좋지 않은 방식이었다(요즘은 그런 마음을 꽤 많이 줄였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취해도 꼭 몇 자의 말을 함축해서 인스타 등에 올리고 잠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고 문 앞에 들어설 때 까지는 모든 기억이 생생하지만 집 안에 들어온 순간부터는 기억이 뜨문뜨문하다는 것.

술을 마시는 대상은 대부분이 회사 사람이다. 같은 사무실에 있는 선배인 경우도 있고 친하게 지내는 동기일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들과는 보통 금요일에 술을 마시는데, 나는 사실 내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남의 사정이나 이야기를 듣고 내 생각이나 조언을 해주는 수준에서 그칠 뿐, 내가 가진 스트레스나 불만을 잘 표하지 않는다. 내가 기분이 좋지 않아 만나자고 해놓고도 남들은 나를 만나면 먼저 자신의 불만을 토로한다. 내가 이야기를 잘 들어주게 생겨서인지, 혹은 이것도 일종의 경쟁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자리에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즐기다보면 내 기분이 나아진 걸 느낀다. 이는 내가 그만큼 공감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해 굶주려 있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걸 원했던 걸 아닐까. 그래서 비슷한 생각으로 내가 취해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공냥이와 함께 누군가가 있었음 좋겠단 생각을 꽤 자주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결혼 생각을 하는 건 아니고.


나와 공감을 해주고 마음을 통하는 사람에 대해서 요즘은 많이 생각한다. SNS든 실제든 자신이 이쁜 척 하거나 귀여운 척 혹은 재고있는(소위 밀당과 비슷한) 여성을 볼 때가 많다. 하지만 요즘은 그 사람 외모가 어떻든 전혀 관심이 생기질 않는다. 특히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정부터 떨어져 버린다. 조심하는 것과 숨기는 건 확실히 다른데, 최근에 이런 저런 자리에서 그런 사람들을 꽤 자주 봐서 욱했던 적이 몇 있었다. 뭐가 그리 복잡한지 나는 모르겠다. 요즘은 이쁜 사람들보다 적극적이고 이야기가 잘 맞는 사람이 더 좋다.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그 감정의 부드러움이 좋아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공감하고 싶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사람에게 끌리는 건 뽀샵처리한 사진이나 입술을 동그랗게 내민 셀카가 아닌데,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어필할 수 있는 바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즉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다운 사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본다. 소속으로 인한 '무리'나 '패거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사람으로서 끌리는 그런 대상들 말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런 사람들이 많다. 이젠 잠시만 이야기를 해보아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이런 것에 민감했지만 요즘은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을 대하다보니 조금 더 자신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단은 내리질 않는다. 그 판단이 진짜 이 사람을 모르게 막을 수도 있으니까. 대신에 그렇게 좋은 사람들과는 꼭 술을 마시고 싶어진다. 실은 술취한 상대방의 이야기보다는 술취해야만 조금씩 드러나는 내 이야기 때문이지만 말이다.


다음 주 금요일엔 1박 2일 워크샵이 예정되어 있다. 많은 술을 마시겠지만 나는 조금 자제하려고 한다. 누구나 그렇듯 사람이 많을 때 모두가 마음에 들수는 없는 거니까. 매주 이렇게 한잔씩 하다보니 벌써 6월도 마지막이 다가온다. 그리고 집에서 술 먹기 좋은 장마가 찾아올 예정이다.





역시 살아있다 by James



뭐 언제나 그렇듯이 잘 살아있다. 글은 가끔 쓰고 있다. 무선 키보드란 걸 구입해서 의무적으로 메모장이나 에버노트 등에 글을 남겼는데 의무적인 글이 언제나 그렇듯이 쓰나마나한 글이었다. 내일은 일찍 출근해야 하고 별로 관심이 없는 월드컵 경기가 새벽부터 있는 날임에도 이렇게 글을 남기는 건 말 그대로 역시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단지 그것 뿐이다.

어떤 일이나 사건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는 일은 많았다. 그것을 글로 남기려는 욕망은 컸지만 언제나 인스타그램에서 허용하는 그 공간에만 짧게 토할 뿐이었다. 특히 술이 취한 날은 하고픈 말이 많았는데, 많이 자제한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인스타에 그 순간의 말을 욕망과 버무려서 남기곤 했다. 다음 날엔 술에 깨려고 헛개수나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글을 지울까 말까 고민도 많이 했고.

