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입니다. (2012. 1. 1 ~ ) by J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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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호 (헤리티지 플로스, Heritage Floss 디렉터) 인터뷰 초안 by James


  원단을 중요시하는 국내 브랜드인 헤리티지 플로스의 디렉터이자 오리지널 컷(Original Cut)의 디자이너, 그리고 휴먼트리의 직원인 이윤호를 만났다. 이 인터뷰 내용은 <GEEK> 창간호에 실린 내용의 초안이다. 원래 내용을 그냥 버리기에 개인적으로 아까워서 이곳에 남겨둔다.

  휴먼트리 근처 카페에서 한 시간 조금 넘게 이야기를 나눴다. 내 첫 정식 인터뷰여서 많이 설렜고, 많이 즐거웠다.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원하던 일은 역시 이거였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시간이었다. 녹취를 풀면서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화면에 글로 옮겼다.

  이 내용은 초안이기에 말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을테다. 앞 도입부분도 원래 더 수정해야 했고, 인터뷰가 끝나고 버벌진트의 '우리 존재 화이팅'이란 곡으로 마무리 하려는 유치한 생각을 했었는데 그 부분을 담지 못했다. 언젠가 이 부분을 수정할 마음이 생길 때 다시 손보겠다.

  아래 내용의 저작권은 작성자인 나에게 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당연히 금지하고, 어딘가로 퍼가고 싶을 때는 덧글로 먼저 남겨주길 바란다(부끄러운 글이기에 최대한 그러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이 인터뷰를 읽고 바라는 점은 단 하나다. 헤리티지 플로스라는 브랜드와 오리지널 컷의 브랜드에 관심을 가져주고, 기회를 만들어 직접 만져보고 입어보고 마음에 들면 구입하라는 점이다. 패션에 대해서 여전히 잘 모르지만, 직접 만져보니 (입어보진 못했는데 어제 주문을 했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모두 국내에서 생산 및 제작된 좋은 제품이다. 조금 더 많은 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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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왔다. 자신은 헤리티지 플로스(Heritage Floss)의 이윤호라고 했다. 며칠 전 보낸 인터뷰 요청 메일에 그는 수일 후 전화로 답해왔다. 가까운 거리에 있어 30분 후에 만나기로 바로 약속을 잡았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아이폰을 켰다. 무슨 음악이 어울릴까 고민하다가 버벌진트(Verbal Jint)의 <Go Easy> 앨범을 틀었다. ‘원숭이띠 미혼남’이 흘러 나왔다.

 

그와 나는 원숭이띠는 아니고 소띠였다. 그것도 소위 ‘빠른’ 소띠. 같은 해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지만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삶은 그리 닮지 않았다. 그런데, 가끔 궁금하지 않나. 내 주위 친구들 말고 나랑 같은 해에 태어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나. 좀 더 넓게는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하루를 보낼까.

 

성공은 잘 모르겠다. 지금 20대에게 성공을 바란다는 게 웃기는 일이다. 벌써 성공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고, 20대에 성공하면 그 이후엔 무엇을 하면서 살아갈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성공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엿듣고 싶었다. 그래서 음악을 잠시 끄고 음성녹음 앱을 켰다.

 

 

 

: 자신의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현재 휴먼트리(Human Tree)에서 근무하는 동시에 헤리티지 플로스라는 브랜드 디렉터를 담당하고 있는 이윤호입니다.

 

: 그동안 몇몇 잡지에서 인터뷰를 하시기도 했지만, 대중에 노출이 그리 많이 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그 잡지에 지인이 있어서 같이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제 자신을 드러내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즘 생각이 조금 바뀌기도 했고, 점점 저 혼자 나서야 하는 순간들도 앞으로 많아질 것 같아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제가 지금 어떻게 작업을 하고 있다, 라는 것도 보여줘야 해서 이젠 조금씩 노출을 하려고 합니다.

 

: 최근에 오리지널 컷(Original Cut) 제품이 나와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하입비스트(Hypebeast)에도 소식이 올라왔구요. 이렇게 인기가 많을지 예상하셨나요?

아뇨. 전혀 예상을 못했습니다. 오리지널 컷은 진복이형이 전체적인 디렉팅을 하고 ‘부루마블’이란 브랜드와 ‘휴먼트리’가 만나서 이룬 브랜드입니다. 2008년 초창기에 저는 참여를 하지 않았구요. 당시에 저는 BA(Buried Alive)에서 디자인을 맡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저는 이번 2012 S/S 시즌에서야 참여하게 되어 디자인을 맡았습니다.

 

: 저는 윤호씨가 헤리티지 플로스의 디렉터로 따로 존재하실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휴먼트리 직원이라고 하시던데 어떻게 된 것인가요?

네. 저는 현재도 휴먼트리에 매일 출근을 하고 있는 회사 직원입니다. 헤리티지 플로스의 디렉터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헤리티지 플로스가 저 혼자 만든 것은 아닙니다. 휴먼트리의 지원과 팀원들의 도움 없이는 절대 존재할 수 없었구요.

 

: 휴먼트리에 입사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래 미술을 공부했습니다. 예고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섬유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2학년 때 섬유냐 디자인이냐로 전공이 나뉘는데, 저는 디자인을 더 공부했어요. 섬유도 같이 배웠구요. 그런데 3학년 때, 더 이상 학교에서 배우는 게 재미가 없더라구요. 제가 배울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컸습니다. 그리고 그때 우연히 휴먼트리에 입사도 하게 되었구요. 그래서 학교에 얘기했습니다. 필드에 나가 실무경험을 더 쌓고 싶으니 더 이상 학교에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졸업장만 달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전 졸업작품도 안 만들었어요. 이후에 휴먼트리에 정식 입사를 하게 된 거죠.

 

: 그럼 졸업은 안하신 건가요?

아뇨. 졸업은 했구요, 시험 칠 때만 나간 겁니다. 학점 이수만 하고 성적은 거의 신경을 안 쓴 거죠. 4학년 땐 아예 학교에 나가질 않았습니다.

 

: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큰 고민은 하지 않았어요. 학교 수업이 재미가 좀 없더라구요. 실습 할 때 였는데 주제가 없었어요. 실크스크린 작업을 하는데, 다들 미키마우스만 하고 있고 저만 다른 걸 하니까 제가 이상한 사람처럼 여겨지더라구요. 그런 바운더리 안에 있는 게 싫었어요. 차라리 실무를 빨리 배우고 싶었어요.