회사에 다닌 다는 것, 그 회사에 기차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출근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규칙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매일 같은 시간 거의 같은 자리를 예매하고 나는 거의 같은 시간에 회사 근처 역에서 내린다. 회사에 도착해서 나는 거의 같은 순서대로 같은 톤으로 인사를 남긴다. 내가 내뱉는 안녕하십니까 속에는 아직도 저 아직 신입입니다, 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그게 옳고 그게 어울리는 생활을 하고 있다.

술을 참 많이 마시고 있다. 일주일에 세 네번씩 마시는 헤비드링커는 아니지만, 금요일이나 토요일엔 거의 술 약속이 잡혀 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긴 하지만 나는 꼭 취한다. 아니 취하려고 일부러 많이 마시는 듯하다.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고 왜 이제 왔냐고 냥냥거리는 공냥이의 모습까지만 나는 보통 기억한다. 내가 어떻게 옷을 벗고 어떻게 이불을 펴서 잠들었는지는 보통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잠드는게 나는 요즘도 좋다. 무언가를 잊고 잠들 수 있는 것, 요즘은 그런 순간을 좋아한다. 이 말은 그만큼 내가 현실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시간이 많다는 거겠지.


이렇게 규칙적이면서도 술에 취한 날이 존재하는 일주일을 보내면서도 일요일 아침엔 꼭 조조영화를 보려고 한다. 그래도 가까운 압구정 CGV에 허겁지겁 들어가서 영화를 보곤 한다. 요즘은 조조 영화가 10시가 아니라 8시 즈음인데 그 시간을 맞추려다 보니 매번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고민한다. 내가 이렇게 잠을 오래 못자고 그 영화를 봐야하는 걸까, 라는 생각을 4분 정도 하는 것 같다. 보통은 꾸역꾸역 나가는데, 그러다보니 매번 영화관엔 아슬아슬하게 도착한다. 한 가지 다행인 건 보통 이렇게 보는 영화는 대부분 괜찮다는 것. 그렇게 내 삶의 일부분을 장식하는 느낌으로 일주일을 보낸다.


여전히 나는 말이 많은 영화와 관계를 다루는 영화가 좋다. 말과 관계는 섞인다는 점에서 둘 다 유의미하다. 섞여버린 관계가 해결되는 것보다 나는 그 관계가 엮여가는 그 과정이 좋다. 꼭 관계를 풀 필요는 없지 않나. 묶이면 묶인 대로 나가면 되는거지, 관계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는 시각은 여전히 거북스럽다. 꼭 관계가 없을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소위 밀당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해진다. 좋으면 좋다고 말하는 거고 싫으면 싫다고 표현하는 건데 그걸 숨기는 그 관계가 여전히 싫다. 왜 그렇게 시간을 버려가면서 관계를 만들어 가려는지 궁금하다. 아니, 관계를 만들고 싶긴 한건지. 밀당과 썸은 약간 다르긴 한데, 뭐 그건 나중에 또 쓸 일이 있겠지.



여기까지 쓰고 보니 블로그라는 공간은 참 독특한 느낌이다. 메모장에 쓰나 여기에 쓰나 내 이야기를 푸는 건 마찬가지인데, 메모장에 썼다면 이렇게 전혀 쓰지 못했을테다. 이는 , 이젠 거의 찾아오는 이 없는 이곳을 누군가는 그래도 보지 않을까 라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메모장에 글을 남기던 것은 단지 기록의 수준이었다면 여기에 약간의 공감을 얻고자 하는 글을 쓰는 게 나에겐 더 맞기 때문인 듯하다. 음, 공감하지 않아도 크게 상관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이렇게 길게 글을 쓴 것에 나는 만족한다. 약간 즐겁기까지 하네. 이젠 슬슬 자야지.