 

: 그 때 공부를 더 하지 않고 나오신 것에 대해서 아쉽다거나 하시진 않나요?

아쉬운 건 없는데요. 그냥 학교 다닐 때 좀 더 열심히 할 걸, 하는 생각은 들어요. (웃음) 그런 거 있잖아요. 섬유라는 게 지금 제 자신에게도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섬유과라는 게 좋았던 것 같아요. 기본이 되는 걸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 그럼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앞으로 디자인을 본인이 할 것이라고 예상을 하셨던 건가요?

아뇨. 이때는 ‘내가 디자이너가 되어야지’ 라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옷이 좋았던 것뿐이에요. 꼭 디자인은 아니더라도 평소에 좋아하던 옷으로 먹고 살아야지, 라는 생각을 한 건 3년 정도밖에 되질 않았어요. 그 때부터 휴먼트리 안에서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죠. 여기서 보고 배우는 것 하나하나가 다 나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생활했죠. 여기서의 경험이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 평소 일과가 어떻게 되시나요?

휴먼트리엔 1시까지 출근해서 8시 반에 퇴근합니다. 이후에 집에 가선 기본(Core)이 되는 책이나 패션잡지를 읽구요. 인터넷으로 정보 습득을 꾸준히 해요. 계속 배우려고 노력하구요. 영화도 많이 봅니다. 특히 영화에서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좋아하는 분야는 시대 상관없이 계속 보는 편이에요.

 

: 헤리티지 플로스 얘기를 해볼게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휴먼트리에서 많은 걸 배웠어요. 4년 넘게 근무하면서 경험도 많이 쌓았구요. 원래 원단에 관심이 많았는데, 여러 공장을 다니다가 지금 헤리티지 플로스 원단을 평직해주시는 분을 만났어요. 그 때 스와치 원단이란 걸 봤는데, 거기에 Floss 라고 적힌 걸 봤어요. 플로스가 사실 실이란 뜻이잖아요. 그래서 그냥 회사명이 플로스인가 보다 하고 무심결에 거기 계신 사장님께 물어봤어요, 이게 뭐냐구요. 그랬더니 정말 장황하게 설명해 주시더라구요. 자세히 말씀드리기엔 시간이 부족하지만, 실이 그냥 단순한 실이 아니었어요. 플로스라는게 명주실의 시초라고 하시며 설명을 해주시는데, 굉장한 프라이드를 갖고 계시더라구요. 그 때 많이 배웠죠. 그때서야 이걸로 뭔가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헤리티지 플로스는 원단 브랜드라고 보셔도 돼요, 패브릭 브랜드.

그런데 아시다시피 휴먼트리는 주 이용층이 20대 초반이잖아요. 저는 그런 분위기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어요. 제 나이 또래 사람들이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의 사람들이 입는 옷을 만들고 싶었어요.

 

: 헤리티지 플로스는 원단에 심혈을 많이 기울였는데, 그게 이 때 시작된 것이군요. 그런데 브랜드를 런칭하려면 자금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결과적으로 헤리티지 플로스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휴먼트리의 투자 덕분이었습니다. 원단에 관한 조사를 많이 하고 꽤 오래 준비를 했어요. 혼자서 거의 10개월 정도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휴먼트리에 제안을 했었죠. 내가 이런 걸 준비하려는데 자신이 있다, 도와 달라. 휴먼트리 측에서도 무작정 지원해 줄 순 없었어요. 휴먼트리가 그리 큰 회사도 아니구요. 쉬운 결정은 아니었는데, 끝내 저를 믿고 지원을 해줬죠. 헤리티지 플로스는 저 혼자 다 한 게 아닙니다. 제가 디렉터로 있지만 휴먼트리 팀원들의 도움과 팀워크가 없었으면 절대 이루어지지 못했을 거예요. 오리지널 컷도 마찬가지구요.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솔직히. 저는 팀워크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했을 거예요. 이게 바탕이 되었기에 제가 이렇게 여기 나와서 인터뷰도 할 수 있는 거구요.

제가 브랜드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 중에 아쉬운 점이 그거예요. 디자이너나 디렉터 혼자 모든 걸 다 하는 듯 한 인상을 대중들이 갖는다는 점입니다. 대표하는 브랜드나 디자이너의 이름이 나와 있지만, 그 과정에서 원단을 만들어 주시는 분부터 해서 다양한 분들이 제품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시는 건데 그걸 몰라주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좀 안타까워요.

 

: 일전에 지인에게 들었는데, 농담으로 루프휠러보다 더 좋게 짤 수 있다는 얘길 하셨더라구요. (웃음)

네, 농담이긴 했지만 자신은 있었어요. 제가 방직 공장에 가서 루프휠러에 관해서 설명을 해드렸는데, 그 분들은 다들 코웃음 치셨어요.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댄데 누가 이렇게 공들여서 가공하냐고, 지금 얼마나 급한데 이렇게 오래 동안 촘촘하게 만드냐구요. 저도 그 점은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지금 환경이 그러니까요. 그래서 제가 물어봤죠. 이렇게 지금 만들지는 않아도 실제로 만들 수는 있냐구요. 그랬더니 그 공장에서 이런 얘길 하셨어요. 만들려면 만들 수 있다고, 루프휠러보다 더 빨리 더 좋게, 쫀쫀하게 짤 수 있다고 하시더라구요. 처음엔 믿기 힘들었죠. 하지만 제가 원단을 받는 곳이 포천에 있는데, 그곳에 가서 직접 평직공정을 보고 나서야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여러 브랜드들을 봐도 국내에서 이런 원단을 본 적이 없거든요. 국내에서 거의 볼 수 없는 두터운 헤비웨이트 원단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제 디자인에 크게 작용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걸로 뭔가를 해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 한 인터뷰를 보니 국내에서 좋은 원단을 뽑아내는 공장이 사라지고 있다며 아쉬워 하셨더라구요.

맞아요.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지만 국내의 실 뽑는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이탈리아, 대만을 포함해서 실을 뽑는 기술에서는 강대국이에요. 그래서 해외에 수입도 무척 많이 하고 있구요. 하지만 국내에선 아직 이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죠. 제품의 가격이 올라가는 건 실 값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좋은 옷의 기본이 실과 원단인데, 이에 대한 고려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웠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좀 더 많이 팔고, 좀 더 빨리 만드는 데에만 치중을 하니까 아쉽죠. 이런 곳에 쉽게 좋은 실을 쓰려니까 아깝기도 하구요. 하지만 그것도 인정을 해요. 그 분들을 깎아 내리려는 게 아니라, 상황이 그러니까요. 그냥 아쉬움만 있는거죠.

 

: 조금 민감한 얘기일 수 있지만, 수익에 대해서 물어봐도 될까요? 휴먼트리에서 받는 월급 외에 헤리티지 플로스만 봐서요.

솔직히 말하면 그리 좋은 건 아니에요. 그냥, 그냥.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잘되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예요. 실질적으로 저에게 떨어지는 수익도 없구요. 저는 그냥 월급쟁이이고, 이에 대한 인센티브도 전혀 없어요.

 

: 얼마 전 오리지널 컷이 발매 되자마자 인기가 많았고 일부 사이즈는 급속히 품절되었는데요. 제가 관심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좀 놀라웠습니다.

저는 그렇게만 생각해요. ‘우리들만의 축제’ 딱 이 정도로만 생각해요. 항상 그랬어요. 저는 이 바닥에 계속 있다 보니까 매번 느끼는데, 아쉬운 부분도 그 부분이죠. 좀 더 대중적으로 어필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니까요.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계속 관심을 갖게 되구요.

헤리티지 플로스도 실은 좀 더 대중적으로 어필하고 싶었어요. 휴먼트리가 사실 스트릿 느낌이 많잖아요. 그래서 처음엔 헤리티지 플로스가 휴먼트리의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숨겼어요. 그 이미지를 얻어서 가고 싶진 않더라구요. 휴먼트리의 이미지가 싫은 게 아니라, 이 쪽 이미지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헤리티지 플로스의 아이덴티티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더 넓은 대중을 고려해야 했어요.

그래서 백화점 유통도 처음엔 생각했었는데, 잘 안됐어요. 그러다가 제품이 나오고 평소에 약간의 친분이 있던 수기형(msk shop 대표)을 찾아 갔어요. 여러 셀렉샵 중에서 이런 국내 브랜드를 인정해 줄 만한 곳이 므스크샵이라고 생각했어요. 평소에도 미리 얘기했었죠. 내가 이런 걸 준비 중인데 봐달라구요. 수기형도 가져와 보라고 했구요. 그래서 만들어지자마자 제품을 가방 가득 넣고 매장에 가서 프레젠테이션을 했어요. 굉장히 오래 설명했어요. 아주 자세한 것부터 원단에 대한 설명도 하구요. 알 필요 없는 내용까지 다 설명을 했었죠. 그 분도 옷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잘 받아 주셨고 유통을 했죠. 헤리티지 플로스가 알려지는데 므스크 샵의 도움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죠. 그 쪽 매니아 분들도 많으니까요.

 

: 헤리티지 플로스 관련해서 혹시 해외에서 연락이 오거나 하지 않았나요?

원래는 스투시 저팬이랑 언디핏에 아시는 분이 있어서 성사가 될 뻔 했지만, 중간역할을 해줄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무산됐어요. 근데 우리가 그걸 보고 만든 건 아니기 때문에 별로 아쉽진 않아요. 최근에 빔스에서 유통하고 싶다고 제품을 가져갔고 자료도 보내줬는데 아직 확실한 건 아니구요.

 

: 혹시 앞으로 헤리티지 플로스나 오리지널 컷을 넘어 하시고 싶으신 게 있나요?

사실 제가 진짜 디자인 하고 싶은 건 그런 거예요. 지금은 제가 어디 가서 ‘저 디자이너예요’라고 말할 정도는 아닌 것 같구요. 제가 꿈꾸는 건 마지막 최종 단계인데, 제 브랜드를 우선 만들구요. 그리고 라이프 스타일 카테고리를 만들고 그 속에 있는 모든 아이템들을 제가 디자인하고 싶어요. 지금 저희가 이렇게 테이블을 놓고 의자에 앉아서 인터뷰를 하잖아요. 이런 책상이랑 컵이랑 이런 걸 다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래서 마지막엔 늙어서 딱 앉아 있을 때 모든 게 제가 만든 것들로 둘러싸인 걸 꿈꿔요. 제 라이프 스타일을 스스로 다 만들고 싶어요.

 

: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건데, 내적 고민이 있으신 것 같아요. 많은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은 반면에, 헤리티지 플로스나 오리지널 컷을 구입 하는게 질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수적으로도 소장가치가 있길 원하시는 것 같거든요.

그렇죠. 엄청 고민이 많아요. 그래서 제가 재생산을 안 하려고 하는 거예요. 이것을 구입하시는 분들이 누구나 다 갖고 있는 아이템이 아니라, 이 제품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자부심이나 메리트 같은 걸 갖도록 해주고 싶어요. 가지고 있음으로 인해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구요. 사실 인지도 높이고 돈을 많이 벌려면 계속 재생산하면 돼요. 하지만 뭐랄까, 제 마지막 자존심? 그런 거예요. 막 찍어 내는 게 별로 재미도 없구요.

 

: 최근에 또 오리지널 컷 반다나가 엄청 인기가 있었잖아요. 그런데 그 제품은 재생산하셨더라구요.

저는 계속 반대했어요. 하지만 오리지널 컷은 저 혼자 하는 게 아니기에 양보를 해야 했죠. 원하시는 분들도 많구요. 저 혼자 했다면 분명히 재생산 안했을 거예요. 재미가 없어요.

딱 그건 것 같아요. 제 삶에서 앞으로도 꾸준히 좀 더 재미있는 걸 생각하고 계속 새로운 걸 만들어 가야 하는 것. 재미있는 걸 계속 이어가는 게 제일 중요한 과제죠. 그리고 목표를 정하고 도달할 수는 없더라도 계속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고 발버둥 쳐야죠.

 

: 재미는 있으세요 요즘? 일이든 살아가는 일이든.