연도의 변화 by James


  오늘 휴가를 냈다. 그리고 병원에서 링거를 맞았다. 휴가와 링거를 맞바꾼 느낌이었다. 내가 일곱 살 때 두 달 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땐 매일 왼팔에 링거를 꽂아야 했고, 혈관을 찾지 못해 발에도 꽂은 적이 많았다. 그 이후로 맹장수술을 했을 때 빼곤 링거를 맞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내가 자처해서 맞았다.

  몸이 내 몸이 아니었다. 어제 새벽에 출근할 때부터 몸이 굉장히 추웠고(전기 히터 앞에 서 있어도 추웠다) 살갗이 아팠다. 병원에선 이 증상이 소위 우리가 말하는 몸살이라고 했다. 몸을 과하게 사용한 활동이 없었음에도 몸살이 온다는 걸 이제서야 알았다. 몸 어디 부윈가에서 염증이 생기면 이 염증은 혈액 속으로 들어가며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몸살이 오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인 즉슨 내 몸이 지금 온전한 상태가 아니란 점이겠지.


  해가 바뀔 때면 나는 언제나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시간이 12시에서 00시 00분 01초로 바뀌는게 무슨 큰 의미냐고. 달력을 새로 바꾸는게 나에게 무슨 큰 변화인지. 나름 의미를 찾았던 것은 새 다이어리를 구입할 때 느끼는 신선함 혹은 변화를 위한 기대 등인데, 이젠 그것도 없다(플레인 노트를 사서 연도 구분없이 계속 쓰고 있는 요즘이다). 어쨌든 그런 무의미함을 언제나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왜냐하면 내 마지막 이십 대였으니까.

  단지 해가 바뀌는 것처럼 이십대와 삼십대가 숫자의 차이일 뿐이지 뭐가 대수롭냐, 라고 묻는다며 나는 할 말이 없다. 이는 단지 내 주관적인 기준이 될 뿐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 열아홉이 기억나지 않고 나의 스무살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를 빨리 들어가서 실제 친구들과 호적 상으론 한 살이 차이가 나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나이 감각이 없었다. 친구들이 스무살이 되었을 때도 나는 열 아홉이었고 내가 스무살인지 열아홉살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중요한 건 같이 술을 마시러 갔을 때 민증을 확인하는 술집을 가느냐 그렇지 않은 술집을 가느냐 하는 것 뿐이었다. 그만큼 유의미한 일은 없었고 나는 입시 라는 턱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기억해도 그 때 있었던 일과 내 생각과 경험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취직을 하고 안정적인 삶에 정착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스물 아홉이 되어 있었다. 스물 아홉, 이십대 등의 단어가 어느 순간에 크게 다가왔다. 지난 연말 나는 매 주말 약속이 있었다. 남들처럼 하루에 여러 약속이 겹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혼자 지내는 내 시간의 틈은 없었다. 그런데 그게 싫진 않았다. 어차피 관계란 계속 이어져야 하는 것이고 나는 아직 내 주위에서 껄끄러운 관계는 없다. 보기 싫은데 봐야 하는 관계도 없다. 그래서 미리 약속을 잡고(대부분 술을 마셨다) 이야기를 나누는게 싫진 않았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엔 마지막 이십대가 떠나질 않았다.


  어떤 관계를 정리하려고 했다. 나는 오랫동안 지쳤고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그 사람도 지쳤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받은 상처들을 나는 치유하려 하지 않았고 피가 보이는 그대로 두려고 했다. 나만 참으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이어왔던 관계이고 이해하려고 했던 관계였지만 실제론 전혀 그렇지 못했단 걸 이제서야 알았다. 치유되지 않고 곪아터진 상처가 낯설게 느껴졌고 나는 그 상처를 나만 갖고 있다 생각했고 나는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긴 관계를 그만두자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생각이 많은 연말이었다. 바쁜 생활을 보냈지만 심적으론 힘들었다. 나는 웃을 수 없었고 기나 긴 출퇴근 시간 속에서 매번 깊은 잠에 빠지든지 우울한 기분에 빠졌다. 2013년이 가기 전에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아 보였다. 사람들을 만나도 깊은 마음 속으로 기뻐하고 즐기질 못했다. 술에 취한 날이 많았고 집에 와서 술취한 채 잠들어 버리는 것을 즐겼다. 그렇게 하면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쉽게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언제나 그렇듯 다음 날엔 멍하니 침대에 걸터앉아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 하는 생각만 했다. 그러다 2013년의 끝이 다가왔고 내 20대의 끝도 다가왔다. 이젠 부인할 수 없는 순간이 온 것이다.