재미는 있죠.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죠. 그래도 서로 간에 부딪치는 일이나 갈등이 크긴 하죠. 하지만 이 일을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사람이 중요하죠. 나랑 같이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게 중요하니까요. 제가 고집이 센 편이라 저랑 성격이 반대인 사람과 일을 하고 싶어 해요. 그리고 아니면 아닌 것 같다고 얘기해주는 분위기가 좋아요.

 

: 요즘 20대들이 옷 입는 건 어떤 것 같아요?

우리 때랑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우리 어렸을 때는 사람들이 좀 더 코어에 충실했던 것 같아요. 하나에 딱 꽂히면 그것만 팠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건 잘 없는 것 같아요. 자기한테 어울리는 스타일이 분명 있을 텐데 분위기에 휩쓸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자신들이 좀 더 스스로에게 맞고 좋아하고 즐길만한 옷들을 입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저는 요즘 친구들보다 전 세대니까요.

 

: 윤호 씨 친구들 중에 이쪽에 안 계신 분들도 있으실 텐데요.

그럼요. 제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저는 그런 친구들에게서 조언을 정말 많이 구해요. 그 친구들이 사실 대중들의 객관적인 시각이잖아요. 이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좀 더 냉철하게 판단해주는 것 같아요. 저랑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제가 만든 것들을 지적하면 기분이 나빠지는데, 친구들은 안 그래요. 그걸 통해서 제가 또 받아들여야 하니까요.

그리고 그 친구들이 저를 가끔 부러워해요. 제가 1시에 출근하니까 좋겠다면서요. 그런데 제가 일하는 실상을 얘기하면 걔들도 진짜 힘들겠다, 그래요. 저도 헤리티지 플로스를 운영하지만, 휴먼트리에서 회사원처럼 조직사회에 들어 있으니까요. 모두 다 위치만 다를 뿐이지 힘든 건 비슷하죠. 편한 게 어딨어요, 다 그렇죠 뭐.

 

: 남들이 윤호 씨를 뭐라고 불렀으면 좋겠어요? 헤리티지 플로스 오너? 디자이너?

그런 건 생각해 본적이 없네요. 어떻게 해야 되지? 그냥.. 옷을 만드는 사람? 가장 현실적으로요. 어쨌든 옷을 만드는 사람이잖아요. 아직 공부도 계속 해야 하구요. 제가 누구를 밑에 두고 알려주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구요. 현실에 만족하면서 계속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건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혼자 전부 다 할 순 없죠. 제품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전 작업을 스스로 하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솔직히 디자이너나 대표 혼자 다 한다는 게 시각의 한계라고 봐요. 그렇게 하면 그 한 사람한테만 집중하거든요. 그 사람처럼만 되려고 하니까요. 실제로는 같이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고, 그 사람들 때문에 발전할 수 있는 건데 말이죠. 팀동료, 팀웍이 정말 중요해요. 그리고 그 속에 참여하는 전문가들도 잘 알려지고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 가까운 일본만 해도 그런 걸 많이 인정해주고 여전히 발전하고 있죠. 마지막 질문을 하자면, 사실 20대나 저희 나이 때 사람들이 꿈꿨던 게 회사원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자연스럽게 그 길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이런 현실을 보면 어떠세요?

저도 그게 아쉬워요. 사람들에게 네가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잖아요. 그 친구들이 좋아하는 걸 찾아주고 알려주고 도와줘야 하는 게 교육이고 학교인데, 그게 한국에서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원래 저에게 강요하는 집안 분위기도 아니었는데, 이러한 환경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도 그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제가 뭐라고 할 순 없죠. 다르게 생각하면 회사에서 돈 많이 벌고 취미 생활로 좋아하는 것 할 수도 있잖아요. 어쩜 그게 더 멋있을 수도 있는 거구요. 결코 어느 한 쪽만 좋다고 할 수는 없어요.

 

: 지금 갓 대학생이나 20대가 된 사람들에게 본인이 생각하기에 재미있는 것을 하라고 말씀하실 수 있을 것 같나요?

그럼요. 대신에 자기가 좋아하는 걸 좀 더 전문적으로 생각하고 파고드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먹고 살아가기에는 그냥 좋아하는 걸로는 부족해요. 저도 이제 결혼도 해야 하고 살아가야 하니까 고민이 많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가 있으면 빨리 전문적으로 배우든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 많이 버는 게 가장 좋은 일이죠.

아니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빨리 해보고 맞지 않으면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구요. 항상 고민이죠. 우리 나이 또래나 그 위아래나 가장 큰 고민이죠. 그래도 좋아하는 걸 찾아서 그걸 하는 것만큼 좋은 건 없잖아요. 거기서 전문성을 갖고 고민을 하는 게 더 발전할 수 있는 거구요.

저도 아직 배우고 싶은 게 되게 많아요. 저는 남들 앞에서 말을 잘 못해요. 그래서 말하는 법도 배우고 싶어요. 왜냐하면 머릿속이 항상 복잡하기 때문에 이게 밖으로 나오면 오합지졸로 나와요. 그걸 좀 제대로 전달하고 싶구요. 이런 것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잡지는 이미 나왔다 by James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선 이미 여러 번 글과 사진을 올렸는데, 잡지가 지난 4월 30일에 나왔다. 서울 시내 대학가 일부에는 무료로 배포되기도 했고 대형서점(영풍, 반디엔 지금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교보에는 없다는 얘기도 들었다)이나 인터넷 서점에서는 3,800원에 판매하고 있다.

  외부 반응은 요즘도 수집하는 중이지만, 회사 내부 반응은 좋아서 아마 조금 더 부피를 키울 듯 싶다. 인원도 보강하고, 현재 타 잡지사(하지만 같은 회사 소속) 마케팅팀이나 타 부서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 직접 마케팅 등의 부서를 만들 듯 하다. 모든 건 확실치 않다. 나조차도 확실치 않다. 나는 더 이상 아르바이트의 신분이나 차후에 어시스턴트로서 일을 하진 않겠다고 말을 해둔 상태다. 내 미래도 확실치 않은 현 상황에서 더 이상 내가 도와줄 일도, 이유도 없다. 그런데 아직도 결정이 되지 않은 채 나는 출근을 하고 있는 상태다.

  꿈꿔오던 곳에서 일을 한다는 건, 꿈의 실현인 동시에 현실의 인지다. 어떻게 이 시스템이 돌아가는지 아는 동시에, 왜 이렇게 밖에 되지 않나, 싶은 부분도 존재한다. 나는 나와 맞지 않다고 여기는 부분에 관해서 직접적으로 절대 얘기하진 않았다. 잡지계 시스템에서 오랫동안 이루어져왔던 것을 내가 건드릴 필요는 없다. 나는 그럴 위치도 아니고(다른 사람들은 내가 지금과 같은 신분이기에 얘기해도 된다지만), 이어져왔던 것을 쉽게 지적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잡지에 내가 직접 쓴 기사는 세 개 정도다. 그 모든 게 내가 기획해서 쓴 글은 아니다. 어떤 기사는 그냥 나에게 넘어와서 쓴 것도 있고, 어떤 기사는 아무 생각없이 자료조사 겸 써놓은 글이 재미있다고 실린 것도 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만족하지 않는다. 특히 기사를 준비하면서 너무나 재미있었던 인터뷰 기사의 경우엔 내 의도와도 맞지 않았고, 디자인적인 면에서도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번 창간호에 대한 평가를 할 때, 나는 싫었던 기사로 그 인터뷰 기사를 꼽았다.

  잡지에 관해 나와 전혀 인연이 없던 사람들의 의견이 듣고 싶은데, 쉽지 않다. 사람들을 거쳐서 받아보면 내용이 부실한 경우도 많다. 지난 주는 이러한 피드백을 받으러 돌아다녔다. 이 피드백을 바탕으로 더 나은 잡지를 만들어야 할텐데, 나는 아직도 막막하다. 여전히 내 미래는 불안하고, 내 자리도 믿을 수 없다. 일을 하면서 자신감은 얻었지만 인정은 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내 글이 매체에 실렸다는 건 참 신기하다.





몇 주 간의 인스타그램 (5/1) by James

















































  @james_k0



전화 한 통에 힘이 쭉 by James


  어디서 부터 말을 해야 할까. 거의 시도해 본 적이 없는 번호 붙이기로 글을 써본다.


  0. 마감을 했다. 목요일에 정시 출근해서 다음 날 새벽 4시에 퇴근했다. 금요일 오후 2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했다. 저녁 6시가 아니라 새벽 6시였다. 목요일과 토요일 사이에 시간관념이 없었다. 시험기간에도 밤을 못 새던 나였는데, 어쩌다보니 밤새 기사를 수정했다. 교정과 교열의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 줄 몰랐다. 그렇게 창간호 준비가 끝이 났다.

  1. 어제 연락을 받았다. 드디어 책이 나왔다며. 나는 잡지를 책이라고 부르는 게 좋다. 왜 잡지를 스윽 훑고 버리는 존재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어렸을 적부터 잡지와 뗄 수 없는 관계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여전히 잡지가 책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소년챔프, 루키, GMV, 핫뮤직, 게이머즈, 뉴 타입 그리고 페이퍼, 씨네21, 한겨레 21 등등을 거쳐왔다. 나는 단 한 번도 정기구독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책을 정기구독하지 않는 것과 같다. 매주 혹은 매월 발매일에 맞춰 동네 서점이나 가판대를 찾았다. 그렇게 직접 사서 보는 재미가 은근히 쏠쏠했다. 어쨌든 책이 나왔고 대형서점에 풀렸다. 가격은 3,800원이라고 했다.

  2. 토요일 새벽 7시에 집에 도착해서 쓰러지듯이 잠을 잤다. 일요일에는 간단히 농구도 했다. 비닐을 뜻지도 않고 구입한 지 몇 달이 지난 매그레 시리즈 4권을 드디어 뜯었다. 책을 읽는데 왜 이렇게 졸린지. 두 달 동안 책이란 걸 제대로 읽은 적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닫고 자신이 놀라웠다. 쉴틈없이 읽어가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건 젊었을 때 호기였나 싶을 정도로 나는 바쁘게, 그리고 개인시간을 허비하듯이 살아왔다.

  3. 내일 출근을 하라는 얘길 들었다. 나는 뭘까. 여전히 나는 그냥 알바생인가. 이제 슬슬 내 위치를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아마 내일 무언가가 결정되지 않을까. 두 달 동안 지켜본 나는 어떤 사람일까. 이 일을 하기에 괜찮은 사람일까, 아니면 알바로 쓰깅네 좋은데 정식으로 계약해서 일을 시키기엔 별로일까. 어쨌든 현재 이러한 상태로 일을 계속 하기란 내키지 않는단 생각은 확고하다. 이 일로 인해 쓰지 못한 이력서가 몇 장인지 가늠하기도 힘들다. 상반기가 끝나간다.

  4. 3월에 받은 월급으로 몇 가지를 샀다. 사려고 했던 넥타이도 사고 여름을 대비해 반팔 티셔츠도 구매했다. 그리고 할인을 기다렸던 벨트도 주문했다. 그 모든 걸 어제 오늘 다 받았다. 티셔츠는 손 빨래를 해서 바깥에 말렸는데, 단 몇 시간만에 다 말라 버렸다. 벨트는 가죽 벨트라서 부츠왁스로 손질을 해뒀다. 부츠도 함께 손질했다. 그리고 넥타이는 너무나 마음에 든다. 평소의 나라면 이 가격에 절대 이런 넥타이를 구입하지 못했을테지만, 그래도 잡지사에서의 첫 월급이라 주문했다. 너무나 마음에 든다. 여름이라는 게 아쉬울 정도로.

  5. 집에서 쉬고 있는데,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오늘 쉬냐며, 너가 근로자인지 묻는다. 그 농담엔 뼈가 있어 기분이 영 별로였다. 다시 교사할 생각없냐는 물음과 누구는 어디에 취직도 척척 잘된다는데 왜 이력서 넣는 곳에서는 연락이 없냐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흘러 나온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욱하는 마음을 최대한 가라앉힐 줄 아는 능력은 내가 나이 들면서 배운 몇 안되는 좋은 점이다. 이 좋은 게 나를 위함이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조금은 참을 줄 알게 되었다. 전화 한 통에 힘이 쭉 빠졌다. 기분은 한없이 가라앉았고, 날은 흐려졌다.