  20대의 마지막이 심적으로 아팠고 힘들었다면 30대 초는 몸이 아팠다. 잘 아프지 않는 몸이지만 한 번 아프면 심하게 고통스러운데, 느닷없이 감기가 찾아왔다. 편도가 커서 그런지 몰라도 감기는 매번 목감기가 왔다. 하지만 이번엔 평소와 다르게 코감기가 왔다. 콧물은 끊임이 없었고 하루 종일 고객을 대하고 말해야 하는 직업상 정말 고통스러웠다. 중간 중간에 수십 번씩 휴게실에 들어가 코를 풀었다. 병원을 다녀와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 지난 주엔 피가 나왔다. 그래서 이비인후과를 갔더니 축농증이 왔다고 했다. 코가 막히면 머리가 아프고 멍한데, 실제로 혼이 빠진 것처럼 멍하니 의사의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어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아침부터 몸이 안 좋았고 내일 나올 수 있을까 걱정부터 했다. 사무실에 앉아 내 일만 처리하는 일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참을 수 있겠는데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이다 보니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오후 늦게 팀장님께 휴가 얘길 꺼내고 승인을 올렸다. 중요한 휴가 하나를 벌써 써버린 것이다. 하지만 참을 수 없었다. 일을 하면서도 수십 번 도망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의 얘기를 들으니 내 속에 그렇게 나쁜 게 많이 돌아다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쌓은 상처와 염증과 고름이 내 몸을 빙글빙글 돌고 있다니. 그리고 내 몸을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입사 1년 만에 이렇게 아픔을  맛봐야 하다니. 서럽단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아픔을 겪고보니 이제는 시간이 지나서 내 스물아홉과 서른을 돌이켜 볼 때 생각할 수 있는게 생겼단 생각이 들더라. 비록 열아홉과 스물을 기억할 수 없지만 이 때는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게 위안이 될까.

  병원을 나왔더니 어머니께 카톡이 와 있었다. 점심 먹었나 잘 지내지, 라는 짧은 얘기였는데 혼자 멍했다. 엄마라서 멀리 있어도 아는걸까 혹은 내가 아파서 최근에 연락을 안 해서였을까. 평소 같았으면 일이 있어도 네 별 일 없이 잘 지내요, 라고 답했을테지만 오늘은 사실대로 얘기했다. 아파서 휴가 썼다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공냥이가 바닥에 토를 해놨더라. 평소에 전혀 이런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이러니 얘도 아프구나 싶었다. 그리고 조금 울었던 기억이 난다.


  긴 글을 쓰고 싶단 생각은 언제나 했다. 하루에 노트북을 켤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블로깅도 힘들었고 아이폰 메모장에 쓰려니 뭔가 허전했다. 다이어리에 글을 쓰다가도 그 글씨체가 못나보여 더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인스타그램에 의미없는 사진과 주저리 주저리 글을 올리긴 했지만 매번 술을 마시고 글을 쓰다보니 다음 날에 곧잘 지우곤 했다. 내 삶을 기록함과 동시에 감정을 드러내고 거기에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뭉쳤는데 다음 날 보니 민망함만 남은 적이 많기 때문이다. 아깝단 생각도 들었지만 어쩌겠나, SNS도 어쩜 기록이고 나를 표출하는 곳인데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니.

  다시 또 언제 긴 글을 쓸 지 모르겠지만 글을 씀으로 인해 정리되는 위안은 다른 걸론 찾을 수 없다. 남들에게 터놓는 이야기는 가끔 매번 다른 사람에게 여러 번 반복해서 얘기하는 불편함이 있기에 글에서 받을 수 있는 효과가 덜할 때가 많다. 어쨌든 마음은 조금 진정되고 있다. 내일은 회사 전체 행사가 있어 아침부터 참석해야 하는데, 몸이 조금 더 회복되길 바랄 뿐. 우연히라도 이 글 읽는 모든 이들이 건강하시길. 그리고 늦었지만 모두에게 복된 새해가 되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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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장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