  6. 어제는 또 우울한 소식을 들었다. 몇 달 전부터 글을 쓰고 돈을 받는 알바 비슷한 걸 했었는데, 그걸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 큰 돈은 아니지만 나름 생활비에 충당이 되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일이 중단되어서 조금 난감했다. 게다가 아직 두 달치 돈도 받지 못했다. 이번 달에 들어온다는데, 그 시간이 너무 아득하다.

  7. 어머닌 내가 잡지사에서 돈을 얼마 받는지 궁금해하셨다. 나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냥, 말하기가 그랬다. 그리 큰 돈이 아니기도 했고, 왠지 말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 이번 주 주말에 부산에 내려가려고 했는데, 돈이 없어서 못갈 듯 싶다. 어버이날에 맞춰 그래도 내려가려고 했는데, 이번 통화로 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가끔은 이런 상황이 너무 싫다. 차라리 그냥 연락을 끊고 살다가 내가 성공이라고 생각할 즈음에 나타나고 싶을 때도 가끔씩 있다. 이런 내 마음을 모르는지, 계속 성가신 말들이 귀에 들어온다.

  8. 잡지사에서 일한 월급이 들어왔을 때, 나는 CD 세 장을 샀다. 넬 신보와, Seoul Seoul Seoul 컴필 앨범, 그리고 제이슨 므라즈다. 최근에 관심을 못 가져서 무슨 음반이 새로 나왔는지도 잘 몰랐다. 이 중에서 제이슨 므라즈는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국내에서 유명하기 전에 1, 2집을 구입했고 3집을 자연스럽게 구입했더니 너무나 유명해졌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가 CD 표지에 19세 미만 청취불가 마크가 붙어 있어서, 그래 하고 싶은 걸 했겠지 싶어 구입했다. 그것도 디럭스 버전으로 구입했다. 오랜만에 기쁜 마음에 세 장을 샀는데, 서울 컴필만 마음에 든다. 이렇게 허무할 수도 없다.

  9. 인스타그램은 여전히 재미있다. 남들의 일상을 보는 게 재미있다. 트위터는 아침에 출근할 때 잠시, 밤에 잠들기 전에 잠시 할 뿐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은 틈이 날 때마다 들여다본다. 요즘은 외국인들이 내 계정에 많이 들어온다. 그 이유는 확실치 않다. 그래서 그런지 글을 아주 수준 낮은 영어를 가지고 쓸 때가 있다. 조금이라도 소통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랄까. 그건 그렇고 오픽을 준비해야 하는데 어쩌나. 오픽이나 토스 생각만 하면 숨이 턱 막힌다.

  10. 내일 정산을 한다고 한다. 그동안 쓴 택시비나 여러 비용을 정산한단다. 인터뷰를 여러 번 했는데, 그 때마다 내가 커피값을 지불했다. 그런데 나에게 이런 것에 대해 아무런 얘기도 안해줬는데, 알고보니 이런 진행비도 따로 받을 수 있단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인터뷰로 당시엔 그냥 내가 낸다고 생각했는데,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아깝다. 지금같이 돈이 없을 때는 더욱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5만원 정도 되는데, 영수증을 단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짜증난다.


  11. 문득 궁금해진 것이 있다. 우리의 꿈이 회사원은 아니었음이 거의 자명한데, 왜 대학 나온 20대들은 다 회사원이 되길 간절히 원하게 된 것일까. 먹고 살기 위해서, 라는 답 말고 다른 건 없나.




오늘은 참 많이 잤다 by James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글을 써보자. 시간을 달리는 소년은 아니더라도. 어제는 지인(들) 집에서 집들이를 했다. 이사한 지는 꽤 됐는데 이제서야 집들이 라고 하는 게 좀 웃기지만, 겸사겸사 가기로 했다. 일전에 글쓰기 스터디 하던 사람들이 다 모이기로 했으니, 한 분은 못 왔다. 남자 둘과 고양이 한마리가 사는 집에 방문했다. 집은 넓었고 조금 부러웠지만, 나는 여전히 내 방에 만족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한 분은 늦게 온다는 얘기에 둘이서 만나 향뮤직에 갔다. 어제는 3월에 일한 금액이 들어온터라 CD를 꼭 사고 싶었다. 오랜만에 신촌에 갔더니 기분이 생경했다. 마을버스를 타고 그들이 사는 곳으로 갔다. 마트에서 소주와 야채를 사고 국대떡볶이에서 튀김과 순대를 샀다. 그리고 치킨 두 마리를 시켰다.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해주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말해줬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 일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진 않았던 것 같다. 조금은 들 떠서 얘기했던 것 같다. 그들은 마치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는 양 들어줬고 신기해했다. 하지만 밝지 않은 미래를 가졌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똑같았다. 맥주도 마시고 소주와 토닉워터를 섞은 술도 마셨지만 전혀 취하지 않았다. 새벽 3시가 넘어서 잠들었고 오늘 아침 10시에 일어났다. 그 집에 사는 고양이 한 마리와 둘이서 마주보고 있다가 30분 후에 나왔다.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오늘도 출근을 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그동안 많은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를 하면서 이 일이 참 나와 맞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이는 내가 쓰고 있는 모자를 디자인한 사람도 있었고, 해외에서 온라인 샵을 운영하는 분도 있었다. 모두가 내가 먼저 연락해서 만났다는 점은 똑같았다. 전화로 시간을 맞추고 장소를 찾은 후, 나는 커피를 샀다. 녹음을 해도 되냐고 물어보고, 에어플레인 모드로 바꾼 후 아이폰 음성메모를 켰다. 내 생애 첫 인터뷰는 전혀 녹음이 되지 않아 절망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버릇처럼 하던 필기는 이 때 큰 도움이 되었다. 말을 들으면서 포인트가 되는 단어들을 쓰다보면 나중에 봤을 때 그건 하나의 줄로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나는 녹취를 풀면서 그 길에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덧붙이면 되었다. 하나의 기사를 위해 총 4명을 인터뷰 했고 그걸 문답으로 다 풀었었다. 하지만 문답 형태는 재미없다는 얘기에 통글로 바꾸었다. 그 분량이 A4 8장으로 나왔다.

  기사의 분량이 많아져서 사진을 넣기로 했다. 그래서 추가로 만남을 또 가졌다. 전문 포토그래퍼 분들과 어렵게 약속을 잡고 인터뷰이와 또 약속을 잡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구도와 컷을 요구했고, 포토그래퍼 분은 그대로 해주셨다. 나는 그 작업이 상당히 재미있었다.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인터뷰 기사 내 사진들을 나는 그대로 넣고 싶었다. 단지 인터뷰이의 얼굴만 나오는 게 아니라, 그 인터뷰 시 풍겼던 분위기나 상황, 인터뷰이의 복장 등을 담고 싶었다. 말 그대로 인터뷰 상황과 느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인터뷰 글이 좋았던 것이다.

  또 다른 인터뷰도 했다. 원래 내 기사는 아니었는데, 화보에 들어갈 멘트를 넣기 위해서 여러 명의 여대생과 인터뷰를 했다. 딱 한 마디를 끌어내기 위해서 꽤 많은 말들을 나누었다. 그들은 어떤 연애를 원하는지, 어떤 남자가 좋은지 등등. 이상하게 말이 잘 나왔고 나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원래 말이 잘 없고 낯도 가리는 편인데, 이 날 만은 달랐다. 아마 스스로 이것은 인터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만나는 게 좋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결을 더듬는 작업이 좋다. 이건 어쩜 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게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인터뷰 글을 읽는 게 싫을 수 있지만, 나는 잡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인터뷰였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느낌이 어떤지 깨닫는 일주일이었다. 즐거웠다, 로 충분치 않은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뷰는 내가 했지만 기사의 방향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이런 일이니까. 편집장님의 의견에 반기를 들지는 않지만 아쉬웠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게 또 어떻게 될 지도 모르겠다.


  마감이다. 나는 이제 어떻게 될까.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일까 혹은 정식으로 일하시겠어요, 일까. 몇 몇 기자분들은 피쳐기자로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보는데, 그게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니니까. 한 경력기자 분께, 이런 업계 기자들은 대체 돈은 언제 많이 벌어요, 라고 물었더니 평생 못 벌어요, 그러다 죽는거지, 라는 명쾌한 답을 들었다. 그리고 얼마를 받든 서울에서 집 못사요 라는 대답도 들었다.

  기사를 총 세 개를 썼는데, 모두 내가 해보겠습니다, 하고 쓴 글은 아니다. 즉 내가 기획해서 쓴 글은 아니란 뜻이다. 공식 매체에 실리는 내 글이 X과 관련된(4월 30일 이후에 밝혀지겠지) 글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인터뷰도 사실 마찬가지지. 학부시절, 내가 후에 잡지사에서 인터뷰를 하면 이나영은 안되더라도 정유미(탤런트 말고)나 이승환을 첫 인터뷰이로 정할 줄 알았다. 하지만 역시나 그건 꿈일 뿐이었지만.


  오늘은 많이 잤다. 지인 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온 후 오늘도 회사에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비가 오는 낮에 잠이 드는 게 대체 얼마만이었는지. 최근에는 야근도 많아서 언제나 잠이 부족했다. 블로그나 카페 글을 못 읽는 건 여전했고 책장을 넘겨본 기억도 없다. 책을 읽어야지, 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침대에 누웠더니 금세 잠이 들었다. 꿈에서도 편집장님의 지시를 받느라 일을 하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깊이자긴 했던 것 같다. 자고 일어났더니 오후가 다 지나갔다. 하지만 기분만은 좋았다.

  살이 좀 빠졌다. 내가 입는 바지 중에 허리가 큰 게 있다는 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어, 셔츠를 바지에 넣어 입어야 할 때만 아니면 벨트를 잘 안하는데, 어제 입고 나간 면바지가 줄줄 흘러 내렸다. 길을 걷다가도 중간 중간에 바지를 치켜 올려야 하는 민망함이 여러 번 있었다. 운동도 못 했는데 밥을 잘 못 챙겨 먹으니까 살이 빠지는 듯 하다. 그렇다고 눈에 띄게 빠지는 건 아니고. 요즘은 날이 더워져서 셔츠 하나만 입고 나간다. 그리고 그 셔츠도 팔을 둘둘 걷어서 다니는 중이다. 촬영이나 인터뷰가 가로수길이나 압구정에서 많아 그 쪽을 자주 걸어 다니는데, 다들 자신을 뽐내느라 바쁘더라. 그게 싫은 건 절대 아니고, 그냥 그 모습도 다들 열심히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스웨이드 재질의 스니커즈와 로우데님, 그리고 연한 핑크색 옥스포드 셔츠 하나 입고 걸어가는 내가 볼품없게 보일지라도, 왠지 그냥 그 순간이 좋았다. 이어폰에선 에릭 클랩튼의 필그림 앨범이 나오고 있었는데 위로 받는 느낌이 컸다. 내가 앞으로 이 일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더라도 이 순간의 경험은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간의 이야기들 by James


  잡지사에서 일을 한 지 4주가 지났다. 잡지 이름도 정해졌다. <GEEK>이다. 긱 매거진으로 불릴지는 확실치 않지만, 긱이다. 회사에 소속된 모든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하나하나 칠판에 적어두고 지워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나는 조금 진중한 분위기를 원해서였을까, raison d'être, NAVY, BLANK, ANCHOR 등을 적었다. STOP도 냈었다. 각 스펠링에 의미를 부여했었고, 여기서 밝히긴 좀 민망하다. 내가 가장 끌렸던 것은 네이비와 앵커였는데, 바로 탈락되었다. 20대 남성 전반을 다루는 터라, 무거울 수 없었다. 편집장님은 인디잡지들의 우울함은 최대한 배제하고 싶어했다.

  같이 일하던, 아르바이트로 회사 자체에서 뽑힌 두 명 중 한 명은 2주 만에 나가고, 한 명은 어제로 그만뒀다. 원래 한 달만 하기로 했었다고 했다. 나에겐 4월에도 할 수 있냐고 제의하셨다. 나는 우선 알겠다고 했는데, 사실 몇 개 안되는 짐을 다 싸서 나왔다. 이제 기자들도 대충 정리된 듯 하고, 포토그래퍼들과 얘기도 다 된 듯하다. 이제 정말 기사 쓰는 일만 남았다. 나는 기사는 쓰지 않고, 최근에는 필요한 아이템들을 조사하고 그것을 픽업하는 작업을 한다.

  현재 느낌으론 이 잡지는 차분하진 않고 약간 튈 것 같다. 하지만 기존 잡지인 크래커나 블링과는 다르다. 첫 호이기에 긱에 어울릴만한 이미지나 아이템들을 많이 가져오려고 한다. 사실 긱을 정하기 전에 많은 얘기가 있었다. '찐따'라는 원래 의미를 아예 벗을 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엔 그 부정적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그냥 하기로 했다. 이 잡지가 말하는 긱은, 하나에 몰두한 사람이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에 빠져서 남의 시선은 그리 게의치 않는 사람들을 다루고 싶었다. 일종의 덕후를 말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 잡지는 그들을 이 세상에서 루저가 아니라, 인정하고 싶어한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그게 바로 그 사람이라고 인정해주고 싶어한다. 나는 그 마음만은 충분히 공감한다.

  누군가가 스니커즈를 모은다고 치자. 자신이 지네가 아닌 이상 하루에 그 많은 신발들을 다 신을 수 없다. 가끔 하루에 한 켤레씩 바꿔가며 신어도 한 달 내에 전 신발을 못 신는 사람도 있을테다. 하지만 그들을 주위에서 뭐라고 할 수 있나. 아무도 그럴 권리가 없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행위에 남들이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나는, 그리고 이 잡지는 그들이 가진 전문성을 보려고 한다. 하나에 빠져 있다는 것은 그 분야의 전문성을 갖췄다는 뜻이기에. 이 잡지는 매달 주제가 있다. 그 주제에 관해서 좀 더 깊이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그로 인해서 잡지 자체를 콜렉하도록 만들고 싶어한다. 일본 잡지들처럼 과월호 판매도 물론 한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재미없는 시간도 분명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즐거웠다. 우선 마음놓고 패션 관련 블로그나 카페, 편집샵 등을 들락거릴 수 있어 좋았다. 물론 기업에 원서도 넣었다. 많이 넣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넣었다. 광탈을 했다는 사실도 존재했다. 하루에 세 군데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 불확실한 미래를 보면, 아르바이트 삼아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겠지만 이게 과연 제대로 내 삶을 꾸려가고 있는건가 싶을 때가 많았다.

  같이 일하던 한 사람과 금요일에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 날 사실 많이 아팠다. 그 전날 운동을 열심히 하고 오랜만에 치맥을 먹었다. 그게 탈이 났는지 출근한 이후에 몸이 좋지 않았다. 픽업할 물건들을 가져온 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잠을 잤다. 그 같이 일하던 사람도 나보고 한숨 자라고 했다. 잠을 잠시 잤더니 좀 낫긴 했지만, 그래도 퇴근시간까지 고통스러웠다. 까스활명수를 두 병이나 마셨다. 페리에가 있어 두 병이나 마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왠지 서글퍼서 눈물이 났다. 퇴근하는 사람들 속에서 민망해 금방 그쳤지만, 좀 슬프더라. 오랜만에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고 묻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체한 게 사라지니 장염이 왔다. 화장실을 자주 갔다. 어제는 거의 하루종일 잤다. 그런데 이상하게 푹 잤다.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어서 그런지, 정말 푹 잤다. 어제 밤엔 잠이 안와 새벽 3시 까지 책을 봤다. 그래도 아침 7시 반에 눈을 떴다. 잠을 잘 땐 편안했지만, 일어나니 배가 여전히 아팠다. 그래도 할 일은 하자는 생각에 빨래를 하고 집안 정리를 했다. 뭔가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는데, 커피는 굉장히 마시고 싶다. 하지만 지금 이 속에 커피를 넣으면 분명히 탈이 날 것 같다.

  지난 번에 사온 김현식 전집을 다 리핑하지 않았다. 이런 박스셋을 한 번에 리핑하면 분명 제대로 듣지 않기 때문이다. 3집까지만 변환을 해놨는데, 지금 나머지를 리핑하는 중이다. 너무 미뤄뒀던 것 같아 리핑을 하고 음악을 듣고 있다. 어제는 미뤄뒀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봤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영화 같지만 들여다보면 성기지 않은 스토리가 참 좋다. 그리고 그 수많은 수다들도 좋다. 레이첼 맥아담스는 볼 때마다 매력적이다. 백치미를 가진 캐릭터라도 좋다. 이 영화를 다 보니, 옛날 노래들이 듣고 싶었고 원서가 읽고 싶었다. 가장 좋은 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읽는 것이지만, 그 원서는 부산집에 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게 <The Lovely Bones>다. 예전에 읽다 말았는데, 잊고 있었다. 색이 굉장히 바랬지만, 그래도 침대에 누워 그냥 읽고 있다. 하루는 또 반이 지나갔다. 내일 나는 출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몇 주 간의 인스타그램 (3/25) by James






  @james_k0



표지시안을 찾다가 by James


 표지시안을 찾다가 이미 정해진 듯 해서 안타까운 마음에 여기다 올려 본다. 하나의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내가 생각나는 사람들을 검색. 사이즈도 제각각. 모든 출처는 구글.

무슨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언제가 될까 by James


  내가 노트에 끄적이는 내용을 타인의 눈이나 마음이 아닌 온전히 나를 향한 것이란 걸 인식하는 순간이. 내가 내 손으로 쓰는 글씨인데 남들이 보고 이쁘지 않다고 생각할까봐 조금, 아니 많이 신경써서 쓰는 현재의 순간들. 그 신경쓰임때문에 내가 원래 쓰려고 했던 내용의 20%는 허공으로 날려 버리는 시간들. 이젠 그 날아가 버린 후의 흔적조차도 남아 있지 않은 내 기억력. 뭐, 이런 저런 것들이 여전히 내가 내 수첩에, 내 노트에 제대로 글을 쓰지 못하게 만든다고 변명하면 이건 핑계인가.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매체는 많아지지만 그것이 진실과 진심에 가까워지는 건 아니라고. 언젠가는 보는 이가 나밖에 없는 글은 쓸 수 없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원래 그런 글쓰기 자체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노트와 수첩에 초등학생 비밀일기장처럼 잠금 장치를 달아두면 나아질까. 아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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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장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